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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불교에서 본 세계 · 자연 · 우주

불교에서 본 세계 · 자연 · 우주

 

[동양  속의 우주]

1. 중국 신화(반고의 천지 창조)

우주의 기원에 관한 관심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의 범주에 속한다. 거친 자연 속에 내던져진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장 원초적 의문은 자연과 우주의 근원에 대 한 의문이었다. 그것을 체계화하고 논리화해온 노력이 철학과 종교의 근본 과제 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에 관한 논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형태를 크 게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우주 전변설 宇宙轉變說 이다. 즉, 태초에 어떤 절대자 혹은 근원적 힘 에 의하여 우주가 생성 · 유지된다는 생각이다. 기독교의 천지 창조론 같은 것 이 대표적 실례이지만, 중국 신화, 한국신화 등에서도 주류를 이루는 사고 경향 이다.

둘째는 적취설 積聚說 이다. 이를테면 다 多 에서 다가 생성되었다는 입장이 다. 본래부터 우주는 혼돈의 상태였고, 혼돈이 가라앉으면서 많은 존재들이 저 절로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셋째는 인연설 因緣說 이다. 태초의 절대자에 대한 주장은 억지 논리에 불과하 다는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물의 생성과 소멸에는 필연적인 인과 因果가 상 존하며, 그 인연의 실타래가 바로 우주의 비밀이라는 입장이다. 불교 같은 종교 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세 가지 입장은 각자의 선명한 논리 구조와 함께, 치명적인 모 순성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해겔이 말한 대로 인간, 그 자체가 이미 모순이 다. 이성 자체에도 모순이 깃들어 있으며, 생명의 기원 또한 논리적이지는 않 은 것이다. 따라서 어느 쪽이 더 논리적이냐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다만 우 주의 생성에 대한 인간 사색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일로 만족할 따름이다. 동양인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사색의 흔적은 이미 기원전 10여 세기로 부터 비 롯된다. 이 글에서는 불교의 우주관을 중심으로 인도와 중국의 경우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중국의 천지 창조 신화는 다양한 장르륵 갖고 전개된다. 전변설의 가장 대표격 으로는 반고 盤古 신화가 꼽힐 수 있고, 주자학의 경우에는 역 易 의 세계관을 들 수 있다.

반고 신화에 의하면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의 우주는 달걀 속 같았다. 달걀 껍 질에 꽉 막힌 우주는 칠흙 같은 어두움과 혼돈에 휩싸인 이른바 카오스의 상태 였다. 반고는 이 달걀 같은 우주 속에서 무의식의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 다. 그가 무의식의 상태에 있은 지 1만 8000년, 드디어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곧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고, 그 공포와 절망을 이기지 못해서 달걀 껍질을 깨버렸다. 온 우주가 진동하면서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 다. 이 상황 속에서 우주의 청명한 정기는 하늘로 훨훨 날고 있었다. 한편 혼탁 한 물체들은 아래로 처져내려 갔다. 하늘과 땅이 갈라졌지만, 반고는 이 둘이 서로 엉킬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반고는 머리로 하늘을 이고 땅을 두 발로 눌 렀다. 반고는 우주가 다시 혼돈과 암흑에 휩싸이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 생하였다. 위대한 천지 창조자인 반고는 그 거대한 몸을 눕혔다.

그는 죽은 것 이다. 그의 육신은 죽어서도 썩지 않았다. 반고의 입김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 다. 그의 목소리는 뇌성으로 변했다.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쪽 눈은 달로 변 하여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온 몸은 대지를 둘러싸고, 그의 손발은 대지의 네 극이며, 다섯 개의 명산이 되었다. 혈맥은 하천으로 변하여 흘렀고, 근육은 사 방을 연결하는 도로가 되었다. 살은 기름진 옥토로 변하고, 머리털이나 수염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피부의 털은 화초와 수목으로 피어났고, 치아나 뼈는 오색 영롱한 금은 보석으로 바뀌었다. 땀방울은 비와 이슬이 되어 대지를 적신다. 반 고는 죽어서도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하였고, 아름답게 보살펴주었던 것이다.[ 중 국 신화의 모티브는 Tien(天) 에 대한 외경 畏敬 이다. 이외 에도 <<회남자>>, <<장자>> 등에 나타나는 천지 창조설도 같은 맥락이다. 김열규, <<동양의 신 들>>(한국능력개발사,1978),pp.208-210 ]

