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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유일신 야훼(여호와) / 김기흥

유일신 야훼(여호와) / 김기흥

 

책머리에

 

1. 『구약성경』 - 역사를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신앙의 책

 

2.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와 무관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1) 『구약성경』의 출애굽 사건은 사실인가?

2) 출애굽 사건의 진실과 원이스라엘의 형성

 

3. 원이스라엘에 들어온 야훼, 민족신이 되어 가다.

1) 야훼 신의 등장과 그 실체

2) 야훼 신앙의 정착 과정 - 엘로힘의 단계

3) 실로 ‘야훼의 집’의 등장과 민족신으로의 정립

 

4. 다윗과 솔로몬왕, 예루살렘에서 야훼를 왕국의 신으로 모시다.

1) 야훼의 언약궤를 찾아온 다윗, 성전 건축은 미루다

2) 솔로몬왕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시온신학, 왕정신학의 성립

 

5. 남북 왕국 시대 야훼 신앙에 닥쳐온 도전들

1) 왕국 분열(BC 928)과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왕의 황금송아지상 숭배

2) 북이스라엘 아합왕대(BC 871~852)에 벌어진 야훼와 바알의 대립

3) 사회 국가적 위기 도래와 예언자들이 선포한 정의의 신 야훼(BC 8세기 후반)

4) 남유다 아하스왕(BC 733~727)의 무능한 신 야훼에 대한 회의와 불신

 

6. 제국 침략에 대한 유다왕국의 자주 구국적 개혁과 야훼 유일신 신앙 정책

1) 히스기야왕(BC 727~698)의 자주적·보수적 종교 개혁

2) 므낫세왕(BC 698~642)의 타협적 종교 정책

3) 요시야왕대(BC 639~609)의 「신명기」적 개혁과 유일신 신앙의 대내적 확립

 

7. 바벨론 유수와 해방(BC 538)의 역사를 통해 도달한 우주적 유일신 신앙

1) 두려움과 절망, 분노의 대상 바벨론

2) 에스겔의 환상 속 공중에 펼쳐진 야훼의 영광

3) 야훼 위주의 민족 해방 역사 해석으로 발견된 우주적 창조주 유일신 개념

 

결론 :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야훼의 실체

 

보론 : 위기에 처한 현대 그리스도교와 신

1) 야훼 하나님에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2) 표류 중인 그리스도교와 신의 장래

 

유일신 야훼 -역사와 그의 실체

 

| 책머리에 |

신은 있다고 한다. 없다고도 하며, 죽었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그저 신이 있다고 믿었을 뿐이라고도 한다.

