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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암베드카르와 신불교 운동


 

인도 불교사-붓다에서 암베드카르까지

암베드카르와 신불교 운동

다르마팔라로 인해서 촉발된 인도 불교의 부흥이라는 신바람은 암베드카르라는 혁명적인 인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 이름을 따서 '암베드카르 운동'이라고도 부르는 '신불교 운동'의 주창자는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이다. 그는 마하라슈트라 주의 암바바데(Ambavade)에서 태어났다. 가장 낮은 신분 계층에 해당하는 마하르(Mahar) 카스트 출신이었던 암베드카르. 마하르 카스트란 거리 청소나 쓰레기 소각 등을 담당하던 계층 집단이며 소위 '불가촉 천민'이다.

힌두 사회에서, 불가촉 천민은 다만 탄생함으로써 인간 존재로 인정될 뿐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상층의 힌두 계급과는 간접적으로도 접촉할 수 없을 만큼 열등한 신분을 지닌 집단이었다. 실제로 상층 계급은 불가촉 천민의 그림자조차 닿기를 꺼려하는 것이 아직까지 인도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토록 뿌리 깊은 신분제 사회 속에서, 암베드카르는 정통적인 불교의 교리에 따라서 사회적인 신분 차별은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했던 인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과 비교되기도 한다.

암베드카르가 1956년 10월 14일에 마하라슈트라 주의 나그푸르 시에서 불교에 귀의하는 개종식을 주도했던 첫째 동기도 바로 불교의 인간 평등 사상에 있었다. 그 당시 집단 개종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80만 명에 이르렀는데, 그 대부분은 하층 계급 출신이었다. 그 날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가운데 50만 명 정도가 불교로 개종했다고 전하는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개종했던 것은 유례에 없는 일로서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다. 암베드카르는 그 개종식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22가지 서약을 선포하였다.

1) 나는 브라만, 비슈누, 마하데바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2) 나는 라마와 크리슈나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3) 나는 가우리, 가나파티, 그 외 힌두교의 여러 남신, 여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4) '신은 화신으로 나타난다'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5) '붓다가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전승은 오류이다.
6) 나는 조령제(祖靈祭)를 행하지 않는다.
7) 나는 불교에 반하는 어떠한 말과 행위도 하지 않는다.
8) 나는 어떤 의식도 브라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9) 나는 전 인류는 평등하다는 주장을 인정한다.
10) 나는 평등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11) 나는 8정도를 준수한다.
12) 나는 10파라미타를 준수한다.
13) 나는 일체 중생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불살생을 준수한다.
14) 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15) 나는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16) 나는 삿된 음행을 범하지 않는다.
17)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18) 나는 불교의 지혜, 지계, 삼매에 따라 생활하고자 노력한다.
19) 나는 인간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인다.
20) 불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21)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한다.
22) 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신성하게 맹세한다.

이와 같은 22가지 서약을 외친 암베드카르가 "나와 함께 불교로 귀의할 사람은 일어서시오"라고 말하자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서 그 서약을 반복하고 개종했다. 그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 후로 기존의 종교, 특히 힌두교 신앙을 포기하고 불교로 개종하는 일이 연이어 생겨났으며, 그러한 움직임들을 '새로운 불교 부흥 운동'이라 불렀다. 신불교 운동을 주도했던 암베드카르의 궁극적 목적은 불가촉 천민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향유하는 데 있었다. 슈드라의 신분이나 여성으로서는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고 규정하는 힌두교의 불평등을 비판하고, 불교의 평등주의를 고양시킨 암베드카르의 주창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를 따라서 개종한 하층민들의 불교를 지칭하는 말로 신불교(Neo-Buddhism, New Buddhism)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지만, 이는 원초적인 가우타마 붓다의 사상과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개종식을 마친 암베드카르는 행사를 마치자마자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개최되는 세계불교도연맹의 개회식에 참석하여 연설하고 나서, 불교 유적지를 순례한 후 뭄바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1956년 12월 6일 아침, 그는 이미 싸늘해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타계로 인해 하층민들 사이에서 열렬했던 불교로의 개종이 멈출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히려 나그푸르, 푸나, 아메다바드, 아그라 등지에서 집단적 개종은 계속되었고, 그의 영향력은 생전보다도 사후에 더 크게 발휘되었다.

신불교 교도들은 암베드카르의 이름인 빔라오(Bhimrao)를 따서 "비맘 샤라남 갓차미(Bhimam śaraam gacchami)"라는 구절을 귀경게에 편입시켰다. 불, 법, 승, 3보에의 귀의만이 아니라 암베드카르에게도 귀의한다는 구절을 더하여 4보 귀의로 바뀐 것이다. 현대 인도의 불교도들은 암베드카르가 보살과 같다고 여긴다. 현대 인도 불교도의 개종에 큰 역할을 했던 그의 공적을 인정한 결과이다. 현재, 마하라슈트라 주를 중심으로 암베드카르의 유업을 잇고 있으며 불교로의 개종은 갈수록 확산되어 가고 있다. 2001년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불교도 수는 전 인도 인구의 0.77퍼센트에 달하며, 그 중 20퍼센트에 이르는 불교도가 마하라슈트라 주에 집중되어 있다. 이로써 암베드카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암베드카르로 인해서 개종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인도에서는 최근까지도 불교 신자가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운동은 불교 자체의 부흥이라기보다는 불교를 통해 천민들의 사회적 지위를 개혁하고자 했던 사회 운동이었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근년에 인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불교 개종식을 비롯한 불교도의 집회는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01년 11월 4일에는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전 인도 불가촉민 연합회'의 의장인 람 라즈(Ram Raj)가 주도하는 집단 개종 집회가 열렸다. 이 때 운집했던 100만 명에 달하는 하층민들이 불교로 개종하고자 했으나 그 중 8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경찰의 제지를 받고 집회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집회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힌두의 신들에게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라는 내용의 선언을 낭독함으로써 암베드카르의 신불교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힌두 교도와의 충돌을 우려한 정부 측의 강압적인 대응으로 인하여 개종 의식이 순조롭게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인도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인도 불교 청년회' '불교도 발전 협회' 등 여러 불교 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집회와 의식, 축제 등을 거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웃타르프라데쉬 주의 상카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샤키야족의 후손들이 매년 음력 9월 보름에 개최하는 상카시아 불교 대축제의 경우는 2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행사로, 가우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널리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서 인도 곳곳에 불교 사원을 세우기 위한 각종 모금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해외 불교도들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암베드카르와 신불교 운동 (인도 불교사-붓다에서 암베드카르까지, 2007. 11. 5.,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