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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철학의 모험, 피할 수 없는 질문, 철학자들이 펼치는 사유의 격돌 / 이진경

철학의 모험, 피할 수 없는 질문, 철학자들이 펼치는 사유의 격돌 / 이진경

 

철학자들의 사유의 궤적을 대화로 엮어 누구나 철학적 사유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네 가지 이야기가 모두 가상의 대화이지만 철학자들의 주장과 논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절실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낯설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닥치는 낯선 것, 사유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집요하게 묻고 생각하는 훈련이 될 수 있다.

 

철학에 대한 철학사적 접근에 싫증난 독자라면 이 책이 안내하는 철학의 세계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니체의 말처럼 철학이 삶으로부터 분리된 교양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 책은 삶이 곧 철학이자, 철학이 곧 삶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알라딘 제공]

 

이진경

저자 : 이진경

전환기 한국사회의 토대를 분석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써서 24세에 이진경이라는 필명을 얻었다. 본명은 박태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논문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대한 공간 사회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식 공동체 ‘수유너머104’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근대성에 천착해 『철학과 굴뚝 청소부』를 썼고,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변혁을 모색한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ㆍ공간의 탄생』, 『이진경의 필로시네마』를 썼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의 철학과 함께 자본주의의 외부에서 삶의 탈주를 꿈꾸며 『노마디즘』, 『철학의 외부』, 『역사의 공간』,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등 30여 권의 책을 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여는 글 | 익숙한 것들과 낯설게 만나는 사유의 모험

 

프롤로그 | 철학적 경연, 혹은 철학자와 함께-달리기

인간은 정말 ‘생각하는 동물’인가?

인간은 언제 생각하게 되는가?

모험으로서의 철학

철학하기, 혹은 철학적 경연

 

 

제1부 복제된 생명의 나라

복제인간의 이성과 휴머니즘의 지옥

 

1. 천국의 법정은 무엇으로 재판하는가?

휴머니즘의 죽음

신을, 아버지를 죽인 자의 법정

인간의 법은 인간 아닌 자의 죄를 물을 수 있는가?

인간의 자리에서 이탈한 인간이라면?

복제인간의 역설

 

2. 데카르트, 수학으로 직조된 ‘완전한 관념’의 세계를 꿈꾸다

복제인간의 사유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방법론적 회의와 돈키호테

본유 관념, 확실성의 기초

신, 즉 완전한 존재는 존재한다

두 가지 실체: 연장과 사유

수학, 진리의 모델

복제인간은 인간인가?

 

3. 스피노자, 실체의 자연학과 감응의 윤리학

신을 죽인 자도 신이다

실체는 오직 하나 존재할 수 있을 뿐

실체는 양태로서만 존재한다

자연,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

하나의 양태에는 우주 전체가 깃들어 있느니

존재론적 평등성

실존 능력, 실재성의 정도

코나투스, 혹은 양태의 욕망

선/악(도덕)과 좋음/나쁨(윤리)

감응의 윤리학과 신의 관념

자유의지와 자유의 차이

신의 사랑과 지복(至福)

 

4. 라이프니츠와 창문 없는 단자들의 세계

양태의 본성과 영원성

실체란 스스로 활동하는 자

차이가 있다면 다른 실체다

단자, 무한소적 실체

모든 단자는 영혼을 갖는다

단자에는 창문이 없다, 주름만 있을 뿐

모든 지각은 내부 지각이다

인터넷과 예정조화

복합 실체와 완전성의 위계

생명체의 주름은 펼쳐지기만 하는가?

복제인간 로이는 언제 인간과 공가능한 세계를 사는가?

 

5. 신의 심판

인간인가, 복제인간인가?

신의 심판, 자연의 심판

 

 

제2부 우화와 우상의 나라

백지 위의 경험주의와 불가능한 우화

 

6. 우화는 어떻게 철학의 친구가 되는가?

아이소포스, 철학자를 꿈꾸다

프로메테우스의 세 가지 뒷이야기

철학의 명료함을 반문하는 우화 철학

 

7. 우상과 싸우는 베이컨, 비밀의 문 앞에 서다

아는 것이 힘이다

귀납적 방법의 힘

귀납법은 얼마나 타당한가?