2.인도의 신화(Tad Ekam의 변형)

태초에는 무 無 도 없고 유 有 도 없고, 공계 空界 도 없고, 또한 天界도 없 었다. 무엇이 이를 뒤덮었던가? 그것은 어디에 있었던가? 누가 이를 옹호했던 가? 저 물은 어떻게 있었으며, 밑없는 깊이는 어떻게 있었던가? 그때에는 죽음 도 없고 불사 不死/Amrta 도 없었으며, 낮과 밤의 구별도 없었다. 오직 타드 에 캄 Tad Ekam/that Oneness/彼唯一者 만이 소리도 없이 스스로 호흡하고 있었으 며, 그 밖에는 일찍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암흑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암흑에 뒤덮힌 빛 없는 파동계 波動界 였다.

허공으로 둘러싸인 원자 原子 /Abhu는 그 자신의 열 熱 의 힘으로 태어났다. 그것이 전개되어 처음으로 애욕 愛慾/Kama 이 생겼고, 이것은 식 識의 최초의 종자였다. 실로 누가 이를 알리 오. 누가 지금 여기서 이를 설명할 수 있으리오. 그는 어디로부터 생겨나왔으 며, 어디로부터 이 조화가 나오는가? 여러 신들도 천지 창조 이후에 생겨났으 며, 그렇다며 그 어디로부터 생겨났는지를 아는 자는 누구냐? 그는 알리라. 이 조화의 원천을 아는 사람은 최고천 最高天 에서 이 세계를 관장하고 있다. 그는 진실로 알리라. 그러나 아마 그도 또한 모르리라. [<<리그베다>>, Nasadasiya Sukha, X,129.pp.1-6;졸저,<<인도철학사상사>>(경서원,1980),pp.20-21. 이 신 화의 패턴은 근원적 세계 원리의 모색이며 Tad Ekam->Kama->Manas라는 도식을 나타낸다.]

즉, 유일자에서 천지 창조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설명인데, 인도 신화에서 보 이는 절대자는 이 외에도 원인 原人/Puraush, 도 道/Rta, 시간 時間/Kala 등이 있다. 특히 제일 마지막 구절에 보이는 절대자에 대한 회의 懷疑 가 관심을 끈다. 불교학자들은 이를 유일신교에서 범신론 汎神論에 이르는 과정으로 파악 하고 있다. 이 사상을 보다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 우달라카 Uddalaka의 존재론 이다. 그는 우파니샤드 Upanisad에 등장하는 철인 哲人인데, 우주 창조의 근원 을 사트 Sat라고 설명하였다.

즉, 태초에 우주에는 사트만이 존재하였다. 이 사트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 가 많아지리라. 번식하리라 고. 그는 불 Tapas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 불은 물 Apas을 만들었다. 어디에서나 고열 苦熱을 느끼면 사람이 땀을 흘리는 것이 그 까닭이다. 그때에 불로 말미암아 물이 생긴다고 했다. 그 물은 곡식을 만들 어냈다. 이때 사트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아트만 Atman으로서 지 地, 수 水, 화 火, 풍 風 속에 들어가 명색 名色/Namarupa을 전개하리라. 결국 만유 萬有 는 지,수,화의 삼대 요소로 구성되었으며, 그 세가지 요소가 사물을 전개시킨 다. 사트는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시 그 안에 용해됨으로써 사물은 신 자체가 된다.

이 신화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사트의 존재 변화 이유이다. 즉, 천지 창조 의 절대자가 완전무결하다면, 왜 불완전한 세계를 만들었으냐 하는 의문이 제기 될 수 밖에 없다. 언제나 그 해명은 궁색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내가 많아 지리라. 번식하리라 는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또 그것이 애욕이 근본이라는 부 연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불교는 이와 같은 가설 假說을 모두 부정한다. 즉, 절 대자에 대한 천지 창조설과 본래 사물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부정하면서 인연설 이라는 새로운 우주론을 펼쳐 나가게 되는 것이다.

