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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이학종, 붓다 연대기 (불광출판사, 2021)​

이학종, 붓다 연대기 (불광출판사, 2021)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산과 계곡이 겹쳐 이루어진 히말라야(Himalaya), 그 남쪽으로 가로놓인 유라시아 대륙의 거대한 반도 잠부디빠(Jambudipa, 인도의 옛 이름)가 있었다. (17면)

잠부디빠의 새 지배자, 아리아인들은 '베다(Veda)'라는 오래된 성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베다'에 의지해 세습적인 브라만(Brahman)은 야나(고양)와 같은 종교의식을 집행하며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했다. '베다'는 절대적으로 신성시되었다. 이런 까닭에 브라만은 태어나면서부터 최고로 여겨졌다. (18면)

사끼야 왕국은 약소국이었다. 인접한 강대국들의 틈새에 끼여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였다. (21면)

독립된 자치공동체였지만 사끼야 왕국은 정치적으로 꼬살라 국에 예속되어 있었다. 숫도다나 왕과 그의 부인 마야데위(마야 왕비)는 온화한 성품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태평성대를 이뤄내고 있었다. (24면)

룸비니 동산은 까빨라왓투와 데와다하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산이었다. (28면)

브라만들은 숙의를 거듭한 끝에 아이에게 '싯다르타(Siddhattha)'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목적을 성취하는 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34면)

그(꼰단다)는 두 손 가락을 펼쳐 보인 일곱 브라만들과는 달리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말했다. "왕자는 오직 하나의 길, 붓다의 길을 갈 것입니다." (34면)

아기를 낳은 후 7일째 되는 날, 마야 왕비는 자신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 "제 동생 고따미에게 이 아기를 맡기겠어요. ..." 마야 왕비는 붓다를 낳은 지 이레 만에, 출산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황망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35면)

마야 왕비의 당부대로 고따미는 왕비 자리를 계승했고, 싯다르타의 양모가 되어 양육을 도맡았다. 이것은 당시의 풍습이기도 했다. (36면)

열 살이 되었을 때, 싯다르타는 그의 생모가 자신을 낳고 출산의 후유증으로 칠 일만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상도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39면)

사끼야 왕국의 수도 까빌라왓투는 '베다' 의식인 농경제 준비로 부산했다. (40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주인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소작농들이 일군 노동의 과실을 차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41면)

그렇기에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자연스러운 광경에도 그에게 연민이 솟아났다. (41면)

'왕족과 귀족들이 횡포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 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 먹고 먹히는 미물들은 또 어떤가? 서로를 잡아먹고 또 먹히고 먹는 비극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 (42면)

'강자가 약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현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 쳐보지만 약자의 몸부림은 강자에게 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하는 세상, 그들도 더 강한 자들 앞에서는 두려움에 몸서리칠 가련한 처지인데도 그것을 잊은 채 탐욕에 들떠 있는 모습들! 왜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불편함을 그저 운명으로 여긴 채 견디고 있는 걸까? 저런 태도로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아, 나는 눈물과 고통으로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43면)

그러나 숫도다나 왕에게는 외려 싯다르타의 침묵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설명이 호기심 많은 어린 아들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45면)

또한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계급이 사회적 지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각축을 벌였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두 계급의 수행자들 사이에 철학과 종교에 관한 온갖 종류의 논쟁이 벌어졌다. (46면)

싯다르타가 열다섯 살이 되자, 숫도다나 왕은 싯타르타가 사끼야 왕국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임을 내외에 알리는 의식을 서둘렀다. (49면)

그 가운데서도 싯다르타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승마였다. (52면)

그러나 바라드와자가 가르치는 정치학에 대한 싯다르타의 태도는 냉소적일 만큼 회의적이었다. (52면)

"어떻게 자연은 누구에게는 그토록 불리하고 다른 쪽은 유리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저는 거기서 어떤 정의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 세계가 만들어진 길입니다. 창조자인 브라흐마는 이 불공평의 문제를 이미 알고 계셨지요." (53면)

그(바라드와자)는 나라야나의 '푸루사 수크타'의 양면성을 구분하여 설명했다. "들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이 찬가는 철학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측면은 서로 무관하지 않습니다. ..." (55면)

"물론입니다. 그것이 나라야나가 브라만은 우주아의 입이고, 크샤트리아는 팔이며, 바이샤는 허벅지, 수드라는 그의 발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브라만들이 우주아의 입을 대변하는 까닭에 그들은 '베다'를 외우는 역할을 상속해 왔고, 그러한 역할은 그 누구도 넘겨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주아의 팔인 크랴트리아는 전투와 국가의 통치를 위해 칼을 휘두를 권한과 책임이 있으며, 허벅지인 바이샤는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일용품을 생산하고 배포하는 일에 참가하고, 수드라는 우주아의 발에서 태어났으므로 상위의 세 계급에 봉사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이 사성계급이 곧 우주아 자체입니다. 무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56면)

싯다르타가 목청을 높여 반박했다. "그렇다면 그런 우주야는 그 자체로 악입니다. 만약 어딘가에 그 우주아의 창조자가 있다면 그 또한 악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세계에 수드라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57면)

브라만의 독단과 독점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교육을 받고 돌아온 청년들은 기존의 브라만교에 대해 대부분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58면)

싯타르타는 인간의 삶은 그들이 태어난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자기들의 현존재에 대하여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가? 왜 그들은 그러한 상태로 태어나게 된 것일까? 그런 어린애들이 근근히 그토록 조악한 살을 영위하기 위해 종일 일할 때 어째서 나는 이렇게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 그의 심중에 걸린 이런저런 생각들이 그를 번민에 사로잡히게 했다. (60, 61면)

유학에서 돌아온 친구들과의 대화와 토론 과정을 통해 싯다르타는 까빨라왓투에 갇혀 얻을 수 없었던 보다 넓고 깊은 지식과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62면)

"새가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이 가엾은 생명이 넌 보이지 않니? 넌 다른 생명을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구나." (63면)

"싯다르타, 그 새가 정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건지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내게 보이는 거라고는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날아가려고 하는 게 전부야. 그거야 새가 타고난 버릇일 뿐이지." (63면)

두 청년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현자가 말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네. 그것이 생명의 법칙이지. 생명은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존재에게도 속할 수 없는 것이네. 그 누구도 다른 존재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는 것이지. 그러므로 상처를 입은 이 백조는 생명을 지켜주려고 노력한 자가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네." (65면)

싯다르타도 사춘기를 보내고 어느덧 훤칠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숫도다나 왕과 고따미는 장래 사끼야 왕국의 왕이 될 태자로서 싯다르타의 역할을 걱정하고 있었다. 왕위를 이어야할 태자가 국가통치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의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의문에 더 흥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7면)

숫도다나 왕은 마침내 아들이 아예 출가할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호화롭고 화려한 생활을 제공해야겠다고 작정했다. (67면)

그는 이런 생활에 오히려 싫증을 느끼며 갈수록 염오와 환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육체적인 쾌락과 세속적 욕망에 휘둘리기보다는 예민한 감수성과 사려 깊은 심정으로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더욱 천착했다. (68면)

태자 싯다르타의 비길 데 없는 용감함과 완벽한 기예를 직접 목도한 뒤로는 비난과 우려가 입에 침이 마르게 반복되는 칭송으로 바뀌어 있었다. (70면)

잠시 후 어린 동생 난다가 나타나 싯다르타를 찾고 있었다. .. 나이 차가 꽤 나는 동생인데도 불구하고 싯다르타는 난다와 잘 어울렸다. (73면)

