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

불교사상의 전개

불교사상의 전개


1. 근본불교

근본불교는 부처님의 생존시로부터 입멸 후 100년 내지 200년까지의 기간이 여기에 해당된다. 부처님이 교화활동에 전념한 약 50년을 포함하면 150년 내지 250년 동안 지속되었던 불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근본불교는 현실을 직시하고 실천함으로써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해결주의를 기본입장으로 하고 있다.


1) 불타당시의 사상계

불교의 개조인 샤카무니 붓다(Sakyamuni Buddha)가 출현하였던 기원전 6세기 무렵의 갠지스 강 중류지방은 사회적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었다. 당시 인도는 강대한 신흥왕국의 출현과 도시의 형성 등으로 급격한 정치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종교 사상계 또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인도의 고대문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작하여 대략 1000년 동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인더스 문명으로 불리는데 오늘날 인더스강 유역의 하라빠와 모헨조다로 등 도시 유적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고대문명은 문다족, 드라비다족 등을 비롯하여 일찍부터 인도대륙에 살아온 여러 종족들에 의해 이룩되어 왔다. 그러나 이후 인도의 문명은 코카서스 지방으로부터 인더스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해 온 아리야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아리야인들은 기원전 16에서 13세기 무렵 인더스 강 상류의 펀잡지방에 침입하여 기원전 11에서 9세기 무렵에는 이미 갠지즈강 상류지방으로 이주하였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계속 동방으로 진출하여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갠지스강 중류지방에 정착하였다. 이와 함께 이 지방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먼저 당시 존재하고 있던 군소부족이 점차 통합되어 강대한 국가체계가 형성되었다. 초기불교 경전에 의하면 16대국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강성했던 나라는 마가다, 코살라, 밤사, 아완띠 등이었으며 전제적인 국왕이 통치하는 군주정체의 이들 4대국에 의해 군소 국가들은 점차 합병되어 갔다. 그리하여 붓다시대에 이들 나라는 이미 갠지스강 중류지방에 각각 강대한 신흥왕국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신흥 왕국의 중심지는 도시였는데 특히 갠지스강 중류 지방의 여러 도시가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처음 이 지방으로 이주해온 아리야인 사회는 변함없이 종전과 같은 씨족제 농촌사회의 촌락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농업생산의 증대, 상공업의 발달, 화폐 경제의 촉진, 인구의 집중화 등에 따라 곳곳에 도시를 형성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 갔다.

이 같은 국가적 정세에 부응하여 사회의 구성도 점차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인도 사회구성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계급제도는 아리야인들이 갠지스강 상류지방에 이주하였던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성(四姓) 계급제도라고 한다. 사성이란 바라문(Brahmana), 왕족들(ksatriya), 서민(vaisya), 노예(sudra) 등의 네 가지 계급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바라문은 제사와 종교의 권리를 독점하는 최상위의 계급이었으며, 정치력과 군사력을 장악하는 왕족이 그 다음에, 농업 목축업 상공업에 종사하는 서민이 그 뒤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비천한 노역에 종사는 노예가 최하위 계급에 속하였다. 이것을 근대에 와서 카스트라고 하였는데 원래 카스트란 개개의 계급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쨌든 이 사성계급은 인도 아리야인의 사회구성을 특징짓는 계급제도로서 이를 기반으로 하여 바라문교가 성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급제도가 점차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변모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적 패자(覇者)로서의 국왕과 경제적 실력자로서 새롭게 등장한 자산가(資産家)이다. 국왕은 종전의 농촌사회에 있어서는 단순히 부족의 수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의 신흥 왕국에서는 이들이 지방적 분권이기는 하지만 이미 국가의 지배자로서 그 지위를 갖기에 이르렀다. 또 자산가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상업 자본가나 지방의 거대한 토지의 소유자를 가리킨다. 이 시대에 이르러 이들은 서민 계급과는 구별되는 토지의 소유자를 하나의 사회적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자로 불리는 직업조합의 장들은 상업 자본가들의 대표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이처럼 국왕이나 자산가가 사회에 커다란 세력을 가지게 됨에 따라 예로부터 내려오던 계급제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인종적으로도 아리야인이 동방으로 진출하게 됨에 따라 시작한 원주민과의 혼혈은 계급 붕괴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하여 브라흐마나 문헌에서 사성(四姓)을 열거할 경우에 반드시 바라문, 왕족, 서민, 노예의 순서로 하여 바라문을 최상위에 두고 있지만 초기불교의 성전에는 거의 대부분이 왕족, 바라문, 서민, 노예의 순서로 나타난다. 즉 바라문과 왕족의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바라문의 세력은 농촌사회를 중심으로 뿌리 깊게 잔존해 있었지만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옛날의 권위는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다.

 

정통 바라문의 사상

사회 변동에 따라 사상계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당시 철학이나 종교에 관한 사상가는 크게 바라문과 이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사문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바라문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베다 성전을 신봉하는 사제자로서 농촌 사회를 중심으로 하여 전고 다름없이 사상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술적 마술적인 제사를 주관하고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바라문의 사상은 베다(Veda), 브라흐마나(Brahmana), 아란야까(Aranyaka), 우빠니샤드(Upanisad)라는 일련의 문헌들을 통해 전개된 종교사상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전개과정은 보통 3기로 구분되기도 한다.

베다는 인도에 이주해 온 아리야인들의 우주와 인간에 대한 사유방법과 종교적 지식을 모아 편찬한 성전의 명칭으로 리그베다(Rg-veda), 사마베다(Sama-veda), 아주르베다(Yajur-veda),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의 네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그 성립이 오래된 것은 리그베다로서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를 베다 시대라고 하며 바라문 문화의 제1기에 해당한다.

신들을 찬미하는 시가모음집인 리그베다에는 무수한 자연신들이 등장한다. 대개 태양이나 불, 바람, 강과 같은 자연 현상의 다양한 힘들, 또는 추상적인 관념들이 신격화되어 천신으로서 숭배되고 찬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들 가운데 인드라는 신체적 특징과 큰 위력을 갖춘 최고의 천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들의 거룩한 행위에 대한 찬미 외에도 리그베다는 부(富), 다산(多産), 장수(長壽), 승전(勝戰) 등과 같이 인간에게 유익한 것들을 간구하는 기원을 함께 담고 있다.

