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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국 불교포교의 현황과 문제점 및 전망

미국 불교포교의 현황과 문제점 및 전망
이민용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미국 내 한국불교의 양태

미주 불교포교에 어떻게 다가갈지 포맷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주는 현재 한국사회에 가장 잘 노출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불교가 진출해 있지만 재정적인 여건이나 사회문화적인 여건, 신도들의 역할과 구성 등에 따라 다르다. 사찰에는 스님이 있고, 그 스님들의 포교적인 관점과 신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미주불교를 결정하는 관건이다.

미국불교학자 엔 네티에는 불교를 수입불교, 수출불교, 수하물불교의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이는 한국의 미주불교 위상을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틀이 될 수 있겠다. 수입불교는 말 그대로 실수요자의 요청과 필요에 따라 불교를 수입하는 것이다. 엘리트 불교라고도 칭해지는데, 엘리트 불교의 특징은 참선수행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방의 위빠사나수행이나 동북아시아의 가나선, 참선수행에만 관심이 있고, 윤리적 문제, 가족의 전통에 대한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불교단체에는 관여하지 않고 수행이나 신앙에 관한 책만 읽고 불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서 침실조명등불교 혹은 책방불교라고도 한다. 또는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 불교를 접한다고 하여 구매자불교라고도 칭한다. 아니면 달라이 라마, 숭산 스님 등 스님들의 법회에만 여기저기 쫓아다닌다고 하여 범메뚜기불교도라고도 불린다.


다음으로 수출불교는 기독교와 같이 미국 땅에서 선교를 통해 불교도로 개종운동을 하는 것이다. 복음주의적 불교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일본 창가학회의 경우 본부가 강력하게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해서 승려를 파견하여 창가학회를 결성하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종류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수입불교가 대개 상류층으로 구성된 반면 수출불교는 교육과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유색인종들, 아프아메리카계, 라틴계 난민들, 동양계 미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프아메리카계 불교도 중에서도 흑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지만 사실 그들도 백인과 같은 관심을 갖고 불교에 접근하고 있다.

벨 훅스라고 하는 유명한 시인이자 뉴욕 시립대학교 여교수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수하물불교가 있는데, 미주 한국불교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민 보따리 속에 집안 전래의 한국불교를 고스란히 싸 가지고 들어온 경우로 소위 이민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이민자들에게는 생존이 일차적이다. 미주 한인교회들이 초기 이민자들을 위한 생존의 기능을 담당했듯이 베트남, 태국 등의 이민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거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민불교이다. 문화적인 충격을 해소하는 것이 또 다른 기능인데,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양식을 영위하고 고국의 것을 함께 나누기 적합한 장소가 바로 이민불교이다.

섬 같은 불교
가장 뭉뚱그려진 특징은 바로 섬 같은 불교라는 점이다. 이민불교는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섬과 같은 기능을 한다. 거대한 땅에서 동떨어져 홀로 물 가운데 떠 있는 섬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동화되거나 서로 교섭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유한 것만을 유지하는 배타성을 지니고 있어 주류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제 섬처럼 떠 있는 한국 이민불교의 문제점을 짚어 보겠다. 이민불교는 고국의 불교와는 다른 이중적 장소성과 이중적 시간성을 항시 의식하고 있다. 한 실체가 둘로 갈라짐으로써 사찰의 정체성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신도들의 의식구조에도 큰 변화가 있다. 소위 고향을 그리워하는 신도들 자신의 정체성에 위기가 오는 것이다.

그럼 신도 구성은 과연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민불교가 마련한 불교 행사에서 같은 불교도인 엘리트 불교도들이 같이 법회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의 경우 장년 이상의 노인 계층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민 기간이 짧아 아직 주류사회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층들이 대부분이다.

신도들을 지도하는 스님들은 종단의 지원이나 연관 없이 미주에 온다. 모든 일을 개별적으로 계획, 수행하므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된다. 계율 준수, 신도와의 갈등, 독선적 행정이 스님들 측의 문제라면 이사회, 신도회 결성을 통해 사찰 운영을 시도하는 경우 스님들을 고용인으로 여겨 수시로 갈아 치우고 일거수 일투족 스님의 행태를 짧은 시각에 판정한다. 기독교가 목사를 고용했다가 언제든지 갈아 치우는 것과 똑같은 행태가 벌어진다.


L.A.에 소재한 도안 스님의 관음사는 그 규모나 역사에 있어서 미주 사찰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활동들은 스님 개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인정될 뿐 활동이 대물림되거나 제자 속으로 승화되어 다음 세대로 전승되기는 어렵다. 미주 한국 사찰의 대부분은 사찰이 개인의 소유로 되어 있어서 사찰이 사찰로서 전승되기 어렵다.