그러나 숫도다나 왕은 고따미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숫도다나 왕은 자신의 처남이자 여동생인 야소다라의 부모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75면)

한편 싯다르타는 두 가지를 성취했다고 생각했다. 첫째, 결혼할 여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에 청혼을 받아들였음을 확인한 것, 둘는 심각한 불화 없이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이것들은 싯타르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튿날 싯다르타는 야소다라의 집을 방문했다. 야소다라와 마주하고 자리에 앉은 싯다르타가 말했다. "야소다라, 아버지께서 우리들의 결혼을 허락하셨습니다." (97, 98면)

결혼식 날, 싯다르타는 브라만교의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아는 숫도다나 왕은 까빨라왓투의 대관식장에서 간단하게 결혼식을 치르도록 했다. (106면)

우다인의 계획에 다라 숫도다나 왕은 미녀들을 모아 하렘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하렘은 왕실이나 귀족들의 애욕을 충족시키는 여인들이 머물 공간이었다. 하렘이 만들어지자 우다인은 미녀들을 모아 태자를 쾌락의 포로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109면)

"이 여자들은 청춘이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고 있을까? 늙으면 젊은 시절의 미모도 없어지고 마는 것을!" (115면)

"저는 세속적인 목적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그런 목적에 집착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속적 목적에서 어떤 기쁨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118면)

"자기네가 이용당하고 있는 만큼 그들 역시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123면)

"늙는다는 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생기를 잃어버리고 비틀거리는 모습을 다들 조롱하고 싫어하는구나. 그러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도 늙음을 피할 수 없다. 나도 저렇게 늙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머지않아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조롱과 혐오를 피할 수 없으리라, 그런 내가 저 노인을 비웃고 업신여길 수 있을까? 봄날처럼 짧은 젊음을 과시하고 자랑할 수 있을까?" (127면)

'슬픈 일이다.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누가 죽음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129면)

"아버지, 저는 수행자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129면)

"아버지,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없는 것이라면 저는 출가하게 될 것입니다." (131면)

"그러나 숲속 은둔처는 다릅니다. 숲은 자연적인 환경을 제공하기에 보다 쉽게 높은 경지의 능력을 계발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134면)

"... 그것이 불이, 즉 합일상태에 머뭅니다. 이러한 합일을 이룸으로써 영혼은 비로소 자신의 사상을 사유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제 목소리를 듣고, 제 향기를 맡으며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것이 곧 영원불변하는 영적인 자아입니다." (136, 137면)

"나는 명상을 위해 자주 숲으로 갑니다. 명상이야말로 해탈과 불멸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마음은 감각에 의해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감각은 멋대로 뛰어다니는 말과도 같습니다. 수행자는 훌륭한 마부처럼 감각을 풀어놓지 않고 제어해야 합니다." (138면)

'싯타르타는 가정생활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크샤트리아의 신앙과 신뢰감을 이용하는 브라만 사제들의 수법이나, 주민들을 착취하는 크샤트리아의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 무엇보다도 시골의 어린아이들과 도회지의 가난한 천민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140면)

'반드시 브라만을 불러 이름을 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 역시 브라만 사제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지속되어온 관습에 지나지 않는다.' (147면)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언젠가 완전히 만족할 것을 기대하지만 끝내 채워질 수 없는 욕구는 똑같은 일을 계속하게 만든다. (151면)

'모든 안락과 감각적 쾌락, 물질적 행복을 포기해 버린 고행자들은 어떨까? 그들의 삶은 과연 행복한 것일까?" (151면)

아시따 칼라데왈라는 까빨라왓투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의 죽음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스승의 장례를 치르면서 싯다르타는 다시금 인간고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159면)

아소다라는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가 몰두하고 있는 인간고 해결의 길을 찾도록 놓아두는 것이리라. 만약 기대했던 길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더라도, 그가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고 자신을 자책하는 일은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무언가를 찾아낸다면 모두가 그의 덕을 보게 될 것이다.' (162면)

"전통적으로 크샤트리아는 중년이 지나 출가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싯다르타, 너는 이제 겨우 스물아홉 살이 아니냐? 그따위 출가생활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다. 게다가 당장 네가 전념해야 할 다른 책임이 있지 않느냐?" (164면)

"아버지, 그것은 브라만 사제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악습일 뿐입니다." (164면)

'출가는 숭고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 숭고한 강가에서 출가사문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을 떠났다. 출가를 위해 그들에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는 일을 감수했다. 이제부터는 온 삶을 바쳐 해탈을 향한 길로 들어설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171면)

찬나와 헤어진 싯다르타는 얼마 후 사냥을 하러 온 한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었다. 야소다라가 지어준 수행복은 너무나 고급스러워서 수행하는 데는 외려 거추장스러웠다. 게다가 사냥꾼은 자신의 헤진 옷과 싯다르타가 걸친 수행복을 바꿔 잆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179면)

오랜 숙고 끝에 싯다르타는 수행이란 서둘러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땅히 스승을 찾아 수행 지도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181면)

'싯다르타여! 너는 궁에서 기름진 쌀밥에 맛난 반찬을 먹을 때 걸식자의 음식을 보고 나도 언제 저렇게 먹을 수 있을까 부러워하지 않았던가!' (182면)

싯타르타가 스승의 첫 번째 기준으로 삼은 것은 '계행'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기준은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 두 번째 기준은 '청정'한가 하는 것이었다. 이 역시 오랫동안 함께 살며 대화를 해보고, 주의 깊게 살펴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세 번째 기준은 '평정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오랫동안 재난을 만났을 때 반응하는 태도를 주의 깊게 살펴야 알 수 있는 기준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기준은 '지혜'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혜가 있는지의 여부 또한 오랫동안 같이 논의함으로써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 (187면)

"저는 사끼야 왕국의 수도 까빨라왓투에서 온 싯다르타입니다." (189면)

"집중에서 빠져나오면 여전히 욕망과 갈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경지, 이것은 내가 얻고자 했던 영구적인 행복, 닙바나(NIbbana, 열반)와는 거리가 멀다." (199면)

"다만, 인간이 지위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쁜이 얼마나 무상하고 또 만족할 수 없는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 이미 저는 재물과 그것이 가져다 줄 감각적 쾌락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203면)

"왕이시여, 제가 갈 길은 오직 지고의 선, 불멸의 길, 영원한 행복을 찾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이때 싯다르타의 나이는 29세, 빔비사라 왕은 24세였다. (205면)

싯다르타는 웃다까 라마뿟따의 명상법도 괴로움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날 뿐이라는 한계를 확인하고 다시 그의 수행처를 떠나기로 했다. (209면)

'그동안 나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지도 아래에서 명상 기법을 익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경험한 해방감이란 명상 중에 있을 때나 그 후 잠깐 동안에 그치고 말았다. 명상에서 깨어나면 곧바로 갖가지 욕망이 다시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210면)

"인간고를 벗어날 길을 찾고 있습니다. 무상과 생사고뇌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방법을 찾기 위해 출가했습니다." (213면)

... 심지어 자신의 오줌과 똥을 먹기도 했다. 실로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차례 넘나드는 처절한 고행의 연속이었다. (216면)

일부 브라만들은 그런 싯다르타를 보고 검둥이라고 비웃었다. (217면)

고행 역시 그가 찾던 궁극적인 해탈의 길은 아니었다. 다만 극심한 고행 중에도 싯다르타의 의식 속에서는 한 줄기 지혜의 안목이 생겨났다. (218면)