II. 불교에서 본 세계 ·자연 ·우주

 

1. 우주의 생성과 소멸

앞서 살핀 중국이나 인도 신화의 경우와 비교할 때, 불교의 우주론은 선명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다. 팔만대장경의 방대한 가르침 속에서도 분명하게 불교적 우 주론을 설명하는 경전은 많지 않다. 간혹 있다 하더라도 상당히 관념적이고 애 매모호하다. 그 까닭은 불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를 꺼려했 기 때문이다. 석가세존은 삶의 목표를 깨달음 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논의는 그 깨달음의 완성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파악했기 때문 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 경전들 속에 나타난 불교적 우주론을 정리하여 이해 하는 도리밖에는 없다. 불교의 우주적 신화론을 나타내는 경전들로서는 <<세기 경 世紀經>>,<<대방광불화엄경 大方廣佛華嚴經>> 등을 꼽을 수 있다.

불교에서는 우주의 기원을 업 業으로 설명한다. 카르마 Karma라는 인도 말을 옮긴 것인데, 그것은 행위 자체, 또 행위로부터 빚어지는 갖가지 과보 果報 들 을 의미하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생명 있는 것들을 총칭하여 중생이라고 하는 데, 그 중생들의 생성 소멸은 업에 의하여 주도된다고 설명한다. 업 가운데 가 장 근원적인 것은 무명업 無明業/Avidya 이다. 사물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 고, 늘 이기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근본이다. 이 무명업으로부터 갖가지 번뇌가 생기고, 이 번뇌들의 집합이 또 다른 생존 형태를 결정짓는다. 이것을 윤회 Samsara라고 말한다.

업과 윤회는 전생 前生, 금생 今生, 후생 後生의 삼생 三 生을 관통하는 광폭한 힘 이다. 이 경우 무명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명 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닭과 달걀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근본 이 있어서 다른 것을 생성한다는 수직적 사고를 갖는 한, 이것은 결코 설명될 수 없다. 닭과 달걀은 어느 것이 먼저 생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닭이 있으려면 달걀이 있어야 하고, 달걀이 있으려면 닭이 있어야 한다. 그 둘 은 서로의 필요성, 즉 인연에 의하여 생겨난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무명업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 하는 물음은 이미 인과론적 사고에서 벗어난 견해일 따 름이다. [불교의 인과론을 생사의 윤회 유전 관계로 설명한 것을 십이연기 十二 緣起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무명업의 최초 생성에 관해서는 설명되지 않는 다. 무명처럼 노사 老死까지 이르는 열두 단계는 다만 둥근 원의 순환 관계처럼 서로 얽혀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 업보의 전개가 바로 우주요, 자연이며, 삼라만상이다. 불교에서는 이 업보 의 전개로서 누릴 수 있는 생명 형태를 여섯 갈래라고 설명한다.

지옥 : 가장 고통받는 삶의 형태.

아귀 :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 생존 형태.

축생 : 짐승들의 세계, 난폭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삶.

수라 : 폭력만이 존재하는 생존 형태.

인 : 인간들의 삶.

천 : 하늘나라의 신적인 존재. 이별의 아픔이 남는 세계.

위의 셋을 삼악도 三惡道, 밑의 셋을 삼선도 三善道라 하며, 통틀어 육도윤회 六道輪廻라 말한다.

태초의 우주에는 중생들의 업력 業力이 있었다. 그에 따라 허공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풍륜 風輪이 생긴다. 이 풍륜 위에 구름이 일어나며, 또 다시 수륜 水 輪이 생긴다. 이 수륜 위에 다시 바람이 일어나 금륜 金輪을 생기게 한다. 금륜 위에 수미산이 솟고,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일곱 산이 생긴다. 이들 산과 산 사이에 물이 고여 여덟 바다가 생기는데 수미산 부근의 일곱 산 사이에 생긴 바다를 내해 內海라고 하며, 그들과 바깥 세계와의 사이에 생긴 바다를 外 海라고 한다. 이 외해 속에 사대주 四大洲가 있어서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 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지구)는 수미산의 남쪽 섬부주 贍部洲이다. 우주의 중앙에 있는 수미산은 절반이 물에 잠겨 있고, 그 위가 지상으로 솟아 있는데, 해와 달, 별들이 수미산을 싸고 허공을 맴돈다.

