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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지눌의 證悟



지눌의 얼굴 표정은 온정과 친절을 풍기는 반면, 성철의 안광은 한결같고 형언할 수 없는 강경한 뱃심을 드러낸다. 저서에서도 상반된다. 지눌의 저서에서는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상을 밝히려는 사변적 정신이 보이는가 하면, 성철의 저서에서는 시종여일 심하게 독단적이며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입장, 곧 동정일여, 오매일여, 숙면일여 등을 밀고 나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학자들에게 지눌에 비해 큰 매력을 주지 못하는 듯 싶다. 그런데 두 사람의 영적 여정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성철은 출가한 지 3년 만에 혹독하고 순수한 간화선을 통해서 29살에 단박에 깨친 반면 지눌은 경전을 접하며 세 차례에 걸친 점차적인 깨달음을 경험했다.


1182년 25살 때 <법보단경>을, 31살에 이통현(635-730) <신화엄경론>을, 40살이던 1197년에 <대혜종고어록>을 읽으면서 각각 깨달음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성철은 출가하기도 전에 사상이 지극히 돈오돈수적인 영가현각(665-713)의 <증도가>를 숙독하였고, 또한 선종의 필독서인 대혜어록을 자신의 실제적 간화선수행의 지침서로 삼았다.

지눌은 돈오 후에도 계속 수행을 해야 돈오를 유지한다는 돈오점수의 입장을 견지했으며, 성철은 돈오를 제대로 이루었으면 돈오를 계속 유지하므로 그후의 수행은 불필요하다는 돈오돈수의 입장을 유지했으며, 많은 학자들은 성철의 의견을 반대했으나 죽을 때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티베트불교의 경우는 점수점오점수의 입장을 유지하므로 돈점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