알 수 없는 (그)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현대 서구 과학자들의 대다수가 무신론으로 기울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신을 스스로 존재하는 불변의 실재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물론 대중들 가운데도 신에 무관심한 이들이 적지 않으며, 지나치게 열정적인 신앙인들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하다고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세계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이들이 여전히 신앙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 유일신 야훼(야웨 혹은 여호와)와 연관된 종교들로 인한 논란과 분쟁도 적지 않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 형성 과정에서 성립된 야훼 신앙은, 남북 왕국의 멸망 이후 민족 대고난의 역사를 겪으며 유대교로 자리잡아 갔고, 다시 그 안에서 갈릴리 예수의 개방적이고 종말론적인 개혁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탄생시키고 나아가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의 연원이 되었다. 결국 이들 소위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두고 있으니, 실로 야훼 신은 가장 영향력이 큰 유일신으로 숭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세 종교는 신의 성격이나 신앙 양태에 상당한 거리감이 있고 근대 이후 서구 그리스도교 신앙은 크게 쇠퇴하는 듯 보이지만 흔히 '신'으로 통칭되는 이 존재의 위세가 갑자기 소멸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근대화,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는 크게 성장했다. 약자를 사랑하고 복 주기를 좋아한다는 인격적인 이들 종교의 신은, 민족 해방과 급속한 경제 발전을 통한 근대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기복적인 성향의 한국인들과 의기투합했다. 이제는 국민의 30퍼센트 가까운 이들이 그 기이한 삼위일체의 하나님(하느님)을 신앙하고 있다. 이들 종교는 수입된 서양 종교를 넘어 사회·문화·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장 대표적 종교로 자리했다. 한국 역사를 전공한 필자가 야훼 신의 문제를 깊이 알아보고자 나선 이유도 이렇게 변화한 한국사회의 종교적 현실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처한 현실과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예배당은 크고 화려해졌지만 젊은이들은 교회를 다소 비이성적 집단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편이며 교인의 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대다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도 위기감은 느끼고 있으나 당장의 평안에 머물며 교회 개혁에 적극 나서지 않는 중에, 상당수의 비판적 지식인, 교양인 신자들은 보수적인 교회에 대해 회의하며 교회를 벗어난 신앙방식을 모색하기도 한다. 다소 의도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도 신자임을 자임하는 소위 '가나안 성도의 급증도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급속하고 과도한 성장의 결과로 교회와 신도들의 소유가 크게 증대되고 기득권화하면서 교회가 인맥 형성을 위한 사교의 장으로 더욱 중요성을 띠기도 하고, 신화적, 기복적 신학을 여전히 선포하며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부자간에 세습하고 교회 공동 재산을 사유화하려는 퇴행적 시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며, 이 고달픈 사회에서 적자생존,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체제를 앞장서 옹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가 외쳐온 자기 비움과 약자에 대한 희생적 사랑을 통해 자신은 물론 사회의 구원 실현이란 목표와 오히려 대립하는 처지에 서게 되었다. 이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논란이 적지 않고, 일반 사회도 세속화된 이 고루한 거대 조직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더구나 다른 종교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낮게 보며 자신들의 신만을 참 신이라 주장하는 유일신 신앙을 여전히 고수하려 하고, 자신들도 그대로 지키지 않는 먼 고대에 저술된 『성경』 내용이 전혀 오류가 없는 진리라 고집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 속에 『성경』이 전하는 창조 신화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창조주로서의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크게 회의되고 있다. 아울러 과학 만능의 사유 속에 이 종교의 역사적, 현실적 과오에도 주목하는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 등의 저서가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어 그리스도교의 허물과 약점을 집중 공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첨단 과학과 인터넷 세상을 통해 과거의 어떤 신보다 빠르고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하는 소위 '데이터교'의 출현은 기존의 신이나 제도적 종교의 필요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대표적 종교가 된 그리스도교와 이 시대의 괴리와 불화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동성애나 낙태 문제 등은 물론, 사회적 분배의 확대 등 정치·경제·문화적 이슈 등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비교적 유연하고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으나, 그들을 대표하는 기득권 지도층이 주도하는 대다수 교회들은 보다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 교회는 시대의 과학적, 진보적 흐름과 충돌하고 있으며 나아가 해묵은 이념 대립으로 치달아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이나 통일 문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 사회적 분란의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각자들의 염려와 노력이 있어왔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교회는 시대적 전환에 따른 신학적 대안 마련이나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존재감이 크게 약화된 신과 함께 표류하고 있다. 대다수 지성인들도 이러한 점을 그저 한 종교와 연관된 별도의 상황으로 방관하는 편이다. 사회 구성원의 지지를 통해 존속되는 종교 중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사회와 부조화를 이루고,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며 소외된 조직으로 변질되어 가는 현실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급속하게 노령 사회로 진전되어 활력과 비전을 잃어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안녕이나 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세계적 추세이고 한국사회 전반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제도적 종교의 쇠퇴 현상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삶의 확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종교는 비이성적 과오들을 적지 않게 저질러 왔음에도 인간다운 삶과 진리와 구원에 이를 최상의 삶의 가치들을 모색해 제시해 왔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아직은 인간의 삶을 자신 있게 주도해 인류구원의 전망을 제시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 과학 등만을 바라보고 종교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종교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는 과학은 근대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인간이 해방되는 길로 인도하기도 했지만, 대대적인 인명 살상을 가져온 1, 2차 세계 대전과 그 후 여러 처참한 지역 전쟁 유발에 일조했으며, 인류 필멸을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들을 불완전한 인간들의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다. 아울러 과학과 더불어 진전된 산업화가 가져온 대량의 공해 물질은 기후 변화와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와 인류 생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과학 덕분에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나, 문명사회들에서는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우울증 환자가 격증해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는 이들도 많다. 아울러 생산성의 향상을 결코 멈출 수 없는 자본주의 기업들이 주도할, 각종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고효율과 편리란 은총과 함께 동반할 인간 소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심각하게 펼쳐질지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부 무신론자들의 확신과 달리, 이처럼 불안한 면이 있고 탐구의 여지가 많아 보이는 과학에 의지하여 지금껏 인간들의 삶에서 전통적 가치관의 중심에 있어온 신이 불필요하다고 확언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과학적 지성으로 보면 신앙은 유치한 신화적 상상과 관념의 산물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기계라고 할 수도 있는 생명체 중 의식을 비롯해 창의적이고 체계적인 지성을 가진 인간만이 누려온 비약적 차원이자 문화의 요소로서, 오랜 세월 인간의 삶과 역사와 함께하며 모든 분야에 흡수·융합되어 있어 완전한 분리나 극복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더구나 과학과 종교적 진리간의 괴리와 모순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들에게 흔들리는 신을 대신해 제시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종교로 인해 필요 이상의 억압을 받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과학이나 경제의 발전이 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그것에서 찾고 행복해하며, 정신적으로 위로를 얻고, 물질적으로도 혜택을 누리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봉사 단체 다수가 여전히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처참한 테러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종교가 가진 본래의 속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경제, 민족, 문화, 역사, 심리적 갈등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대의 종교계는 과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던 것처럼 특정 신만 배타적으로 신앙할 것을 주장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인류가 오래 전부터 찾아온 여러 궁극적 실재들-신, 브라만, 아트만, 열반, 도 등과 진화론이나 빅뱅이론 등 과학적 성취를 포용성 있게 받아들이며 인간의 참된 해방과 구원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정도에 이르기도 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는 물론 한국사회에서도 가장 중요한 종교로 자리하고 있으나 비난의 표적이 되었으며 시대 앞에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쇠퇴 징후를 보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고대 이스라엘 야훼 신의 실체를,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수긍할 만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역사학적 논리로 탐구하고 서술하려고 했다. 여전히 많은 추종자들이 확신하는 것과 같이 야훼 신이 과연 자존하고 살아 역사하는 전능 불변의 유일한 객관적 실재인지, 아니면 고대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숭배된 상상 속의 관념적 실재에 불과한지를 구약성경』등을 중심으로 역사학적으로 검토했다.

