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 阿彌陀佛 , Amitabha ]
서방 극락정토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부처. ‘무량수불(無量壽佛)’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따르면, 법장이라는 비구가 48대원(四十八大願)을 세웠는데, 그중 18번째 서원에서 자신이 부처가 되면 그를 믿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그가 건설한 정토에 태어나서 열반에 이를 때까지 복을 누리며 살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법장은 자신의 서원을 모두 이룬 뒤 아미타불로서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량수경》 외에 정토삼부경으로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이 있다.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로 정토사상의 발달과 함께 중국,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인도 및 서역 등에서도 일찍부터 널리 퍼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아직 조상(彫像)의 예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중국의 경우는 650년경 신앙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하여 7세기 후반에는 상(像)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그 형상에는 단독상과 삼존상이 있는데, 보통 아미타9품인(阿彌陀九品印)의 손 모양을 취하고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표현되는 것이 특징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대세지보살 자리에 지장보살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아미타경소阿彌陀經疏》를 저술하면서 아미타불을 신앙하게 되었고 현재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경주 구황동九黃洞 황복사皇福寺 3층석탑 출토 금제아미타불좌상>을 비롯하여 <감산사甘山寺 석조아미타불입상> <불국사佛國寺 금동아미타불좌상> 등이 단독상으로서 유명하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아미타불을 불화로서 많이 제작하였는데, <독존도獨尊圖> <아미타삼존도三尊圖> <아미타구존도九尊圖> <극락회상도> 등이 있다. 또한 왕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왕생자를 맞이하러 오는 장면을 묘사한 <아미타내영도(來迎圖)>,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도해한 관경변상도가 있다. 관경변상도는 마가다왕궁 왕사성王舍城에서 일어난 부자 사이의 왕권쟁탈에 얽힌 비극적인 내용을 그린 <관경서품변상도觀經序品變相圖>와 마가다왕국의 왕비 위데휘韋提希에게 아미타불 및 그 세계를 관상하는 16가지 방법을 표현한 <관경십육관변상도觀經十六觀變相圖>로 나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미타불 [阿彌陀佛, Amitabha]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