본문 바로가기

붓다 이야기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본 시간 끝없이 회전하는 운명의 수레바퀴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본 시간 끝없이 회전하는 운명의 수레바퀴

방인 경북대 철학과 교수 “시간이 보여지지않는 곳에서는 어떠한 인식도 없다”­이 명제는 인도의 정통찰학파인 미밈사학파에 의해 제시된 유명한 명제이거니와, 이 명제는 시간의 문제가 철학적 탐구의 한 가운데 놓여져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러면 시간이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일까? 시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면서 인도인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깨닫게 된 것은 존재의 근원에 시간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베다의 경전에서는 시간을 창조주의 프라자파티(Prajapati)창조한 창조주로 묘사한다.

여기서 시간의 개념은 실재의 원천으로서 우주적 힘(cosmic power)이자, 동시에 우주르 ㅪㅏ스리는 절대적 원리의 개념으로 까지 발전하고 있다.

원시불교의 시간론은 바로 이러한 인도고대의 시간론을 모태로 해서 계승·발전하였다.

인도고대사상에서 시간이 우주를 다스리는 절대적 원리였던것과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시간의 원리는 불타마저도 따를수 밖에 없는 필연적 원리였다.

불교의 시간개념은 불교의 중심원리인 삼법인중의 하나인 제행무상의 원리속에 각인되어 있다.

시간속의 모든 존재는 반드시 변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행무상의 명제를 통해, 우리는 불타가 시간의 수레바퀴를 어떠한 존재도 거역하거나 피해갈 숭 벗는 운명의 수레바퀴로서 선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인도사상 일반과 불교의 시간론의 공통적 특징은 무엇인가? 인도사상과 불교의 시간개념을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은 순환적 시간성의 개념이다.

순환적 시간성은 고대로부터 동서양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되어지는 현상으로서, 인도에서는 베다시대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대인들은 일원성신을 중심으로 하는 천체가 단순히 운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발견하였다.

고대인들의 시간관념이 바로 이 천체의 운동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천체가 회전한다는 사실로부터 시간도 또한 회전하고 있다고 하는 시간관념을 도출해 내기에 이르렀다.

이 순환적 시간관의 대표적 예증의 하나가 윤회전생의 관념이다.

윤회전생에 관한한, 불교인들도 역시 고대의 힌두이즘으로부터 그 원형을 채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윤회는 그 개념 자체가 순환적 시간관념을 표현하고 있다.

그 본래의 어원에서 볼 때, ‘삼사라’(samsara)는‘함께 흘러가는 것’‘상태의 연속을 경과하는 것’(to pass through a succession of states)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 개념은 나중에 발전해서 원형으로 이동하는 순환의 개념을 나타나게 된다.

한역경전에서는 삼사라를 항상 윤회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글자 그대로 선회 또는 회전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초기부터 불교가 인간존재를 순환적 시간관을 통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세계가 형성·지속·파괴·허무의 과정, 즉 성·주·괴·공의 과정을 통해 생성과 파괴를 주기적으로 반복한다는 불교의 관념도 일산순환적 시간관의 표현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우주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대순환이지만, 이것을 구체적 존재에 적용시키면 존재는 생성·지속·변화·소멸이라는 생·주·이·멸의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불교의 순환적 관념은 아마도 불교가 인도신화적 사고로부터 계승한 것일 것이다.

인도의 신화에서는 브라만, 비슈뉴, 시바의 신이 등장하는데, 브라만은 창조의 신이며, 비슈뉴는 생성의 신이고, 그리고 시바는 파괴의 신이다.

이들은 창조·파괴라는 세계순환의 원리를 상징한다.

이처럼 전체적 범주로 판단할때, 불교와 인도사상 일반은 순환적 시간관에 속한다.

그런데 시간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탐구를 계속하면서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실은 시간의 문제가 조재론적 문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도의 시간론을 그 존재론적 연관성에서 파악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도 시간론은 그 존재론적 연관성에서 볼 때, 두 가지 계통으로 분류될 수 있다.

예컨데 Malkani는 인도철학의 시간론을 실재를 시간적인 것으로 보는 절대론의 계통과 실재르 ㄼㅣ시간적인 것으로 보는 현상론의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계통은 시간을 감각적 세계의 밖에 존재하는 어ㄸJㄴ 절대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견해이다.

예컨대, 시간을 우주의 창조주나 신으로 숭배하는 베다의 사제, 혹은 상주불변하는 실체로 보는 니야아학파, 그리고 시간을 진리로서의 실체로 보는 쟈이나교등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이것은 절대주의, 혹은 본체주의적 시간론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둘째 계통은 시간을 감각적 세계에 관련시켜 시간을 경험적 세계에 속한것으로 파악하는 태도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실재는 본질적으로 시간속에 있으며, 비시간적 현상이나 실체성은 우리 정신이 만들어낸 주관적 허구에 불과하다.

이것은 상대주의적, 현상론적, 경험주의적 시간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불교는 바로 이 두 번째 계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제행무상의 교리는 시간론이 존재론과 연관되어질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존재는 무상하기 때문에, 항상 유동 가운데 있다.

불교 시간관의 현상론적 특징은 이러한 존재론적 특징에서 비롯되고 있다.

불교도들은 공허한 시간이나 비시간적 존재의 개념은 존재론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불교는 유아론을 중심철학으로 삼았던 정통적 브라마니즘에 반대하여 무아설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가 시간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브라마니즘이 실체론적이며, 정태적이라면, 거기에 반해 불교는 양상론적이며 역동적이다.

모든 변화와 생성뒤에 는 불변하는 실재가 있다고 믿는 브라마니즘과는 반대로 불교는 무상한 재행의 배후에는 어떠한 불변적인 실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브라마니즘에서는 영원한 시간을 주장하는 반면에, 불교철학에서는 영원없는 무상성만을 주장한다.

불교는 이처럼 정통적 브라마니즘과 결별하였으나, 그 결별은 오히려 인도시간론의 전개에 있어서 혁명적 진보를 가져와다고 하겠다.

[출처]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본 시간 끝없이 회전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이대학보|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