네 가지 우상

동굴의 우상

극장의 우상

종족의 우상

시장의 우상

비밀의 문 앞에서

 

8. 로크가 경험의 백지 밑에 숨겨둔 것

잊을 수 없는 이야기

필로소피아와 변증술

인간에게 본유 관념은 있는가?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

같은 경험은 같은 길로 인도하는가?

단순 관념과 복합 관념

경험의 유사성은 얼마나 유사한가?

제1성질과 제2성질

 

9. 버클리, 지각의 경험론과 지각만 가능한 경험

존재는 지각된 것이다

상이하게 지각된 것은 상이한 존재인가?

지각될 수 있을 뿐인 지각

지각된 관념의 힘

나의 부모는 나의 자식이다

산소의 지각이 없으면 숨 쉴 수 없을까?

신의 지각과 지각의 신

 

10. 회의주의자 흄의 습관과 믿음

흄의 마구간에서

‘완전한 관념’의 감옥

인상 없이는 관념도 없다

정신이란 인상과 관념의 다발

보편성은 유사한 관념의 자식

자아, 즉 지각하는 정신은 존재하는가?

인상들만 존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학자에게 중요한 일곱 가지 관계

인과 관계가 없다니!

회의주의자가 세상에 대해 말하는 법

믿음의 힘

철학으로 회수될 수 없는 절대적 우화

 

 

제3부 기계화된 이성의 나라

생각하는 기계와 생각 없는 이성

 

11. 칸트의 순수 이성은 어떻게 선을 넘는가?

기계-인간의 이성에 대해 칸트에게 묻다

데카르트의 로봇과 로크의 로봇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

선험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백설공주와 거울, 혹은 물 자체와 현상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시간과 공간, 선험적 감성 형식

열두 개의 범주, 선험적 지성 형식

우리는 경험을 어떻게 확장하는가?

원리를 부여하는 이성의 능력과 이념

순수 이성은 왜 선험적 가상들을 만드나?

칸트의 유언

 

12. 절대 이성의 목적론과 헤겔의 계략

생각하는 기계의 이율배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모순이란 무엇인가?

‘물 자체’에서 ‘즉자’로

즉자와 대자의 변증법

사고 능력의 합목적성

정신의 외화와 복귀, 세상을 장악하다

정신은 어떻게 개인을 넘어서는가?

신의 계략, 이성의 계략

인간의 계략, 혹은 주인과 로봇의 변증법

저기 절대정신이 걸어간다!

 

13. 포이어바흐의 유물론과 소외된 로봇

물구나무선 헤겔을 뒤집자!

문제는 ‘외화’가 아니라 ‘소외’다!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이다!

인간의 본질

소외된 인간, 소외된 로봇

 

14. 유물론자 마르크스는 이성 없는 로봇을 꿈꾸는가?

로봇의 발명이 혁명을 촉진한다?

단백질의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

바이올린의 본성은 악기?

사물의 본성은 이웃에 따라 달라진다

진리는 하나인가?

문제는 언제나 실천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바꾸는 것이다!

무엇이 흑인을 노예로 만들었나?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들의 집합

역사와 계급투쟁

울타리 치기, 공동체를 잡아먹고 자본주의를 낳다

로봇 개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로봇의 반란과 ‘이성의 계략’

 

 

제4부 분열된 주체의 나라

주체의 분열과 긍정의 윤리학

 

15. 다시 쓰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두 사람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

 

16. 지킬 박사의 실험과 후설의 판단 중지

세계는 수학적 질서를 갖는가?

심리주의에서 현상학으로

자유 변경과 현상학적 ‘환원’

자연적 태도와 판단 중지

순수 의식과 지향성

지향성이 어떤 몸짓을 꽃으로 만든다

분열된 주체인가, 분열된 대상인가?

주체의 지향성을 거부하는 것들

 

17. 프로이트는 지킬에게 ‘하이드를 올라타’라고…

최면술과 무의식

첫날밤 이후에 첫날밤을 반복하게 하는 것

응축과 치환: 꿈은 어떻게 작업하는가?

성적 충동과 리비도

우리는 모두 오이디푸스다!

무의식의 위상학: 이드, 초자아, 자아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 혹은 지킬 박사의 출구

 

18. 힘의 고양을 긍정하는 자에겐 니체의 축복이 있으리니

열쇠는 하이드가 갖고 있다

어디에나 도덕이 지배하고 있다

계보학과 비판

귀족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우리는 왜 그토록 진리에 집착하는가?