그러나 자연신교적이며 다신교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이 시기에도 근원적인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사유가 싹트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주창조에 관한 찬가들이다. 즉 우주와 모든 존재는 전능의 힘을 지닌 비슈와까르만(Visvakarman)이 집을 짓듯이 만들었다고 하거나, 또는 모든 피조물들이 주(主)라고 불리는 아버지 신인 쁘라자빠띠(Prajapati)가 우주를 출생시켰다고 한다. 우주의 근원에 관한 이런 사유들이 리그베다의 노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신들에 대한 찬미, 기원과 관련하여 베다 시대 인도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의례와 제사였다. 기원전1000에서 800년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브라흐마나는 이러한 의례와 제사에 관한 규정을 자세하게 밝힌 문헌들이다. 따라서 제사가 중심이 되었던 이 시대를 브라흐마나, 즉 범서(梵書) 시대라고 부르며, 바라문 문화의 제2기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인간의 문제를 신에게 고하거나 빌기 위해 의례를 행하고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의례 또는 제사의 형식이 처음에는 간단하였고 그 목적도 단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것은 점점 복잡하고 정교하게 되어 많은 제단과 제사를 관장하는 여러 사제자들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의례와 제사는 이제 우주와 신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가지는 일종의 성스러운 기술로 간주되었다. 리그베다 외에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아타르바베다는 신에 대한 권청 또는 제사의식의 축문 및 주문집으로서 브라흐마나 시대에 성립된 것들이다. 신을 움직이게 하는 제사의 전담자는 큰 권능을 갖게 되었으며 이들은 제사에 관한 권능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 또한 향상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사제 지상주의사회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브라흐마나 시대에서는 베다 시대의 자연신교적 종교사상이 더욱 발전되어 범신론적(汎神論的) 우주론이 나타나고 있다. 즉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으로서 브라흐만이 상정되어 그가 우주 자연 등 일체를 성립시킨 다음 스스로 그 일체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뜻에서 브라흐만은 우주를 창조한 인격신인 동시에 우주의 본질이기도 한 셈이다. 이같은 일원론적 범신론의 견지에서 사제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브라흐만과 직결된 종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제자들이 브라흐만과 직결된 종성임을 주장하며 바라문 중심주의, 제사 지상주의에 빠져 있을 때 이런 현실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나오게 된다. 우빠니샤드 시대의 사상가들이 바로 그들이다. 의례와 제사를 만능으로 삼는 지나친 종교적 색채가 반성이 되고 철학적 사색이 심화된 이 시기는 기원전 800년에서 600년경으로 바라문 문화의 제3기이다.

이 시대의 문헌은 새로운 의식을 지닌 사상가들이 숲 속에서 비밀스러운 뜻을 노래한 내용의 아란야까와 그 중에서도 특히 철학적 사색이 더욱 체계화된 우빠니샤드가 있다. 우빠니샤드는 ‘가까이 앉는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서로 은밀하게 주고받은 가르침을 모아 이룩한 성전이라는 뜻이다.

이 우빠니샤드 시대에서는 제사보다 지식을 더욱 고차원적인 해탈의 열쇠로 간주하였다. 의례와 제사 대신에 사색을 통한 지적 추구가 더욱 중시된 것이다. 따라서 우빠니샤드 시대의 사상가들은 우주의 질서와 그 이면의 통일성에 관해서 사색하였고 절대적 존재와 개체적 자아의 한계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그리하여 브라흐마나시대의 일원론적인 범신론은 이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빠니샤드는 세계의 다양성의 배후, 즉 모든 신들과 피조물들, 인간과 자연의 이면에 하나의 절대적 동일성인 최고의 브라흐만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펼치고 있다. 브라흐만은 전우주이며,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우주안에 있는 모든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렇게 브라흐만을 우주와 동일시함으로써 우빠니샤드는 모든 것 안에서 브라흐만을 보고 브라흐만 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 인도인들은 모든 자연의 사물들 안에 브라흐만의 내재성을 인정하는 한편 동시에 창조된 세계를 뛰어넘는 브라흐만의 초월성에 대해서도 성찰했다. 브라흐만은 세계 전체를 포괄하되 세계를 휠씬 초월하며, 또 그 자신의 일부분으로서 온 우주에 편재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우주에 있어서 절대적 통일성의 원리가 통찰되는 가운데 그것은 인간 존재의 동일성으로 파악되기도 하였다. 즉 우주의 근원인 동시에 보편적 원리로서의 ‘브라흐만(梵)’과 인간 내면의 핵심인 ‘아뜨만(Atman, 我)’은 동일한 존재라는 우빠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이 곧 그것이다. 아뜨만은 ‘호흡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그것이 점차 생기(生氣), 신체를 의미하게 되고 나아가 자아, 영혼을 의미하는 말로 발전하였다.

우빠니샤드에 있어서 자기 본질인 아뜨만은 동시에 우주 그 자체의 본질이다. 아뜨만은 만물에 내재하여 우주의 모든 존재를 지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주의 근본이며 보편적 원리인 브라흐만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범아일여의 기본적 의미이다. 우빠니샤드 사상가들은 이같은 보편적 자아와 개체적 자아가 동일하다는 존재의 통일성을 체득하기 위해 스승의 지도 아래 학습하거나 성찰하고 명상, 요가 등의 수련을 병행하기도 하였다.

 

