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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래 불교의 역할

미래 불교의 역할

 

이웃종교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서 종교 간 지평융합 모색

 

▲ 김용표 교수는 “불교는 세계의 어느 종교보다도 이웃종교와의 이해와 협력을 가장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교리체계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종교임을 인식하고 불교도들은 세계평화와 성숙된 종교인이 되기 위한 대화운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불교는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을 종식시키고 종교 간·이데올로기 간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결론을 대신하여 종교 간·이데올로기 간 지평융합과 대화를 위한 불교의 역할과 과제를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종교 간 회통적 이해 위해선

불자들 성숙한 종교인 돼야

부처님의 ‘비판적 관용’ 정신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로 계승

융합돼도 획일화되지 않는다는

원효 스님 ‘화회해석학’도 주목

첫째, 세계종교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위해서 종교학에 대한 지식과 아울러 ‘종교불학(Buddhology of Religions)’ 또는 ‘불교의 종교학적 이해’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 불교인들에게 요구됩니다. ‘종교불학’이라는 용어는 제가 처음 제안하는 불교학의 새 분과입니다. 종교불학은 ‘종교신학(Theology of Religion)’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종교학과 세계종교 이해를 기반으로 한 불교의 새로운 인식 방법입니다. 넓게는 여러 종교들에 대한 불교학적 입장과 해석 모두를 종교불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종교불학은 불교와 세계종교들 간의 유기적 관련성과 대화를 중요시합니다. 종교에 대한 다원주의적 가치를 존중하며 종교 간의 상호 교섭관계에 대한 역사적이고 사상적인 연구와 아울러 세계종교의 공동 기반과 종교의 보편적 본질에 대해 탐색하고자 합니다. 또한 보편적인 종교의 현상학적 구조와 불교의 특수한 원리 간의 상호 순환적 이해를 모색합니다. 종래의 국내 불교연구는 종학적(宗學的)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차원의 경전 주석이나 교리 연구에 치우쳐 왔습니다. 불교사의 연구도 세계종교사의 큰 흐름 속에서 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밝히려는 노력보다는 불교의 역사만을 따로 분리하여 연구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불교도 세계문화사의 한 부분이며 종교문화사와 인류정신사의 흐름 속에서 역동적으로 발전해 온 사실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종교문명사의 흐름과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적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종교사는 인류문화사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서 종교도 역사적·문화적 산물임을 재인식해야 합니다. 종교의 교리와 경전도 언어문화의 산물이므로 그것은 절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문화적 인식이며 상대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종교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한스 가다머(Hans-Georg Gadamer)를 비롯한 철학적 해석학자들은 모든 해석의 역사성과 주관성을 강조하면서 해석의 영향사(effective history)적 의미를 제고했습니다. 모든 지식은 해석되어진 지식이며 인식주체와 대상은 상호 순환적 관계에 있습니다. 종교적 상징과 가치 체계도 상대적이며 역사적인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의미에서 절대 고정된 진리관을 논파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서구의 포스트모던 사조를 불교 세계화를 위한 디딤돌로 활용해야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유구조는 관계론적 사유의 한 패턴이므로 불교적 사유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며 소통할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또한 서구에서 일고 있는 생명주의, 생태주의, 비트제너레이션, 뉴에이지 운동, 녹색 운동 등과 같이 생명과 자연주의 문명을 선호하는 그룹과 불교는 그 기본 입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조는 다원성과 열린 정신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서구의 불교운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불교 사상은 서양의 이원적 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일원주의와 다원주의의 조화를 통해 포스트모던 사상의 한계점도 극복해 줄 수 있습니다.

넷째, 종교 간의 회통적 이해를 위해서 이 시대의 불교인들은 다른 종교인들보다 성숙한 종교인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위대한 종교가 지닌 종교성과 영적 차원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천하의 진리는 둘이 아니고, 성인의 마음도 둘이 아니다(天下無二道 聖人無兩心)”라는 금언을 잘 음미해야 합니다. 한국 불교도들의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를 보면, 일반적으로 교단적으로는 배타주의 경향이 있으며 교리적으로는 포괄주의적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체험적으로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숙한 종교인이란 의미는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으나 참된 종교인은 자기중심의 삶에서 진리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집착과 독선에서 벗어나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마음으로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성숙한 종교인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깊은 신앙과 헌신, 이웃종교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통해 종교 간의 차이는 물론 종교의 본질과 그 공동기반을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다섯째, 종교적 진리 주장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개별 종교의 특수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종교 간 대화는 세계종교의 공통 기반을 전제하기보다는 차이와 특수성을 인정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스위들러는 창조적 ‘종교 간-이데올로기 간 대화’를 위하여 먼저 상대방의 주장을 논파하려는 논쟁(debate)과 참된 대화, 즉 ‘대화적 대화’를 구분하면서 다음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a)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이들은 상호이해의 분위기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그치고 상대방의 진가를 인정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b)자신을 상대방의 의식 속으로 이입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진가를 체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쌍방은 서로 풍요로워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대단히 귀중한 경험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종교체계에서 단지 잠재적이거나 초기단계에 있는 요소들을 다른 종교적 전통 속에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타 전통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합일의 성취는 차이점을 창조의 기초로 존중하는 데서 이룩될 수 있다.

