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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세계의 불교학자 10.체르바츠키 / 권서용

체르바츠키, 불교 논리학의 새 길을 연 러시아 학자

 

인식(프라마나)으로서 종교와 열반(니르바나)으로서 철학

불교는 종교(religion)이자 철학(philosophy)이다.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nirvāna)이며 철학의 최종적 지향은 바른 인식(pra-māṇa)이다. 그래서 불교는 바른 인식을 근거로 열반을 지향하는 것이다. 즉 바른 인식 없는 열반은 맹목이며 열반 없는 바른 인식은 공허하다. 불교가 맹목과 공허 사이에 중(中)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열반이라는 하나의 수레바퀴와 바른 인식이라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로 굴러가는 수레[乘]의 철학이자 종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열반이란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이다. nir는 부정접두사이며 vāna는 번뇌의 불을 의미하기 때문에 번뇌의 불이 소멸한 상태 즉 마음이 고요한 적정심(寂靜心) 혹은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은 부동심(不動心)을 표현한 것이다. 해탈(解脫)은 그것의 의역이다. 또한 바른 인식이란 프라마나(pramāṇa)의 번역이다. pra는 접두어로서 ‘~향하여, 대하여’이며 ma는 술어로서 ‘헤아리다, 재다, 측량하다, 파악하다, 인식하다’이며, ana는 접미어로서 ‘수단, 도구, 근거’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자기와 자기 밖의 타자를 헤아리는 것이다. 그 헤아림의 양상은 수동적일 수도 있고 능동적일 수도 있으며, 부정적일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이 모두는 생명체의 생존을 향한 자기표현이다.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인간과 같은 모든 생명체는 살아 있는 한 무엇인가를 향해, 무엇인가에 대해 헤아리는 행위를 한다. 헤아리지 않으면, 아니 헤아리지 못하면 그 생명체는 죽음이다. 이 ‘헤아림’은 ‘느낌(feeling)’이라 하기도 하고 ‘파악(prehension)’이라 하기도 하며, ‘인식(knowledge)’이라 하기도 하고 ‘직관(intuition)’이라 하기도 하며 ‘추리(inference)’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 생명체의 유기체적 활동 자체를 프라마나라 한다. 이를 동아시아문명권에서는 헤아릴 양(量)이라 한역했고, 오늘날 학계에서는 인식 · 인식수단 · 인식근거 · 인식방법 · 인식도구 등으로 번역한다.

이 니르바나와 프라마나의 관계를 다시 칸트식으로 말하면 니르바나 없는 프라마나는 공허하며 프라마나 없는 니르바나는 맹목이다. 따라서 불교가 중도(中道)의 가르침일 수 있는 것, 아울러 종교이면서 철학이며 철학이면서 종교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니르바나와 프라마나라는 두 기둥에 의해 축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불교는 니르바나의 철학(The philosopy of Nirvāna)이자 프라마나의 종교(The religion of Pramāṇa)라 할 수 있다.

제국학습원과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수학

놀랍게도 최초로 불교를 니르바나의 철학과 프라마나의 종교, 이렇게 역동적으로 파악한 사상가는 바로 러시아의 체르바츠키이다. 그의 온전한 성명은 표도르 이폴리토비치 체르바츠키(Fyodor Ippolitovich Stchbatsky, 1866~1942). 그는 19세기 말, 당시 러시아 제국령이었던 폴란드 중남부 도시인 키엘체(kielce)에서 태어났다. 12세 되던 해인 1877년 차르스코예 셀로(Tsarskoye Selo) 리체움(Lyceum, 제국학습원)에 입학하여 1884년 졸업했다. 이 학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1811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구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 교외에 있는 차르스코예 셀로에 세운 학교이다.