혁신적인 사문들의 사상

바라문에 대하여 새로운 정신적 지도자로서 등장한 것이 사문이다. 사문(samana, 沙門)이란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정도의 뜻으로 초기 우파니샤드에서는 단 한번 사용된 말이지만 이 시대 이후의 여러 문천에서는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며 일반적인 자유사상가의 총칭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들은 바라문과는 달리 예로부터 내려오던 계급제도를 무시하여 어떠한 계급도 사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모든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는 등 바라문교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언어적으로도 바라문의 용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민중의 말에 근거한 프라크리트어(俗語)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바라문교에서 규정한 네 가지 생활단계에 따르지 않았다. 네 가지 생활단계란 스승 밑에서 학습하는 청년 시절의 범행기(梵行期), 가정에서 생활하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住期), 가정과 재산을 아들에서 물려주고 숲 속에 들어가 은거하는 임서기(林捿期), 숲 속의 거처까지 버리고 완전히 무소유로 걸식하고 편력하는 생활에 들어가는 유행기(遊行期)를 말한다. 사문들은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기에 출가하여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유행생활에 들어가 여러 가지 수행을 하면서 사람들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설하였다. 바라문을 정통 사상가라고 한다면 사문은 이단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문의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것은 주로 신흥도시의 사람들이었다. 도시의 새로운 분위기에 젖은 사람들은 바라문에 대해서 종전처럼 반드시 추종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사문이 설하는 바에 공감하였다. 특히 국왕이나 자산가 같은 새로운 실력자들은 모드 사문들을 존경하고 지지하였다. 이렇게 갠지스강 중류지방에는 각각 자유로이 출가유행하고 자유로운 사상활동을 실행하는 사문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바라문이나 사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은 매우 다양하였는데 그들의 견해를 분류하여 불교에서는 62견(見)으로 자이나교에서는 363견(見)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것은 불교나 자이나교의 입장에서 각각 이단적 견해라고 생각되는 것을 열거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분류방법은 기계적으로 조합된 것도 포함하고 있어 이것을 바로 당시 사상계의 실태라고는 볼 수 없다. 이것을 통해 당시 사상계에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의 62견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이것들은 크게 과거에 관한 견해(18가지)와 미래에 관한 견해(44가지)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과거라고 하는 것은 전세(前世)의 생존을 가리키고 미래라고 하는 것은 사후의 생존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62견은 모두 윤회전생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 교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그 행위에 의해 윤회의 생존을 되풀이한다는 사상은 이미 초기 우파니샤드 시대에서부터 점차 성숙되어 온 관념인데, 이 시대에 이르러 바라문과 사문을 포함한 모든 사상계 일반에 널리 유포되어 정착하게 되었다. 윤회의 생존을 인정한다면 윤회하는 중심적 존재가 문제되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로서 아트만과 그 생존의 장소로서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견해가 모색되었다. 또한 윤회의 생존으로부터 벗어난 해탈, 열반의 경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윤회나 해탈의 사상을 완전히 부정하는 학설도 나타났으며 모든 사물에 대해 회의적 궤변을 늘어놓는 학설도 출현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를 분류한 것이 62견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사상의 내용이나 그 주장자에 관해서는 거의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사문들 가운데 몇 사람의 이름과 그들의 사상이 불교의 초기 경전에 속하는 사문과경(沙門果經) 등에 나타나 있다. 이른바 육사외도설(六師外道說)이 그것이다. 여기서 외도설이란 불교와는 다른 길의 사상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육사(六師)의 견해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육사외도 가운데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는 푸라나 캇사파는 도덕 부정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살생, 도둑질, 간음, 거짓말 등을 해도 악을 행한다고 할 수 없으며 악의 과보도 생기지 않는다. 또 제사, 보시, 극기, 진실한 말 등을 행하여도 선을 행한다고 할 수 없으며 선의 과보도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당시 일반 세간에서 인정되고 있던 선악의 행위와 그 행위가 미래에 초래하는 과보를 모두 부정하였다.

 

두 번째 막칼리 고살라는 숙명론자였다. 그에 따르면 윤회의 생존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혹은 청정하게 되고 해탈하는 것, 그 모두는 원인이 없다. 살아가는 데는 지배력도 의지력도 없으며 다만 자연의 정해진 상황과 본성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의 의지에 근거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업에 의한 윤회전생을 부정하는 등 일종의 결정론적인 숙명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윤회의 주체로서 영혼(jiva, 命我)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상주하는 물질적 존재라고 생각하여 지(地), 수(水), 화(火), 풍(風), 허공(虛空) 등의 원소와 같은 원리로서 파악하였다. 또 득(得), 실(失), 고(苦), 락(樂), 생(生), 사(死), 영혼(靈魂)의 추상관념을 하나의 원리로서 상정하고 이것들을 실체로 보려고 하였다.

 

세 번째 아지타 케사캄바린은 인도에서 가장 알려진 가장 오래된 유몰론자이다. 그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가지 물질적 원소만이 참된 실재라 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단멸하고 신체는 모두 네 가지 원소로 환원된다. 내세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고 현세가 인생의 전부이며, 선악의 행위를 짓더라도 죽은 후 그 과보를 받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는 감각적 유물론 내지는 쾌락주의의 입장에 섰던 것으로 보여진다.

 

네 번째 파쿠다 캇차야나는 유물론적인 경향을 가진 사상가이다. 그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네 가지 원소 이외에 고(苦), 락(樂), 영혼(命我) 등 세 가지 원소를 더하여 일곱 가지 요소의 실재를 주장하였다. 영혼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의 사상은 아지타와는 다른 이원론의 입장처럼 보이지만 파쿠다가 인정하는 영혼은 물질적인 것으로 지극히 유물론적이다. 7요소는 독립적인 것으로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테면 사람을 죽여도 다만 날카로운 칼날이 7요소 사이를 관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는 파쿠다 역시 실천적으로 도덕을 부정하는 입장에 섰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다섯 번째 산자야 벨라티풋타는 대표적인 회의론자이다. 그는 이를 테면 내세는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그렇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고도, 그것과 다르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하여 애매한 대답을 하여 판단을 중지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뱀장어처럼 미끈미끈하여 좀처럼 붙잡을 수 없는 교설로 일컬어진다.

 

여섯 번째 니간타 나타풋타는 자이나교의 개조 마하비라를 불교도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니간타(Nigantha)라고 하는 것은 그 이전에 존재하였던 종교적 단체의 명칭이며 나타풋타는 나타족 출신의 사람이란 뜻이다. 본명은 밧다마나(Vaddhamana)인데 크게 깨쳤으므로 마하비라(Mahavira, 위대한 영웅) 혹은 지나(jina, 수행을 완성한 자)로 존칭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과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자이나라고 부른다. 자이나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교와 유사하고 가깝지만 사상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마하비라는 석존과는 달리 자연세계나 물질에 대한 관찰에 관심을 나타내 매우 색다른 형이상학적 고찰을 모색하였다. 우주는 많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크게 영혼(jiva, 命我)과 비영혼(ajiva, 非命我)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영혼은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처럼 상주편재(常住遍在)하는 자아가 아니라 다수의 실체적 개아(個我)로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네 가지 원소나 동물, 식물에도 내재되어 있다. 비영혼은 담마(dhamma, 法/운동의 조건), 아담마(adhamma, 非法/정지의 조건), 허공, 물질 등 네 가지고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과 영혼을 합해 다섯 가지 실재체(實在體)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실재체는 모두 점(點, 공간)이 집합하여 이루어진 실체이며, 세계의 구성은 이것에 의해 통일적으로 설명된다.