'내가 지난 6년 동안 실행해온 고행은 실로 최고의 수준이며 앞으로도 그 이상의 고통을 체험하는 수행자는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도 나는 궁극적 목표인 해탈의 희미한 그림자조차도 보지 못했다. 초월적인 지혜는커녕 어떤 통찰력도 얻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분명 있을 것이다." (220면)

싯다르타는 출가 이후 해왔던 기존의 수행법을 모두 버리고 어린 시절 경험했던 통찰 명상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이 결심은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발상의 대전환이 될 것이다.' (224면)

모든 즐거운 느낌에 대해 회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깨달음, 그리고 그것을 지혜롭게 이해하여 이성적으로 수행에 활용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는 답답했던 싯다르타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마음 한편으로 스승 없이 혼자 새로운 길로 나서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225면)

'나는 더 이상 의미 없는 기존의 관습과 의례, 그리고 검증될 수 없는 믿음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검증될 수 없는 믿음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이제 어떤 스승도 추종할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지난 6년의 세월이 내게 준 교훈이다. 이제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231면)

최후의 승부! 싯다르타는 벼랑 끝 승부를 떠올렸다. 그로서는 더 이상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오직 죽음을 무릅쓰고 최후의 승부를 거는 것밖에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거듭 마음을 다잡았다. 출가한지 6년이 지나도록 얻고자 하는 길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부담도 없지 않았다. (232면)

대각 ... (237면)

밤이 깊어 막바지에 이르자, 싯다르타는 마음을 집중하여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그때 싯다르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또한 '이것이 번뇌다.'라는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240면)

탐욕과 증오와 무지가 모든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확신이 생겨나자 거의 자동저으로 모든 번뇌가 싯다르타로부터 멀리 벗어났다. (241면)

일체의 탐욕이 사라졌음으로 내생의 원인 또한 제거되었다. (242면)

스스로 최상의 지혜와 해탈을 이뤄냈다는 법열을 한껏 누리는 중이었다. ... 고다마 싯다르타! 그가 드디어 '붓다'가 된 것이다. (242, 243면)

깨달음을 성취한 후에도 싯다르타, 아니 붓다는 아자빨라 나무 아래에 그대로 앉아 열반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제 그의 해탈을 도운 이 나무의 이름은 더 이상 아자빨라가 아니었다. 붓다의 위대한 깨달음을 돕고 지켜본 위대한 나무, 그 이름은 이제 깨달음의 나무, 보리수가 되었다. (244면)

즉 존재에 대한 무지와 그릇된 견해가 곧 고통의 원인이며 감각적 욕망이 곧 고통의 뿌리임을 깨달았다. (244면)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 붓다로의 위대한 탄생이었다. (247면)

깨달음을 이룬 붓다는 그곳에서 7일 동안 전혀 움직이지 않는 선정(삼매)에 들어 해탈의 기쁨을 누렸다. 마지막 밤이 끝날 무렵, 붓다는 고통의 원인인 의존적 발생의 원리, 즉 연기를 다시 복습했다.

이것이 존재하면 저것 또한 존재한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 또한 생긴다.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저것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 또한 소멸한다. (248면)

'슬픔에 사로잡히고, 태어남과 늙음에 압도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는 반드시 내가 깨달은 진리를 전해야 하리라.' 붓다는 여러 반얀나무 근처에서 자리를 일곱 번 차례대로 옮겨가며 49일간 해탈의 큰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이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했다. "기꺼이 설법에 나설 것이다." (259면)

붓다가 스스로 개발한 명상법을 통해 도달한 마지막 결론은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현상 가운데에는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는 것이었다. 고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궁극의 변화와 행복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붓다의 깨달음은 잠부디빠에서는 어느 누구도 얻지 못한 통찰의 계발과 인간 심리에 관한 깊은 성찰의 결과였다. 붓다는 자신 있게 공언할 수 있었다. '자신만이 자기의 주인이다. 그밖에 따로 어떤 주인이 있을 수 있으랴!' (260, 261면)

붓다는 사물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나름의 패턴을 체계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62면)

이러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붓다는 '조건에 의지한 발생', 즉 '연기법'이라는 보편원리를 공식화할 수 있었다. 사물은 바로 이 연기의 법칙에 의해, 즉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여, 의심할 나위 없는 과거로부터 아득한 미래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262면)

현명한 이는 세상의 사물들에 집착하지 않으며, 영원불멸하리라고 여겨지는 신화적 자아, 혹은 영혼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러한 견해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세상의 때에 더렵혀지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다. 마치 더러운 물속에서 자라면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고 솟아 피어나는 연꽃과도 같다. (264면)

붓다는 이렇게 보리수 밑에 머무르며 자신이 이룬 해탈과 깨달음을 체계화하는 작업에 전념했다. 동시에 그는 자리를 옮겨가며 해탈의 법열을 누렸다. ... '나는 생명조차 돌아보지 않는 정진으로 천신만고 끝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았다.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길을 가르쳐 주고 그들도 이 해탈의 환희를 맛보게 인도해야 한다.' (265면)

붓다가 가야할 와라나시까지의 거리는 6백 리가 넘는 머나 먼 길이었다. 붓다는 11일 동안의 긴 여정 끝에 와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269면)

"비구들이여, 생존은 둑카, 즉 괴로움이라는 진리라네. 이것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 것이네. 나는 이것을 알아내었네. 태어남도 고통이고, 늙는 것도 고통이며, 병드는 것과 죽는 것도 고통이고, 슬픔과 비탄, 고통과 근심, 절망도 고통이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게 되는 것도 고통이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게 되는 것도 고통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고, 육체와 느낌, 지각, 성향, 의식이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 모두 고통이네." (275면)

"그것은 도덕, 명상, 지혜로 구성된 여덟 가지 실천이지. 곧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의식주, 바른 노력, 바른 기억, 바른 집중의 여덟 가지 바른 길이라네." (276면)

"비구들이여, 나는 이 세계에 관한 두 극단적인 견해를 피하여 제대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방법, 즉 중도를 발견한 것이네. 나는 이것을 '조건에 의지해서 일어남', 즉 연기라고 부르기로 했네. 이 의존하여 발생하는 원리야말로 세계의 본질이네. 심오하여 보기 어려우며 이해하기 어렵고, 절묘하게 이성적 사고를 초월하며, 탁월하여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알 수 있다네." (278면)

"이것이 존재함으로써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발생함으로써 저것이 발생한다, 이것이 소멸함으로써 저것이 소멸한다, 이것이 바로 사물의 본성이며, 그들이 생성되는 방식이라네. 나는 이와 같은 지혜를 '발생에 의한 지혜'라고 말한다네." (279면)

.,. 그러자 다섯 고행자들은 붓다의 앞에 무릎을 끊고 말했다. "존귀하신 분이여, 저희들을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라!" 붓다는 '오라!'라는 말로 그들의 요청을 허락했다. 최초의 다섯 제자, 5비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79, 280면)

"비구들이여, 잘 들으라. 내가 말하는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는 원리는, 단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세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인간의 성향, 즉 개성 또한 조건에 의지해서 일어난다. ... 그러나 이와 같은 성향이 완전히 평정된 것, 모든 집착이 끊어진 것, 탐욕이 없어지고, 갈애가 사라진 것, 이것이 바로 해탈의 경지이다. 그 자리는 범부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280, 281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인간이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해탈은 탐욕과 증오, 미혹으로부터의 자유밖에는 없다." (281면)

'일체의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라는 지혜로 본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이것이 청정한 길이다. ... '일체의 사실은 실체가 없다.'라는 지혜로써 볼 때에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청정의 길이다. (286면)

