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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축의 시대

축의 시대

기원전 500년쯤 신기하게도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서양의 그리스와 이스라엘, 그리고 동양의 인도와 중국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탐구가 확장되던 시기였습니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탐구의 영역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지만, 각각 철학과 종교의 시작을 불러왔습니다. 이 시기엔 동양과 서양의 인적이나 물적 자원, 즉 사상과 문화가 전혀 교류되지 않던 시기임에도 비슷한 사상적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이 시기를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Axia Age)'라 지칭했습니다. '축의 시대'는 기원전 900여 년부터 기원전 200여 년까지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경이로운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대에는 중국에서는 공자, 묵자, 노자가 활동했고 인도에서는 고대철학 경전인 [우파니샤드]와 석가모니(고타마 싯타르타)가 등장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성경의 선지자들인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나타났고 그리스에서는 그 유명한 파르메니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철학자들이 출현했습니다.

서로 교류가 없던 네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어떻게 그토록 놀라온 사유의 혁명이 일어 날 수 있었을까? 왜 그들은 우주와 인간의 삶에 대해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을까? 영국의 종교학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책 [축의 시대]를 통해 인류사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이 놀라운 시기에 종교와 철학이 어떻게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지 축의 시대인 네 문명의 지역을 넘나들며 재조명합니다.

축의 시대 - 카렌 암스트롱

종교의 탄생

카렌 암스트롱의 다른 저서인 [신을 위한 변론]을 보면 신보다는 제의(祭儀)가 먼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즉, 자연과 우주에 대해 알지 못하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과정에서 제의(제사)가 먼저 있었고, 이후 그 빈 공간에 신이라는 관념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인간이 서서히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면서 그 두려움에 대한 해소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축의 시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축의 시대는 인간의 시점이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옮겨가는 과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계의 네 지역에서 독특한 문명으로 축의 시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네 지역에서 만들어낸 축의 시대의 종교와 철학이 판이하게 나타나는 원인은 아마도 지역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한듯싶습니다. 서양의 그리스나 이스라엘 지역은 척박한 땅이 많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많았습니다. 더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많았습니다. 더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은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의식에 맞게 신도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서양의 신은 전쟁의 신이었고 절대자에 가까운 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서양의 신은 인간을 닮았습니다.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신입니다.

이와는 다르게 동양의 땅은 비옥한 땅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땅을 두고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천하통일의 목적이었지, 생산물을 얻기 위한 땅을 목적으로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신도 전쟁보다는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신이었습니다. 동양의 신은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절대신의 위치도 아닙니다. 그냥 우주의 자연 질서를 보존하는 신입니다. 하늘이 신인 것입니다.

서양은 사람과 비슷한 인격을 가진 신이기에 인간에게 직접 나타나거나 계시합니다. 하지만 동양의 신은 직접 나서지 않습니다. 천자라 불리는 왕들이 신의 뜻을,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서양의 신은 의인화가 되어 있어서 외부로부터 작용되는 어떤 힘입니다. 반면 동양의 신은 내부로부터 깨달음이 강조되어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일명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카렌 암스트롱의 약력

철학의 시작

자연을 해석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서양은 인간을 통해 자연을 봅니다. 그래서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시 됩니다. 자연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떻게'라는 작동원에 이성적인 판단이 집중됩니다. 자연을 해석하고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합리적 판단과 논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사유는 자연과 우주를 보면서 놀라온 인간의 이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킵니다.

하지만 동양은 자연을 통해 인간을 봅니다. 그래서 관계 중심입니다.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합일 과정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우주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깨달음인 것입니다. 이 의식의 내면화가 '범아일여(梵我一如)'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하늘과 내가 하나이기에 다 개인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여기엔 인간의 이성보다는 바라보는 대상의 관계가 우선되는 것입니다.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전까지 약 700여 년간 찬란하게 빛났던 인류 문명의 뛰어난 통찰을 만들어 낸 축의 시대는 제국이 들어오면서 서서히 쇠퇴합니다. 제국은 집단성을 만들어 냄으로써 개인적 사유의 벽을 만들어 냅니다. 집단의 단일성, 공동체의 동일성이 더 이상 사상의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제국에 파묻혀 버립니다. 또한 기술 발전 역시 축의 시대를 저물게 했습니다. 통찰은 인간의 직관적 사유보다는 과학적 계몽을 더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카렌 암스트롱의 책 [축의 시대]는 인류 문명사에 있었던 찬란한 사유의 시대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스, 이스라엘, 인도, 중국의 네 지역에서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자연의 섭리를 해석했는지, 문명별로 시작된 종교와 철학의 역사를 되짚어 봅니다. 너무나 방대한 양이지만 지역별 특성이 워낙 강해 각 문화별 특징을 잘 집어 냈습니다.

카렌 암스트롱이 주장했듯이 인류사에서 축의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은 없는 듯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도 '서양철학사 2천 년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 세계의 철학과 종교는 축의 시대 때 탄생하고 시작된 철학과 종교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직도 그 영향력 아래에 있고 그림자 밑에 놓여있습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15세기 이후를 새로운 축의 시대라 합니다. 종교와 신 아래에서 시녀 노릇을 하던 과학이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앞세우며 종교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있었던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축의 시대만큼의 큰 문명의 혜택을 줬지만 축의 시대 때 제기되었던 사유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과학적 탐구와 결과는 논리와 이성의 최고 지향점이 되어 어떤 사태와 행동에 대해 설명할 때 절대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는 어느덧 종교가 되고 제사장이 되어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사유는 '과학적'이라는 틀에 갇혀 한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사유함으로써 발생하는 사고의 한계는 과학적 사고의 경계와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동서양의 종교를 통해 볼 수 있는 황금률이 있습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너도 남을 대접하라'입니다. 동양에서는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하기 싫다'로 나타납니다. 현대의 철학은 인류를 생각의 틀에서 해방시키지 못했습니다. 또한 현대의 종교는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우리는 바라보며 경악하고 있습니다.

2,500여 년 전 인류를 지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도약시켰던 현자들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고민을 되짚어 봐야 할 듯합니다. 세상을 관찰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들이 추구한 것은 해석과 적용이지 강요가 아닙니다. 개인적 삶의 태도에 관한 적용이지 남을 향한 강요의 폭력이 아닙니다. 축의 시대 현자들의 삶을 닮을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진정 무엇이었는지는 삶을 통해 되짚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살펴야 하고 현자들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토라의 원리, 성경의 새로운 계명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출처]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 -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작성자 고슴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