사실 이 주제는 참된 신의 존재 문제와도 연관된 것으로, 약 3천 년간 진실을 추구하던 많은 인간들, 특히 『성경』에 보이는 Job은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상당수도 매우 궁금해했으나 드러내 언급하기에 부담스러워하던, 근본적이며 너무나 큰 질문이었다. 한 고대 약소민족에 의해 지나치게 포장된 신의 절대적 위세 앞에 그에 대한 진실 탐구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신의 배타적 유일성 인식이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일부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신이 어떠한 실재인지 역사적 연구를 통해 확인해 보려는 것은 먼저 필자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도 연관된 이 오랜 궁금증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보다 분명히 밝혀보고 싶어서이다. 아울러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큰 비중을 지닌 채 격심한 시대 변동에 표류 중인 이 종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는, 전통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 일반이 그 신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초가 되리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야훼 신앙의 연원이나 발달 과정은 국내외 구약학이나 신학 그리고 종교사학 분야 학자들을 통해 매우 심도 있게 연구되었다. 그런데 그들 연구 결과물의 대부분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우호적이고 관념적인 면이 적지 않으며 전문 분야 밖의 사람들, 그리고 이스라엘이나 서구 세계와는 너무 다른 역사적 풍토에서 살아온 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수긍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실정이다.

이 분야의 기존 연구자 대다수는 이스라엘의 야훼 신에 그리스 철학의 일자 개념이 융합되어 보강된 삼위일체의 신(하나님)을 유일신으로 2천년 가까이 섬겨온 서구의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앙에 서 있거나 그 영향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그리스도교의 하나님(하느님)이 곧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교회의 전통과 막강한 권위를 의식해 연구 결과를 자유롭게 일반 사회에 소개하는 데 주저하는 이들도 있다. 창조주이자 역사를 주관한다는 계시의 신 하나님이라는, 오랜 세월 지지받아 온 절대적 존재의 권위는 알게 모르게 연구자들의 사유의 자유를 제어해 그 신을 옹호하는 논리로 흐르게 하며, 객관적이고 새로운 견해 산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런데 종교는 신비적 사건을 통해 얻게 된 권위를 기반으로 하지만, 역사학자로서 볼 때 『성경』의 신화적, 신앙적 자료들이 말하는 특정 신의 의지적 계시를 통한 역사의 주도를 적당히 타협적으로 인정하고서는 종교사를 포함한 인간이 살아낸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당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추종자들만 지지하는 신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면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인간들의 역사로 구성해 낼 수는 없다.