자유로운 학풍으로 알려진 이 학교는 수학기관이 6년이며, 교과목으로는 다섯 분야가 있다. 먼저 철학과 도덕 분야에는 신학 · 윤리학 · 논리학 · 법학 · 정치경제학 등, 다음으로 어학과 문학 분야에는 러시아어 · 라틴어 · 프랑스어 · 독일어 · 언어학 · 수사학 등이며, 역사 과목 분야에는 러시아 역사 · 세계사 · 지리학 등, 수리교과 분야에는 수학 · 물리학 · 천문학 · 우주론 · 지학 · 통계학 등, 마지막으로 미술과 체육 분야에는 서도 · 회화 · 춤 · 펜싱 · 승마 · 수영 등이 포함된다. 체르바츠키는 이 학교에서 6년 동안 문사철(文史哲)과 예체능 등 기본적인 인문교양 교육을 습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제국학습원 졸업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역사문헌학부에 진학하여 1889년 졸업했다. 그곳에서 인도학자인 미나에프(Ivan Minayev, 1840~1890)와 인도의 고대 문학과 설화 연구자인 올덴부르크(Oldenburg, 1863~1934)로부터 인도학과 고대 인도 문학 및 문화 등을 사사하였다. 아울러 그들로부터 인도 민족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고상한 이상에 대한 헌신을 전수하였다.

그의 학부 논문 〈인도-유럽어의 두 개 시리즈의 성문어에 관하여(On the Two Series of Glottal Sounds in Indo-European Langua-ges)〉는 언어문헌학(philology)에 대한 그의 깊은 조예와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31세 되던 해인 1897년, 올덴부르크와 함께 희소한 불교 텍스트를 소장한 불교 문고(Bibliotheca Buddhica)의 출판을 개시했다. 이 불교 문고는 1897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부속사업으로 발기된 대승불전출판회(大乘佛典出版會)에서 간행되었다. 1962년까지 총 32책(冊)의 불전이 간행되었다.

 

뷸러와의 만남

체바르츠키는 언어문헌학에 관한 심화된 연구와 교수직을 준비하기 위해 1889년 졸업과 동시에 고대 인도학, 시학(詩學), 금석학, 고문서학에 탁월한 전문가인 오스트리아의 인도학자 뷸러(Georg Bühler, 1837~1898)를 방문했다. 빈에서 체르바츠키는 고대 인도의 시학, 비문학(碑文學), 파니니의 문법학 관련 텍스트와 논서(sastra)를 인내와 열정으로 공부하고, 철학적 텍스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그의 학문적 관심을 결정했으며, 산스끄리뜨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텍스트 크리닉(Text clinic)을 기반으로 철학적 논문을 연구할 필요성에 대한 확신을 강화하게 되었다.

빈에 있던 그의 멘토인 뷸러 교수는 인도에서 수년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뷸러는 인도의 전통적인 산스끄리뜨 교육방법에 주목하여 유럽대학에 산스끄리뜨를 가르치는 시스템 내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도입했다. 고대 인도 언어인 산스끄리뜨에 대한 뛰어난 지식 때문에 체르바츠키는 시론(詩論)과 불교의 논리와 철학에 관한 가장 어려운 텍스트를 연구할 수 있었다.

《고대 인도의 논리》 출간

체르바츠키는 뷸러로부터 인도의 시론을 배움과 동시에 점차 철학으로 관심을 확대해갔다. 1889년 그는 독일 본에 있는 헤르만 야코비(Herman Jacobi) 문하에서 불교철학 및 철학적 텍스트를 배웠다. 특히 논리학에 대한 관심은 특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돌아온 뒤 학생들에게 산스끄리뜨 강의를 하면서 불교철학과 논리 연구에 천착한 결과, 1902년 부피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저술인 《고대 인도의 논리(Logic in Ancient India)》를 발간했다. 제식 만능주의에 근거한 인도의 정통 바라문주의에 대항하여 출현한 불교는 그들과의 논쟁에서 논리와 변증법을 가지고 대론한다. 체르바츠키는 불교철학의 핵심을 논리와 변증법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인도의 논리는 고대 그리스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럽 중심주의적 편견을 지니고 있던 학자들에게 체르바츠키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인도의 논리는 인도라는 대지 위에 자연적인 과정에서 발전한 전적으로 독창적 산물이다.(Indian logic is an entirely original product, which developed in the natural course on the Indian soil.)”