중생들이 모여 사는 세계는 수미산의 남쪽 섬부주이지만, 그 중턱에서부터 위 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중생의 경계는 크게 욕계 欲界, 색계 色界, 무색계 無色界의 삼계 三界로 나뉜다. 욕계는 욕심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즉, 소유욕으로 파탄이 빚어지고, 희로애락이 상존하는 바, 그 정도에 따라 앞 서 말한 육도 윤회가 있게 된다.욕계 다음의 세계가 색계이다. 욕심은 멸하였지 만 물질 은 남아 있다. 즉, 소멸에 따른 고통은 감수해야 하는 세계이다. 색계 는 크게 나누면 사선천 四禪天이지만, 세분하면 십팔천 十八天이 된다. 마지막 의 세계를 무색계라고 한다. 물질마저도 버렸지만, 관념 만은 남아 있는 세계 이다. 즉, 관념적인 아픔, 사랑 등이 남아 있는 세계이다. 이도 세분하면 네 가 지로 나눌 수 있다.

다음에 이들 세계가 생성 소멸하는 시간적 단위에 대해서 살펴본다. 우주는 성 成, 주 住, 괴 壞, 공 空 의 네 가지 단계를 반복한다. 그 네 기간의 단위는 겁 劫 이다. 이 겁은 칼파 Kalpa 라는 시간 단위로서 무한한 시간 개념이다. 앞서 말한 우주와 수미산의 생선 기간을 成劫 이라고 한다. 다음에 주겁 住劫 이라는 시대가 온다. 세계는 큰 변동이 없지만 중생들의 과보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초기의 중생들은 형색이 아름답고 빛을 내며,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수명도 장구 한다. 그러나 좋은 음식, 맛에 탐착함으로써 차츰 몸이 더러워진다. 우선 남녀 의 성별이 생겨나고, 갖가지 이기적 욕심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다. 할 수 없이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국왕을 뽑게 되고 형벌이 제정된다.

그러나 중생의 악업은 더욱 무거워지고, 동시에 수명이 짧아져서 마침내 10세 에 머물게 된다. 삼재 三災 의 괴로움이 닥칠 때, 드디어 중생들은 반성하기 시 작하여 다시 선행을 행하게 된다. 동시에 수명도 증가하여 8만 세에 이르러 풍 요로운 사회가 된다. 그러나 또다시 욕심과 악업이 성해지면서 수명이 10세로 감소된다. 인간 수명은 이와 같이 증감을 반복하는데, 그 횟수는 17번이나 된 다. 그 다음에 오는 시기가 괴겁 壞劫 이다. 중생들의 파멸이 시작되는 시기인 데, 그 순서는 지옥부터이다. 지하에서 차례로 파괴되어 끝내 천상이 무너진다. 그 이후 화,수,풍의 삼재가 발생하여 풍륜으로부터 색계 제 3천에 이르는 영역 이 모조리 파괴된다. 이 괴겁이 지나면 공겁 空劫 이 온다. 이것은 오직 허공 만이 존재하는 시기이다. 공겁의 다음에는 또다시 중생들의 업력에 의하여 성, 주,괴,공이 반복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즉, 우주는 끝없는 생성,소멸이 반복되 는 과정이며, 공간적으로 보면 그 중심은 수미산의 중턱이라는 것이다. 괴겁의 단게를 오탁 五濁/Panca-Kasaya 이라고도 한다. 즉, 수명뿐만이 아니고, 갖가지 의 좋지 못한 현상들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① 명탁 命濁 : 중생들의 평균 수명이 줄어든다.

② 겁탁 劫濁 : 자연 파괴가 가속화된다.

③ 번뇌탁 煩惱濁 : 쾌락주의, 도덕적 문란이 팽배해진다.

④ 견탁 見濁 : 고행과 형식주의가 예찬되며, 종교 집회가 대형화한다.

⑤ 중생탁 衆生濁 : 중생들의 능력이 평균치보다 저하된다.

이것이 불교적 말세 의식을 이루게 되지만, 또 다른 생성의 희망을 갖는다는 면 에서 여전히 낙천적 우주관이라고 볼 수 있다.