성경은 자연과 인간사의 알 수 없는 인과관계를 흔히 신의 작용으로 보았던 당대의 사유 방식에 따라 6일 만에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고, 홍해를 갈라 수많은 사람들을 건너게 하고, 십여만 적군을 신의 사자가 하룻밤 사이에 죽였다는 등, 야훼 신이 주도적으로 베푼 놀라운 기적과 신비가 흔히 일어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인간들의 절실한 애원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홀로코스트나 세월호 침몰 참사(2014)는 물론, 약 32만 명이 죽은 아이티 대지진(2010) 등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자연 재앙에도 죽은 듯 침묵한 신이, 전능하고 사랑 그 자체라는 위대한 신이, 고대사회에서만 특별히 인간사에 애정을 갖고 기적을 베풀었을 리는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시편 14:1 개역한글 성경』)했는데, 어리석기보다는 어쩌면 과학자로서의 자질을 가졌던 그들은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현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며 살아있다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했던 것이다. 진실하고 곧은 성품을 가졌다고(「욥기1:1) 알려진 욥 같은 인물들도 납득할만한 이유 없이 고통을 주는 신에 대해 회의했던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성경』이 전하는 종교적 신비나 기적의 대부분은 심층적인자료 비판과 다양한 분석을 통해 신의 역사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인간들의 역사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옛 이스라엘 민족은 결코 자랑일수 없는, 대 시련 속에 망국(BC586)과 그리고 바벨론 유수에서 본토로의 귀환(BC 538)[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귀환할 때 6일이면 올 거리를 40년 동안 광야를 헤맨 것은 합리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맞지 않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시절을 페르시아나 로마 등 제국들의 종속 민족으로 살다 끝내 예루살렘 성전의 소실(AD 70)과 함께 대 이산의 비극을 맞았다. 이렇게 엄연한 비극적,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전쟁에 뛰어나고 전능하다는 야훼 신의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현현이나 계시나 역사의 주도라는 것이 과연 어떤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엘리트나 그 추종자들의 아전인수식 내부용 신앙 변증 논리를 벗어나 냉철하고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구약성경』은, 기원전 7세기말 유다 요시야왕대에 민족과 국가의 중흥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야심차게 추진된 야훼 유일신 신앙운동 이후, 열렬한 유일신 신앙의 엘리트들에 의해 그 이념을 상고사에까지 소급 반영해 뼈대가 재구성되고 내용이 수차례에 걸쳐 편집되며 변형된 신앙 우선의 책이다.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한 약소민족 고대 이스라엘인의 역사와 신앙의 여정에 성원의 마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들이 절실한 역사적 상황에서 전능한 신을 끌어들여 그려낸, 판타지가 다수 포함된 전승들을 온통 사실로 믿고 지지할 수는 없다. 만약 교회의 설교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대로 전통 그리스도교의 신앙심에 따라서 그 모든 신비와 기적을 성경』의 문자대로 지지하고 본다면, 자신이 선택해 자기를 신앙하도록 한 민족의 멸망을 막지 못해 제국들의 종이 되게 만들고도 오히려 철저한 숭배를 요구하는 전능을 주장하나 무능하고 염치없는 창조주라는 기이한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 역사의 엄중함을 신뢰하고 진리는 불편한 역사적 진실조차 반긴다고 여기는 역사학자로서 필자는 유일신 야훼 신앙의 역사성과 그 현대적 의미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성경』과 기존 연구들을 활용하되 보다 자유롭고 비판적이며 객관적인 탐구가 절실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공은 야훼 유일신 신앙의 엘리트들이 지은 『성경』이 말하는, 다른 신들을 용납 못하고 심한 질투도 마지않으며 인간에게 늘 연민을 갖고 있다는 파토스 pathos의 야훼 신이 아니라, 힘든 세월을 살아내며 역사적 실패의 책임을 (그 신으로부터 늘 추궁당하며) 감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진실의 확인에서부터 출발했다.

『성경』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무한 전능하고 우호적인 자신들의 민족신에 대해 유독 배은망덕하고 불충해 숱한 실수와 갈등을 야기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민수기14:11, 「예레미야」2:9 등). 그 책의 저자들은 약소민족 이스라엘이 이방 강국들의 침략으로 당했던 패배를 그 민족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으려고 그처럼 불충한 이스라엘인상을 각색했던 것이다. 사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주변 팔레스타인의 여러 민족들처럼 민족신인 야훼 신을 주신으로 섬기되 농업신인 바알 등 다른 신들도 자연스럽게 섬기며 주위 민족과 별다를 것 없이 목축을 겸한 농경민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민족 국가 멸망의 위기 속에 국가 발전을 위한 정치적 의도에 따라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민족신 야훼만을 유일하게 섬기고자 하는 종교상의 대 개혁정책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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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 J. 헤셸 지음, 이현주 옮김, 예언자들, 삼인, 2015, 375-379쪽

 

결국 필자는 신보다는 인간의 역사에 주목함으로써, 전통 그리스도교 신앙적인 '계시의 신'이나 그에 반해 신을 '만들어진 망상'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발견해 간 (그래서 계시의 신처럼 보이기도 했던), '발견된 신'이라는 역사학적 관점에서 야훼 신이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떠한 존재였는지 확인해 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엘 신과 함께 한 여러 신들, 곧 엘로힘 중에 하나였다가 민족신이 되고, 이어 국내적 유일신을 거쳐 마침내 우주적 유일신 개념에 이르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역사를 통해 발견하게 된 '야훼 신'에 대한 인식의 진전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신이 성경이 주장하는 대로 과연 스스로 존재하고 살아 역사하는, 전능하고 유일한 객관적 실재라고 볼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보았다.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과 관련해 구약학이나 신학 그리고 종교사학 등 관련된 분야의 연구들이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은, 신앙적 인식과 신에 대한 관념적 타성에서 온전히 탈피하지 못해 객관적 설득력에 한계를 보이는 기존 대다수 신학기반의 연구들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필자는 이 분야 연구자 중에서는 극히 소수라고 할 수 있는 고대사학자, 그것도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로서 서구 신학 중심의 연구자들과 다른 감각과 방법론, 그리고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적 유일신 신앙 풍토에서 살아 온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물론 최근 서양의 무신론자들에 비해 한국의 연구자는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 다양한 신앙이 공존하는 역사와 풍토 속에서 살아온 만큼 유일신 신앙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유익한 지적 체질을 가지고 있다. 연구자가 지닌 색다른 자질은 매우 소중한 잠재적 가능성인데, 거기에도 기대를 걸며 새로운 인식을 향해 제법 고단하고 외로울 길을 나서 본 것이다.