《후기불교 교의의 인식론과 논리학》 그리고 다르마키르티

그즈음 로마에서 개최된 동양학자들의 국제회의에서 북방불교와 중앙아시아 문화 연구를 위해 국제적인 상호협력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자, 체르바츠키는 티베트어 · 중국어 · 몽골어 · 인도 고전 산스끄리뜨어로 된 불교와 불교철학에 관한 문헌 수집을 위해 인도와 티베트 그리고 몽골 등지의 여행에 나섰다. 그 여정의 끝인 1903년과 1909년에 걸쳐 본격적인 불교철학 연구서인 《후기불교 교의의 인식론과 논리학(Theory of Knowledge and Logic of the Doctrine of Later Buddhists)》 1권(1903년)과 2권(1909년)을 출간했다. 전자는 인도불교 인식논리학의 완성자인 다르마키르티(Dharmakīrti, 600~660)의 저서 7권 가운데 하나인 《니야야빈두(Nyayabindhu)》의 산스끄리뜨 번역이며, 후자는 다르마키르티안 가운데 한 사람인 다르못따라(Dharmottara, 法上)의 《니야야빈두》 주석서인 《니야야빈두디카(Nyayabindhuttika)》의 번역이었다. 이 두 권의 텍스트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유럽 학계에 최초로 다르마키르티 사상이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 인식논리학의 정초자 디그나가와 완성자 다르마키르티

불교를 좁은 의미에서 철학이라고 할 때는 인식론과 논리학을 의미한다. 이 인식론과 논리학 그리고 언어철학을 중심으로 인도불교를 재구성하기 위한 초석을 놓은 불교 사상가가 디그나가(Dignāga, 陳那, 480~540)이며, 완성을 이룬 사상가가 바로 다르마키르티이다. 디그나가의 인식논리학 주저는 《프라마나삼웃차야(pramāṇasamuccaya, 量集成)》이며, 이것을 비평적으로 해석한 주석서가 바로 다르마키르티의 주저인 《프라마나바르티카(pram-āṇavarttika, 量評釋)》이다. 이 책은 제1장 추리론, 제2장 서론, 제3장 지각론, 제4장 변증론 등 4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주저의 내용을 학생들에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저술된 것이 《니야야빈두(正理一適)》이다. 《니야야빈두》는 제1장 지각론, 제2장 추리론, 제3장 변증론으로 구성되었다.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대한 개론서가 곧 《니야야빈두》이며, 이것의 주석서가 《니야야빈두티카》인 것이다.

바수반두의 《구사론》의 국제적 연구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논리학은 갑자기 땅에서 솟은 것이 아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줄기와 뿌리가 존재해야 한다. 인식논리학의 뿌리는 물론 기원전 5세기 고타마 붓다에 연원하지만, 줄기는 부파불교의 사상가들과 초기 중관학파와 중기 유식학파 사상가들의 사유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도불교의 4대 학파라 할 수 있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경량부(經量部), 중관학파(中觀學派), 유식학파(唯識學派) 사상가들의 사유체계가 바로 불교 인식논리학의 줄기 즉 근간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체르바츠키는 몽골, 티베트, 바이칼, 중앙아시아 등 지역의 여행을 통해서 많은 대승 불전과 논서들을 발굴했다. 그는 나가르주나(Nāgārjuna, 중관학파의 개조, 龍樹)와 마찬가지로 제2의 붓다라 칭해지는, 설일체유부 사유체계에서 시작하여 유식학파의 사유체계를 완성한 바수반두(Vasubandhu, 유식사상의 완성자, 世親)의 주저 《구사론》 연구를 수행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의 인도학자 레비(S.Levi, 1863~1935), 벨기에의 푸생(Louis de la Vallee Poussin, 1869~1938), 영국의 로스(D. Ross, 1877~1971), 일본의 오기하라(荻原雲來, 1869~1937) 등과 함께 국제적 규모의 연구 시스템을 구축했다. 설일체유부를 중심으로 하는 부파불교의 핵심 개념인 다르마(Dharma)를 연구한 그의 저서 《불교의 중심개념과 ‘다르마’의 의미(The Central Conception of Buddhism and the meaning of the word ‘Dharma’)》는 이러한 관심과 노력의 결실이다.

