煩惱卽菩提(번뇌즉보리)
번뇌 그대로가 곧 보리라는 것. 생사 즉 열반과 함께 쓰는 말. 중생의 미견(迷見)으로 보면 미망(迷妄)의 주체인 번뇌와 각오(覺悟)의 주체인 보리가 딴판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두 가지가 그대로 하나이어서 차별이 없는 것. 그러나 두 가지가 하나이고 차별이 없다는 근거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열반경』 등에서 말한 소극적 제법실상론(諸法實相論)으로 보면, 온갖 법은 모두 공(空)한 것이어서 번뇌라고 집착할 것도 없고, 보리라고 집착할 것도 없다. 즉 미견(迷見)으로 집착하는 번뇌와 보리는 다 같이 공하다고 말하는 것. 삼론종(三論宗)과 선종(禪宗)에서는 이러한 처지에서 중생들의 집착을 떼어버리고, 공적무상(空寂無相)한 경지에 들어갈 것을 가르쳐 보인다. 둘째, 천태의 적극적 제법실상론이나 『화엄경』의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으로 말하면, 미망(迷妄)현실 밖에 따로 각오의 실재를 인정치 아니하므로 번뇌의 당체가 그대로 보리라고 말하는 것이니, 곧 번뇌가 실상이며 법계의 실덕(實德)이므로 그대로 보리라 하는 것이다. 즉 번뇌를 깨뜨리지 않고, 그대로 보리로 요달(了達)하는 것.
*不一不二不異는 양 극단의 것, 극단을 피하다보면 점점 가운데로 수렴하는 것이 모든 이치, 즉 생사는 하나도,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이어서 차별이 없으니 중도(中道)라 하며, 그러면서 생의 주체와 사의 주체가 같으니 하나가 된다. 그것 또한 제법공상(諸法空相),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현상은 실체가 없으니 공(空)이라 한다. 그러므로 중도는 공이다. 생이 있으므로 사가 있고, 생이 없으면 사도 없듯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연기로 이루어졌으므로 연기즉중도즉공(緣起卽中道卽空)이라 한다. 여기서 생은 모아짐, 사는 흩어짐, 법(法)은 모든 현상, 아(我)를 실체라 해석한다. 불교에서는 중의(重義)적 해석이 많음을 유념하라.
*不二不異卽不一 또는 不二不異, 故 卽一. 둘이 아니고 다르지도 않다. 그래서 하나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주체가 같거나 객체, 즉 대상이 같은 경우,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제법(諸法)이라 함은 세상에 있다는 온갖 모든 것을 두고 하는 말씀이며 실상(實相)이란 본래 성품의 진실한 모양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 실상이란 모든 것의 본래 근본성품이니, 곧 법신불(法身佛)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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