이 책을 저술하는 작업에는 교회나 서구 중심의 기존 연구나 그 풍토로부터의 자유로움 이외에도 필자가 이미 40년 이상 몸담아온 세계적 연구 수준에 있는 한국 역사학의 저력이나, 사회경제사와 신화, 그리고 종교사에 대한 꾸준한 학문적 관심과 탐구의 여정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아울러 소년 시절부터 꾸준히 여러 번 (20회 내외) 읽은 『성경』과 다년간 공들인 전작 『역사적 예수』(창비, 2016)의 저술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바탕에서, 야훼 신의 실체와 나아가 이스라엘 고대사에 대해 신앙고백 수준의 기존의 이해를 벗어나 보다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진실을 알기 원하는 이들이나, 시대의 대변동에 따른 종교적 위기 속에서 퇴색한 신을 붙잡고 표류 중인 그리스도교인은 물론, 추락하는 신의 모습을 호기심이나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반인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사실에 기초한 연구 성과들에 역사학적 방법론에 의한 엄정하며 독창적인 해석을 가미해 새롭고 현실적인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로 구성했다. 따라서 보다 객관적이며 넓고 자유로운 시각과 역사의 흐름에 따라 쉽게 서술된 이 책을 읽으면 야훼 신의 실체와 그 종교의 발달사에 대해 합리적이면서도 전혀 다른 이해가 가능함은 물론이며, 신학을 기반으로 한 국내외 학자들의 저술들에 보이기도 하는 이스라엘 고대사에 대한 관념적이고 신앙적인 인식의 한계를 크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저술 의도의 저변에는 그 많은 신학자와 사제와 목회자 그리고 신학도들도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 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유일신을 첨단과학의 시대인 현대와 미래에도 여전히 신앙할 만한 것인지, 나아가 표류중인 기성 종교의 전망은 어떠하고 장차 어떠한 신을 찾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역사를 넘어 존재할지도 모를 참 신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모색이 자리하고 있다. 미흡한 수준이지만 그것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견해는 이 책의 끝에 실은 보론에 피력했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의식은 전작 『역사적 예수』를 통해서도 이미 추구해 본 바 있음도 말씀드리고 싶다.

공부의 외연을 확장하고 실력을 기르기에 제법 힘들었던 상당한 세월을 격려해 주고 양해하며 함께 해온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와 동료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대학교수로서 연구자의 삶을 살다가 이제 정년에 이르러 또 하나의 결실을 거두게 된 필자 자신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저술의 의도를 알아주고 책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도서출판 삼인에도 감사를 드린다.

2019년 3월 김기흥

 

문제의 요약

 

야훼 신앙

 

결국 이들 소위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두고 있으니, 실로

야훼 신은 가장 영향력이 큰 유일신으로 숭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그리스도교가 처한 현실과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예배당은 크고 화려해졌지만 젊은이들은 교회를 다소 비이성적 집단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편이며 교인의 고령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과학적 지성으로 보면 신앙은 유치한 신화적 상상과 관념의 산물에 불과해 보일 수도 있다.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 속에 성경이 전하는 창조 신화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창조주로서의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크게 회의되고 있다. 아울러 과학 만능의 사유 속에 이 종교의 역사적, 현실적 과오에도 주목하는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 등의 저서가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어 그리스도교의 허물과 약점을 집중 공격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첨단 과학과 인터넷 세상을 통해 과거의 어떤 신보다 빠르고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하는 소위 '데이터교'의 출현은 기존의 신이나 제도적 종교의 필요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


신의 배타적 유일성 인식이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일부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신이 어떠한 실재인지 역사적 연구를 통해 확인해 보려는 것은 먼저 필자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도 연관된 이 오랜 궁금증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보다 분명히 밝혀보고 싶어서이다.

 

성경은 자연과 인간사의 알 수 없는 인과관계를 흔히 신의 작용으로 보았던 당대의 사유 방식에 따라 6일 만에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고, 홍해를 갈라 수많은 사람들을 건너게 하고, 십여만 적군을 신의 사자가 하룻밤 사이에 죽였다는 등, 야훼 신이 주도적으로 베푼 놀라운 기적과 신비가 흔히 일어난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귀환할 때 6일이면 올 거리를 40년 동안 광야를 헤맨 것은 합리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맞지 않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시절을 페르시아나 로마 등 제국들의 종속 민족으로 살다 끝내 예루살렘 성전의 소실(AD 70)과 함께 대 이산의 비극을 맞았다. 이렇게 엄연한 비극적,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전쟁에 뛰어나고 전능하다는 야훼 신의 신비롭고 영광스러운 현현이나 계시나 역사의 주도라는 것이 과연 어떤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엘리트나 그 추종자들의 아전인수식 내부용 신앙 변증 논리를 벗어나 냉철하고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신보다는 인간의 역사에 주목함으로써, 전통 그리스도교 신앙적인 '계시의 신'이나 그에 반해 신을 '만들어진 망상'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인간이 역사를 통해 발견해 간 (그래서 계시의 신처럼 보이기도 했던), '발견된 신'이라는 역사학적 관점에서 야훼 신이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떠한 존재였는지 확인해 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엘 신과 함께 한 여러 신들, 곧 엘로힘 중에 하나였다가 민족신이 되고, 이어 국내적 유일신을 거쳐 마침내 우주적 유일신 개념에 이르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역사를 통해 발견하게 된 '야훼 신'에 대한 인식의 진전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신이 성경이 주장하는 대로 과연 스스로 존재하고 살아 역사하는, 전능하고 유일한 객관적 실재라고 볼 수 있는지를 점검해 보았다.

