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철학과 종교 (1). 철학과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철학과 종교 (1)

철학과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셋(Jose Ortega y Gasset)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생적 신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탈출은 실제적이며 지적이고 오로지 이론 창출만을 위해 작동해야 하고, 또 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철학을 한다는 것 자체는 이론적이다.”라고 했다.

 

이는 철학은 주어진 삶 또는 환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러한 환경과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철학과 종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종교의 역할도 주어진 삶을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으로부터 의식적으로 탈출하도록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종교는 합심하여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삶이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신념을 무너뜨리는데 집중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세계와 나에 대한 관념은 그야말로 잘못된 오류이며 무지 그 자체라는 것을 철학과 종교는 분명하게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연적인 삶을 부정하게 하고 거기서부터 탈출시키는 방법론에 있어서 철학과 종교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철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의심하는 행위에 있다. 서양 철학의 기원이 된다고 하는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실제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수립했다. 즉 네가 알고 있고, 믿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근거 없고 편견이고 무지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일이 철학이었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어진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일에 그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종교와 다르게 의심에서 출발한 철학은 끝까지 가장 가치 있고 진정한 삶이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니 철학은 본질적으로 그런 확실한 삶의 진리를 인간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철학은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주관적인 것이며 상대적인 것일 뿐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철학은 불가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인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지를 당당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지혜이다.

 

반면에 종교는 가장 가치 있고 진정한 삶은 바로 이러 저러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데서 출발한다. 기독교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그대로 믿으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한 신의 계시로 주어진 것이라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고 가르친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계시보다는 진리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깨달음을 강조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인간은 우주의 아트만의 한 부분이라는 신비한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고, 아트만은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적 본성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초인적인 그런 특별한 의식만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또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곳에 있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철학의 한계를 훨씬 뛰어 넘고 있다. 즉 철학은 이성과 논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다면, 종교는 이성과 논리의 영역을 넘어서 있는 믿음 또는 절대적 의식을 통해서 진리의 영역을 탐색하고 도달하려 한다.

 

어쨌든 종교가 철학과 다른 점은 주어진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무시하고 벗어나라는 가르치는 출발 지점에서 결코 머물지 않고, 종교는 인간이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이론을 분명하게 제시한다는 점이다. 오르테가는 철학한다는 것 자체는 이론적이라고 했는데, 종교를 갖는다는 것도 동일한 의미에서 분명한 이론을 갖는 것이다. 물론 종교에서 이론이란 용어 대신에 교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말이다.

 

철학사는 다양한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이론들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철학은 확실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철학자들이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세계와 인간에 대해 생각한 이론들을 축적해 놓은 모음들이다. 그런 면에서 철학 이론은 더 완벽한 지혜를 향해 나가는 다양한 과정의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변할 수 없는 진리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어원상으로도 필로소피(philosopy)는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지 지혜 자체에 대한 계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반면에 종교의 교리는 절대적이고 변할 수 없는 진리 그 자체라고 가르쳐 진다. 왜냐하면 종교의 교리는 인간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신이 가르쳐준 것이거나, 최고의 신성한 인간이 도달하고 가르쳐준 궁극적 진리의 드러남이거나 현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의 교리는 철학의 이론과는 달리, 인간의 이성이나 직관 또는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오로지 믿음이라는 자기 부정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르친다.

 

다른 한편으로 불교에서 도달하고자 하는 깨달음은 언어나 고행과 같은 수행방식으로도 전달할 수 있다고도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흔히 깨달음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전생의 수행을 거쳐서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사람들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는 그 깨달음은 자연인에게 좀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는 아주 깊이 감추어진 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의 가르침이 인간적이고 이성적이라면, 종교의 교리는 반인간적이고 초월적인 신비인 것이다.

하지만 철학을 하는 일은 종교를 갖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극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놀이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는 현실이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나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진정한 현실을 가르쳐주지 않고, 스스로 계속 찾을 것을 주문하는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철학과 달리 종교는 모든 대중이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종교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먼저 인간이 실상이라고 믿는 현실이 모두 거짓임을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동시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확실한 진리를 알려준다. 그것도 사람들의 정신적 수준에 맞추어서 아주 쉽고 간단한 방식부터 어려워서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그런 방식들을 모두 제시할 수 있는 다양한 전통을 갖추고 있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