이 책은 부피가 크지 않지만 ‘다르마’ 개념의 해명에 전념한 매우 가치 있는 내용으로 그의 학문적 경력과 발전에서 중요한 저서였다. 1918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회원, 1928년 불교문화연구소 소장, 동양연구소의 인도 티베트 부서장, 런던의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 파리의 아시아학회(Société Asiatique, 베를린의 독일동양협회(Deutsche Morgenlandische Gesellschaft) 회원으로 활동했다.

《불교의 열반 개념》과 나가르주나

1927년 체르바츠키는 중관사상을 근간으로 불교의 열반 개념을 해석한 《불교의 열반 개념(The Conception of Buddhist Nirvana)》을 영어로 출간했다. 이 텍스트는 불교의 열반에 대한 최초의 철학적 해석이며, 히나야나(Hinayana, 소승)와 마하야나(Māhāyana, 대승)학파 사이의 개념 형성에서 근본적 차이를 분별할 수 있게 했다. 중관학파의 개조인 나가르주나의 《중론송》과 그의 에피고넨인 찬드라키르티(Candrakīrti, 月稱)의 《프라산나파다(Prasannapadā)》를 기반으로 열반을 분석한 책이 바로 《불교의 열반 개념》이다.

이 책은 2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1절 해제, 2절 불교의 열반 개념과 내용 분석, 3절 나가르주나의 연기(상대성)에 관한 논문, 4절 열반의 고찰로 이루어져 있다. 제2부는 1절 절대에 대한 불교 개념의 변화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부록에는 나가르주나의 《중론(中論)》 제1장 〈관인연품(觀因緣品)〉과 제25장 〈관열반품(觀涅槃品)〉의 번역이 실려 있다. 책명은 열반에 대한 연구이지만 나가르주나의 핵심사상인 연기(緣起)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열반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불교철학의 시금석 《불교논리학》

이러한 작업을 근거로 1930년~1932년에 걸쳐 체르바츠키 자신의 주저라 할 수 있는 《불교논리학》 Ⅰ, Ⅱ를 영어로 출간했다. 그는 이 책으로 그의 사유 여정의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논리적 사유체계를 근간으로 인도불교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불교논리학》의 Ⅰ권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서론
제1부 실재와 지식
제2부 감성세계(제1장 순간적 존재의 이론, 제2장 인과, 제3장 감관지각, 제4장 궁극적 실재)
제3부 구성된 세계(제1장 판단, 제2장 추론)

또한 《불교논리학》 Ⅱ권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 제3부 구성된 세계(제3장 삼단논법, 제4장 논리적 오류)
- 제4부 부정(제1장 부정판단, 제2장 모순율, 제3장 보편, 제4장 변증법, 제5장 외부세계의 실재)

목차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불교 나아가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논리를 중심에 두고 각 학파와의 논쟁 나아가 유럽 사유체계와의 비교 등은, 체르바츠키가 다른 사유체계에도 얼마나 깊은 조예가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체르바츠키의 불교철학 이해

