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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인도 부다가야

인도 부다가야

 

깨달음을 얻다 부처가 되다

기원전 6세기,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조그만 카필라 왕국에서 출가한 태자 싯다르타는 수많은 스승을 찾아다니며 혹독한 고행을 했다. 가는 곳마다 이내 스승의 경지에 도달한 그는 더 이상 스승이 없음을 깨닫자, 이번에는 홀로 수행하기로 결심한 후 가야에서 약 12㎞ 떨어진 우루벨라라는 마을의 숲을 찾아온다.

 

우루벨라는 현재의 부다가야를 말하는데 수행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수자타 마을이 있었고 근처에는 숲과 니란자나강이 흘렀으며 바위로 이루어진 전정각산이 우뚝 솟아 있는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싯다르타는 숲 속에 들어가 곡식 낟알 몇 톨과 한 모금의 물로 하루를 보낼 정도의 극심한 고행을 하다가, 문득 육체를 괴롭히는 것은 오히려 육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를 가진 후 수행 방법을 바꾼다. 그는 지쳐버린 육체를 회복하기 위해 니란자나강에서 몸을 씻고 마침 강가에서 우유를 짜고 있던 수자타라는 소녀로부터 한 그릇의 유미죽(우유에 꿀과 설탕을 섞어 만든 음식)을 얻어먹었다.

 

현재 니란자나강은 부다가야의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약 500m쯤 가면 나오는데 우기 때에는 제법 깊지만 겨울철에는 얕은 내 같다. 니란자나강 근처에는 싯다르타에게 유미죽을 준 수자타가 살던 마을이 있고 조그만 탑도 있다.

원기를 회복한 싯다르타는 다시 수행을 하기 위해 근처의 바위산에 올랐으나 산신과 천신이 두려움에 떨며 마을로 가 수행하기를 간청한다. 다만 이 산에 살던 용이 자신의 동굴에서 수행하기를 부탁하자 싯다르타는 기특한 용을 위로하며 자신의 그림자를 동굴에 남기고 떠났다. 그래서 이 바위산을 바른 깨달음, 즉 정각(正覺)을 성취하기 전에 오른 산이라 하여 전정각산(前正覺山)이라 하고 그림자를 남긴 동굴을 유영굴(留影窟)이라 부르는데, 이곳은 물이 귀해 수행하기에는 어려운 산으로 보인다.

 

전정각산을 떠난 싯다르타는 부다가야의 숲에 있는 커다란 보리수 아래 단정히 앉았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육신이 다 죽어 없어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한 후 깊은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드디어 온갖 집착과 고뇌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경지에 이르면서 그는 부처가 된다. 출가한 지 6년째 되는 어느 날이었다.

 

현재 그 자리에 커다란 보리수가 있다. 그러나 이 보리수는 부처 당시의 것이 아니다. 원래의 보리수가 1876년 폭풍우에 쓰러져 죽자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보리수 묘목을 가져다 심은 것이다. 그 묘목은 바로 아쇼카 왕의 딸이었던 상가미타 비구니가 스리랑카에 가져가 심었던 보리수의 묘목이니, 현재 부다가야의 보리수는 원 보리수의 손자뻘 정도 되는 것이다.

  

보리수 옆에는 싯다르타가 앉아서 수행했다 하여 금강좌(金剛座)라 부르는 반석이 있고, 그옆에는 높이 52m의 마하보디 사원이 우뚝 서있다.

 

4세기에서 7세기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원이 12세기 중엽 이슬람교인의 침입에서도 살아난 이유는 당시 불교도들이 흙으로 사원을 파묻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후 이 주변은 정글화되었다가 19세기 후반에 커닝햄에 의해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을 찾게 된다. 그러나 커닝햄이 발굴하기 이전인 1800년대 초에 그려진 판화에도 이미 현재의 모습이 남아 있고, 높이 52m나 되는 사원을 흙으로 파묻는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안 되어 커닝햄의 발굴이나, 흙으로 파묻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불교가 쇠퇴하며 방치된 이 사원을 보수한 이들은 미얀마인들이었는데, 이 지역을 소유한 이는 이 근방을 지배하던 힌두교 수행단체의 우두머리인 마한타였다. 그런 상황에서 마하보디 사원은 불교사원의 명맥을 잇지 못했는데, 1885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에드윈 아널드의 노력과 스리랑카 출신의 불교 스님인 다르마팔라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마하보디 사원의 소유는 불교도와 힌두교도가 참여하는 운영회에 속해 있다.

   

그 외에도 마하보디 사원 경내에는 부처가 걸을 때마다 연꽃이 솟아 올랐다는 경행처, 코브라처럼 생긴 무찰린다 용왕이 똬리를 틀어서 부처를 보호하는 조각이 있는 무찰린다 연못, 아쇼카왕 때 만들어졌다고 알려지지만 진위는 확실치 않은 석주 등이 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불교를 만든 싯다르타는 가르침 못지않게 삶 자체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숙명적인 생로병사의 고통 속에서 번민하다가 속세를 떠났고, 깨달음을 얻은 후 다시 세상에 귀환하여 가르침을 편 그의 일생은 드라마틱한 영웅 신화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떠남과 귀환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여행작가(blog.naver.comjisang)

>> 여행 에피소드

성스러운 종교 유적지는 종종 현지인들의 치열한 밥벌이의 현장이기도 하다. 부다가야에 도착하자마자 거지 아닌 거지들이 수없이 달려들고 수많은 상인들은 하나라도 물건을 더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이것은 관광객 숫자와 비례한다. 17년 전에 갔을 때는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는데 10년 후 성수기 때 다시 가보니 성지 순례단과 그들을 맞이하는 현지인들이 범벅이 되어 온 마을이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여기 아이들은 보통 끈질긴 게 아니다. 구걸하는 아이들이 30분이고, 1시간이고 쫓아다니니 나중에는 질린 여행자들이 할 수 없이 돈을 주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이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아주 예전에 온 관광객들이 불쌍하고 귀여우니 먼저 돈을 주었을 것이고 이것이 점점 오염된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현장인데, 이런 곳을 여행하며 생로병사의 고뇌를 체험적으로 겪는 것도 또한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 여행정보

부다가야에는 저렴한 숙소를 제공하는 절이 많다. 미얀마, 베트남, 티베트, 네팔, 태국, 일본, 한국 등에서 만든 절의 숙박비는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고,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가야까지 다니는 기차는 많고 가야에서 부다가야까지는 버스, 삼륜 오토바이인 오토릭샤, 마차 등이 다니는데 해가 떨어지면 강도도 출현하니 밤에 이동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출처] 인도 부다가야|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