 

그리스도교적 유일신 신앙 풍토에서 살아 온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물론 최근 서양의 무신론자들에 비해 한국의 연구자는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 다양한 신앙이 공존하는 역사와 풍토 속에서 살아온 만큼 유일신 신앙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유익한 지적 체질을 가지고 있다. 연구자가 지닌 색다른 자질은 매우 소중한 잠재적 가능성인데, 거기에도 기대를 걸며 새로운 인식을 향해 제법 고단하고 외로울 길을 나서 본 것이다.

 

역사적 예수(창비, 2016)의 저술 경험

 

물론 이러한 저술 의도의 저변에는 그 많은 신학자와 사제와 목회자 그리고 신학도들도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 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유일신을 첨단과학의 시대인 현대와 미래에도 여전히 신앙할 만한 것인지, 나아가 표류중인 기성 종교의 전망은 어떠하고 장차 어떠한 신을 찾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역사를 넘어 존재할지도 모를 참 신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모색이 자리하고 있다.


 

김기흥 (지은이)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 대학교의 박물관장 교무처장 문과대학장을 역임하였다. 한국 고대 사회경제사와 설화 및 문화사 연구에서 독창적인 성과를 내왔다. 문명사, 세계 고대사 전반에까지 관심을 확장하여,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한국사회에서도 그 비중이 크게 증대하였으나 노쇠 징후를 보이고 있는 그리스도교 종교사의 핵심 주제인 ‘역사적 예수’를 연구한 바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삼국 및 통일신라 세제의 연구』, 『새롭게 쓴 한국고대사』, 『천년의 왕국 신라』, 『고구려 건국사』, 『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공저), 『역사적 예수』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유일신 야훼>,<역사적 예수>,<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 … 총 10종 (모두보기)

 

강단의 정통사학자가 실증적으로 추적하고 탐문한 유일신 야훼의 역사적 실체

1980년대 부족동맹과 군주국 이스라엘에 관한 연구가 폭발적인 붐을 일으켰다. 양도 양이거니와 질적인 측면에서도 연구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주목할 만한 것들이 잇따랐다. 고전가설들의 시대는 지났다.

문제는 그로부터 거의 4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의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이러한 수정가설들에 기초한 신앙의 재구성 작업에 본격 착수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신학대학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의 경우는 예상하듯 훨씬 더 낡은 논의 틀에 갇혀 있다. 더욱 문제는 평신도들이나 비신도들 가운데 이런 최신 논의들을 접한 이들이 적잖다는 점이다. 고급의 지식이 학자들의 골방에서 나와서 속속 지식의 대중적 공론장으로 나오고 있다. 이제 신에 대한 탐구나 신학적 쇄신의 무대는 교회나 신학대학이 아니라 대중적 공론장이 되고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고대사 전문가인 저자는 성서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고대사에 관한 최신 가설들을 섭렵하고 있다. 이 최신의 논의들이 전통적 신학에 도전하는 가장 파괴력 있는 주제가 야훼 신에 관한 것인데, 이 책은 바로 그것으로 신학의 공론장에 쑥 파고들어왔다.

김진호(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야훼 신은 물론 유대교의 신이다. 그러나 현재 하느님 혹은 하나님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야훼 신앙의 뿌리와 그 발전과정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스도교를 깊이 이해하는 데 거쳐야 할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냉철한 역사적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역사학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일반인이든 세계 종교 중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의 핵심 사상의 과거 모습과 미래 변모 가능성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오강남(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

 

책소개

신과 종교의 위기는 그 신 자체와 무관할 수 있을까?

세계 및 한국의 대표적 종교이나 표류중인 기독교 야훼(여호와) 신의 실체를 역사학적으로 철저하게 검증하다.

 

삼인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공히 유일신으로 섬기는 야훼(여호와)의 실체를 실증주의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심도 있게 파헤친 방대한 종교 교양서 『유일신 야훼, 역사와 그의 실체』를 펴냈다. 신에 대하여 변죽만을 울리는 신학이나 사변 철학 차원이 아닌 철저한 아카데미즘과 학자적 태도에 입각해 40여년간 한국고대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 건국대 김기흥 교수가 수많은 관련 논문과 문헌들을 다년간 세밀하게 검토한 후 전작인 『역사적 예수』(창비,2016)에 이어 탈고한 물경 1820매 분량의 책이다.

