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송광사에서 박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철 스님은 깨치지 못했으면서도 깨친 것처럼 가장한 분이 아닌가, 논문을 좀 비약하자면 《선문정로》는 깨달음의 생명을 끊는 독약이며 성철 스님은 평화의 적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박교수께 묻겠습니다. 성철 스님의 참선지도노선을 수용하는 것입니까, 거부하는 것입니까, 또는 수정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10월8일 합천 해인사 보경당에서 열린 '선종사에서 돈오돈수 사상의 위상과 의미'라는 학술회의의 한 모습이다. 얼핏 여느 학술회의와 다를것이 없어 보이는 이 회의는, 그러나 한국 불교의 최대 현안인 頓悟頓修?頓悟漸修 논쟁의 한 고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성철 스님, 당신은 깨쳤습니까?"
그 전날 아침부터 진행된 학술회의는 다소 맥빠지고 지루한 편이었으나 두번째 날인이날재미 불교학자 朴性焙 교수(뉴욕 주립대?비교학) 차례가 되자 장내는 눈에 띄게 긴장됐다. 박교수가 주제 논문 <돈오돈수론, 성철 스님의 참선지도 노선을 중심으로>를 발표한 직후 연단에 앉은 보광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이 그에 대해 반격을 시작하면서 긴장감은 고조되었다. 얼굴이 붉고 건장한 보광 스님은 자제하려 애쓰는기색이 역력하였으나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질문 내용은 가혹했다. 그는 이 날 박교수가 발효한 논문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고 전제한 뒤, 3년전 박교수가 송광사에서 발표한 논문 <성철 스님의 돈오점수설 비판에 대해서>를 집중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 박 교수가 해인사에서 발표한다고 하자 많은 분이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여기 와서도 송광사에서처럼 하실까 하고 말입니다. 박교수는 성철 스님은 수도지상주의자, 돈오근본주의자로 규정하시며 돈오근본주의자는 광신자로 변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돈오점수는 종합적 수행이론이고 돈오돈수는 좁고 특수한 수행이므로 이 좁은 것을 만천하에 적용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성철 스님, 당신은 깨쳤습니까'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해인사 논문은 성철 스님의 논리를 합리화?체계화하고 위대성을 강조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한번 박 교수께 묻겠습니다. 과거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깨닫고 인정하는것입니까, 아니면 해인사에서만 인정하는 것입니까?"
보광 스님이 질문을 마치자 장내는 '저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하며 수군대는 사람들, 통쾌하다는 듯 박수를 치는 사람들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박성배 교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다소 여위고 지쳐 보이는 박 교수는 조용히 의자에서일어나 답변을 시작했다.
"맨끝의 질문부터 대답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가 소신을 바꿨다고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고백해 저도 사람인지라 현장의 분위기를 무시할수는 없었습니다. 3년전 송광사에서 발표한 논문 중에는 '아무리 송광사에서 한다고 해인사에서는 못할 소리를 했구나'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몇 구절이 바로 지금 보광 스님이 지적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묻겠습니다. 깨달음이 문제 안되는 사람 있습니까. 깨달음은 지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보조국사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진 문제인 깨달음에 근거해 돈오점수의 체계를 세운 분입니다. 깨침이 소중하다 해서 깨달음이 쓸데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 비해 성철 스님은 눈 있는 자 보고, 귀 있는 자 들어라 하는 철저한 임제종, 간화선 주의자입니다. 그의 제자였던 저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많아 돈오점수가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수용한 것이 보조국사입니다. 제가 돈오돈수 정진을 부정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돈오돈수라는 이론이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은 해인사 선방에서 장좌불와, 용맹정진반에서 화두정진하는 몇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모든 사람에게는보조국사의 점수체계가 더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돈오점수의 ㅈ자만 나와도 안된다는 돈오돈수론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자기가 성철 스님을 '평화의 적'이라고 규정했다는 보광 스님의 질타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제가 근본주의를 반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광 스님 말씀처럼 3단논법을 동원해, 성철 스님은 화두선의 근본주의자다, 근본주의자는 평화의 적이다. 따라서 성철 스님은 평화의 적이다라고 말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국 불교학계에 돈점 논쟁이 뜨겁게 시작된 것은 81년, 현 조계종 종정이며 해인사 방장인 성철 스님이 《선문정로》를 내놓으면서였다. 《선문정로》는 돈오점수설의 피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참선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온 것이다. 돈오점수를 역설한 보조국사 지눌이 입적한 지 7백61년째 되는 해였다.