힘과 의지, 혹은 힘에의 의지

능동과 반동, 힘의 두 가지 질

긍정적 의지와 부정적 의지

‘부정의 부정’이아니라 ‘긍정의 긍정’을!

영원 회귀와 ‘신의 죽음’

초인, 자기를 넘어서는 자

어떤 힘과 의지가 지킬과 하이드를 만들어냈는가?

하이드가 지킬을 구원하리라!

 

19. 피날레: 지킬 박사를 위한 파반

하이드를 욕망한 자의 운명

 

에필로그: 매혹의 힘과 사유의 모험

[예스24 제공]

 

철학의 거장들이 펼치는 가상의 사유 대결!

스피노자와 흄, 칸트와 마르크스가 되살아난다면? 오늘의 기술문명에 대해 뭐라고 할까? 이 위대한 지성들이 복제인간과 대면한다면? 기계화된 이성, 인공지능의 사유를 인정할까? 헤겔과 포이어바흐가 설계하는 로봇엔 어떤 뇌가 탑재되어 있을까?

근현대 철학의 대가들이 오늘날 철학적 문제를 놓고 격돌한다. 상대는 복제인간, 차페크, 아이소포스, 지킬 박사다.

1부에서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가 복제인간 로이와 격론을 펼친다. ‘인간 이성’은 복제인간의 이성보다 더 우월한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살처분당하게 된 로이. 자신을 제조한 타이렐 회장을 살해한 죄로 법정에 서는데……. 복제인간을 인간의 법으로 단죄할 수 있는가? 철학의 대가들이 복제인간의 이성을 놓고 논변한다.

2부에서는 이솝 우화의 저자 아이소포스가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과 대결한다. 우화 철학의 선구자가 되고 싶었던 아이소포스. 하지만 ‘경험이 참된 지식의 유일한 근거’라며 우기는 경험주의 철학의 결함을 간파하고 삶에 물음을 던지는 절대적 우화에서 진리의 가능성을 본다. 3부에서는 최초의 로봇을 상상한 소설가 차페크가 칸트, 헤겔, 포이어바흐, 마르크스와 격돌한다. 독일 철학자들은 로봇에 어떤 이성을 부여할까? 칸트는 이율배반을 극복하는 로봇을, 헤겔은 주인을 따르면서도 스스로 사고하는 로봇을 제안한다. 포이어바흐는 주인과 로봇은 결코 합일될 수 없는 소외 관계임을, 마르크스는 생각하는 로봇의 통제 불가능성을 제기하며 로봇을 반대한다.

4부에서는 하이드를 살해한 지킬 박사를 놓고 의심의 대가 후설과 프로이트, 니체가 논쟁한다. 하나의 육체에 숨겨진 두 자아의 본질에 대해 철학자들은 각각 한 주체에서 분열된 대상, 세계와 충돌하는 욕망, 창조하려는 힘과 의지라는 주장을 펼친다.

 

근현대 철학의 핵심 사상을 픽션으로 되살리다

근현대 철학의 핵심 사상이 픽션으로 되살아났다. 가상의 상황, 가상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철학 논쟁은 지금 우리의 문제를 소환한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구상한 이야기는 철학의 주요 쟁점인 이성, 주체, 윤리 등에 관한 치밀하고 상세한 사유를 보여준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 칸트, 헤겔,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후설, 프로이트, 니체 등 철학자들의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핵심 논변이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현대 철학이 간과해왔던 문제들, 현대 문명이 풀어야 할 숙제들, 휴머니즘과 복제인간, 생각하는 기계와 로봇의 지능 등 철학적 문제를 다룬다.

각기 낯선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근현대 철학이 탐구한 ‘질문’과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시대정신을 뛰어넘는 인간 존재와 우리 세계의 문제를 포착하게 된다. 철학의 대가들은 저마다의 논리로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논쟁하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절실하게 답을 얻고자 하는 물음 속에서 대가다운 해답을 내놓는다. 각 철학자들의 철학적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그 차이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들 ‘논쟁’이 궁극적으로 ‘삶의 지혜’를 얻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철학은 교양이 아닌 삶의 망치!

