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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시, 사랑에서 행복을 찾다

왼쪽은 어지러운 생각과 함께 / 정복여

왼쪽은 어지러운 생각과 함께 / 정복여

딱딱한 기억을 베고 잠이 들었던가
옆으로 돌아눕자
무엇인가 어깨를 당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 몸을 조금씩 조여갔다
얇고 끈끈한 실들이
몸 전체를 감아가고 있었다
지난 밤 벽 위에 집을 짓던
작은 거미 한 마리
그놈을 그냥 놓아둔 것이 잘못이였다
놈은 밤 동안
침대로 올라와 내 몸을 친친 감고
나를 타고 기어다니고 있었다
목과 가슴 사이에 얽힌 거미줄을 떼어내면
손가락에 척척 달라붙어
끈끈한 액이 묻어났다
오른손의 거미줄을 떼어내면
거미줄은 왼손으로 옮겨갔다
손이 닿는 데마다
끈끈한 액체가 길게 늘어났다
팔을 벌린다거나 몸을 뒤틀 때마다
거미줄은 여러 갈래의 거미줄이 되었다
나는 차츰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묶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벽 가장자리
거미의 집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기꺼이 그 집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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