성철 스님은 7세기 중국의 화엄학자 ???觀이 그의 스승 혜원을 이단으로 몰면서 썼던 "몹쓸 나무가 뜰안에 돋아났으니 베어버리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보조국사의 돈오점수설을 통렬히 비판했다. 성철 스님은 "조계종 종헌에서 보조 스님을 빼야 한다"고 까지 주장하며, 해인사 선방에서 보조국사의 《절요》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해 송광사 측으로부터 분서갱유가 아니냐는 반발을샀다.
돈오온수와 돈오점수는 무엇이고 어떻게 다른 것인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는 양쪽 다 돈오, 즉 깨침을 목적으로 한다. 다만 그 방법이 돈수이냐 점수이냐는 점에서 극단적 대립을 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돈수는 '단번에 깨쳐서 닦는다'는 것이고 점수는 '차근차근 깨달아 닦는다'고 할 수 있다. 돈수, 즉 단번에 깨친다는 것은 선 수행자라면 누구나 염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타고난 법기가 남다르거나 선 수행자로서 남다른 근기를 부여받은 경우에 한한다. 그러므로 돈오돈수는 이상으로서, 궁극의 목표로서 존재한다. 이에 비해 점수는 더 대중적이고 평범하다. 학문을 연마하다가, 세상사에 부대끼다가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얻은 뒤 깨침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학자적 소신으로 성철 스님에 정면 도전
성철 스님이 나타나기 전까지 8백여 년간 한국 불교를 지배해온 것은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 즉 깨달음 사상이다. 그러나 성철 스님은 돈오점수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간파했다. 박성배 교수는 "그런 점에서 성철 스님은 천재"라고 말한다.
성철 스님은 "20세기의 반불교적 도전 앞에서 불교 생존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 때 그가 파악한 반불교적 도전이란 물질주의와 유물론적 사상, 불교 내의 기복적 요소, 지식주의, 라즈니쉬 등의 반참선적 명상이 범람하는 풍조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돈오돈수를 들고나왔다.
성철 스님은 수행자들에게 신문조차 읽지 못하게 한다. 지식은 깨치는 데 독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오로지 스승이 낸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하도록 가르친다.
성철 스님이 보조국사와 돈오점수주의자를 이단 사설로 몰자, 가장 당황한 것은 보조국사를 모시는 송광사측이었다. 송광사는 해인사와 함께 선종의 양대 사찰로 보조국사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송광사측은 그러나 《선문정로》가 나오고 10년간 침묵했다. 왜 침묵했을까. 그것은 조계종 종정인 성철 스님의 기세가 너무 완강해 타협의 여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에 대적해 이론을 전개할 만한 인재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광사에서는 지난 87년 '보조사상 연구원'을 개설하여 한국 불교사에서 보조국사의 위상과 돈오점수설의 체계를 규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 10월 송광사에서 주최한 대규모 학술토론회는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설에 대한 공격 개시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그 학술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은 이가 바로 박성배 교수이다.
"스승도 위대하나 진리는 더 위대하다"
그는 "일방적으로 점수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점수를 하되 돈수를 지향해야 한다"는 돈오돈수적 점수설의 연구자로서 화려하게 등장한것이다. 그러나 그의 등장이 화려했던 이유는 그와 성철 스님의 관계가 배면에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던 65년 출가하여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은 뒤, 제자 고르기에 까다롭기로 소문난 성철 스님이 가장 아끼는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철저한 돈오돈수설에 입각해 수행한 장본인이다. 3년 만에 귀속하여 미국 남감리교 신학대학과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77년부터 뉴욕주립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송광사로부터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을받고 수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결국 쓰게 되었고, 쓰자니 학자로서 소신을 관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스승인 성철 스님에게 정면 도전을 하지 않고는 관철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결국 해인사로부터 '예수를 못박히게 한 유다'라는 공격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성철 스님과 박성배 교수, 그들은 불교 사회 특유의 엄격한 가부장적 질서를 뚫고 나온 반역아들에 틀림없다. 박 교수는 "성철 스님이 보조국사를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근대 한국지성사의 쾌거"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스승은 위대하다. 그러나 진리는 더 위대하다"는 신념으로 스승에 도전한 박 교수의 학자적 양심도 비판이 실종된 한국 철학사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미나를 지켜 본 한 학승은 "돈점 논쟁을 송광사와해인사, 또는 성철과 박성배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한국 불교의 이데올로기를 세우려는 진지한 시도로 보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돈점 문제에 관한 한 한국 불교는 세계 불교학계에 귀중한 업적을 남기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