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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 교실의 철학 강의 노트

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역사 2

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역사 2

 

Column 1

'색즉시공'은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

나가르주나(龍樹)

2세기 무렵의 인도 승려, 그때까지의 불교에서도 존재했던 '공의 사상'을 발전시켜 체계화했다. 나가르주나가 취합한 공의 사상을 바탕으로 《반야심경>이 만들어졌다. 한자식 이름은 용수(龍樹)이다.

1장에서는 유럽에서 발전한 '서양 철학'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철학적인 활동이 서양에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인도나 이슬람 제국,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에서도 각각의 철학이 발전해 왔다. 이 column에서는 '동양 철학'에 대해 소개한다.


무엇이든 변하지 없는 것은 없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불교가 널리 신봉되었다. 현재 불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지만, '공(空)의 사상이라는 기본 사상이 종파를 불문하고 불교 전반에서 공통된다.

공의 사상은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철학 사상의 하나로 꼽힌다.

현대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경전 《반야심경 (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에는 이러한 공의 사상이 300자 미만의 한자로 적혀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각종 시공(色卽是空)은 공의 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유명한 말이다.

'색'이란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이나 현장을 의미한다. ‘공’이란 '비어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색즉시공(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색이 바로 공)이란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비어 있다'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공'은 '모든 사물은 어떤 원인(인연)에 의해 지금 그 모습을 하고 있을 뿐, 불변의 실체는 애초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눈앞의 물체나 자신의 육체, 인생의 고락 모두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비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용수(龍樹, Ngrjuna, 150~250)가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이래 용수의 제자 제바(提婆)를 비롯해 공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을 공론자(空論者, nyavdin)라고 하고, 그들의 사상을 공론(空論, nyavda)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3~4세기 경에 용수의 중론(中論)을 의지해 공사상을 연구하는 그룹으로 자신들을 중관학파(中觀學派, madhyamaka)혹은 공성론자(空性論者, nyatvdin)라고 칭합니다. 이 중관학파는 중도(中道)를 논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범어 madhyamaka는 중을 의미하는 madhyama에 ka나 ika를 붙여 전자는 학파를 의미하고 후자는 그 학파를 따르는 학자를 의미하지만, 둘 다 ‘中에 관한’ ‘中을 말하는’ 것으로 중도사상이나 중도를 연구하는 사상가를 뜻합니다. 용수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많으나 신빙성이 높은 것은 없고, 용수와 가장 근접한 시기에 생존한 구마라집(鳩摩羅什, Kmarajva)의 ‘용수보살전’이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편입니다. 용수는 남인도 출신으로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 어릴 때부터 베다성전을 비롯한 바라문교학에 정통했습니다. 용수는 자신의 몸을 숨기는 은신술을 친구들과 함께 배워 왕궁의 궁녀들을 임신하게 하였습니다. 왕은 군사들에게 모래를 뿌리게 하여 모래 위의 발자국을 보고 병사들에 의해 3명의 친구들은 목숨을 잃었으나 용수는 왕 옆에 몸을 숨겨 죽음을 면했습니다.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용수는 욕정이 고통의 원인임을 깨달고, 만약 살아 궁중을 빠져 나가면 출가하리라 결심했습니다. 살아 도망친 용수는 산 위의 불탑에 가서 계율을 받고 90일 동안 머물면서 소승불전에 정통한 후 대승을 배워 만심에 차 있었습니다. 이런 용수를 마하나가(Mahnga, 大龍)보살이 용궁으로 인도하여 보물창고에서 대승경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용수는 그곳에서 90일 동안 공부하여 심오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가르주나라는 그의 이름은 용수의 모친이 아르주나 나무아래서 그를 낳았다는 것과 나가(용)의 인도로 도를 이루었다는 것에 근거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용수에 귀결되는 저술 중 신뢰도가 높은 것은 8종이 되지만,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이자 중관학을 성립시킨 것은 〈중론〉(中論, Madhyamkakrik)입니다. 이 저술은 27품 450여 게송으로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용수는 반야경의 공사상을 초기불교의 연기설과 같은 위치에서 이론적으로 정립하여 공이 연기임과 세속제(世俗諦)와 승의제(勝義諦)인 이제(二諦)로서 열반을 핵심사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용수는 연기하는 것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공이며 고정불변의 자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자성이므로 연기==무자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고정불변의 자성의 개념은 중생의 망상인 희론(戱論, prapanca)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용수의 학설을 계승한 인물은 남인도 출신의 제바입니다. 그는 바라문교와 상키야 바이세시카학파와 같은 인도의 육파철학(六派哲學)과 논쟁을 통해 잘못된 견해를 공사상으로 타파하는 것에 열중했습니다. 그의 주요 저술로는 〈백론〉(百論, ataka)과 〈사백론〉(四百論, Catustaka) 등이 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불교〉 저자[불교신문 2154호/ 8월17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반야심경>

 

쉽게 해석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삶의 현실과 마주하며 늘 고통으로 지쳐있는 그대여, 삶의 의미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그대여, 이제 그대의 마음이 자유로움으로 향할 수 있도록 그대에게 진리를 전한다.

그대여,

그대 자신의 <본래성품>을 알게 되면, 깨어남에 이르러 대자유로 향하게 된다. 이를 위하여 마음에 깊이 또 깊이 간직하여야 하는 진리들이 있다.

그대여,

그대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모든 대상과 실체들이 공(空)하여 허망함을 깊이 바로 알면,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어남에 이르게 된다.

존재하는 일체의 형상, 즉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다. 이와는 반대로 공(空) 또한 형상으로 실존한다고 여겨지는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은 공이며 공은 곧 색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형상과 보이지 않는 실체가 같으니, 그대의 <몸·생각·마음·감정·의식>도 이와 같다.