이렇게 여섯 아라한이 생기면서 삼보가 갖추어졌다. 붓다가 불보가 되고, 이시빠따나에서 선포한 가르침이 법보가 되고, 다섯 비구가 승보가 되었다. 붓다가 와라나시에 온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286, 287면)

항상 깔끔해서 치워지고 값비싼 가구로 치장되어 있던 거실이 그날따라 화장터처럼 보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깔끔하고 섬세한 성정의 소유자인 그의 심사를 뒤흔들어 버렸다. 그(야사)는 중얼거렸다. '아, 흉물스럽구나! 이 모습처럼 온갖 해악으로 가득 찬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산다는 게 이토록 비참한 것이었구나!' 상념에 젖은 그는 집을 나와 인근의 이시빠다나로 향했다. (294면)

"야사여, 보다 향상된 삶을 위해서 재가자가 실행할 수 있는 첫 단계의 실천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널리 나누는 일이다. 바르게 벌어들인 재물을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나 이런저런 불운으로 끼니조차 때울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다섯 가지의 좋은 결실을 맺게 한다. 첫째, 나누는 사람은 타인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산다. 참된 보시는 자비심으로 나누는 것이다. 둘째, 그렇게 나누는 사람은 선량한 사람들, 그리고 그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설령 사악한 사람이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자비로운 사람들 속에 끼어든다 하더라도 이내 드러나게 된다. 셋째, 진실하게 나누는 사람은 마치 꽃향기가 바람에 퍼져나가듯, 좋은 평판이 퍼지게 된다. 넷째, 나누는 사람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 들어갈 수가 있다. 다섯째, 그런 사람은 이 목숨이 다하고 몸이 부서지고 나면 인간계의 좋은 환경에, 혹은 천상의 신들의 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296면)

"초심자로서 보다 고양된 삶을 위해서 우선 실천하고 키워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이 있다. 생명을 해치는 것을 삼가며,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으며, 잘못된 감각적 쾌락을 삼가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술이나 약물 같은 것에 취해 늘어지지 않는다. 이 덕목들은 건전한 사회의 초석이 되며, 이것을 지키는 사람 스스로에게 좋은 과보가 있다." (297면)

야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붓다는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사성제), 즉 고, 고의 발생, 고의 소멸, 고로부터의 해탈에 이끄는 팔정도를 설명했다. (298면)

붓다가 그(야사)를 제자 비구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승가의 일곱 번째 아라한이 되었다. (301면)

붓다는 예순 명의 제자 아라한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마침 그날은 9월 15일 해제 날이기도 했다. (305면)

"비구들이여, 법을 펼 때는 남에게 존경 받겠다는 생각을 내어서는 안 된다." (306면)

"그렇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거기 앉으라. 내가 그대들에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309면)

"오라, 그대들이여! 가르침은 잘 설해졌다. 이곳에서 청정한 행을 닦고 괴로움을 소멸하라. 그리하여 마침내 궁극의 목표를 성취하라." (310면)

"꾸사의 풀잎(길상초)으로 악취 나는 생선을 묶으면 그 잎에는 생선 썩은 냄새가 배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냄새가 없는 발리사 나뭇잎으로 향을 싸서 묶으면 그 옆에 좋은 향내가 배는 것처럼 현자와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업이 무르익는 것이 마치 과일이 저절로 익는 것과 같음을 알아서 지혜로운 자는 부정한 자를 따르지 말고 착하고 정직한 자를 따라야 한다." (323면)

붓다는 탐욕과 어리석음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은 나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탐, 진, 치의 세 가지 불을 멸하려면 먼저 나의 근본을 끊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 가지 불길은 모두 꺼지고, 삼계를 윤회하는 모든 괴로움은 스스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330면)

"이상적인 통치자는 진심으로 백성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상적인 통치자는 무력이 아닌 정의로써 통치합니다." (334면)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이시여, 내가 발견한 세계에 관한 진리는 어떤 것이든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고 조건에 의지해서 소멸하는 원리, 즉 연기입니다. 정의 역시 이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는 원리에 의해 설명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335면)

"그러나 저는 오욕의 즐거움이 몸에 묻은 때와 같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감각적 쾌락의 기쁨이 부질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341면)

"스승이시여, 제가 지금 좋아하는 것은 열반입니다. 열반은 고요합니다. 열반에는 욕심의 근거가 되는 몸도 없고 대상도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오욕의 즐거움에는 집착하지 않습니다. 열반을 성취했으므로 다시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붓다, 스승님의 가르침에서 만족을 찾았습니다. 열반으로 향한 길 이외에 다른 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341면)

그리고 법문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졌을 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설했다. "이것은 괴로움입니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 원인입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입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입니다." (343면)

깨달음을 이룬 제자들이 세상에 진출하면서, 사끼야 족 출신 수행자 고따마 싯다르타가 스스로 해탈의 길을 발견하고 붓다가 되었다는 소문이 잠부디빠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345면)

"그분은 연기법, 즉 어떤 것이든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한다는 원리를 가르치십니다. 원이 있어 생겨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그 원인을 일러주셨습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이 조건이 성숙하면 멸한다는 것까지 저의 스승께서는 말씀해주셨습니다." (349면)

"디가나카, 두 종류의 철학자가 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자연과 만물의 본질에 대해 사색한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사색에 만족하고 자기 나름의 체계를 세운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 만든 체계에 빠지고, 집착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사색과 이론 정립에 만족하지 않으며, 따라서 거기에 혹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359, 360면)

"디가나카, 신중하게 들어라! 어떤 사람은 자신이 세운 체계에 집착하고,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오직 이것만이 참이다. 그밖에는 모두 그릇된 것이다.'라고, 그리하여 그는 독단론자가 된다. ... 지혜로운 사람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사물과 세계에 관한 견해에 초연하다. 그에게 갈망은 없으며, 그는 자유롭다. 갈애로부터 벗어난 그는 어떤 것에도 매달리거나 반발할 것이 없다. 논쟁을 벌일 일도 없다. 그는 언어에 집착하는 일도 없이, 보통 사람들이 쓰는 일상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360, 361면)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한 사리뿟따는 디가나카의 물음에 답변하는 붓다의 태도와 그 내용에 매료되었다. 철학적 논의에 임하는 붓다의 방법이 그를 긴장하게 만든 것이었다. (363면)

"마찬가지로, 사리뿟따. 더 이상 색수상행식 오온으로 분별할 수 없게 된 사후의 아라한을 존재한다거나,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367면)

어느 날 삠빨리는 들로 나아가 농부들이 밭갈이 하는 장면을 지켜보다가 흙 속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을 새들이 잽싸게 날아와 쪼아 먹는 장면을 보고, 살아 있는 존재들은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더욱 출가의 마음을 굳혔다. (375, 376면)

"깟사빠, 그대는 신분의 우월함을 버리고 선배와 후배와 동료들 사이에서 항상 신중함을 보여야 한다. 깟사빠, 그대는 식견의 우월함을 떨쳐버리고 어떤 법을 듣건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새기며 깊이 사유해야 한다. 깟사빠, 그대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데 대한 자만심을 버리고 항상 게으르지 말며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379면)

이렇게 해서 웰루와나 수도원, 즉 죽림정사가 성립되었다. 붓다의 상가가 성립된 이후 최초의 승원이 완성된 것이다. 이후 붓다는 이곳에서 오래 머물며 설법했다. 죽립정사가 지어진 것은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뒤 3년째의 일이었다. (383면)