2.수미산

수미산은 인도어 수메루 Sumeru의 음역이다. 전체 높이를 16만 유순이라고 했 는데, 1유순을 약 7킬로미터로 본다면 112만 킬로미터에 해당한다. 그 중 절반 은 바다 속에 잠겨 있고, 8만 유순 정도가 지상으로 솟아 있다. 앞서 말한 중생 들의 경계를 수미산의 공간 배치대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먼저 범천 梵 天(색계의 가장 아래에 위치)이 하생하고, 계속해서 욕계 육천에 해당하는 타화 자재천 他化自在天, 화락천 化樂天, 도솔천, 야마천 夜摩天이 하생하는데, 여기 까지가 수미산의 윗부분이며,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하늘나라이다. 다음에 수미 산의 중턱 부분인데, 이곳에는 도리천, 사왕천 四王天 등이 위치한다. 인간이 사는 곳은 그 제일 밑부분으로서 이른바 사대주 四大洲 이다.

축생의 경우에는 바다에 생겨나는데, 혹은 육지나 허공을 맴돌기도 한다. 악귀는 그 밑으로서 염 마왕국이 그 본거지이나 역시 떠돌아다닌다. 그 밑이 지옥취로서, 지옥을 맴도 는 중생들이다. 그 밖에도 아수라가 있는데, 이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다. 그저 수미산 주변을 맴돌면서 천상의 도리천과 항상 싸움을 일으킨다. 이렇게 해서 육도의 중생들이 각기 수미산 기슭을 근거로 하여 태어나고 사라지는데, 그 전 체의 기간은 20소겁 小劫쯤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이와 같은 세계를 초 월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는 관념은 고대의 인도인들이나 불교인들에게 있어서는 고통스러운 생명의 연장일 뿐이라는 상념에 젓게 하는 것이다. 즉, 윤회의 가치관을 가진 불교인들에게 있어서는 태어남 의 사실 자 체가 고통으로 인식되는 독특한 내세관을 갖게 한다.

3. 삼계

삼계 三界는 고뇌다. 성난 불과 같이, 골짜기의 메아리, 환각의 물거품과 같 으니라. 여래는 삼게를 초월하는 열반의 법을 설하노라(<<방광장엄경 方廣莊嚴 經>> 중에서 필자 초역). 우주를 삼계로 인식하는 것은 고대 인도인들의 공통 된 사고 방식이다. 즉, 우주를 하늘,허공, 대지의 삼계로 구분하고, 그 각각의 세계에 신이 살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불교 또한 이와 같은 사고를 답습하지 만, 그 개념은 판이하다. 우선 신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매우 비판적이다. 인도 신화에서의 신은 서양의 경우아 마찬가지로 절대자이면서 동시에 인격적이다. 즉, 신성 神性과 인간성을 공유하는 신적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예컨대 인 도의 신은 불사 不死, 영원의 존재이다. 또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며, 인간들의 찬양에 귀기울인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신적인 존재 또한 육도 윤회 속에 있다 고 생각한다. 인간보다는 행복하지만, 그 역시 죽음의 고통을 피할 길 없는 불 완전한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하늘나라 또한 욕계 육천 欲界六天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신이 거의 모두 인도 신화에 연원을 갖고 있 음을 분명하다. 불교의 호법신인 제석천 帝釋天은 인드라 Indra의 변형이다.

인 도 신화에서 뇌성벽력의 주재자인 인드라가 불교로 수용되면서 선신 善神이 된 다. 또 관세음보살은 루드라 Rudra의 변형이다. 원래 태풍의 신이었으나 나중에 가축 증식의 신격으로 바뀌었다. 루드라가 불교에서는 자비의 화신으로 변형된 것이다. 심지어는 삼신불 三身佛의 주체인 법신불 法身佛/Vairocana 또한 우파 니샤드에 나오는 변자재신 /Virocana의 변형이다. 불교는 이와 같이 인도의 신 격을 계승하면서도 독특한 자기화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모든 신을 수용하는 것 이다.