이 두 권의 텍스트의 핵심개념인 ‘열반’과 ‘인식논리’를 통해 체르바츠키가 불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불교의 열반 개념》은 불교의 열반(nirvāna)을 주제로 다룬 텍스트라고 한다면, 《불교논리학》은 불교의 인식논리(pramāṇa)를 포괄적으로 해석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전자가 종교론의 핵심주제라면 후자는 인식론의 핵심주제이다. 그런데 체르바츠키는 불교를 맹목적 신앙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합리적 인식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서양의 근대 인식론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체르바츠키는 《불교논리학》 Ⅰ권 제1부 ‘실재와 지식’에서 불교논리학의 범위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인식은 반드시 모든 성공적인 인간 행위에 앞선다. 따라서 그것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다르마키르티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의 저술이 헌신하고자 하는 학문의 범위와 목적을 한정하고 있다. 인간의 행위 목적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또는 바람직한 것과 바람직하지 않은 것 등이 있다. 합목적적인 행동은 바람직한 것을 얻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피하는데 있다. 올바른 인식은 성공적인 인식인데, 말하자면 그것은 역으로 성공적인 행동이 뒤따르는 결단 또는 판단이 뒤를 잇는 인식이다. 잘못 인도되거나 예상과 소망에 있어서 지각력이 있는 존재(有情)들을 기만하는 인식은 오류 또는 잘못된 인식이다. 오류와 의심은 올바른 인식의 반대이다. 그리고 또 의심은 두 가지 종류로 되어 있다. 어느 쪽이든지 그것을 전혀 지식이라고 할 수 없는 완전한 의심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런 결단 그리고 판단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합목적적인 행동도 그러한 의심의 뒤를 잇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다소간 성공에 대한 기대 내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 올바른 인식과 꼭 마찬가지로 그때 판단과 행동이 그것의 뒤를 잇는다.

‘올바른 인식은 반드시 모든 성공적인 인간 행위에 앞선다. 따라서 그것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는 《니야야빈두》의 서두에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올바른 인식은 프라마나이다. 왜 프라마나를 연구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행위의 성공을 위해서이다. 인간의 행위 목적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으며, 바람직한 것도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도 있다. 범주적으로 말하면 세속적인 행위의 목적도 있고 초세속적인 행위의 목적도 있다. 기업가들의 기업 행위는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며, 정치인의 정치 행위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이것은 세속에 살아가는 속인들 행위의 목적이다. 반면 수행인들의 수행 행위는 열반이나 깨달음을 얻어 성인이나 붓다가 되는 것이 그 목적이라고 했을 때 이는 초세속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행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바른 인식 즉 프라마나가 전제된다는 것이다. 바른 인식 없이 이윤을 획득하는 목적 성취, 권력을 쟁취하는 목적 성취, 성인이나 붓다가 되는 목적 성취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인식(수단, 도구)은 무엇인가? 다르마키르티에 의하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직접지각(pratyakṣa)이며 또 하나는 간접추리(anumana)이다. 지각과 추리라는 두 개의 수단 혹은 도구를 가지고 실상을 제대로 인식할 때 얻고자 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체르바츠키는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불교논리학을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이것은 불교를 인식론의 관점에서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체르바츠키는 ‘열반’이라는 종교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바른 인식(프라마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 나가르주나의 《중론》 〈관열반품(觀涅槃品)〉을 논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열반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이것이 〈관열반품〉의 핵심이다. 나가르주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모든 존재가 空하여 발생도 없고 소멸도 없다면 무엇이 끊어지고 무엇이 소멸되기에 열반이라 칭하겠는가(若一切法空 無生無滅者 何斷何所滅 而稱爲涅槃)?”(25-1)

“(그대의 말대로) 만일 모든 존재가 공하지 않다면 (오히려) 발생도 없고 소멸도 없으니 무엇이 끊어지고 무엇이 소멸되기에 열반이라 칭하겠는가?”(若諸法不空 則無生無滅 何斷何所滅 而稱爲涅槃)(25-2)

“획득되는 것도 아니고 도달되는 것도 아니며 단멸된 것도 아니고 상주하는 것도 아니며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닌 것, 이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無得亦無至 不斷亦不常 不生亦不滅 是說名涅槃)(25-3)

열반을 포함한 일체가 공(없다)이라고 한다면 없기 때문에 열반은 있을 수 없고, 일체가 있다고 한다면 있기 때문에 열반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열반은 공(空)이라고 하거나 유(有)라고 분별하는 곳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소멸하는 것도 아니며 상주하는 것도 아닌 것, 이것이 바로 열반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열반은 사유 분별을 넘어서 있는 것, 실상을 봄(seeing)에서 드러나는 경지이다. 일체는 공 · 무자성(無自性) · 연기(緣起)라고 보는 것, 이것이 곧 열반이다. 이렇게 초세속적인 열반을 우리의 봄 즉 프라마나 속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사상가가 체르바츠키이다.