"수닷따, 자신의 노력으로 애써 땀 흘리고, 도덕적인 수단으로 부를 소유하게 된 사람은 자신의 재물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내 자신의 노력과 정당한 수단으로 이것을 획득했다.' 이 생각으로 그는 커다란 행복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가 그렇게 도덕적으로 무결하며 올바른 수단으로 부를 축적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그것을 누리고, 또한 덕스러운 행동에 참가할 때 체험하는 행복이 그 두 번째 것입니다. 부를 바르게 누림으로써 갖는 행복입니다. 세 번째는 빚지지 않는 것으로부터 오는 행복감입니다.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빚 없는 행복을 즐깁니다. 마지막으로 재가자는 정갈하고 남들의 비난을 받지 않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 '몸과 말과 생각으로 벌이는 내 행위에 흠이 없다.'고 생각함으로써 커다란 만족과 행복이 옵니다. 이렇게 그는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389면)

그런데 상가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시끄러운 문제들이 내부에서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 붓다는 상가의 위계와 질서를 유지하고 당신의 눈과 귀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출가하는 이들의 자질을 염려해 입단 절차를 제도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비구가 되기 위해서는 구족계(비구계)를 받도록 하고, 계의 조목을 하나하나 정비해나갔다. (403면)

상가로 구성된 초기에는 출가생활의 기본 방침으로 4의지를 일러주었다. 즉 출가 수행자는 걸식하는 생활에 의지하고, 분소의를 입은 생활에 의지하고, 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는 생활에 의지하고, 동물의 대소변을 이용해 만든 진기약을 사용하는 생활에 의지한다는 정도였다. (404면)

까빨라왓투에도 사끼야 족의 왕자 고따마 싯다르타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붓다가 되었고, 그의 가르침이 마가다 국 전역과 까시 왕국의 구석구석에 퍼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11면)

그도 그럴 것이 파견된 사신들은 하나같이 위대한 성자가 된 붓다를 만나고 나서는 곧바로 출가를 해버렸다. (412면)

그러나 깔루다이 역시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매혹되어 그곳에 가게 된 자신의 임무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413면)

"실로 7년여 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 왔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숫도다나 왕은 자신도 모르게 아들에게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420면)

그녀(야소다라)는 7년 넘게 멀어져 있던 남편과의 배후가 몹시 불안했다. (424면)

"나에게 더 이상 크샤트리아의 자존심은 없습니다. 그런 자존심이 없으므로 나는 어느 것도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그리고 수드라 따위의 구별은 브라만들이 만든 구분일 뿐입니다. 나는 브라만의 노예가 아니라 붓다, 즉 깨달은 사람입니다. 모든 강물들, 야무나, 강가(갠지스) 그리고 아찌라와띠 등의 강물이 바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각기 다른 이름은 사라지게 되듯이, 모든 종족과 출신 계급은 우리들의 상가에 들어옴으로써 예전의 차별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425면)

황색 가사를 걸친 아버지 붓다를 바라보며 어린 라홀라는 생각했다. '왜 아버지는 이런 식의 생활을 선택했을까? 왕궁에서 얼마든지 편안하고 호사스럽게 지낼 수 있었는데도 왜 아버지는 저런 가사를 입고 거지처럼 음식을 구걸하러 바리때를 들고 다니시는 걸까?' (427면)

"만약 인간이 무상한 것 속에서 영원함을 찾는다면 그것은 결국 불만으로 끝날 것입니다." (431면)

"왕이시여, 감각적 즐거움이 주는 만족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입니다. 거기에 집착함으로써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줄임으로써 만족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435면)

"아소다라, 당신은 내가 출가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큰 용기와 위대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출가하여 수행할 때에 당신의 순수한 마음, 우아한 몸가짐, 헌신적인 자세에 대한 기억은 커다란 격려와 힘이 되었습니다. 아소다라, 그런 용기와 정신력으로 이제 당신은 과거에 마음 아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의 환상에서 벗어나, 당신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435면)

난다의 출가는 왕실 가족을 깜짝 놀라게 했다. 숫도다나 왕은 무엇보다도 난다를 승단에 받아들인 붓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439면)

붓다가 어린 라훌라에게 말했다. "나의 정신적인 보물은 올바른 길이다. 너는 최고의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마음을 수련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는 사람들과 함게 하고 싶으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441면)

숫도라나 왕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싯다르타, 다음으로 난다, 이제 라홀라까지 자신을 떠나는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 이제 자기 집안에 사끼야 족의 왕으로서 자신을 계승할 직계 존속은 아무도 없었다. (443면)

"스승이시여,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이미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앞으로는 부모의 허락 없이 어린 아이를 당신의 상가에 받아들이지 말아주십시오." 붓다는 그 말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러나 라홀라의 생부로서 아들을 승단에 받아들인 자신의 결정을 철회할 필요는 없었다. (443면)

붓다가 고따미의 가사를 거절한 것은 제자와 후원자들 사이에 개인적인 정분에 의해 제공되는 물건이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이 출가수행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일러주기 위함이었다. (445면)

"주는 사람에 의해 청정해지는 보시가 있는가 하면, 받는 사람에 의해 청청해지는 보시, 주는 쪽과 받는 쪽 둘 모두에 의해 불순해지는 보시, 그리고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에 의해 청정해지는 완전한 보시가 있습니다. ... 따라서 최상의 보시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 모두의 선의에 의해 청정해지는 그런 보시입니다." (445, 446면)

그들은 이어 가장 먼저 우빨리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천민 출신 우빨리가 왕자들의 선임자가 되고, 그들은 천민 출신인 우빨리에게 손윗사람의 예를 올림으로써 사끼야 족의 오만함과 지나친 자존심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50면)

"그러나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도덕적인 행위와 집중력, 그리고 지혜를 갖춘 자라면 그가 손위거나 손아래거나 상위 카스트 출신이거나, 천민 출신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상관없이 마땅히 그를 존경해야 한다." (451면)

"세존이시여, 저는 지난날 겹겹이 둘러쳐진 높은 성벽과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보호를 받고도 편히 잠들 수 없었습니다. 인적 없는 나무 아래, 깊은 밤 홀로 있어도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지금의 내가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좋구나, 좋구나!'라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453면)

"그렇다. 밧디야. 나의 법은 실로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다. 열반은 실로 안온한 것이다." (453면)

"나는 이 영원불멸과 절대무의 양극단에 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생겨나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세계를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물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무를 믿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또한 사물이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불멸을 믿는 것도 잘못이다. 발생하는 사물에 대한 이해는 절대적인 무의 믿음을 물리치고, 사물의 소멸은 영원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지운다. 내가 가르치는 의존적 발생의 원리, 즉 연기의 원리는 이 양극단을 벗어난 중도인 것이다. 까짜야나,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세계에 관한 올바른 견해다." (464면)

"비구들이여, 조건에 의지해서 발생하는 원리, 즉 연기법은 상호 의존해 발생한 사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464면)

"인생 도처에 죽음이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생자필멸은 모든 존재에서 적용되는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생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한다면, 종교적 진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467면)

"지붕이 튼실하지 못하면 빗물이 새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을 주의 깊게 억제하지 않으면, 정욕이 우리의 모든 좋은 결심에 구멍을 뚫는 법이다. 그러나 지붕이 튼실하면 빗물이 새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억제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면, 그런 욕망이 생기지도 않고 번뇌에 빠지지도 않는다." (468면)