대안은 피자 같은 불교

나는 섬 같은 불교의 대안으로 피자 같은 불교를 내세우고자 한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피자가 미국에서 더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피자가 되었다. 불교는 철학적·학문적 어휘로 구성된 개념적 사상만이 아니고 종교이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과 관련된 변화하는 생활양식이 바로 불교이다.

한국불교는 섬처럼 외롭게 떠서 모든 것을 차단하고 소외시키고 배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 해외라는 현실, 이 미국이라는 현장을 배제하고 불교는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2~3세대가 참여하지 못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불교의 역사는 동화의 역사이자, 변형, 변화의 역사이다. 티베트에 가서 티베트불교 내지는 라마불교가 되었고 중국에 건너가 중국불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봉행하는 법요의식과 불교의 내용은 한국 것 그대로 편의에 따라 베끼고 있을 뿐이다. 현장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불교의 전통성,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현장적 검증이 절실히 요구된다. 숭산 스님, 삼우 스님 같은 분이 다분히 수입불교적인 경향을 띠는 활동을 하셨다면 법안 스님, 도안 스님, 도감 스님 등 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스님들이 이민불교를 선도하고 계시다.


지금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에서와 동일한 문화, 사상, 사회적 위상은 한국불교가 미주에 정착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제도로서의 사찰은 한국의 그것과 다름없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으며, 그 속에 담긴 불자들은 미국화의 변모를 겪고 있는 이중적인 모순 속에 빠져 있다. 우리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엄밀한 평가와 개혁이 요구된다.




 
2. 주제토론

한국불교는 미국에 무엇을 전할 것인가

원영 스님(미국 뉴져지 보리사 주지)│불교포교에 대한 시각을 구체화 시킬 필요가 있다. 포교를 세일즈로 비유할 때 현지 미국에서 활동하는 포교사(출가자, 재가자)들은 불교라는 물건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일즈의 성공 여부는 세일즈맨의 역량과 직결되는 것이며 그 역량은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의 교육열의 및 내용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것은 비단 미주포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국외 어느 나라, 아니 국내 어느 사회에도 해당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포교할 대상에 대한 현지 사정 및 그 대상에 맞는 인재개발 및 양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에 먼저 현지 사정에 밝은 현지인을 포교사로 양성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1차적으로 수하물불교를 수입불교로 바꿀 필요가 있다.


해주 스님(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먼저 국제적 표준에 의한 포교를 할 것인지 한국불교를 알리는 포교를 할 것인지 사업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수입불교, 수출불교, 수하물불교 세 양태에 대한 지원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인재양성 방향과 관련해서는 현지인의 불교교육과 한국인의 언어교육의 두 가지를 병행하거나 혹은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양방향이 필요하다. 현지인의 불교교육은 현지 사정과 언어에 자유롭다는 것이 장점이나 한국 정통불교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며, 한국인의 언어교육은 한국전통불교를 전달하기 쉬운 장점이 있으나 현지 사정에 어둡고 언어의 장벽이 단점이 된다.


원영 스님│미국 내 불교의 계율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백인사회의 경우, 결혼은 별로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육식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즉 불자라면 채식을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수행 위주의 불교)을 가지고 있다. 미국 백인사회의 불교가 결혼 여부를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일본불교가 먼저 전해졌기 때문이며, 미국사회에 불교를 처음 가져간 불교도가 출가자가 아니고 재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인사회에서는 결혼 여부와 육식 문제 둘 다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특히 뉴욕 한인사회의 경우 조계종이냐 아니냐 여부까지 중요시하고 있다.


김인수(『한국불교신문』 주간)│현재 미국 내의 한인 사찰에서는 이민자들을 위해 아리랑, 트로트 등을 틀어 주며 그들의 향수를 달래 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상류층의 사람들, 심지어는 한인 상류층의 사람들에게도 적합한 포교방법이 아니다. 국제포교의 첫걸음은 우선 한국불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정체성을 확보한 후 그들에게 맞는 한국불교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불교의 근대화이다.

서화동(『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차장)│한국불교를 수출한다면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불교가 중국불교, 그리고 인도불교와는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국제불교 포교의 우선 과제라 생각된다. 그리고 불교를 수출한다는 표현이 맞는지 아니면 법 그 자체를 포교한다는 표현이 맞는지, 그리고 여기에 한국불교를 덮어씌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으며, 우리가 시행해야 할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 개별적인 포교보다는 종단적인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병두(『불교포커스』 논설주간)│이민자 포교를 위해 시작된 한국 내의 미얀마, 스리랑카 스님들의 국제포교 활동을 살펴보면 국제포교에 있어 언어는 그리 큰 장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언어나 문화는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사항이며 스님들의 포교 실천과 수행 실천이 국제포교의 주 원동력이다.