체르바츠키의 한계와 불교철학에 대한 그의 공헌

다르마키르티의 언어철학과 인도의 언어철학 연구자인 아카마쓰 아키히토(赤松明彦)에 의하면 불교인식론의 연구는 불교학 연구의 일대 조류로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 서전을 장식한 이가 러시아의 불교학자 체르바츠키이다. 그는 체르바츠키의 불교 연구의 특징은 문헌학적이기보다는 철학적 경향을 보인다고 평가한다. 특히 그의 철학적 해석의 배경에 칸트를 중심으로 한 서구 인식론 체계가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오히려 불교 인식논리학을 연구하는 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체르바츠키의 불교인식론 이해의 한계를 언급한다.

체르바츠키는 ‘본질로서의 추론인’에 근거한 추리, 앞의 예에서 말하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성질에 의해서 소리의 ‘비항구적인 것’을 논증할 경우, 그 대전제에 해당하는 명제를 분석판단에 근거한 명제라고 간주한다(다른 한편 ‘결과로서의 추론인’에 근거한 추리는 종합판단에 근거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올바른 것일까? 확실히 ‘비항구적인 것’과 ‘만들어진 것’이라는 성질은 함께 ‘소리’라는 동일한 현실적 존재를 개념적으로 분석한 결과 구성된 속성개념이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분석명제의 개념에서 도출된 사실은 아프리오리한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험에서 독립한 형식적인 진리나 개념의 영역에 있어서만 성립하는 진리를 다르마키르티는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부정적이다. 그는 다만 개념에 근거한 인식작용에 관해서는 그것을 무지(avidya)라 보는 것이며, 단지 이와 같은 인식의 확실성은 실제 경험을 통한 유효성에 의해 보증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실제 생활에서 사태의 유무를 인식작용 확실성의 기초에 두는 것은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의 하나의 특징이며, 이 점에서도 앞의 체르바츠키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다르마키르티의 논리학이 항상 존재론적 근거를 계속 묻고 있는 것만 보아도, 예를 들면 ‘본질로서의 추론인’을 근거로 행하는 추리를 개념의 세계에서만 성립하는 연역적 논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본질로서의 추론인’에 근거한 추리란, 예를 들면 “(주장명제) 소리는 비항구적인 것이다. (이유명제) 왜냐하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유례명제) 무릇 만들어진 것은 비항구적인 것이다.”의 경우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추론인에 의해 ‘비항구적인 것’이라는 추론 대상을 추론하는 것은 ‘본질로서의 추론인’에 근거한 추리이다. 왜냐하면 추론 대상인 ‘비항구적인 것’과 추론인인 ‘만들어진 것’은 본질을 같이하는 동일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논증식을 아리스토텔레스식 삼단논법으로 변환하면 “(대전제) 무릇 만들어진 것은 비항구적인 것이다. (소전제) 소리는 만들어진 것이다. (결론) 그러므로 소리는 비항구적인 것이다.”가 된다. 여기서 대전제인 유례 즉 ‘무릇 만들어진 것은 비항구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는 체르바츠키에 의하면 분석명제이다. ‘비항구적인 것’이라는 대개념은 ‘만들어진 것’이라는 매개념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 명제의 확실성 근거는 선험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마키르티는 두 항의 논리적 관계의 확실성 근거를 개념 속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념이 근거하고 있는 ‘소리’라는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 vastu)의 동일관계에서 구하기 때문에 분석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개념과 개념의 추상적 관계가 아니라 개념이 근거하고 있는 현실적 존재의 관계 속에서 확실성의 근거를 찾는다는 점에서 칸트와 다르마키르티는 사유를 달리한다는 것을 아카마쓰 아키히토는 지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지적은 온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의 논리학은 크게 보면 유사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상당한 차이성을 노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過)에도 불구하고 체르바츠키의 《불교논리학》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공(功)이 있음을 아카마쓰 아키히토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체르바츠키의 《불교논리학》은 이와 같은 해석상의 문제를 남겨놓고 있어서, 불교논리학의 입문서로서는 부적당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연구한다고 한다면 많은 계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중요성은 전혀 상실되지 않는다. 체르바츠키의 공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예를 들어 다르마키르티의 《프라마나바르티카》의 주석자에 문헌학파, 철학학파, 종교학파의 3가지 계통이 있다고 소개한 점을 들 수 있다. 이 분류는 티베트 찬술문헌인 종의서(宗義書)의 기술과 놀랄 만한 대응을 보인다는 것이 최근 보고되고 있지만, 이 점에서 체르바츠키가 이미 일찍이 티베트 문헌의 무엇인가를 전거로 하여 불교철학의 개론을 배웠다는 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르마키르티의 주저 《프라마나바르티카》가 후기불교 연구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텍스트에 대한 호한(浩瀚)한 주석서들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주석가는 경량 · 유식의 입장에서, 다른 주석가는 경량 · 중관의 입장에서, 또 다른 주석가는 유식 · 중관의 입장에서 《프라마나바르티카》를 주석한다. 이에 대해 체르바츠키는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다르마키르티의 주석자들을 문헌학, 철학, 종교학이라는 세 개의 범주를 가지고 그들 주석서의 성격과 내용을 분류했다. 이러한 분류방식은 티베트불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체르바츠키는 티베트 문헌까지도 섭렵했음을 아카마쓰 아키히토는 인정하고 있다.

