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불교에서 ‘윤회’를 주장하는데, 이는 기존 인도사상을 불가피하게 수용한 것이 아닌가? 무아사상으로 영혼이나 아트만(자아)이 없다면서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가?
‘나’는 실체가 없는 인연의 만남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고 윤회 못해
윤회하는 것은 자신의 업이나
평생 누적된 정보의 연합체일 뿐
A ‘끊임없이 바퀴가 돌아간다’는 뜻의 윤회(輪廻)는 산스크리트어 삼사라(Samsāra)의 번역이며, 이는 바퀴가 어디든 굴러가는 것처럼 중생이 온갖 번뇌와 업으로 욕계·색계·무색계라는 삼계와 육도인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신도에 두루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부처가 되면 비로소 멈추게 됩니다.
이 사상은 인도 기존의 사상이니 불교사상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윤회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교리체계도 윤회사상이 그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윤회를 부정하면 불교의 대부분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빨리어 경전인 쿳다까 니까야의 <자타카(본생경)>에는 부처님의 547번의 과거전생을 기록해 놓았으며, 다른 경전에서도 과거생 에피소드를 예를 들어 제자를 지도하거나 법문을 하신 내용이 수 없이 나옵니다.
또한 부처님이 성불하시기 전날 밤 여섯 가지 신통력을 얻는데, 그 중에 중생들이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양한 차원의 세상인 삼계와 육도에 태어나고 죽는 것을 보는 천안통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의 전생을 아는 숙명통도 지니게 되는데 이러한 천안통과 숙명통의 기반이 윤회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법인·사성제·팔정도·연기법·업설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라흐만교에서는 아트만(자아)이나 영혼(뿌드갈라)이 윤회의 주체라 하는데, 불교에서는 무아사상으로 이들을 부정합니다. 그렇다면 불교의 윤회 주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이 지구에 다시 태어남만을 윤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실체가 없는 인연과 업의 만남일 뿐 진정한 나는 존재하지 않고 윤회하지도 못합니다.
결국 윤회하는 것은 자신의 업이나 평생 누적된 정보의 연합체일 뿐입니다. 비유하자면 클라우드 저장과 같은 원리입니다. 기기(몸)가 바뀌더라도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업)를 다운받으면 지구 어디에서든지 다시 사용됩니다. 클라우드의 수많은 정보는 기기나 검색어 등 조건에 대응하여 각각 따로 제공됩니다. 포터블 저장매체 같은 아트만이나 영혼은 필요치 않습니다.
지구의 인구는 끝없이 늘어나는데 대해 윤회하는 수에도 의문을 가지는데, 인간과 지구라는 한계를 벗어나면 모두 설명됩니다. 물리학의 11차원·불교의 33천·삼계·육도 등 다양한 차원의 세상과 존재가 우주적으로 서로 교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회는 불교의 핵심사상이고 아트만이나 영혼이 없어도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