 

이 책은, 신의 존재 여부 나아가 종교 특히 흔들리고 있는 기독교에 대하여 관심이 있거나 회의 중인 많은 이들을 위한 새로운 모색이며, 여전히 야훼 신을 살아있는 영원불변의 실재라고 주장하고 가르치고 있는 그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과 사제와 목회자 나아가 신학도들에게 던지는 솔직한 학문적 질의인 동시에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무신론자들에 대한 역사학자의 답변이기도 하다.

 

서울의 밤하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풍경은 단연 곳곳에서 빛나는 붉은 십자가일 것이다. 기독교는 세계 3대 종교 중 가장 규모가 크며, 18세기 말 이 나라에 본격 전래된 이후 불과 200여년 남짓한 동안 국민의 넷 중 하나(2015년 통계 한국인 약 27퍼센트)가 신자를 자처할 정도로 그 위세가 맹렬하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여전히 헌신적인 낮은 자세의 신앙을 지키려는 이들이 적지 않으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 기복주의, 타 종교를 향한 무례하고 배타적인 태도, 시대에 맞지 않는 교리와 가치관 등 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는 퇴행의 행태를 보이기도 하며 비신자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조차 회의의 대상이 되었다.

 

경제와 특히 과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일상에서 종교의 존립 근거 자체가 위태로워진 오늘날, 이 책은 표류중인 현대 기독교에 대한 반성적 토대 위에서 그 뿌리가 되는 유일신 신앙 자체를 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역설하고 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기독교 유일신론자들의 입론의 근거 자료인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세밀히 짚어보며, 이 문제를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의 하나님 야훼는 스스로 살아있으며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한 실재일까, 혹은 고대 어느 약소민족의 절박함 속에서 발견되어진 관념적 존재에 불과할까.

 

“이 주제는 참된 신의 존재 문제와도 연관된 것으로, 약 3천 년간 진실을 추구하던 많은 인간들, 특히 『성경』에 보이는 욥(Job)은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상당수도 매우 궁금해 했으나 드러내 언급하기에 부담스러워하던, 근본적이며 너무나 큰 질문이었다. 한 고대 약소민족에 의해 지나치게 포장된 신의 절대적 위세 앞에 그에 대한 진실 탐구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신의 배타적 유일성이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신이 어떠한 실재인지 역사적 연구를 통해 확인해 보려는 것은, 먼저 필자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도 연관된 이 오랜 궁금증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보다 분명히 밝혀보고 싶어서이다. 아울러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큰 비중을 지닌 채 격심한 시대 변동에 표류 중인 이 종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에는, 전통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 일반이 그 신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초가 되리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책머리에」 중)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종교이나 쇠락의 위기를 맞이한 기독교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 종교의 근간이 되는 살아 역사하는 불멸의 창조주로 주장되어왔으나 크게 회의되고 있는 야훼 신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몹시도 중요하다. 그것을 종교인이 아닌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지식인이나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과 상식에 근거해 탐구한 작업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 인간 역사의 엄중함을 신뢰하며 진리를 위해서라면 불편한 역사적 진실조차 반긴다는 저자는, 유일신 야훼 신앙의 역사성과 그 현대적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성경과 기존 연구들을 보다 자유롭고 비판적이며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스라엘 고대사와 그 신의 역사에 대하여 기존 신학 기반의 저서들과는 크게 다른 저자의 설득력 높은 합리적이며 명쾌한 해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구약과 이스라엘 민족사를 통해 본 유일신의 실체

저자는 기독교의 경전이자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담긴 구약성경이 ‘사실(史實)’ 그 자체보다는 ‘신앙심’을 기반으로 구성 기록 편집된 책이라 본다. 신비와 계시의 권위를 존중하는 종교의 특성상 신의 의지가 역사를 주도한다고 기독교 신학자나 신자들은 굳게 믿고 있지만,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역사를 구성하려면 그러한 신화적, 신앙적 태도는 넘어서야 할 장벽이다.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전통적 신앙의 대상인 ‘계시의 신’과 그 반대편의 ‘만들어진 망상’이라는 두 극단적 관점을 넘어,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를 통해 찾아나간 ‘발견된 신’이라는 관점에서 야훼 신을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꼼꼼히 훑으며, 야훼가 팔레스타인 남방에 있었던 일부 유목부족 민들과 함께 원이스라엘 사회에 유입되어 가나안의 기존 최고신인 엘 신과 함께하는 여러 신들 즉 엘로힘 중 하나였다가 민족신으로 정립되는 과정,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신으로서 왕정신학이 확립되는 과정, 왕국 분열과 제국의 침략으로 맞이한 주신(主神)으로서의 위기와 그 극복 과정, 바빌론 유수와 민족 해방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침내 우주적 유일신으로 선포되는 과정을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통찰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고난의 여정을 온몸으로 겪어낸 것은 이스라엘 민족 구성원들이었다. 민족 형성, 국가 성립, 국가 멸망, 그리고 포로 해방의 단계마다 역사한다고 여긴 신을 찾아 그 개념을 발전시킨 이들도 그들이고 그들의 지성들이었다. 야훼 신이 그처럼 역동적으로 그려진 것은 약소민족의 존속과 발전, 그리고 승리를 향한 염원에서 나온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그에 대한 성찰의 결과였다. … 약소민족으로서 자신들의 역량을 실존적으로 파악할수록 그들은 고난과 절망 속에도 이어지고 있는 민족의 역사가 어떤 존재(신)의 도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그래서 그와 함께 가야 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확신은 민족적 위기가 커질수록 증대되어 일개 민족신에서 국내적 유일신을 거쳐 끝내는 이방에서도 역사하는, 만민이 섬길 수 있는 우주적 창조주 유일신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야훼의 실체」 중)