그대여,

그대의 의지와 관계없이 늘 끊임없이 올라오는 생각으로 고통스럽지 않았던가? 그토록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 해도 늘 그 사념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았던가? 대체 그 생각은 어디에서 올라오고 어디로 사라지는가? 생각의 근원은 무엇인가?

수없이 많은 고통과 즐거움을 주었던 그대의 생각들은 '지금 이 순간' 어떠한가? 아직도 그 고통과 즐거움은 如如한가? 그 <생각·마음·감정·의식>을 그대의 의지로 제어할 수 있었던가?

그대여,

그대는 진정 생각이 일어나는 그 근본과 이치를 알고 있는가? 그대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올라오는 그 '생각'은, 인연으로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 생각은 그대의 지난 세월의 일체의 경험과 습관들로 인하여, 그대가 분별하기 이전에 부지불식간 그대의 무의식 속에서 올라온다.

그대여,

그대의 생각과 마음은 인연이 닿으면 올라오니, 스스로 그 생각을 막거나 누르거나 없애지 못한다. 늘 생성되는 밀물과 썰물은 막을 수 없고, 인연 따라 내리는 눈과 비를 막을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대여,

그대의 오래된 '習'의 진정한 실체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번 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을 살아왔다면 그 '習'의 깊이를 어찌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 단 1년, 단 하루의 習도 어찌하지 못하거늘.

그대여,

그대의 삶에 나타나는 일체의 현상들은,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 그대가 아무리 애써 지키고 간직하려 해도 결국은 모두 지나가며 그토록 집착하고 서원하던 모든 것 또한 스치듯 허망하게 사라진다. 그러므로 일체의 현상들에는, 근본적인 <실체나 주체가 없다>라고 하는 이유이다.

그대여,

그러므로 그대의 <생각·마음·감정·의식>과 형상들은 모두 공(空)이고 무아(無我)이다. <공> 또는 <무아>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이라 함은, 그대의 의지와 뜻과는 상관없이,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체의 본질이 공하다는 의미이며, 나아가 공(空)은 그 본질이 허망하므로 뚜렷한 자신의 주체적인 행위가 없으므로 실체가 없음을 뜻한다.

그대여,

영원하지 않은 것과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이 다하면 소멸하는 그 허망한 것을 무엇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겠는가? 그대의 몸과 생각·마음·감정·의식을 포함한 모든 형상 있는 것과 형상 없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소멸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표현해야 올바른 말과 글이라 하겠는가? 이러한 사실들을 가리켜 공(空)과 <무아無我>라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그대여,

이와 같이 색(色)과 공(空)이 같다면, 근본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운 것이나 더럽지 않은 것도 없고, 늘거나 줄어드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늙거나 죽음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길도 없으며, 깨달음을 구하거나 얻음도 없다 할 것이다. 이렇듯 모두가 공하다는 실체로써 깊이 들여다보면, 그대의 <몸·생각·마음·감정·의식>도 모두 공하고 일체 현상들도 공하다.

그대여,

이러한 사실을 알거나 모른다고 해서 그대의 근본이 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의 본래성품인 <참나*>는 모두를 알고 모두를 인식하고 있는 고요한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쉼 없이 나아가 그대의 <참나>를 알게 되면 이 말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대가 깨어남의 '길'을 가고자 굳은 발심을 하여 체험과 지혜로 나아가면, 문득 그대의 마음이 일체이며 온 우주 또한 그대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리라.

그대여,

그러나 애써 나아가거나 또는 지나치게 과도한 수행으로써 찾으려 한다면, 끝내 그 '길'에 서 있지 못하리라. 나아가되 나아간다는 집착 없이, 싫어하거나 좋아한다는 憎愛心 없이, 경험하고 체험하되 한쪽에 치우치는 마음 없이 이 '길'을 如如히 나아가면, 어느덧 이 '길'의 끝자락에 의연히 서있는 그대를 바라보게 되리라.

그대여,

처음 설법한 <초전법륜경>에, 『나는 양 극단을 떠난 <중도>로써 깨어났으며, 혜안과 지혜와 고요함으로 나아가 이내 대자유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이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의 경계 없이, 하되 함이 없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마음으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로써 의연히 이 '길'을 가는 것이다. 이후 어떠한 경계에도 마음에 걸림이 없어져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며, 그대가 그토록 서원하던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난 대자유로 향하게 되리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니 그 주문은 이러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2021. 09. 20 해석보정 - <길 없는 길>


공의 사상을 300자 미만의 한자로 나타낸 경전이다. 《반야심경》을 베끼는 ‘사경(寫經)'도 널리 이루어지고 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도리를 밝힌 핵심이 되는 경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님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춰보시고 모든 고액을 건넜느니라.)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여! 물질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물질과 다르지 않으니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며, 수상행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여! 이 모든 법(물질)의 공한 모양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이러한 까닭에 공에는 물질이 없고, 수상행식도 없으며, 안이비설신의가 없어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안계 내지 의식계까지 없고,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 다함도 없고 내지 늙고 죽음도 없고)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으며, 고집멸도도 없고,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느니라.)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密多故 心無佳碍
(얻음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마음 걸림이 없고,)

무가애고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無佳碍故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어 헛된 생각에서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 다라삼먁삼보리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故 得阿辱 多羅三邈三菩提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고로 알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로운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 般若波羅密多呪
(견줄 데 없는 주문이니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느니라.
고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노니)

즉설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卽說呪曰 "偈諦 偈諦 波羅偈諦 波羅僧偈諦 菩提 娑婆訶"
(주문은 이러하니라. "건너가자 건너가자 넘어서 건너가자 모든 것을 넘어서 건너가자
그 곳에 공의 깨달음이 있느니라".)

 

Who's 무구 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