김봉래(국제포교사회 회장)│한국불교는 불교가 한국문화와 접목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국제포교는 그 성공 포인트가 수행력과 언어라 할 수 있다. 이에 종단 내의 교육기관 내에서 이 두 가지를 겸비할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하다. 예를 들면 동국대학교 내에 국제불교대학원을 신설하거나 포교사 과정에도 국제불교 부분을 접목해서 교육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 생각되며, 교리보다는 체계적인 수행방법론을 만들어 국제포교의 실천적 체계성을 확보하는 것도 활성화의 한 방안으로 보인다.

이경숙(『현대불교신문』 취재부장)│국제불교를 위한 종단의 전담 부서가 만들어져서 중장기계획이 설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지도자의 인재개발 및 양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현지 미주 불자들에 대한 신도교육도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상철(전 콜롬비아 대사)│해외포교는 다양한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라마다 다르고 고장마다 다르고 원주민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포교의 방향은 다양한 각도에서 통합적으로 계획되었을 때 효과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세계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슬로건이 필요하며, 어느 사회든 중상층 이상이 공감하는 글로벌 마인드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불교 내 글로벌 마인드(무차별, 화합, 평화 등)의 범주 속에서 슬로건을 만들고 국제포교를 시작한다면 세계인들에게 접근하기가 보다 용이할 것이다. 또한 이런 글로벌 마인드를 통해 우리 세일즈맨(포교사)들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추어야 한다. 국제적 에티켓을 배우고 그 속에서 불교를 접목하면 쉽게 포교의 방법론을 창출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한국불교의 공식성이 필요하다. 한국불교는 어떤 것이라는 규격이 필요한 것이다.


이수덕(전 불교TV 사장)│종교에 관심이 있는 기독교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체 내에 내재되어 있는 폐쇄성을 극복하여야 한다. 가톨릭대학에서는 『중론』을 강의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개방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톨릭이 중심이 되어 전체의 종교를 바라보는 중대한 전략이다. 다시 말하면 종교도 변하고 발전해야 하므로 폐쇄성은 이에 대한 가장 큰 장애라 할 수 있다. 국제포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포교할 대상은 『성경』을 공부한 사람들인데 『성경』을 모른다면 국제포교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 것이다.

조성택(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국제포교의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불교를 알리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국내포교의 한계를 느껴서인지, 목적이 설정되어야 방향도 설정될 것이다. 만약 전자의 경우는 2차적 작업 혹은 부수적인 업무에 해당할 수 있으나 후자의 경우는 살아남기 위한 1차적 업무이자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국제포교를 계획하고 지금 시행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바로 후자의 경우라 할 수 있다. 일본불교, 티베트불교 모두 생존이라는 1차적 업무에 해당한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경우인가? 이에 따라 포교의 방향과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불교에는 재가자는 있어도 재가불교는 없다. 그러나 미국불교는 우리 한국불교보다 재가불교에 있어서는 앞선 나라인데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권도의 경우를 한 번 벤치 마킹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 한국불교계는 서양 기독교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다. 서양의 기독교는 한국의 기독교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며 그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도는 무척 수준이 높고 불자들은 더욱 수준이 높은 실정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좀 더 다원적인 이해와 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이 국제포교는 불가능하다.


이용부(문화부 전 종무관)│나는 40년 불교 신앙생활 동안 스님들의 법문 속에서 달마, 육조, 혜능 스님을 인용한 불교만 들었지 한국불교의 스님들에 대한 내용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판국에 우리가 미국에 국제포교를 한다니... 그럼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 왔던가? 나는 어떤 스님한테도 지눌 스님, 원효 스님들의 법문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한국불교라 하고 한국불교를 알릴 것인가? 한국불교문화에 푹 젖은 사람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

김규칠(대한불교진흥원 감사, 국민대학교 객원교수)│21세기에는 신본주의도 아니고 인본주의도 넘어서는 생명과 생명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초점이 될 것이다. 인간이 신을 창조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고 생명과 생명의 관계가 생명을 창조하고 역사를 전개했음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런 21세기의 흐름 속에서 불교는 새로운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한불교진흥원에서 국제포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오늘 이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보다 나은 국제포교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제는 그냥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큰 그림을 그려서 국제포교를 제대로 해 보자는 생각으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원력을 낸 것이니까, 여기 계신 여러분이 항상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시고,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출처] 미국 불교포교의 현황과 문제점 및 전망|작성자 양벌리독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