 

치열하고 정밀한 탐구 끝에 결국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밝혀낸다. 그것은 당대 기득권 정치 종교 엘리트들이 지은 『성경』에 묘사된,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고 질투가 심한 파토스(pathos)적 야훼 신이 아니라, 힘든 세월 역사적 실패의 책임을 묵묵히 감당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결국 야훼 신은, 약소민족인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존속과 승리를 위해 각 역사적 단계를 통해 발견하여 그래서 변모해갔던 관념적인 실재였던 것이다. 그 신은 제국들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이나 대 이산을 막아주는 전능하고 살아있는 신이 아니고, 약소민족이 소망한 신답게 오히려 백성들의 불신앙을 탓하며 장래의 가능성만을 변명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관념적인 신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새 시대, 유일신의 변모를 요구하다

그렇다면 고대의 저 먼 나라 약소민족의 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울림이 있는가. 과학과 철학의 발달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이 나온 지 오래고, 흰 수염을 기른 남성의 모습으로 죄와 벌을 마음대로 내렸다 거두는 인격신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도 줄었다. 사회와 문화를 비롯해 모든 것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지쳐간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는 어떻게 그들의 신을 알리고, 삶의 동반자로 소개할 것인가. 저자는 「보론」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구약의 야훼 신앙이 신약의 예수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밝히며, 현재의 기독교가 앞으로 변화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의 일면을 시사하고 있다.

 

“자폐적인 면조차 있던 이스라엘의 민족신 야훼에서 발전해온, 대거 변화한 그리스도교의 신은 강압적 군주도, 대철학자도 아니고 이스라엘만의 구원자도 아닌, 세상 많은 약자들과 늘 함께 하는 영원한 친구였다. 그 신이 왕이나 주인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진 것은 셋이며 하나인 신 안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인간 예수는 자신이 처한 절망 상태를 극복하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처럼 절망에 빠져있던 사회적 약자인 민중들에게 삶의 희망과 비전을 열어주었다. 그는 왕이나 메시아, 종교 조직의 교주가 되지 않으려 했지만 추종자들이 그를 끝내 신으로 보고자 한 것은 그에게 남다른 감화력과 희망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표류 중인 그리스도교와 신의 장래」 중)

 

저자는 구약의 야훼 신앙이 ‘예수’라는 ‘친구’로 새롭게 탈바꿈했다고 말한다. 근래 역사적 예수가 주목받는 것은 위기를 맞은 기독교에 의미 있는 모색이 되며, 예수처럼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자기를 넘어서고 타인을 섬기면 기독교가 삶의 의미, 진리와 구원의 길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신앙과 기복의 대상인 인격신보다 봉사, 정의, 평등, 자유, 진리와 더불어 기독교가 강조해온 약자에 대한 관심, 원수까지 품는 헌신적 사랑, 선한 연대와 같이 역사 속에서 인간이 발견해온 가치가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가치는 기독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공통적 토대이기에 다른 종교나 철학에도 열린 태도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전통적 유일신 신앙이 퇴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 이래 변화를 겪어온 그 신이 이미 새 시대를 위해 변모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 신의 실체와 변화의 가능성을 직시하고, 그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사유하고 논의하는 일이야말로 새 시대가 그 신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절실히 요구하는 변모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마이 리뷰

우리 시대에 또 다른 포이에르바하가 나셨네.

처음에 조금 정독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휙휙 넘겨버렸다. 나도 출애굽과 다윗 솔로몬 왕조의 번성 등 구약의 기술된 여러 사실들을 그대로 믿지는 않으며, 구약성서를 여러 시점에 여러 사람들이 쓰고 편집한 문서로 보고 있지만 저자의 치밀한 논리와 이성에 바탕을 둔 판단들에 숨이 막혀온다. '하나님'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대상은 정말 말 그대로 나와 별개의 '대상'인지, 어떤 구체성을 가진 '존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나라는 생물학적 인간이 그에 대해 말로 할 수 없고 느낌으로 온전히 알 수 없고 지금 내가 말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지만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을 어렴풋이 '안다'고 말할 수 있기에 저자가 신을 단지 일관되게 '관념'이라고 표현(너무 대충 읽었으므로 내가 잘못 파악할 수도 있다)한 것에는 큰 거부감을 느낀다. 리처드 도킨스의 역사학자 버젼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