체르바츠키는 인식논리를 중심으로 한 불교 연구 특히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의 불교인식 논리학 연구의 시작을 알린 사상가이다. 이러한 체르바츠키의 연구를 토대로 유럽에서 ‘금세기 중엽에 활약하였던 학자로서 불교 인식논리학뿐만 아니라 불교철학과 인도철학 전반에 걸쳐서 최대의 공적을 올렸던’ 빈의 프라우발너(E.Frauwallner)가 사계에 등장한다. 체르바츠키의 연구가 다르마키르티 인식논리학의 일부에 그쳤다면 프라우발너의 연구는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 사상과 저작에 관해서 전체적인 조망을 우리에 부여하였으며 그의 고찰은 불교 인식논리학 연구의 좌표가 되었다. 불교 인식논리학에 관한 빈학파는 바로 프라우발너로부터 시작되어 그의 뛰어난 제자인 베터(T. Vetter)와 슈타인켈너(E. Steinkellner) 그리고 슈미트하우젠(Schumithausen)과 같은 후계자들이 이어지면서 더욱 체계적인 연구로 오늘에 이른다.

체르바츠키의 불교 인식논리의 연구방법을 근거로 프라우발너와 동시대의 일본의 연구자들도 근대적 방법론을 통한 불교 연구를 시작하게 되는데 기타가와 히데노리(北川秀則), 핫토리 마사아키(服部正明), 카지야마 유이치(梶山雄一), 도사키 히로마사(戶崎宏正), 타니 타다시(谷貞志), 가츠라 쇼류(桂紹隆) 등의 뛰어난 연구들이 있다. 이렇게 유럽의 빈학파를 중심으로 한 불교 인식논리학의 연구와 일본의 연구 연원이 바로 체르바츠키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 척박한 시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불교를 맹목적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합리적 인식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불교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연 그의 공적은 후학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당대의 많은 지성인들이 체르바츠키를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동양학자이다.” — 상끄리띠야야나(Rahula Sankrityayana)

“우리 인도인들이 우리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고 우리 자신의 철학적 유산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회복하는 데 일조한 사상가이다” — 차토파드야야(Debiprasad Chattopadhyaya)

“서양에서 불교철학의 제1인자는 체르바츠키이다.”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권서용 jungy5182539@hanmail.net
부산대학교 철학과에서 〈다르마키르티 인식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다르마키르티와 불교인식론》 《깨달음과 자유》, 역서로 《무상의 철학》 《인도불교의 역사》 《불교인식론과 논리학》 《근대일본과 불교》 《다르마키르티의 철학과 종교》 《인도인의 논리학》 등 다수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등에서 철학과 윤리를 강의하며, 다르마키르티 사상을 국내에 알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다르마키르티사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