"저급하고 열등한 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악취 나는 물건을 취급해야 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몸에 나쁜 냄새가 밴다. 나쁜 것만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은 마지막에는 이유도 모른 채 파멸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어진 것을 가까이 하는 현자는 향기나는 물건을 취급하는 사람의 몸에 달콤한 향기가 배어드는 것처럼 어진 성질을 가지게 된다. 지혜를 넓히고 덕을 쌓는 사람은 완성의 길로 나아가면서 만족을 얻게 된다." (468면)

붓다는 몸을 아끼지 않고 중생들에게 깨달아 성취한 진리를 가르쳤다. 수면이나 휴식 등 육체적인 피로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 외에는 오로지 중생을 교화하는 활동으로 하루를 보냈다. (470면)

대체로 붓다는 설법을 할 때 우화와 일상에서 겪는 평범한 예를 들어 설명했다. 청중들이 쉽고 명료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배려였다. 붓다의 설법에는 청준의 근기에 따라 주제와 수준을 맞추는 일정한 원칙이 있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제일 먼저 간용과 베풂의 공덕, 건전한 삶의 유익함, 하늘세계의 축복에 대해 설법했다. (472면)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지 4년, 라자가하의 웰루와나(죽림정사)에서 머물 때였다. (474면)

"그게 이런 겁니다. 귀엽고 사랑하는 사람은 슬픔과 비탄, 괴로움,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488면)

"대왕이시여, 귀엽고 사랑하는 사람이 슬픔과 비탄, 괴로움, 절망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이 괴로움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만곡이 영원하지 않으며 실체가 없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면, 그러한 만족은 결국 불만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족의 본성을 깨달은 사람은 불만에 시달리지 않고 가정생활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정과 가족으로부터 떠남으로써 보다 높은 경지의 자유와 행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계속되는 윤회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대자유, 해탈입니다." (495, 496면)

"심지 않고 열매를 딸 수 없는 것처럼 선행을 닦지 않으면 훗날 즐거움을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반성하고 악행을 삼가십시오. 자기가 지은 것은 반드시 자기가 거두어야 합니다. 과보는 세상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대왕이여, 권력만 믿고 세월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목숨이 있는 한 죽음을 피할 수 없스니다. 항상 바른 법을 닦아야 죽음이 다가왔을 때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합니다. 더없이 나를 행복하게 하던 부귀와 권력도 먼 훗날 돌아보면 그땐 아침이슬과 같은 것입니다." (497면)

그 일이 있고 난 후, 난다는 극도의 금욕생활에 들어갔다. 전적으로 탁발에 의지하며, 넝마로 지은 가사를 입고 자신의 감각을 제어하는 정진에 전념했다. (532면)

"삿짜까여, 나는 세계가 무상하며, 그곳에 영원불멸의 실체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형상, 감각, 인식, 성향 그리고 의식으로 이루어진 인간적 경험의 세계는 무상하며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성향으로 결정된 사물들을 포함한 모든 의도된 행위 또한 무상합니다. 어디에도 불변하는 실체는 없습니다. 나는 세계가 그와 같다고 알고, 제자들에게 세계를 그렇게 인식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536, 537면)

"삿짜까, 남들의 견해는 쾌념치 마세요. 그대는 다만 그대 자신의 믿는 바를 설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537면)

"삿짜까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고다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삿짜까여, 느낌도, 인식도, 심리현상도, 알음알이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나의 제자들이 내게서 배우는 것이다." (540, 541면)

삿짜까는 자신의 무지와 오만을 뉘우치고 붓다와 제자들을 다음 날 공양에 초청했다. (543면)

"암바빨리, 그대는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또한 그대가 원하는 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경호원들이 그대를 보호하지 않고 그대 홀로 돌아다닐 때, 그대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그대는 지금 이생의 생명이 얼마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대는 어부의 손에 잡혀 부뚜막의 솥속에 넣어진 꽃게와도 같습니다. 그 물이 뜨거워지기 전까지는 느긋하고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자유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이 세계는 무상하고 변덕스럽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548면)

"거짓말을 삼가지 않으면 악에서 해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동, 말, 모든 생각을 할 때마다 행동과 말과 생각을 올바르게 하도록 숙고해야 한다." (553면)

"라훌라, 육체적인 행위 혹은 입이나 마음으로 행하는 어떤 행위가 네 자신이나 타인, 그리고 자타 모두를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선행, 행복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여겨 더욱 연마하고 증진시켜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닦고 늘려가는 것이다. 알겠느냐, 라훌라." (556면)

"믿음을 가지고 집을 떠났다면, 사랑스럽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감각적 쾌락의 대상들을 버리고, 괴로움을 증식시키는 사람이 되라. 선한 친구와 사귀어라. 인적 없이 외딴 곳, 고요한 곳에서 거처하여라. 그리고 음식의 분량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의복과 얻은 음식과 필수의약과 침구와 깔개, 이런 것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가지 말거라. 계율의 항목을 지키고 다섯 감관을 지켜, 너의 몸에 대한 새김을 확립하라. 세상을 아주 싫어하여 떠나라. 탐욕에 붙들여 아름다워 보이는 인상을 회피하라.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을 닦되,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켜라. 인상이 없는 경지를 닦아라. 교만의 잠재적 성향을 버려라. 그리하여 교만을 그치면, 너는 고요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557면)

깨달음을 성취한 후 6년, 붓다가 마가다 국의 수도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붓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귀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일이 이어지자 붓다와 그 제자들에 대한 라자가하 사람들의 찬사와 공경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559면)

"왕비여, 돌아보십시오. 무너지지 말라고 아무리 애써도 그것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름답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그것의 본성은 아름답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사랑해 쓰다듬고 보듬어 보지만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입니다." (562면)

"왕비여, 그곳에 휴식은 없습니다. 케마여, 이곳에서 쉬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아 육체에 대한 집착과 갈애를 버릴 때, 마음은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563면)

"왕비여, 벗어날 길을 찾으십시오. 게마여, 지혜를 닦으십시오. 당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보기 좋다고 여기는 것, 거기에 영원한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떨치고 자세히 보십시오. '나'와 '너'를 실체하는 것이라 생각해선 안 됩닏. '나'와 '너'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그로 인해 교만심을 일으켜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행동과 말씨와 마음가짐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예의를 갖추십시오. 공손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마음속에 도사린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고요하고 편안한 열반의 경지에 곧바로 도달할 것입니다." (563, 564면)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마가다 국의 왕비가 비구니가 됨으로써 붓다 교단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또한 그녀의 출가로 라자가하 여인들의 출가가 잇따르게 되었다. (567면)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롭고 심오한 가르침을 펼침으로써 붓다의 영향력은 자뭅디빠 전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569면)

"'내 마음은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악담을 내뱉지 않으리라. 이로움과 함께 연민을 가지고 머물리라.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증오를 품지 않으리라.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자애로운 마음을 가득 채우고 머물리라. 그리고 그 사람을 대상으로 삼아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가 함께 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물리라.'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574면)

논리적 사유와 언변이 뛰어났던 깟짜아나는 붓다의 간단한 설법을 자세히 분석해 설명하고 논의하는 데 있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 붓다 역시 이 능력을 칭찬하여 그에게 '논의제일'이라는 별칭을 내려주었다. (578면)

"수행자로 살고자 한다면 많은 일을 하지 말라. 사람들을 멀리 하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 맛에 탐닛하여 번거로우면 안락을 가져오는 의치(열반에 이르게 하는 진리)를 놓친다." (579면)

"슬기로운 자라면 본 것, 들은 것, 모든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눈 있는 자는 오히려 눈먼 자와 같고, 귀 있는 자는 오히려 귀먹은 자와 같아야 한다. 지혜가 있는 자는 오히려 바보와 같고 힘센 자는 오히려 취약한 자와 같아야 한다. 생각하건대 의취가 성취되었을 때, 죽음의 침상에 누워야 하기 때문이다." (580면)

