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승은 성문성 • 연각승 • 불승의 세 가지를 일컫는데, 이 중 앞에서 언급한 소승은 성문승과 연각승의 둘로 나뉘고, 대승은 불승의 다른 말이다. 또한 성문승(소승)과 불승(대승)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연각승(pratyekbuddha-yāna)은 벽지불승 이라고도 한다. 연각(pratyekabuddha, paccekabuddha)을 음역하면 벽지불이 되며, 또는 독각(獨覺)이라고도 의역한다. 연각은 다른 이의 가르침을 들어서 깨치는 성문과는 달리, 다른 이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인연을 일으켜 도리(道理)를 관찰함으로써 깨침을 얻는 것이다. 이는 중생을 구제하는 불타와는 달리 자기만의 깨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산 속에 은둔하여 세상을 등지고, 세상의 사람들을 지도, 구제하는 것을 회피하기 때문에 독선적이라 할 수 있다.
⁂연각사상
부처님은 보리수 밑에서 연기의 도리를 관찰하고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난 후, 몇 주일을 선정사유(禪定思惟)를 계속하며 성도(成道)의 즐거운 향락을 느끼던 차였다. 부처님은 스스로 깨친 연기의 도리는 극히 난해한 것으로 세상에 내놓아도 이해하지 못 할 것을 알았다. 따라서 힘들게 말해서 이해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말함을 단념하고 은둔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때의 부처님은 말하자면 연각의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범천이라는 신이 부처님 앞에 나타나 ‘만약 부처님이 법을 설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더욱더 타락의 고뇌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설사 부처님의 설법이 난해한 것이라고 하여도, 설법하는 방법을 찾으면 이해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므로 필히 설법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므로 부처님은 범천의 청에 따라 결의하고, 그때부터 전도 교화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제6장의 ‘4제설법의 경과’ 참조) 이때의 부처님은 이미 연각이 아니라 정등각자(正等覺者)로서의 불타이다.
한편 연각[독각(獨覺)] 사상은 이미 불교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원시경전에도 연각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를 테면 『중부(中部)』 116의 「선탄경(仙呑經)」에는, 부처님의 말씀에 ‘선탄산(仙呑山)에는 옛날에 500명의 독각(연각)이 살고 있었다’는 구절이 안온다. 뒤에 부파불교에서는 독각을 두 종류로 분류했다. 집단으로 수행하는 부행독각(部行獨覺)과, 단독으로 수행하는 인각유(麟角喩: 뿔이 하나밖에 없는 무소의 뿔처럼)독각이 그것이다.
옛날 성문의 가르침은 4제, 8정도였고, 연각의 가르침은 12연이었고, 불보살의 가르침은 6바라밀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대승의 주장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 역사상 연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연각, 독각의 가르침도 없다. 따라서 3승의 가르침을 앞과 같이 구분하는 것을 온당치 못하다. 4제 • 8정도 • 12인연 • 6바라밀은 모두가 불교의 기본적 교리 학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