 

마하비라는 윤회와 해탈의 문제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교설을 세우고 있다. 그는 업을 미세한 물질로 보고 이 업이 외부로부터 신체 내부의 영혼에 유입되고 부착하여 영혼을 속박하기 때문에 윤회의 생존이 되풀이된다고 생각하였다. 마하비라가 업을 물질로 간주한 것은 석존의 교설과 크게 다른 점이다. 이러한 업에 의해 속박된 윤회에서 벗어나 영혼이 그 본성을 발현하여 해탈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업물질이 영혼에 유입하는 것을 제어하고 이미 영혼에 부착된 업물질을 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고 고행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출가수행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2) 근본교설

근본교설은 붓다가 직접 가르친 것으로, 또한 붓다의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한 것이다. 아직 교단이 분열되기 전이었으므로 붓다의 가르침은 다른 주장없이 그대로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근본교설에서는 형이상학설을 배제하고 세계와 인생의 현상적 존재에 대해서만 매우 합리적인 고찰을 하였다.

초기경전에 나오는 여러 교리 가운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연기설(緣起說)이며, 연기설의 응용 내지 실천 이론들인 12연기, 사성제(四聖諦), 삼법인(三法印), 중도와 윤회와 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설(緣起說)

석존의 깨달음을 설한 경전의 기술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내용적으로 보면 결국 연기(緣起)의 자각이 그 중심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석존은 보리수 아래에서 연기를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어 불타(佛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근본 교설들은 모두 연기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며 연기의 의미를 아는 것이 근본불교의 사상 그 자체를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연기사상은 근본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초기대승, 중기대승에 있어서도 항상 불교의 중심문제가 되었으며 나아가 후기대승은 물론 중국, 한국, 일본에서 발전한 불교에서도 각각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고찰되고 있다.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을 緣하여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로 일체의 사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인해 성립한다고 하는 말이다. 인간 존재나 그것을 둘러싼 세계는 모두 어떤 원인과 조건에 근거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근본불교에 있어서 연기의 일반적인 정의로서는 보통 다음과 같은 하나의 글귀를 들 수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어떤 것을 緣하여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과 서로 관계하여 존재한다는 것으로 그 자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상주불변(常住不變)것은 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 그리고 상호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연기설이란 존재의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것이 다른 것의 원인이 되고 다른 것이 어떤 것의 결과가 된다고 하는 관계는 일반적으로 넓은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연기의 정의를 나타낸 귀절 중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원만은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고도 번역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기의 관계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얼어난다’고 하는 무시간적, 논리적 관계와 함께 시간적, 생기적(生起的) 관계가 고려되는 것이다.

연기설은 세계 인생의 일반적인 생멸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기가 말하여진 본래의 목적은 단순한 일반적 현상보다도 오히려 인간의 고뇌가 어떠한 조건과 원인에 의해 생겨나고 어떠한 인연 조건에 의해 사라지는가 하는 인생의 고락운명에 관한 것을 밝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연기설이 문제되는 현상은 단순한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선악업과 그 과보로서의 고락과 같은 윤리 종교적인 가치관계의 현상이다. 연기의 인과관계에는 과거세로부터 현재, 미래세에 이르는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업보의 사상도 포함되어 있다. 근본불교에서는 연기에 의한 현상간의 관계방식에 대해 상세한 고찰은 하지 않았으나 후세의 불교에서는 그에 대한 여러 각도에서의 고찰이 행해져 왔다. 불교의 근본주장은 크게 연기설로 일관된 것으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고찰의 각도가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세의 불교에서는 연기설을 협의로만 이해하여 연기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 선후가 있는 인과 관계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에 관계없는 논리적인 연기관계에 대해서는 그것을 연기라고 부르지 않고 실상(實相)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렀다. 따라서 후세의 불교에서는 연기론과 실상론이 대립하여 양자는 별개의 교학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졌다.

 

십이연기(十二緣起)

연기란 일체 존재의 근원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이지만, 석존에 의해 자각된 이러한 연기설이 당시 인도 사상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불전(佛傳)에 의하면 석존은 출가한 후 당시 문화의 중심지였던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 근교에 있던 알라라 카라마(Alara Kalama)와 웃다카 라마풋타(Uddaka Ramaputta) 밑에서 선정을 하였지만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석존은 다시 우루벨라의 세나 마을의 고행림(苦行林)에 들어가 모든 고행을 다하였지만 이것에 의해서도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네란자가 강물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마을 처녀 수자타가 바친 우유죽을 먹고 몸과 마음을 회복한 후, 이윽고 보리수 밑에서 스스로 선정에 들어 정각을 얻어 불타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석존이 정각을 얻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버렸던 당시 철학이나 종교는 크게 바라문계와 육사외도 등으로 대표되는 사문계의 사상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근거한 인도 정통파의 입장에 속하는 것으로 유일의 원리인 브라흐만으로부터 전 세계가 생겨났다고 하는 점이 사상적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보통 전변설(轉變說)이라고 한다. 바라문계 사상에서 있어서는 전 세계가 어떻게 성립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고찰할 때 먼저 브라흐만이라고 하는 근본원리를 세우고 이러한 근본원리인 브라흐만이 자기자신을 전개시켜 전 세계를 성립시킨다고 주장한다. ‘일체는 브라흐만이다’라는 주장은 우파니샤드에서 자주 설해지는데 이러한 근본원리로서의 브라흐만은 개인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아트만과 동일시되고 점차 정신적 원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된다. 그러므로 전변설은 절대 유일의 정신적 원리가 전개하여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가 성립된다고 설하는 주장이다.

이 시대에는 종래의 바라문계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자유사상사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육사외도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 자유사상가들이 주장한 사상의 특징은 유일의 원리로부터 복잡한 현상세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독립된 원리와 요소가 어떠한 형태로서 결합하여 이 세계가 구성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육사외도라 불려지는 사문들 가운데 아지타 케사캄바린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네 가지 원소를 주장한다. 즉 인간은 이들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체가 소멸함과 동시에 모든 원소도 각각 분해한다고 설하였다. 파쿠다 캇차야나느 7요설을 인정하였고, 막칼리 고살라는 살아있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로 12가지 원리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결합하여 인간 및 세계가 성립한다고 하는 주장을 초기경전에서는 적집설(積集說) 또는 적취설(積聚說)이라고 한다. 이 적취설은 바라문계의 전변설에 비해 유물론적 색채가 강하며, 업이나 인과응보의 이치를 부정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런데 불교에 있어서의 연기는 보편적인 법칙성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철학설로서 논의되기 의한 것은 아니며 지금 여기서 인생의 괴로움에 번민하고 있는 인간의 문제로 설해진 것이다. 연기는 ‘무엇을 緣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뜻이지만 무엇인가를 연하여 일어났다고 하는 존재의 성립을 설할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연하여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 괴로움에 얽매인 인간 존재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며 현실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연하여 일어났다. 다시 말해 연기된 것이라고 함으로써 그것을 바로 무상(無常)이고 고(苦)이며 무아(無我)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라문계의 전변설이나 사문들의 적취설에 비해 연기의 입장은 세계관적인 면에서 양자를 초월한 보다 높은 입장, 종교적 면에서 볼 때 깊은 실천적인 입장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초기경전에 있어서 연기는 항상 인간의 미혹과 깨달음을 문제로 설해지는데 보통 십이연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십이연기는 12가지 지분(支分)을 갖춘 형태로서 십이인연(十二因緣),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라고도 한다.

