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자취 / 박용철
다숩고 밝은 햇발 이같이 나려 흐르느니
숨어 있던 어린 풀싹 소근거려 나오고
새로 피어 수줍은 가지 우 분홍 꽃잎들도
어느 하나 그의 입맞춤을 막아보려 안합니다
푸른밤 달 비쵠 데서는 이슬이 구슬되고
길바닥에 고인 물도 호수같이 별을 잠급니다
조그만 반딧불은 여름밤 벌레라도
꼬리로 빛을 뿌리고 날아다니는 혜성입니다
오― 그대시어 허리 가느단 계집애 앞에
무릎 꿇고 비는 사랑을 버리옵고
몸에서 스사로 빛을 내는 사나이가 되옵소서
고개 빠뜨리고 마음 떨리는 사랑을 버리옵고
은비둘기같이 가슴 내밀고 날아가시어
다만 나의 흐린 눈으로 그대의 빛나는 자취를 따르게 하옵소서
박용철전집, 시문학사,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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