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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요약 

사고방식이나 견해가 기존과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철학자 칸트가 인식은 대상에 의거한다고 생각되어 왔던 것을 역전시켜 주관의 선천적 형식이 대상의 인식을 성립한다고 주장함.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자신의 인식론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이름 붙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운행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해 당시 천동설을 숭배하던 기존 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즉, 칸트의 이 말은 과학적 인식의 근거를 객관이 아닌 주관으로 이전시켰다는 점에서 천문학상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비견할 만한 인식론상의 전환을 가져온 것을 비유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은 소위 저명인사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즐겨 입에 담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작센 주의 전 총리 쿠르트 비덴코프는 『손자들에 대한 착취』라는 책에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 말을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손자 세대를 관찰의 중심에 놓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썼다.

미래에 우리의 손자손녀들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정도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전향적인 경제정책을 운용해야 한다. 이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생각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작용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임마누엘 칸트 이후로 확고한 의미를 띠게 되는데, 이것은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공전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자기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자전에 관한 개념이다.

움직이는 것은 별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주변부로 물러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부로 들어가서 그곳으로부터 사물을 관찰하고 논의를 펼쳐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자연법칙은 자연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연에 부과하는 것이라는 칸트의 형이상학적 전환은 이처럼 중심부로의 이행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슈뢰딩거의 고양이, 2009. 1. 20., 에른스트 페터 피셔, 박규호)

 

칸트가 자신의 인식론에서 설파한 것을 코페르니쿠스가 종래의 천동설에 대하여 지동설을 주장, 천문학에 대전환을 일으킨 것에 비유하여 사용한 말. 즉 그는 종래에는 주관이 객관(대상)에 의거하여 인식을 할 수 있다고 한 데 대하여, 그 반대로 객관이 주관의 선천적 형식에 의해 성립된다는 인식방법상의 전환을 이루었다. 이것은 전환임에는 틀림없으나, 인식론에 있어서 주관적 관념론을 주장한 데 지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 중심적 견지를 태양 중심적 견지로 옮겼기 때문에, 소위 인간의 주관적 사고방식으로부터 객관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며, 칸트는 그 반대 방향으로 전환한 것으로 이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현대에는 사고방식이나 견해가 종래와는 달리 크게 변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사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Kopernikanishe Wendung] (철학사전, 2009., 임석진, 윤용택, 황태연, 이성백, 이정우, 양운덕, 강영계, 우기동, 임재진, 김용정, 박철주, 김호균, 김영태, 강대석, 장병길, 김택현, 최동희, 김승균, 이을호, 김종규, 조일민, 윤두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