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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묵조선. 선

인도서 발생한 禪…전파되며 다양한 변용

[선(禪) 이야기]

2. 인도서 발생한 禪…전파되며 다양한 변용

본래 삼매 수행.기적 행한 경향

중국서는 지적 문답 공안 발달

한국의 선불교 사상은 중국 선종의 영향이지만 선종의 연원을 말한다면 인도의 선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인도의 선은 석존이전의 시대에도 있었고 부처님의 ‘깨달음’도 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부처님의 일생은 선정(禪定)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인도선은 중국선과 그 의미가 다르다.

보통 인도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삼매 samadhi. 定. dhyana)이다.

중국선 같이 지적(知的)으로 전개하는 것이 없다.

또한 ‘아- 그렇구나’라고 하는 같은 마음가짐으로 전환하는 것이 없다. 바로 체험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 인도는 철학적 경향인지, 종교적 경향인지는 모르지만 수행이 아주 번성했던 것 같다. 석존은 두 사람의 철학자를 스승으로 하여 물었다고 하였지만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많이 찾아 다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언제나 만족하지 않았다. 지적 방면에 만족하지 않았던 것과 함께 당시의 선정 방법에도 만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인가 전개되는 것이 없으면 안 되는, 또한 무엇인가 눈이 열리게 하는 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석존의 생각이었다. 석존의 인도의 선은 대체로 이러한 생각이었다.

이러한 선은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중국에서 말하는 선과는 그 형식이 다르다.

중국 선은 특수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공안이라는 것이 만들어져 행해 왔지만 공안이 성립되기 전에 중국선종은 일문일답으로서 즉 스승의 물음과 이에 상즉한 제자의 대답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며, 또한 일 방(一棒), 일 할(一喝)을 주는 것도 있지만 여하간 문답을 통하여 중국선종이 고양되고 개발되었다.

이에 반해 인도 선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싯다르타는 오랜 고행 끝에 ‘부처님’이 됐다.

이를 ‘삼보리(三菩提)를 얻었다(覺, 證)’고 한다.

이 ‘보리’라고 하는 것의 소식, 내용은 어떠한 것일까. 경전을 읽어보면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든지 있다. ‘삼보리’라는 것의 내용을 말로는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이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마의 방장에 문수가 수많은 대중을 데리고 들어가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월상여가 땅에 발을 딛지 않고 걸어가는 것, 부처님의 양미간의 백호가 방광하는 것, 땅에서 거대한 탑이 허공에 솟아오르는 것, 등 기적적인 일이 보이는 것, 이것이 바로 인도의 선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이지 못해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 불타의 선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선은 분해돼 설명되어지기도 하고 각 선정의 세계가 펼쳐지며 선의 최고의 고지가 모든 더러움의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난 ‘열반’이라고 천명했다.

열반을 얻은 부처님의 행동이 중생의 눈빛에는 기적으로 보인 것이다.

부처님에게 악마 파피아가 “당신이 부처라는 것을 누가 아는가”라고 물었을 때, 부처님은 하늘과 땅을 가리킨다. 그 때 악마는 땅속으로 갇힌다.

이러한 기적의 행이 인도 선을 통하여 일어난 것이다.

부처님의 보리의 작용이 ‘반야(prajna. panna)’다.

부처님의 행은 반야의 행이며 중생을 향한 부처님의 설법 역시 반야의 말씀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는 하늘과 중생의 근기에 맞게 설하여 보이신 것, 이것은 바로 선어이며 선심에서 일어난 것이다.

<혜원스님 / 동국대 선학과 교수>

[출처] 인도서 발생한 禪…전파되며 다양한 변용/본래 삼매 수행.기적 행한 경향 중국서는 지적 문답 공안 발달|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