"소나꼴리위사, 진리의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욕이 지나쳐 너무 급하면 초조한 마음이 생기고, 열심히 하려는 뜻이 없으면 태만으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가운데 길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 속세의 미혹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563면)

"세상 사람이 미혹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늘이나 인간에 나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나고 죽음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삼독을 녹여버리고 하늘의 복락을 길이 누리고자 하거든 언제나 남에게 베풀어주기를 좋아하며, 어떤 욕됨과 어려운 일이라도 참으며, 법을 들어 지혜 닦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몸은 오온히 화합한 거짓의 것임을 알아 그것에 탐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탐착을 여윈 이는 장차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 걱정, 괴로움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593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 몸은 끊임없이 병들고 있습니다. 스치기만 해도 깨지는 껍질처럼 우리 몸을 보호하고 있는 살결은 얇고 연약합니다. 이런 몸을 끌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나는 건강하다, 나는 튼튼하다, 나는 병이 없다.'고 자부하는 이가 있다면 어찌 어리석은 사람과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그는 그 순간이 지난 다음 언젠가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599면)

"늘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나의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600면)

"사람의 목숨은 짧아 백 년도 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결국 늙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 것'이라 여겨 슬퍼하지만 참으로 '내 것'이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소유하는 삶에 머물지마십시오. 사람들은 '이것이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으로 그것을 잃게 됩니다. 현명한 나의 벗들이여, 이와 같이 알고 '내 것'이라는 것에 경도되지 말아야 합니다. 꿈에서 만난 사람을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그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살아서 이름을 부르던 그 사람은 눈으로 보기도 하고, 목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들이 죽으면 이름만 불릴 뿐입니다." (603, 604면)

"내 것에 탐욕을 부리면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안온을 보는 성자는 소유를 버리고 유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탐욕을 떠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홀로 명상하며 유행하는 것이 수행자에게 어울리는 삶입니다. 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결코 사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604면)

"세존이시여, 노부부가 세존을 보자마자 아들이라 부른 것은 무슨 인연입니까?"

"아난다, 저 노부부는 오랜 전생에 나의 부모님이셨다." (605면)

"어리석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며 복을 짓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적절한 곳을 찾아 조화로이 사는 것, 무슨 일이든지 앞서 미리 선행을 닦는 것, 스스로 몸과 마음을 옳은 곳에 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며 복을 짓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널리 배워 많은 것을 아는 것, 훌륭한 기술을 익히는 것, 현행 규범을 익히고 잘 따르는 것, 좋은 말로 서로 함께 대화하는 것,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까이 모시는 것, 자녀와 배우자를 화목하게 돌보는 것, 안정된 직업으로 생활하는 것, 물질을 베푸는 것, 가르침에 따라 여법하게 살아가는 것, 친지들을 도와주는 것, 잘못된 일을 하지 않는 것, 나쁜 짓을 혐오하여 삼가는 것, 악한 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는 것,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 등을 멀리하는 것, 붓다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정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행복이며 복을 짓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진리의 가르침을 존중할 줄 아는 것, 가르침 앞에 스스로 겸손할 줄 아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것, 일이 성취됨에 고마운 줄 아는 것, 자주 자주 때맞춰 법문을 듣는 것, 이것이야 말로 최상의 행복이며 복을 짓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607면)

"욕된 일마저 자제하며 인내할 줄 아는 것, 수순하며 용서할 수 있는 것, 수행하는 이들을 찾아뵙는 것, 자주 때맞춰 담마(진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 열정적으로 힘써 도를 구하는 것, 청정한 삶을 사는 것, 사성제에 눈을 뜨는 것, 몸소 열반을 체험하고 성취하는 것,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딛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슬픔과 번민 없이 안온한 것, 물듦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 고요하여 더 없이 평안한 것, 이것이야 말로 최상의 행복이며, 복을 짓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607면)

"비구들이여, 싸움을 그만 두라. 다투지 말라. 논쟁하지 말라. 원한은 원한에 의해 풀어지지 않는다. 원한은 원한을 버림으로써만 풀어질 수 있다." (613면)

"비구들이여, 모든 존재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말고,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라.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어질고 지혜로운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질고 지혜로운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지 못했거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와 함께 하는 것도 참으로 행복하다. 그러나 그런 벗을 만나지 못했거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결박을 벗어난 사슴이 초원을 자유롭게 뛰놀듯,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떠나듯, 상아가 빛나는 힘쎈 코끼리가 무리를 벗어나 숲을 거닐 듯, 물고기가 힘찬 꼬리로 그물을 찢듯이 모든 장애와 구속을 벗어나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과 진흙이 묻지 않는 연꽃같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617면)

"나는 이미 멈췄네. 그대도 멈추고 싶지 않은가?" (632면)

"사문이여, 그대는 멈춰 섰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멈춰 서 있는 나에게는 멈추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633면)

"대왕이시여,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차라리 나무 밑에 살며, 탁발한 음식에, 사람들이 버린 넝마를 기워만든 가사로 살면 족합니다." (637면)

"그렇다. 앙굴리말라. 거짓은 도움이 될 수 없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수행하는 비구에게 올바른 길이 아니다." (639면)

"잘 참았다. 앙굴리말라! 견뎌야 한다. 세상은 무지하고 소견이 좁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한번 만들어진 나쁜 평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좋은 평판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고통을 그대의 업이 익어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끊임없이 갈고 닦아라. 열심히 정진하는 자에게는 과거의 악행으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도 더 이상 따라붙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이다." (640면)

전에 방일했지만 그 후로는 방일하지 않는 자,

그는 이 세상을 비추나니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그가 지은 삿된 업을 유익함으로 덮는 자,

그는 이 세상을 비추나니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참으로 젊은 비구가 세존의 교법에 몰두할 때

그는 이 세상을 비추나니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641면)

"니디여, 그대는 천하지도 더럽지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다. 그대의 옷은 더러워졌지만 그 마음은 더할 것 없이 착하구나. 그런 그대의 몸에선 아름답기 짝이 없는 향기가 난단다. 니디여,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645면)

"누린내 나는 아주끼리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듯,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여러분, 그 사람들을 공경하십시오." (647, 648면)

"여러분, 붓다의 가르침을 들었으면 아무리 쉽고 간단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한마음으로 게으름 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651면)

당시 일부 브라만들은 붓다의 상가에 천한 계급 출신들도 수행승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을 구실로 종종 붓다를 이렇게 비난했다. (652면)

"화를 내고 원한을 품으며, 악독하고 시기심이 많고 소견이 그릇되어 속이길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한 번 생겨나는 것이건(태생, 습생, 화생, 사회적으로 노예계급을 상징) 두 번 생겨나는 것이건(난생, 사회적으로 브라만, 왕족, 평민 계급을 상징) 이 세상에 있는 생명을 해치고 살아 있는 생명에 자비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마을들뿐만 아니라 도시들을 파괴하거나 약탈하여, 독재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마을에 있거나 숲에 있거나 남의 것을 나의 것이라고 하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653면)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인 것이 아니며, 태어나면서 브라만인 것도 아닙니다.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행위에 의해서 브라만도 되는 것입니다." (655면)

진리 앞에 모든 것은 평등 ... (687면)

한 사람이라도 진리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잠부디빠 전역을 유행하기를 중단하지 않았던 붓다였지만, 아난다를 시자로 정한 이후부터는 유행보다는 정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붓다가 대각을 성취한 지도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761면)