십이연기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이다. 12연기로써 때로는 생멸 변화하는 세계와 인생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 교리의 근본 목적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인 고(苦)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또 어떻게 해서 사라지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12연기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있다. 순관이란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이 있고,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이 있다. 계속해서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가 있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즉 순관은 고(苦)의 발생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보는 연기를 역시 유전(流轉) 연기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존재가 무명과 욕망 등으로 말미암아 윤회의 세계에서 생사를 되풀이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역관이란 고(苦)가 소멸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방법이다.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고, 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노사의 소멸까지를 설명한다. 이렇게 보는 연기를 역시 환멸(還滅) 연기라고도 한다. 그것은 존재가 무명과 욕망을 없앰으로써 생사유전(生死流轉)의 세계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십이연기는 훗날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여기서는 十二支 각각의 의미를 주로 경전 자체의 설명에 근거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무명(無明, avida)이란 글자 그대로 명(明, 지혜)이 없다는 말이다. 올바른 법, 즉 진리에 대한 무지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연기의 이치에 대한 무지이고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무지이다. 고(苦)는 진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기므로 무명은 모든 고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다. 무명을 조건으로 해서 행(行, samskara)이 있다.

 

행이란 행위, 즉 업(業, karman)을 가리킨다. 행에는 몸으로 짓는 신행(身行)과 언어로 짓는 구행(口行)과 마음으로 짓는 의행(意行)이 있다. 행은 진리에 대한 무지, 즉 무명 때문에 짓게 되고 그것을 지운 존재의 내부에 반드시 잠재적인 힘의 형태로 남게 된다.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識, vijnana)이 있다.

 

식은 인식작용으로서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6식이다. 식이란 표면적인 의식뿐 아니라 잠재의식도 포함한다. 꽃을 볼 경우 꽃이라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전에 꽃을 본 경험이 잠재의식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꽃을 보았다는 과거의 경험은 과거의 행위이다. 따라서 과거의 행이 없다면 현재의 인식작용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행을 조건으로 해서 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식을 조건으로 해서 명색(名色,namarupa)이 있다.

 

명(名, nama)이란 정신적인 것을 그리고 색(色, rupa)이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식이 주관적인 면을 나타내고 있는 데 반해 명색은그 대상인 객관적인 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육입(六入 또는 六處, sadayatana)이 있다.

 

육입이란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心]의 6가지 감각기관, 즉 육근(六根)이다. 이는 대상과 감각기관과의 대응작용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육입을 조건으로 해서 촉(觸, sparsa)이 있다.

 

촉이란 지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심적인 힘이다. 촉(觸)에도 눈, 귀, 코, 혀, 몸, 마음 등 6가지의 감각기관에 의한 육촉(六觸)이 있다. 촉은 육입에 의해서 생긴다고 되어 있지만 엄밀하게 말한다면 육입만에 의해서가 아니고 식(識), 명색(境), 육입(根) 등 3요소가 함께 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 촉을 조건으로 해서 수(受, vedana)가 있다.

 

수란 즐거운 감정, 괴로운 감정,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감정과 그 감수(感受)작용을 말한다. 감각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인식작용 등의 3요소가 만날 때 거기에서 지각을 일으키는 심적인 힘이 생기게 되고 그 다음 수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수는 촉을 조건으로 해서 있다고 하는 것이다. 수를 조건으로 해서 애(愛, trsna)가 있다.

 

애란 갈애(渴愛)라고 하는데 보통 목이 타서 갈증이 나면 오로지 물을 구하기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항상 능동적으로 만족을 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맹목적, 충동적 욕망을 말한다.

애를 조건으로 해서 취(取, upadana)가 있다. 취는 집착의 의미로서 인간의 미혹한 생존은 집착에 근거한 것이다. 맹목적인 애증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애착을 가리킨다. 어떤 대상에 대해 욕망이 생기면 뒤따라 그것에 집착심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애를 조건으로 해서 취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취를 조건으로 해서 유(有, bhava)가 있다.

 

유(有)란 존재를 말한다. 초기경전에서는 취를 조건으로 해서 어떻게 존재가 있게 되는가를 설명해 놓은 곳을 찾기 어렵다. 업설에 의하면 집착 때문에 업이 만들어지고 업은 생(生)을 있게 하는 조건이 된다. 따라서 유(有)를 업이라고 본다면 취(取)를 조건으로 해서 유가 있다라는 말은 집착을 조건으로 해서 업이 있다라는 것이 된다. 두 번째 항목인 행을 무명으로 인해 생기는 소극적인 업이라고 한다면 유는 애와 취를 조건으로 해서 생기는 적극적인 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를 조건으로 해서 생(生, jati)이 있다. 업은 생을 있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유에 의해서 생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생을 조건으로 해서 늙음과 죽음(老死, jara-marana) 등 여러 가지 고가 있다. 생이 있게 되면 필연적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고(苦) 즉 근심, 비애, 고통, 번뇌, 번민이 발생하는 것이다.

 

삼법인(三法印)

법인(法印)이란 법의 표식(標識)이라는 말이다. 삼법인은 불교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깃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불교를 다른 종교나 사상과 구별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 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형식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무상과 무아의 개념 속에 고(苦)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체개고 대신에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서 제행무상, 제법무상, 열반적정의 형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행(諸行)이란 일체의 만들어진 것 다시 말하면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무상(無常)은 anita 를 번역한 말로써 항상함이 없다. 변화하고 변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제행무상이란 모든 존재는 항상함이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바뀌고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이나 바위 같은 것은 외견상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것일 뿐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존재란 여러 요소들이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모여있는 집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와 조건들이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도 무상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제법(諸法)은 모든 존재를 의미하고, 무아(無我)라는 말은 아(我)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란 생멸변화를 벗어난 영원하고 불변적인 존재인 실체 또는 본체를 말한다. 따라서 제법무아는 모든 존재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적인 아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모든 존재는 비실체적인 여러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고정불변한 실체적인 아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제법무아라고 해서 현상적인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정하고 있는 것은 단지 고정 불변하는 실체적인 아(我)뿐이다.

