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은 왜 불교에 심취하게 됐나
서양예술가들은 예술 통해 ‘禪’ 표현하려는 다양한 시도로 이어져
종교를 찾는 사람이면 한번쯤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가는가’라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동양에서는 불교로, 서양에서는 기독교로 정립됐다. 그런데 영국의 신학자였던 애니 베전트(1847~1933)는 기독교적 인생론에 회의를 품는다. 그녀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통해 불교를 알게 된다.
“기독교 경전이 어린아이도 헤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얕은 여울”에 비유하며 불교와 고대의 종교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종교의 근간이 되고, 어느 종교도 적대시 하지 않는” 신지학을 제시했다. 애니 베전트는 20세기 영적 지성으로 칭송받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를 길러낸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의 여러 종교가 얼마나 비슷한가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책 한권을 채울 수 있다. 신지학은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진 고대 지혜의 세계를 새롭고도 풍성하게 전해준다. 종교 간의 유사성은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것인데, 그들은 초기 인류로부터 이곳에 왔고,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진화한 존재들이다.”
오랫동안 기독교 사상을 접한 저자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녀는 성경을 부정하기보다, 성경의 내용을 바르게 해석하는 일에 주목한다. 결국 그 가르침이 여러 종교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부각한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현재의 업과 행동이 다음 생의 나를 결정하는 인과 요소…
다음 생의 잘못된 업 깨닫고 지금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
논리의 배경은 과학이며 진화론이다. 그녀가 살았던 시기가 19세기라는 점을 볼 때, 다윈(1809~1882)이 진화론을 주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공격했지만, 애니 베전트는 “모든 사고와 언어를 초월하는 로고스는 자신에게 한계를 부여하고, 자신의 존재 범위를 스스로 정함으로써 현현한 신이 된다. 그 영역 안에서 우주는 태어나고 진화하고 죽는다. 우주는 로고스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를 갖는다”며 부분적으로 진화론을 옹호한다.
저자가 동양사상에서도 가장 신비스럽게 접근한 내용은 환생이었다.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환생은 기존 서구의 가치관과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죽음은 지상에 존재하는 여러 착각 중에 가장 위대하다.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삶의 조건에 생기는 변화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지속되는 생명은 “그것을 감싸고 있는 몸이 사라진다고 해서 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확언한다.
“인간은 생각의 생명체다. 이 생에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다음 생에서 그의 모습이다. (<우파니니샤드> 중) 이것이 바로 카르마의 법칙이며, 이 법칙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적 특성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다.”
욕망을 통해 다음 생의 삶을 결정짓는다는 주장은 결국 현재의 업(業)과 행동이 다음 생의 나를 결정하는 인과(因果)의 요소라는 주장이다. “욕망은 대상에 집착해 외부로 향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으로 인간을 이끈다. 어떤 사람이 지독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한 사고를 방출해 그 진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 결과 마침내 살인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고를 방출한 사람과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물질계에서는 만난 적이 없지만 카르마로 연결돼 있다. 청천벽력 같은 일들은 억울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사실은 그런 원인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결국 이 책은 영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동서양 고전철학에서 말하는 삶의 의지와 목적을 두루 한바퀴 돌아 불교철학으로 들어선다. 결국 죽음과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인과의 법칙으로서 ‘지금의 나’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애니 베전트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실재하는 것과 않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외부에 대한 무관심을 바탕으로 자신을 통찰하라. 그러면 항상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 실재에 점점 머물게 될 것이다.”
불교는 유럽에서 19세기 이미 상당부분 연구됐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서구 사상의 중심에 서 있다. 애니 베전트의 이 책,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는 실존적인 사고와 과학적 증명의 습관을 가진 유럽인들이 왜 불교에 심취하는지, 또 불교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다.
자유·절제라는 철학 바탕에 이성·논리 뛰어넘은 禪…서구인에게 신선한 충격
국제선(禪)조형예술협회를 창설하고, 귀국한 이후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에 선조형예술학과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예술가 윤양호 교수가 최근 현대미술과 선(禪)의 융합이라는 화두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 『현대미술, 선에게 길을 묻다』를 출간했다.
윤 교수는 이 책에서 독일 유학 시절 접하고 느낀 서양 현대미술의 흐름과 특성, 그 역사적· 미술사적 배경,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 현대미술의 영역과 선사상이 만나는 지점,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와 작품 등을 다루고 있다.
독일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현대예술가들이 추구하고 있는 예술적 지향점이 바로 동양적인 정신성, 그 중에서도 불교와 선의 정신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의 예술가들과 불교와 선에 대해 토론하고 그들과 함께 선방에서 선(禪) 체험을 하면서 현대미술의 흐름과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독일의 아우토반은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준다. 모두가 자신 스스로의 속도를 만들어가고, 이를 스스로 지켜가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많지 않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아우토반을 만들어 절망에 빠져있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고자 했다. 자유와 절제라는 철학적 담론을 제시한 것이다.”
예술이란 기존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규범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독일의 철학사조에 바탕을 둔 예술세계. 윤양호 교수가 독일 유학에서 얻은 소중한 가치였다. 하지만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윤 교수의 작품세계는 국내에서 생소하게 여겨졌다. 이에 작가는 유학시절 유럽의 예술가들과 함께 만든 ‘선조형 예술’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연구와 작품 활동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은 이러한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 천으로 싼 피아노. © 요셉 보이스 작
이와 더불어 ‘젠(ZEN)49’, ‘제로(ZERO)’, ‘플럭서스(FLUXUS)’ 등 선적인 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흐름을 만날 수 있다. 우도 클라센, 안토니 따피에스, 마우저, 리차드 세라, 이브 클라인, 볼프강 라이프, 리차 드 롱, 잭슨 폴록, 엘스워드 켈리, 게하르트 리히터, 빌 비올라 등으로 대표되는 표현추상주의가 선과 어떤 접점을 가지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한국 작가 중에는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고(故)백남준 작가를 비롯해 김환기, 김영주 작가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윤형근,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등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이 선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짚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 현대미술의 흐름과 특성을 살피고 있어 현대미술에 대한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윤 교수는 서구의 불교 열풍에 대해서 “이미 동양보다 더 발전해 있다”고 단언한다.
“1970~80년대, 불교와 선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소개되면서 서점가에서도 불교 관련 서적들이 번역되거나 출간 붐이 일었다. 그들이 주목한 부분은 선의 정신성이었다. 이성과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들에게 선사(禪師)의 문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럽과 북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접하는 선 사상은 주로 일본, 티베트, 동남아의 불교와 선이며, 한국의 선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비하다.”
▲ 허공에 색을 칠한 작품. © 윤양호 작
불교와 선이 발전한 한국이지만, 이를 결합한 예술을 오히려 서구에서 역수입하는 현상을 지적하는 윤 교수는 ‘시대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장의 흐름은 냉엄하며, 그 가치를 증명받는 역할을 한다. 그 미술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은 작가의 예술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시대정신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윤 교수는 “현대미술을 통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많은 작가와 관객들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면서 “예술의 세계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수암(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출처] 유럽인들은 왜 불교에 심취하게 됐나|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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