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생성 이유
알기쉬운 불교(12) = 부처님 생애
(3)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 연기설은 세계 인생의 일반적인 생멸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기가 설해진 본래 목적은 단순한 일반적 현상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고뇌가 어떠한 조건과 원인에 의해 생겨나고 어떠한 인연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가 하는 인생의 고락 운명에 관한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바로 십이연기설은 인간에게 왜 생사의 괴로움이 발생하며, 어떻게 멸할 수 있는가를 밝혀 주는 가장 체계적이고 완비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① 무명(無明) : 연기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제에 대한 무지이다.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이다. 이것을 연하여 행(行)이 있게 된다.② 행 : 마음의 움직임을 가리킨다. 무명 때문에 짓게 되고 그것은 존재의 내부에 반드시 잠재적인 힘의 형태로 남게 된다. 행을 연하여 식이 있게 된다.③ 식(識) : 인식작용이다. 과거의 행이 없다면 현재의 인식작용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식을 연하여 명색이 있게 된다. ④ 명색(名色) : 명은 정신적인 것, 색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식이 주관적인 면을 나타내고 있는 데 반해 명색은 그 대상인 객관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명색을 연하여 육입이 있게 된다. ⑤ 육입(六入) : 눈(안) ․ 귀(이) ․ 코(비) ․ 혀(설) ․ 몸(신) ․ 마음(의) 육근을 말한다. 대상과 감각기관과의 대응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육입을 연하여 촉이 있게 된다. ⑥ 촉(觸) : 지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심적인 힘이다. 촉은 식 ․ 명색 ․ 육입 등 3요소가 함께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촉을 연하여 수가 있게 된다. ⑦ 수(受) : 즐거운 감정, 괴로운 감정,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감정과 그 감수 작용을 말한다. 수를 연하여 애가 있게 된다.⑧ 애(愛) : 인간의 본능적, 맹목적, 충동적 욕망을 말한다. 애를 연하여 취가 있게 된다.⑨ 취(取) : 어떤 대상에 대해 욕망이 생기면 그것에 집착심을 일으킨다. 취를 연하여 유가 있게 된다. ⑩ 유(有) : 존재를 말한다. 애와 취로 말미암아 미래의 과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유를 연하여 생이 있게 된다.⑪ 생(生) : 업의 결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⑫ 노사(老死) : 태어난 자가 필연적인 결과로서 받아야 하는 늙음과 죽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蘊)의 집기(集起, 발생)가 있게 된다.12연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명(明)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종교적 주제인 죽음의 구조와 과정과 실상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최종적인 해명이 바로 이 십이연기설의 의미인 것이다. 십이연기설이 설해짐으로써 연기의 법칙성은 불교적 진리의 완성판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2) 삼법인(三法印)-존재의 실상 부처님께서는 일체는 모두가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인 것이라고 단정하셨다.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이 세 가지 명제, 즉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를 불교에서는 삼법인이라고 한다. 일체개고 대신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기도 하는데 이 네 가지를 합하여 사법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법인이란 세 가지 진실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불교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제행무상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때 드러나는 존재의 속성은 바로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한다고 하여도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자연물 또한 무상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인 현상도 항상 변하며 고정불변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무상하기 때문에 병약자가 건강해질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도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의 밑바탕에서부터 무상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만큼 사람들은 유상하다고 본다. 백 년이나 천 년을 살 것 같이 생각하고, 자기의 재산과 권력과 명예는 영원히 갈 것으로 본다. 탐착과 인색과 교만은 이런 생각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불교의 무상설은 중생들의 이러한 뒤바뀐 착각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다. 값싼 감상주의나 비관적인 현실관이 아니다. 올바른 인생관을 수립코자 하면 먼저 현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둘째, 일체개고(一切皆苦)는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가르침이다. 즉 무상하기 때문에 고(苦)라는 것이다. 제행무상의 진리는 부처님 자신이 실제로 체험하고 성찰한 결과에서 나온 것으로 모든 것이 무상하다고 하는 자각은 결국 고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계신다. 세상에 생하여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다. 미운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오취온은 괴로움이다.셋째, 제법무아는 모든 것에는 영구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我)라고 하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실체, 영구불멸의 실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인연따라 생하고 인연에 의해서 멸한다. 어떤 조건에 따라 생긴 것은 그 조건이 없어지면 따라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불변하는 실체란 없다. 무아의 가르침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기 중심적 사고와 아집이 허망한 것임을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열반적정이다. 열반은 진리의 구현이다.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완전히 구현하여 모든 번뇌와 고통의 불을 끈 상태가 바로 열반인 것이다. 열반은 모든 번뇌와 욕망, 대립과 고통이 사라진 고요한 평화의 상태이다. 따라서 불자들은 삼법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 속에 구현하여 최상의 평화와 자유인 열반을 향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