"스승이시여, 스승의 넘치는 사랑과 배려, 고맙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랫동안 두타행을 익혀왔고, 많은 이들에게 두타행을 찬탄하고 권해 왔습니다." 마하 깟사빠의 정중한 거절에 붓다는 미소를 머금을 뿐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765면)

"세존께서는 이제 연로하셨습니다. 이제는 선정에 들어 마음 편히 쉬실 때입니다. 교단은 제가 맡아 잘 통솔하도록 하겠습니다." ... "데와닷따, 나는 사리뿟타나 마하 목갈라나에게조차 상가의 통솔을 맡기지 않고 있다. 하물며 너처럼 다른 이가 뱉어버린 가래침을 주워 삼키는 자에게 어찌 상가를 맡길 수 있겠느냐?" 붓다의 단호한 대답은 데와닷따에게는 더 없이 큰 모욕이었다.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해진 데와닷따는 분노를 삼키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768, 769면)

그렇지 않아도 붓다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던 아자따삿뚜는, 데와닷따의 붓다에 대한 분노를 이용해 붓다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770면)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항상 고행자의 삶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호사스럽게 사는 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각적 쾌락을 포기했다는 그들의 말과 그들이 사는 모습은 서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774면)

"데와닷따,이 세상의 고뇌는 인간 개개인의 성벽 혹은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성벽과 성향은 다양한 조건들에 의지해서 형성된 것이다. 행복은 바로 모든 성향의 평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향이 다양한 조건에 의지해 형성된 것이라면, 행복과 자유에 이르는 길 또한 각기 다를 수 있다. 데와닷따, 따라서 나는 수행의 목표는 하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다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777면)

붓다에 대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 데와닷따는 아자따삿뚜의 지원을 받아 붓다를 위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는 아자따삿뚜에게 부탁해서 궁수를 파견해 라자가하 외곽에 자리한 깃자꾸따(영취산)에 머물던 붓다를 살해하려 하였다. 하지만 궁수들이 붓다에 감화됨으로써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분노의 불길이 더욱 거세진 데와닷따는 붓다를 직접 살해하겠다며 깃쨔꾸따를 오르내리는 붓다에게 바위를 굴릴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붓다가 깃자꾸타를 오르는 것을 숨어서 지켜보던 데와닷따는 산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산을 오르는 붓다를 향해 큰 바위를 굴렸다. 그러나 바위는 산산조각이 났고, 한 조각이 붓다의 발을 찔러 큰 상처를 입혔다. 다행히 의사 지와까가 다친 발의 염증을 칼로 도려내는 수술을 해 상처는 더 커지지 않고 아물 수 있었다. (778면)

"지와까, 나는 윤회라는 긴긴 여행의 종착점에 도착하여 모든 번뇌와 방해와 핍박에서 벗어났다네. 그러나 마음속의 뜨거운 번뇌는 모두 소멸했지만 몸의 통증만은 어쩔 수 없구나!" (778면)

"아난다, 데와닷따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악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난다, 어리석은 사람과는 만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과는 일을 상의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과는 말로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하는 짓마다 진리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781면)

그러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데와닷따는 큰 고틍을 느끼며 숨을 거뒀다. 데와닷따의 사망 소식을 접한 붓다가 제자들에게 말했다. "제자들이여, 데와닷따는 사악한 인간의 덫에 빠져 쉽게 흔들리고 부추겨지는 사람의 좋은 본보기다. 내 그대들에게 간곡히 권고한다. 사악한 사람을 피하고 고결한 도반을 가까이 하라." (791면)

그 무렵 기원정사 상가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수닷따 장자가 병이 들어 위중한 상태에 이르렀다. (792면)

평생 고독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웃에게 전 재산을 남김없이 베풀어 온 수닷따는 말년에는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최선을 다해 붓다와 붓다의 상가를 외호한 그를 붓다는 '나의 재가 수행자 중 보시를 실천하는 제일의 제자'라고 칭찬했다. (797면)

"왕이시여, 세삼스레 늙은 몸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붓다의 물음에 빠세나디 왕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온전히 깨달은 분이시고, 담마(진리)는 붓다에 의해 잘 설해져 있으며, 제자들의 공동체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99면)

빠세나디의 후한 성원에 힘입어 말년의 몇 해 동안을 사왓티에서 부족함이 없이 보낼 수 있었던 붓다였지만, 그의 아들 위두다바의 모반과 왕의 비참한 취후를 목도한 이후부터 사왓티가 영 서먹하고 편하지 않았다. 이윽고 붓다는 사왓디를 떠나 다른 곳에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마가다 왕국의 라자가하로 거처를 옮겼다. 어느덧 붓다의 나이도 칠십대 중반을 넘어 팔십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라자가하에서도 붓다의 심기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아자 따삿뚜가 자신의 생부 빔비사라 왕을 퇴위시키고 스스로 마가다의 왕위에 오른 뒤였으므로, 붓다는 허탈한 마음에 홀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자따삿뚜는 붓다가 라자가하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오래전부터 품어온 붓다에 대한 반감으로 붓다가 머물고 있는 정사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803면)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눈물은 그의 얼굴을 온통 다 적셨다.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통곡하는 아들을 늙은 어미 웨디히가 다가가 품에 안았다. 그날 이후 아자따삿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812, 813면)

"왕이여, 나의 가르침에 들어와 부지런히 노력하고,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고요한 곳에서 즐거워하며 방일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되고 나아가 모든 번민과 고뇌가 사라진 지혜를 얻게 됩니다. 왕이여,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는 현생에 이와 같은 이익을 얻습니다." (818면)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남자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해와 달이 움직이는 속도다. 해와 달이 움직이는 속도는 그 남자보다 훨씬 더 빠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수명이다. 사람의 수명이 변해가는 속도는 해와 달이 변해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이렇게 사유하여 숙고한 사람만이 인생을 헛되어 허비하지 않는다." (826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837면)

라홀라, 붓다보다 먼저 입멸하다. (847면)

"또 '고통의 소멸'과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존귀한 진리를 꺠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한 탓에 오랜 시간에 걸쳐 나도 너희들도 이처럼 유전하고 윤회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고통과 고통의 근원과, 고통의 소멸과,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훌륭한 진리를 깨우치고 통달했다. 생존에 대한 집착은 이미 끊어졌다. 생존으로 이끄는 집착은 이미 사라지고 이제 다시는 미혹의 삶을 받을 일은 없다." (869면)

"마치 청정한 행동이 길게 이어져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처럼 그런 행동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한, 신들과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길이다." (895면)

"비구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러 가지 사상을 지나가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수행을 완성하라." (896면)

"계속 정진하라. 그리하면 머지않아 반드시 통찰과 해탈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916면)

"아난다여, 출가자들은 나의 유해를 모시겠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말라. 너희들은 오직 출가 본래의 목적을 향하여 바른 마음으로 노력하며, 게으름 펴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919면)

"수밧다여, 여덟 가지 올바른 길(팔정도)이 있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정이 그것이다." (923면)

붓다는 잠시 침묵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후의 유언을 남기려는 붓다의 눈빛이 보석처럼 빛났다.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내 그대들에게 간곡히 이르노라. 형성된 모든 것은 끝내 소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한 찰라도 알아차림(sati)을 놓치지 말고 대상을 관찰하여 완전하게 하라.'는 마지막의 간곡한 유훈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법문을 마친 붓다는 천천히 눈을 감고, 이내 전 생에 걸쳐 닦아온 선정에 들었다. (927면)

[출처] 붓다 연대기|작성자 호야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