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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설. 사성제. 중도. 삼법인. 오온

붓다의 연기법과 불교의 연기설 - 연기해석학들에 대한 의문(요약)

붓다의 연기법과 불교의 연기설 - 연기해석학들에 대한 의문

 

연기의 원형사유는, 모든 현상을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緣起, paṭicca-samuppāda, paṭicca/緣하여 sam/함께 uppāda/일어남)으로 보아 ‘성립/발생의 조건들’과 ‘조건들의 인과적 연관’을 포착하려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붓다의 연기법을 파악하기 위한 관문은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이라는 말의 의미와 초점이다. 이 말의 의미와 초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연기해석학의 계보들, 즉 ‘불교의 연기설’들이 갈라진다. 붓다는 이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이라는 원형사유를 가히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일관되게 적용한다. 붓다 삶의 모든 범주와 내용이 이 원형사유에 의해 직조(織造)되고 있다. ‘붓다의 연기법’과 ‘불교의 연기설들’ 사이에는 초점의 다양한 자리이동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연기설들’, 그 연기 해석학들은, 비록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이라는 연기 원형사유의 중요한 ‘부분 의미들’을 포착하여 나름대로 정교하게 이론화시키는 기여를 하지만, 동시에 간과할 수 없는 ‘초점 이동’을 수반하고 있다. 삶과 세계의 문제들을 연기법으로 이해하고 풀어가고자 할 때, 연기법의 원형사유에 초점을 두어 ‘연기의 법칙언어’에 의거하는 것과, ‘불교 연기설들’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통하면서도 어긋난다. 불교의 연기설들은 붓다의 연기법이 지닌 의미와 생명력을 발굴하는 동시에 제한시켜 온 측면이 있다. 연기법에 의한 삶과 세상의 치유, 개인과 세계의 연기법적 합리화를 향해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작동해야 할 붓다의 연기 깨달음은, ‘불교 연기설들’의 특정한 해석학적 프레임 안에 갇혀 연기법 본연의 삶/세계 치유력이 제한 내지 왜곡되지 않았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남방과 북방의 연기해석학들이 제공해 온 연기적 개안이, 일상의 실존문제들을 ‘조건인과적’으로 파악하여 개인과 사회를 ‘조건인과적 합리성’으로 치유하는 힘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불교전통에서 ‘수행’이나 ‘깨달음’의 문제가 흔히 일상이나 사회의 문제와 괴리되어 버린 것은, 근원적으로 ‘붓다의 연기법’과 ‘불교의 연기설들’ 사이에서 발생한 초점의 이동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출처] 연기해석학들에 대한 의문|작성자 각원사조계사용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