무아(無我)이론의 특징은 모든 것에는 고정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고정성이 없는 것을 무자성(無自性)이라고도 한다. 자성(自性)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형이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정불변한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불교의 기본적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아임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근본불교에서는 고정불변적인 존재로서의 아(我) 대신에 존재라는 것의 전체로서 오온(五蘊)을 들고 있다.

온(蘊, khandha)이라고 하는 것은 ‘모임’을 의미하므로 ‘오온’이라고 하는 것은 다섯 개의 요소가 모인 것이라는 뜻이다. 색(色, rupa)은 물질로서의 육체를 가리킨다. 육체는 4가지 기본요소인 사대(四大)와 사대에서 파생된 물질인 사대소조색(四大所造色)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대란 지, 수, 화, 풍으로 지(地)는 뼈, 손톱, 머리카락 등 육체의 딱딱한 부분이고, 수(水)는 침, 혈액, 오줌 등 액체부분이다. 화(火)는 체온이고, 풍(風)은 몸속의 기체 즉 위장 속의 가스같은 것을 가리킨다. 사대소조색이란 사대로 이루어진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인 눈, 코, 귀, 혀, 몸 등이다. 수(受, vedana)는 괴로움과 슬픔 등의 감수작용이다. 수는 내적인 감각기관과 그것에 상응하는 외적인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수에는 성질상 세 가지가 있다. 즉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고수란 즐거운 감정이고, 낙수란 괴로운 감정이고, 불고불락수란 사수(捨受)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감정을 가리킨다. 상(想, sanna)은 개념표상의 취상작용(取象作用) 또는 심상(心象)이다. 상 역시 감각기관들과 그것에 해당되는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상은 대상들을 식별하고 그 대상들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행(行, sankhara)은 의지작용 및 그 밖의 정신작용이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윤리생활을 할 수 있고 업을 짓게 되는 것은 이 행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행은 수, 상, 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작용과 현상이다. 식(識, vinnana)이라는 것은 인식 판단의 의식작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식의 영역은 대상을 인식하는 데까지 가지 않는다. 그 전 단계인 주의 작용일 뿐이다.

오온의 이론은 인간 존재란 색, 수, 상, 행, 식 등 다섯 가지 요소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잡아함경에서는 이것을 “마치 여러 가지 재목을 한 데 모아 세상에서 수레라 일컫는 것처럼 모든 온이 모인 것을 거짓으로 존재라고 부른다”라고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수레는 바퀴, 차체, 축 등 여러 요서가 모였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일 뿐 이 요소들과 관계없이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인간 존재도 마찬가지로 색 수 상 행 식 등 다섯 가지 요소가 모일 대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도 성립할 수 있게 된다. 오온 이론에 의하면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제외한 영혼과같은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수, 상, 행, 식과 같은 정신현상은 영혼과 같은 존재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기관과 그 기관에 관계되는 대상과의 만남에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즉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과 그것에 관계하는 여섯 가지 대상[六境]이 합칠 때 여섯 가지 식[六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오온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존재란 5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각 요소들은 모두 비실체적인 것이므로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 역시 비실체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정불변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열반(nirvana)이라고 하는 것은 ‘불어서 끄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 번뇌의 불을 끈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열반을 “탐욕의 사라짐, 분노의 사라짐, 어리석음의 사라짐,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당시의 열반설에서는 색계정(色界定)이나 무색계정(無色界定) 등의 여러 가지 선정의 상태를 이상적인 열반이라고 간주하거나 또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욕락에 빠지는 세속적인 쾌락이 열반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었던 듯하다. 석존이 수행시절에 가르침을 받은 두 선인(仙人)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定)이라고 하는 뛰어난 무색계정이 열반의 이상이라고 하였는데 석존은 곧바로 그들과 동일한 선정에 들어갈 수 있었어도 여전히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뛰어난 무색계정도실제로는 이상적인 열반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여기고 이 두 스승으로부터 떠났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6년간의 고행 후에 열반은 신체를 혹사하여 고통스럽게 하는 고행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이 고행도 포기하였다. 그리고 고행이나 욕락과 같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 중용적인 생활과 심신상태 아래에서 세계 인생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여 불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열반은 단순한 고행이나 선정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와 인생의 진리에 관한 올바른 지혜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열반의 상태는 고요하고 괴로움이 없이 편안한 것으로, 이를 적정(寂靜)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경전에서 열반이란 말을 멸(滅), 적(寂), 불사(不死), 최상의 안락 등 여러 가지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최상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이자 최고의 이상이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이 열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열반적정인은 불교의 이상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성제(四聖諦)

사성제에서 제(諦, satya)란 진리 또는 진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성제란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말이다. 이것은 고(苦)성제, 집(集)성제, 멸(滅)성제, 도(道)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단하게 고집멸도라고도 한다. 사성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고와 고의 원인 그리고 고의 소멸과 고의 소멸에 이르는 것이다.

사성제는 불교의 모든 교리 가운데서 가장 처음으로 설한 것이다. 붓다가 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벌을 설했을 때로부터 시작해서 쿠쉬나가라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 때까지 45년 동안 가장 많이 설한 가르침이 바로 사성제이다.

사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궁극목표인 고(苦)에서의 해탈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한 교리이다. 붓다는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가 병을 치료할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고성제(苦聖諦)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란 무엇인가. 고라는 말인 duhkha를 일반적으로 괴로움, 고통, 슬픔 등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실은 이것보다 휠씬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 생리적인 고통 또는 일상적인 불안이나 고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현대적인 말로 표현하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따르는 모든 괴로움을 망라한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모든 곳은 고(苦)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는 사고(四苦) 또는 팔고(八苦)를 말한다.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 등의 네 가지 고(苦)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怨憎會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求不得苦], 오온의 집착에서 생기는 고[五取蘊苦] 등의 네 가지를 합쳐서 여덟 가지 고(苦)이다.

또한 고를 성질에 따라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등 3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고고(苦苦)란 주로 육체적인 고통을 말한다. 보통 고통이라고 하는 것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괴고(壞苦)란 파괴나 멸망 등에서 느끼는 정신적 고뇌를 말한다. 행고(行苦)란 현상세계가 무상하다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느끼는 고이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 앞에서 느끼게 되는 괴로움이다.