이 삼계에 대한 소박한 믿음도 불교 고유의 것이라기보다는 인도적 연원을 답 습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이 삼계는 허공, 하늘,대지 따위의 즉물 적 구분이 아니라 매우 섬세한 철학적 구분이다. 욕계 육천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이 사왕천이고, 가장 높은 것은 타화자재천이다. 그런데 이 욕심의 세계를 섹 스와 관련하여 설명하면 인간 의식의 단계를 어느 정도 선명하게 짐작할 수 있 다. 즉, 사왕천에서는 남녀가 서로를 소유해야만 만족한다. 성교라는 구체적 행 위를 통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의 하늘인 야마천계 에서는 포옹 정도로 만족한다. 그 이상의 구체적 행위가 없이도 서로의 사랑이 확인된다. 그 위의 하늘은 도솔천인데, 이곳에서는 서로가 손을 잡는 행위로 만 족한다. 그위의 하늘이 낙변화천인데, 멀리서 마주보면서 만족하는 세계이다. 마지막의 타화자재천에서는 영상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세계이다. 여기까 지는 욕계의 사랑이지만, 색계,무색계로 올라갈 때 그 승화 昇華의 단계를 짐작 할 수 있다. 욕계가 소유의 사랑이었다면 색계는 소유하지 않는, 철저한 관념의 사랑이다. 반면 무색계는 관념마저 초월하는 사랑이다. 흔히 사랑의 단계를 에 로스니, 아가페니 하는 구분으로 이해하지만, 이 삼계 속에 나타나는 불교적 사 랑관은 퍽 흥미로운 대비라고 생각한다.

4. 삼천대천 세계

성,주,괴,공을 되풀이하는 세계를 우리는 지구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 속 에는 실로 무한한 세계가 상존한다. 서로 다른 1천 세계를 합해서 1소천 小千 세계라고 한다. 이 1소천 세계를 1000배 한 것을 1중천 中千 세계라고 한다. 이 1중천 세게를 다시 1000배 한것을 1대천 大千 세계라고 한다. 이 소천,중천,대 천 세계를 통틀어서 삼천대천 三千大千 세계라고 한다. 이것을 한 부처님이 통 솔하는 세게라고 보고, 또 다시 백천만억 부처님이라는 표현을 하기 때문에 실 로 세계를 무량,무변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치 허공의 먼지처럼,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처럼, 광대 무변한 세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세계관을 말할 때, 우리는 무한의 세계관 이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사다카타 아키라는 이 소천을 은하계에 비유했는데, 그것은 적절한 대비이다. 1000의 1000배를 중천 세계로 보고, 그 100만의 세게에 대한 1000배, 즉 10억의 세계를 대천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관념을 우주 속에 있는 모든 생 명들의 세계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60억 가까운 인간들이 모여 살지 만, 서로 얼굴을 맞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생활의 터전, 언어 의 장벽, 즉 서로의 세계 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짐승, 미생물의 세게로까지 생각을 확대시켜 나간다면, 가히 그 세계는 사량 思量할 수 없는 무한으로 치닫 고 만다. 삼천대천 세계는 바로 그 점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 은유를 갖가지 방 편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III. 극락과 지옥

1. 팔열지옥 팔한지옥

지옥은 나라카 Naraka의 의역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구사론 俱舍論>>이라 는 논서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지옥은 지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며 극악한 죄를 저지른 이들이 고통을 받는 곳이라고 설명된다. 가장 고통받는 곳을 무간 지옥 Avici 이라고 하며, 그 위로 팔열지옥 八熱地獄이 있다.

① 등활 等活 지옥 (Samjiva)

② 흑승 黑繩 지옥 (Kalasutra)

③ 중합 衆合 지옥 (samghata)

④ 호규 號叫 지옥 (Raurava)

⑤ 대규 大叫 지옥 (Maharaurava)

⑥ 염열 炎熱 지옥 (Tapans)

⑦ 대열 大熱 지옥 (Pratapans)

⑧ 무간 無間 지옥 (Avici)

이들 지옥에서 당하는 고통의 질에 관해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주로 인간 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옥한 방법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고 설명된다. 더욱 기막힌 점은 고통의 끝이 결코 죽음이리나는 안식 安息 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이곳에서는 또다시 태어나고 고통을 받는 일이 무수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또 이들 지옥에 떨어지는 업을 짓는 이들에 대해서도 상세한 언급이 있으나 이 곳에서는 생략한다. [보다 상세한 논급으로는 E.Conze 編, 졸역, <<불교의 성 전>>(고려원,1985)및 대장경 가운데 <<정법념처경 正法念處經>>, 원신 源信의 <<왕생요집 往生要集>>등을 참조할 것.]