이 책은 철학자들의 사유의 궤적을 대화로 엮어 누구나 철학적 사유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네 가지 이야기가 모두 가상의 대화이지만 철학자들의 주장과 논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절실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낯설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닥치는 낯선 것, 사유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집요하게 묻고 생각하는 훈련이 될 수 있다. 철학에 대한 철학사적 접근에 싫증난 독자라면 이 책이 안내하는 철학의 세계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니체의 말처럼 철학이 삶으로부터 분리된 교양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 책은 삶이 곧 철학이자, 철학이 곧 삶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데카르트에서 베이컨, 칸트에서 헤겔, 니체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특정 사상에 경도되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우를 범하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책속 에피소드들은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언제나 그 다음에 반대의 문제가 튀어나오는 난관을 보여준다. 풀었다고 생각하는 문제 속에서 가려진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 튀어나오는 것이다. 특정의 철학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란 어렵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철학적 태도다.

 

* 이 책은 『히치하이커의 철학 여행』의 전면 개정판이다. 오늘의 시점에 맞게 문장을 손보고, 흐른 시간만큼 확장된 저자의 철학적 사유를 보완하고 다듬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인간이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사태나 통념으로 쉽게 처리되지 않는 문제, 그래서 의문이나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것과 대면할 때다. 먹고살기 힘든 이들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을 보고 ‘착하고 선량한 부자네’라고 판단할 때, 피 묻은 칼을 손에 든 사람을 보고 ‘살인자’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다. 돈을 기부한 사람이 부자이기는커녕 먹고살기도 힘든 가난뱅이일 때, 칼을 손에 든 사람이 피해자를 죽일 이유가 전혀 없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유하기 시작한다.

---p.23

 

철학은 대결이다. 대결하는 사유다. 확고한 대답이 된 사유와 대결하고 ‘시대정신’이 된 사유와 대결하는 ‘반시대적’ 사유다. 그러나 진정한 ‘대결’은 승패로 귀착되는 승부가 아니다.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결하며 내가 단단해지는 것이다. 대결 속에서 내 사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상대를 축소하는 것, 난쟁이로 만들어놓고 싸우는 것은 제대로 된 대결이 아니다. 그것은 ‘승부’를 위해 ‘대결’을 포기하는 것이다. 진정한 대결이란 능력을 겨루는 것이고, 겨루면서 강해지는 것이다.

---p.28

 

“복제인간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선인 것과 악인 것을 정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준으로 공과를 판단해야 합니다. 늑대들이 인간이 할당한 ‘악의 상징’이나 ‘사냥감’이라는 자리를 거부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복제인간은 인간이 할당한 역할이나 자리를 거부할 권리를 갖습니다. 또한 그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인간의 ‘처분’에 대해 자신을 지킬 권리 또한 갖습니다.”

---p.55

 

“경험주의자 닭의 비극을 아시나요?”

“저는 닭에게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씩 정해진 시간에 모이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두 달쯤 계속하면 그 닭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어느 날 아침과 저녁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갔더니 모이가 뿌려져 있더라. 다음 날도 그 시간 그 장소에 갔더니 모이가 있었다.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그랬다. 따라서 날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가면 모이를 먹을 수 있다’라고. 정확히 귀납적 방법에 의한 추론이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언제나 그랬듯이 닭은 그렇게 습득한 지식에 따라 그 시간 그 장소에 가겠지요. 그러나 그날 닭은 제 손에 붙잡혀 목이 비틀려 저녁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p.198

 

“처음엔 데카르트의 이론에 따라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데카르트였기 때문에, 일단 그의 이론을 모델화했던 거죠. 더구나 제 동료들 가운데 데카르트 철학을 좋아하는 신봉자가 하나 있었거든요. 그가 주도해서 본유 관념의 이론에 따라 인간이 사고하는 법칙인 논리 규칙을 기계의 머리에 집어넣었죠. 그리고 기하학과 산수의 기본 공식들도 넣었고요. 이름도 데카르트를 따서 D-1이라고 붙여줬죠.”