(c)이런 창의적 결합이 완성되면 종교들은 21세기를 특징지을 수 있는 융합적 형태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보편적, 미분화적이고 추상적인 의식이 아니라 융합적이고 지구적인 의식일 것이다. 이 의식의 성격은 문화와 종교의 지구적 융합이며, 교환적 대화의 동력성 때문에 지구적 대화가 될 것이다.’

‘스위들러의 대화방법론’은 종교 간의 차이와 자율성을 먼저 인정하고 차이점에서부터 ‘창조적 대화’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종교 간 공동기반을 중심으로 한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접근방법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원주의는 모든 종교가 하나라는 획일주의가 아니라 각 종교의 독특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열린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종교적 진리의 보편성은 차이의 인식에서 찾아야 하며 종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심층적 종교경험이 필요합니다.

여섯째, 종교 간 지평융합과 대화를 위한 방법론을 붓다의 이웃종교에 대한 태도에서 그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불교는 초기불교 시대부터 이웃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과 수용의 태도로 일관해 왔습니다. 붓다는 다양한 진리주장에 대해 연기적 지혜와 포용적 자비로 대했습니다. 붓다는 연기법에 어긋나는 진리 주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으며, 참된 진리에 대한 판단은 맹목적 신앙이나 전통의 권위가 아닌 개인적 경험에 의해 이성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자비정신에 입각해 이웃종교와 사상에 대한 관용과 포용주의적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른바 ‘비판적 관용(critical tolerance)’이란 말로 표현되는 붓다의 이웃종교에 대한 기본태도는 이 시대에도 계승되어야 합니다.

일곱째, 현대의 종교 간·이데올로기 간 갈등의 해소를 위해 원효의 ‘화회해석학’을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의 관용주의는 붓다의 무쟁(無諍)사상에서 출발하여, 대승의 공(空, s´u-nyata-)사상에서는 진리의 개념에 대한 무집착과 모든 견해를 초월하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원효는 이러한 불교 전통을 발전시켜 모든 경전과 종파의 진리 주장의 다양성을 회통하는 다원주의적 진리해석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원효의 화회 원리에는 불교 내의 다른 진리주장에 대한 화해뿐만 아니라 종교와 사상 간의 대립과 갈등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원효는 보편적 종교와 모든 성인의 가르침의 근원이 되는 공동기반을 불성으로 보는 일심(一心)중심 다원주의를 제시하였습니다.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원효의 화쟁회통(和諍會通) 해석학은 진리 주장에 대한 화해의 방법이자 대화해석학이었습니다.

원효는 ‘무량승(無量乘)이 곧 일승(一乘)’이라는 종교관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궁극적 관심은 불법이라는 테두리마저 초월한 무애자재한 삶의 실천에 있었습니다. 원효가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까지도 하나의 진리로 이해하고자 한 예는 ‘법화종요(法華宗要)’에서 일승(一乘)의 개념을 불교의 삼승(三乘)뿐만 아니라 샹키야(數論派, Sa-m. kya)나 자이나교(尼乾子) 등의 외도까지도 포함시켜 이해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원효는 하나의 주장이나 입장을 펴는 이들에게 총체적인 진리인식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자기의 종교나 학설만 옳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주장이나 차이를 인정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법의 실상을 여실히 보는 이는 편협한 진리주장에서 벗어나 진리 절대화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둘이 융합되어도 하나로 획일화 하지 않는다는 ‘융이이불일(融二而不一)’의 경지에 원효 해석학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가 아닌 까닭에 모든 부분에 해당되고, 다른 것이 아닌 때문에 모든 입장이 한 맛 속에 융해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체와 부분 간의 해석학적 순환의 원칙은 불교 내부의 회통뿐만 아니라 오늘의 종교다원화 시대에 종교 간의 진리 주장에 대한 이견을 해소할 수 있는 대화방법으로서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교는 세계의 어느 종교보다도 이웃종교와의 이해와 협력을 가장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교리체계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종교임을 인식하고 불교도들은 세계평화와 성숙된 종교인이 되기 위한 대화운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불교는 진리의 상대성, 경전언어의 방편성, 진리에 대한 무집착과 진리 주장에 대한 ‘입장이 없는 입장(positionless position)’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다원주의를 향해 열린 포괄주의’라고 규정지을 수 있게 합니다.

 

불교가 가르치는 진리 탐구 자유의 존중, 이웃종교에 대한 관용과 존중, 열린 진리관, 폐쇄된 교리나 전통을 깨뜨려 줄 수 있는 공사상의 역동성 등은 다종교 사회에서 이상적인 종교 대화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인류문명사의 조류는 모든 경계와 장벽을 넘어서는 다원주의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미래의 종교문화는 ‘종교문명 간의 충돌과 심판의 시대’가 아니라 ‘종교 간의 지평융합과 대화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불교의 열린 정신은 미래 종교 문명의 새 장을 열 정신적 바탕이 되어야 하며, 불교도들은 이러한 종교의 시대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정리=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이 내용은 2015년 12월14일 동국대 다향관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수월 김용표 교수 정년퇴임 회향강연회’를 요약한 것입니다.

[출처] 미래 불교의 역할|작성자 양벌리독서실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