이들 지옥은 모두 여덟이지만, 한 지옥마다 네 개의 별도로 열려진 문을 갖고 있다. 이 하나의 문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부 副 지옥이 있기 때문에 결국 여덟 지옥은 128개의 부지옥을 가진다는 말이다.

① 당외 唐畏 부지옥

② 시분 屍糞 부지옥

③ 봉인 鋒刃 부지옥

④ 열하 熱河 부지옥

① 에서는 뜨거운 재 속을 걷게 되고, ② 에서는 시체와 똥의 수렁에 빠지며 구 더기에게 골수가 빨리게 된다. ③ 에서는 칼날이 무성한 길을 걸으면서 온몸이 찢기우고, ④ 는 끓어오르는 탕 속에 던져진다. 그 다음에 설명되는 지옥이 팔한지옥 八寒地獄 이다.

① 아부다 지옥 (Arbuda)

② 니라부다 지옥 (Nirabuda)

③ 아타타 지옥 (Atata)

④ 하하바 지옥 (Hahava)

⑤ 후후바 지옥 (Huhuva)

⑥ 우팔라 지옥 (Utpala)

⑦ 파드마 지옥 (Padma)

⑧ 마하파드마 지옥 (Mahapadma)

위의 팔한지옥은 팔열지옥과 달리 끝없는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지옥을 말 한다. [Atata,Hahava,Huhuva 등은 모두 의성어이다. 즉, 인도어에서 고통받거 나, 괴로움 때문에 내는 비명, 신음 소리를 지옥의 이름으로 설정한 것이다. 첫 번째의 Arbuda는 원래 천연두란 의미이고, 두번째의 Nirabuda는 부스럼이 생겨 서 온 몸이 짓무리는 일종의 문둥병 같은 병을 가리킨다. 이 모든 고통들이 추 위로서 생긴다는 의미에서, 이 팔한지옥은 그대로 병명이나 고통 소리를 명칭으 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지오근 팔열지옥과 128개의 부지옥, 그 리고 팔한지옥을 합쳐 도합 144지옥이 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구사론>>에서 는 이것에 덧붙여서 외로운 지옥 을 말하고 있다. 이 지옥에 관해서는 구체적 인 설명이 없지만, 강,산,들,지하 등에 산재해 있다고 하였다. 짐작건데 다른 이와 함께 겪는 고통이 아니라, 혼자만이 당해야 하는 각종 압박이나 스트레스 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듯하다. 이것을 합할 경우에는 모두 145개의 지옥이 되 는 셈이다.

2. 정토의 세계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세계는 극락 혹은 정토 淨土로 불린다. 가장 기쁜 곳이 라는 의미에서 수카바티 Sukhavati, 즉 극락이라고 한다. 이에 관한 언급으로 << 아미타경 >> 등이 있는데, 대체로 그 세계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극락에는 일곱 겹의 난간, 구슬로 장식된 그물, 일곱 겹의 가로수가 있다. 그 곳의 중앙에는 연못이 있는데, 금,은,유리,수정이 네 가지 보물로 장식되어 있 다. 하늘에서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하루 종일 만다라꽃 Mandarava 이 하늘 거리며 대지에 흩날릴 때면 황금빛 지면에 수북이 쌓인다. 이 정토의 중생들은 매일 아침 옷을 단정하게 입고, 꽃대바구니에 이 꽃들을 담아서 다른 세계의 10 만억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공양한다.