---p.303

 

“로크의 경험주의 모델에 따라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로크를 따서 L-1이라고 붙여주었죠. 데카르트의 모델과는 반대로 연산 장치는 백지로 남겨두고 온갖 정보와 자료를 잔뜩 입력해주었지요. 엔간한 전문가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는 입력된 정보를 뒤져서 알려주는 건 하는데, 그게 사전에 없으면 엉뚱한 걸 답이라고 내놓거나 아니면 ‘찾아낸 정보가 없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 입력된 정보를 이리저리 엮어서 새로운 답을 내는 일도 못 하는 거예요. 더 난감한 건, 제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건 전혀 못 한다는 거죠. 이럴 것 같으면 뭐 하러 애써 기계를 쓰고 기계에 자료를 입력하겠어요? 그냥 우리가 조사해서 쓰면 그만이지.”

“하하하, 재미있군! 그 기계는 백지가 아니라 백치였군 그래.”

---p.304

 

“푸하하, 별 걱정을 다 하시는군요. 로봇 자체도 인간 정신의 산물이고 인간 정신이 외화되어 만들어낸 것이니, 그것의 확장 역시 인간 정신의 확장이라고 해야 하죠. 그것은 인간이 로봇을 이용해 자기 정신의 지배력을 확장해가는 셈인 거죠. 당신이 로봇을 통해 하려는 것도 그거 아닌가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로봇이 대신하게 만드는 것. 결국 로봇의 사고 능력은 당신의 합목적성에 복무하는 것이지요.”

---p.360

 

“당신은 기계로 인해 생긴 문제를 기계로 해결하려 하는군요. 진흙 묻은 걸 진흙으로 닦으려는 사람처럼. 물론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될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사실은 그 반대가 진실임을 보여줍니다. 당신 말대로 로봇들이 공장에 가득하게 되면, 그때까지 노동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해고되어 쫓겨나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까요? 자본가들이나 국가는 그들이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게 해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공장 안에서 장시간 일하다 죽는 대신, 공장 밖에서 일하지 못해 굶어 죽게 될 겁니다.”

---p.384

 

“그게 당신이 말하는 유물론입니까?”

“예. 어떤 것도 불변의 본성은 없다. 어떤 이웃과 어떤 관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그 본성이 달라진다는 것. 여기서 이 물건의 본성은 이 물건 안 어디에도 없습니다. 요아힘 같은 연주자와 만나면 악기가 되고, 저와 만나면 고문 기계가 되고, 아이들과 만나면 장난감이 된다고 했으니, 이것의 본성을 결정하는 것은 이 물건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물건과 만나는 외부, 즉 연주자나 저, 아이들 같은 외부에 있는 거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물건이 그 외부와 맺는 관계 속에 있는 겁니다. 관계에 따라 사물의 본성이 달라진다고 하는 것, 그게 제가 말하는 유물론입니다.”

---p.395

 

“하이드를 자기로부터 분리시킨 것은 다름 아닌 지킬 박사입니다. 그는 자기 내부에 있는 강한 욕망과 충동을 하이드로 독립시켜, 자신은 아무런 체면 손상도 없이 그런 욕망을 실현하고자 했던 거지요. 욕망과 충동에 가해지는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일차적인 동기를 제공한 겁니다. 두 개의 얼굴로 분리하여, 한 얼굴로는 하고 싶은 걸 하고 다른 얼굴로는 사회적인 칭찬을 듣고자 했던 겁니다. 그러한 분리에 대해 지킬 박사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그 책임은 법적인 것 이전에 피할 수 없게 닥쳐올 겁니다.”

---p.506

 

“웃기는 소리! 욕망이란 말 그대로 하고자 하는 의지라오. 밥을 먹고자 하고, 섹스를 하고자 하고, 그림을 그리고자 하고, 피아노를 치고자 하고, 전쟁을 하고자 하는……. 이 모든 게 다 의지요 욕망이지.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근본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말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소? 당신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보시오. 배가 고픈데 섹스할 생각이 나던가요? 배가 고플 땐 식욕이 전면에 나서고, 분노가 일었을 때는 복수하거나 싸우려는 욕망이 전면에 나서지. 성욕 때문에 피아노를 치려는 거라는 말처럼 우스운 게 어디 있겠소. 프로이트는 모든 욕망의 밑바탕에 성욕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걸 증명한 적은 없소. 생각해보시오, 당신이 지킬이란 친구를 위해 이렇게 멀리 독일까지 와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게 성욕이라고, 승화된 성욕이라고 하는 말을 멀쩡한 정신으로 납득할 수 있겠소?” ---p.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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