 

집성제(集聖諦)

집(集)이란 samudaya라는 말을 번역한 것으로 불러모으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집성제에서는 고를 일으키는 원인을 밝힌다. 고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욕망이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욕망은 물론이고 재산과 권력에 대한 애착이나 사상, 신앙에 대한 집착 등도 욕망이다. 인생의 모든 불행, 싸움, 괴로움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망의 괴로움의 뿌리인 것이다. 또한 욕망은 인생을 이끌어가는 동력일뿐만 아니라 인생을 지배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러한 욕망은 구체적으로 욕애(欲愛),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 등 세 가지로 나눈다. 욕애란 오욕(五欲) 즉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을 가리킨다. 유애란 존재에 대한 욕망이다. 오래도록 살고 싶다든지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나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등의 욕망이다. 무유애는 무존재(無存在)로 되고자 하는 욕망 즉 사후에 허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리킨다.

 

멸성제(滅聖諦)

멸(滅)이란 열반을 번역한 말이다 열반은 소멸의 의미를 가진 말로서 고(苦)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고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고에서의 완전한 해방이다. 열반은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고 이상이다. 열반은 현재의 생에서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열반이 아니다. 열반에 도달한 사람은 괴로움의 원인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으므로 욕망 때문에 발생되는 괴로움, 즉 정신적인 괴로움에서는 벗어나지만 아직 육체가 남아있기 때문에 육체적인 괴로움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성취하는 열반을 생존의 근원이 남아있는 열반 즉 유여의(有餘依) 열반이라 한다. 여기에서 생존의 근원이란 육체를 말하는 것이다. 유여의 열반을 이룬 사람이 죽으면 다시 육체를 받아 태어나지 않게 된다. 이것을 생존의 근원이 남아있지 않는 열반 즉 무여의(無餘依) 열반이라고 한다. 이 무여의 열반은 완전한 열반으로서 정신적, 육체적인 고가 모두 소멸된 열반이다.

 

도성제(道聖諦)

도(道)란 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이것은 중도(中道)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양극단을 떠난 길이다. 즉 지나치게 쾌락적인 생활도 극단적인 고행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적당한 상태의 길을 말한다.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도 극단적인 고행이나 지나친 쾌락을 피하고 중도를 실천해야 한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팔정도(八正道)이다. 팔정도(八正道)는 여덟 가지 바른 길로서, 여기에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 있다. 정견은 바른 견해로서 사성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정사는 바른 생각, 즉 바른 마음가짐이다. 즉 탐욕스러운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을 가지고 않고 온화한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정어는 바른 말이다. 거짓말[妄語], 이간시키는 말[兩說], 욕하는 말[惡口], 꾸며대는 말[綺語]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 성실한 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다. 정업은 바른 행위이다. 살생, 도둑질, 음란한 짓을 하지 않고 다른 존재들의 목숨을 구해주고 보시하고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정명은 바른 생활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구하는 것이다. 특히 출가 수행자의 경우에는 재가신도의 바른 신앙에서 우러나는 보시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다. 정정진은 바른 노력이다.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자라도록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고 이미 생긴 악은 끊도록 노력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정념은 바른 기억이다. 자기 자신이나 그 주변의 것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기억해서 반성하고 바른 의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정정은 바른 정신집중 또는 정신통일이다. 마음을 한 점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정(定)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이 선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를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업보윤회(業報輪廻)의 사상

근본 불교사상은 당시 인도사상과 비교할 때 거기에는 불교사상이 인도 일반의 사상과 공통되는 점도 있고, 인도의 다른 사상에서 보이지 않는 불교 특유의 사상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직접적으로 시대 환경이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고, 후자는 시대 환경을 초월하여 불교라고 하는 새롭고 독자적인 사상을 성립시킨 것이다. 그 가운데 인도 일반사상과 공통된 것으로는 업보윤회(業報輪廻)의 사상과, 수행해탈(修行解脫)의 사상이 있다.

선을 행하면 행복한 결과가 오고 악을 행하면 불행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하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업보사상이 인도에서는 불교 이전에 이미 초기 우파니샤드 시대에서부터 확립되어 있었다. 이러한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인과설은 인도뿐 아니라 동서고금에 있는 관념이다. 그러나 선이나 악의 행위가 그 결과를 이끌기까지의 사이에 그것은 어떠한 상태로 존속하는 것인가, 또 원인과 결과와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가하는 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업보사상에서는 원인과 결과와의 연쇄가 반드시 동일 인격 내에 즉 자신에게 한정되는 것으로 스스로 행하여 스스로 그 결과를 부른다고 하는 자업자득의 원칙이 있다. 이 경우 원인으로서의 선악의 행위가 그 결과를 이끄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과의 연쇄는 전세(前世), 금세(今世), 내세(來世)라고 하는 삼세(三世)에 걸쳐서 행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선인은 사후에 천국락토(天國樂土)에 태어나고, 악인은 악계지옥(惡界地獄)에 떨어진다는 사고는 인도에서는 이미 불교 발생 수백년 전 아타르바베다 시대부터 브라흐마나 시대에 걸쳐서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윤회설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었다. 윤회설은 삼세에 걸쳐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음으로 해서 여러 세계를 거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등 삼계(三界)와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등 육도(六道)에 걸쳐 윤회한다고 한다. 이 윤회설이 성립한 것은 불교 발생 2, 3백년 전인 우파니샤드 시대라고 여겨진다.

석존은 당시의 사문고 바라문들이 인간의 길흉화복의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 올바른 업보설을 채용하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고 보고, 그 주장을 다음의 다섯 종류로 분류하였다.

 

첫 번째 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은 신의설(神意說)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정통 바라문의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그것은 이 세계도 인간의 운명도 모두 범천(梵天)이나 자재천(自在天) 등의 최고신이 화작창조(化作創造)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은 신의 의지에 좌우된다고 하는 주장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인정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된다. 세상의 일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숙작인설(宿作因說)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행복과 불행의 운명은 모두 우리가 과거세에서 행한 선악업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며,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운명은 전세의 업의 결과로서 우리가 태어난 때에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악의 행위를 하고 노력을 기율여도 그것은 내세의 운명을 규정하는 원인을 될 수 있을지언정 현세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하는 것으로 일종의 숙명론이다.