식사는 하루 한 끼인데, 식사 후 에는 산책을 즐긴다. 또 극락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무수한데, 그 가운데서도 가 릉빈가 迦陵頻伽/Kalavinka 가 가장 아름답다. 이 새들의 소리는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중생들은 이 소리를 듣고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생각하게 된다. 또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네 가지 보배로 장식된 가로수나 구슬로 장식된 그물들이 기묘한 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차미 아름다운 교향곡과도 같다. 이 나라에는 아미타 Amita 라고 부르는 부처님이 계신다. 그는 한량 없는 목숨 을 지닌 분으로서 언제나 이곳을 염원하는 이들의 지주 支柱가 된다. 또 그는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이 계신다. 만약 이 나라에 태어나고자 한 다면 염불만이 첩경이다. 즉, 지심으로 나무아미타불 을 염하게 되면 임종시 에 아미타불이 그를 영접하여 이 정토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토왕생의 염불비원 念佛悲願 이라고 한다. 정토사상은 대승불교의 중,후기에 생겨난 사상이다. 즉, 초기의 불교에서는 지옥에 대한 설명은 장황했 지만 내세관은 괄목한 만한 것이 적었다.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확고한 내세관 이 나타나는 바 그것이 바로 정토사상이다. 정토 신앙은 민중적 보편성과 함께 왕생의 인연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면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는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신라의 삼국통일 직후부터 유행하였고, 근자에 이르기까지 가장 폭넓 은 지지를 얻고 있는 사상 형태이다. 그러나 고려 말엽에 선종이 유행하면서 이 정토에 대한 관념은 조금씩 변형된다.

<<유마경>>의 가름침대로 마음이 맑아야 정토가 맑아진다. 는 대승적 해석이 유행하게 된다. 선가에서는 이 정토를 어떤 실재적이고, 구상적인 세계로 파악하는 일을 거부한다. 심저이 속조혜능은 십 만 팔천 리를 지나야 정토가 있다 는 경전의 가르침을 우리 몸 안에 잇는 십악 팔사 라고까지 설명한다. 즉, 정토에 왕생하려면 염불의 공덕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갖는 수련 생활이 필요함을 역설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정토사상은 고도의 철학성을 갖춘 자력과 타력의 조화로서 이해되기도 한다. 단순히 서방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타력 신앙의 자세가 아니라, 내 몸을 닦는 자력 의지가 선 행해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극락과 지옥에 대한 논의는 거 의 대부분의 불교 사상가들에 의해서 상징과 은유 로 이해되어 왔다. 즉, 민중 들의 도덕성 제고를 위한 시청각적 의미가 강하다고 인식되었던 것이다.

IV. 남기는 말

신화의 세계는 상징 symbol'이다. 특히 종교의 우주관에서는 절제된 은유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내는 일 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불교는 지금부터 2600여 년 전의 가르침이다. 가학적 지식이나 인지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격세 지감이 든다. 따라서 불교적 우주관을 절대시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상징성에 천착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고 본다. 불교의 우주관은 석가를 중심으로 한 고대 불교인들의 우주의 상상력 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다소 황당무계한 내용도 있고, 놀랄 만큼 과학적 토대 가 갖추어진 상황 설명도 있다. 그러나 전체를 흐르는 맥락은 업과 윤회라는 등 식이다. 또 이 윤회가 영겁회귀로서 반복된다는 주장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우주를 주재하는 힘 의 근원을 결코 인격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불교적 용어로는 다르마 Dharma 가 바로 그것이다. 섭리, 질서, 원리, 진리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다르마야말로 우주를 관통하는 근원적 힘이다. 그 러나 다르마는 비인격적일 뿐 아니라 초인격적이다. 이 궁극적 원천을 불교에서 는 일심,진여, 법계, 여여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과 소멸에 대한 불교의 견해는 매우 낙관적이다. 불교에도 종말론 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법, 상법, 말법 등의 시대 구분이 불교적 종말론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종말을 영원한 파멸로 이해하지 않는다. 종말의 끝은 새로 운 출발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법 중생들에 대한 경종의 의미만이 부여될 뿐 위기 의식으로까지 발전할 개연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지면 관계상 대승불교의 법계론에 관해서 상세하게 언급하지 못했다. 또 불교 의 우주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중국 신화, 특히 유가의 관점에 자세하게 서술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기회 있는 대로 보정 발표할 예정이다.

계간 과학사상 제 10호 1994년 가을호

Written by 정병조(동국대 교수,불교철학)

[출처] 불교에서 본 세계 ·자연 ·우주|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