 

세 번째 결합인설(結合因說)은 이 세계 인생의 모든 것은 지수화풍 등의 몇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고 그 결합 상태의 좋고 나쁨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정해진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결합상태는 우리가 태어난 때에 이미 확정되어 그것이 한평생 일정불변하게 존속하기 때문에 금세의 우리의 노력에 의해 운명을 변화시킬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결합인설도 일종의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계급인설(階級因說)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흑(黑), 청(靑), 적(赤), 황(黃), 백(白), 순백(純白)의 여섯 가지 계급으로 구별되어 있어, 그 계급에 따라 인간의 성격, 지혜, 환경, 가계 등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숙명론으로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다섯 번째 우연인설(偶然因說)은 무인무연(無因無緣)설이라고도 하는데, 이 설에 의하면 사회, 인생의 운명은 인과업보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며 또 신의 은총이나 징벌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길흉화복은 일정한 원인이나 이유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우연한 기회에 의해 일어나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상계가 혼란한 당시의 인도에서는 위와 같은 여러 학설이 횡행하였기 때문에 인과업보의 설도 일반적으로 유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같은 업보윤회설에는 많은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숙명론적으로 이해하고 체념할 수 있는 소지도 경에 초기교단에 십사(十事)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 이로부터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로 나뉘었는데 이를 근본분열이라고 한다. 이어서 상좌부와 대중부 각각에서 다시 분열을 되풀이한 것을 지말분열이라고 한다. 상좌부는 7회의 분열에 의해 11부로 나뉘었고, 대중부는 본말을 합해 9부이기 때문에 상좌부와 합해서 20부가 된다. 그래서 근본의 2부를 제외하고 18부의 분열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가장 발달한 것이 설일체유부로서 부파불교의 교리는 대개 이 부파의 교리를 말한다.

당시에 재가신자는 교단 밖에 있었지만 그들이 어떠한 종교활동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불타가 탄생한 곳, 성도한 곳, 초전법륜한 곳, 반열반한 곳 등이 일찍부터 영장(靈場)으로써 존숭되고 불타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순례하는 성지로서 각광을 받았다. 초기불교시대부터 신자들의 종교 활동은 활발했던 것이다. 또한 불멸 직후 팔왕분골(八王分骨)에 의해서 중인도의 각지에 불탑이 세워졌는데 그 때 불교의 유해를 화장하고 사리를 분배하여 탑을 세운 것은 모두 재가신자였다. 그 불탑들은 비구들이 거주하는 정사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사대로(四大路)에 여래의 탑을 건립하라’고 설해짐으로써 탑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 건립되었다. 이 탑들은 신자들이 자주적으로 관리하고 신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육왕경> 등에 의하면 아쇼카왕은 팔왕분골의 탑을 개방하여 불타의 사리를 인도전역으로 분산시켜 많은 탑을 세웠다고 한다. 왕이 많은 불탑을 세운 것은 당시 불교도들 사이에 불탑신앙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 요구에 부응하여 왕은 불탑을 건립했을 것이다.

후세의 대승불교의 발전의 원류를 생각하는 경우에는 근본불교시대부터 불탑교단에서 배양되고 있던 불타신앙과 불덕찬양운동을 더듬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자들의 신앙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불교교단의 정계(正系)는 초기교단을 계승하는 부파교단이었다. 즉 불타의 직제자인 대가섭이나 아난 등에 의해 수지된 불교는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계승되어 부파교단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부파교단의 불교는 ‘제자의 불교, 배우는 불교’이며 남에게 가르치는 입장의 불교는 아니다. 이러한 수동적인 불교였기 때문에 대승교도들로부터 성문승(聲聞乘)이라고 불렸다. 성문이란 불타의 말씀을 들은 사람, 즉 제자라는 뜻이다.

부파불교 교리의 특징은 출가주의라는 점이다. 출가하여 비구가 되고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한다. 재가와 출가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출가를 전제로 하여 교리나 수행형태를 조직하고 있다. 다음으로 부파불교는 은둔적인 승원불교이다. 그들은 승원에서 금욕생활을 하고 학문과 수행에 전념하다 따라서 거리의 불교는 아니었다. 타인의 구제보다는 먼지 자기의 수행의 완성을 목표로 삼았다. 그 때문에 대승교도로부터 소승(小乘)이라고 불리고 천시되었다. 이처럼 그들이 생활대책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없이 오로지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승원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출가교단을 국왕이나 왕비 혹은 대상인 등의 귀의와 경제적 지위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상인계급도 불교승단을 지원하였다. 상인은 커다란 밀림을 지나고 사막을 가로질러 먼 곳에 있는 도시와 교역을 하거나 혹은 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가 다른 나라와 통상을 했다. 이러한 통로에는 수많은 곤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력과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였다. 이성적인 종교인 불교가 그들의 취향과 합치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타국으로 가서 이민족이나 다른 계급과 자유로이 교제해야만 했기 때문에 카스트제도를 엄격히 지키는 바라문의 종교는 적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농민은 바라문교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상인계급 중에는 부파교단 뿐만 아니라 대승교단에 귀의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 중 부상(富商)이나 지도자를 장자(長者)라고 한다. 장자로서는 불타에게 귀의한 급고독(給孤獨)장자나 우그라장자 등이 유명한데 초기불교시대부터 불교신자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장자는 많다. 대승경전에서도 장가가 불타의 설법의 대상으로 종종 등장한다. 그들은 부파교단도 지원했을 것이다. 이처럼 국왕이나 장자들의 원조에 의해 승단은 생활 걱정 없이 출세간주의를 관철하여 연구와 수행에 주력했으며, 이로써 분석적이고 치밀한 불교교리를 완성시켰다. 이것이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법에 대한 연구) 불교이다.

 

아비달마(阿毘達磨) 불교의 발달

일반적으로 아비달마 논서에는 세 가지 발달 단계가 있다. 그 첫째 단계에서는 경장(經藏) 가운데서 이미 교법을 정리, 조직하기도 하고 해설이나 주석을 하기도 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의 아비달마는 아니며 경장 가운데 아비달마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할 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발달하여 두 번째 단계에 이르면 아비달마(藏) 즉 논장(論藏)으로서 경장에서 독립하는데, 거기에서는 교법의 조직이나 해석이 더욱 더 촉진되었다. 다음 세 번째 단계에서는 그것이 촉진된 결과 아비달마는 단순히 아함경(阿含經)을 해석하거나 조직하는데 머물지 않고 나아가 그러한 기초 위에서 장대한 교의체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아함경전의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즉흥적, 우연적 요소가 많았던 석존의 교설을 그가 입멸한 후 정리하여 전승한 것이기 때문에 본래 짧고도 단편적인 경의 집성이다. 그러한 비체계적인 아함의 경설이 점차 정리되고 조직화되어 하나의 교의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함 가운데 나타나는 아비달마적 요소로서는 대개 두 가지 종류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교설 속의 어구에 대해 주석적으로 설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갖가지 교설을 정리하고 배열, 조직하는 것이다. 석존의 교법은 일반적으로 쉬운 말로 이야기되며 특이한 용어나 난해한 어구가 사용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석존 자신이 청중을 위하여 그가 사용한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또 어떤 때에는 석존이 설법을 마친 후 청중 가운데 선배가 후배에게 스승의 말씀에 대하여 해설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석존이 입멸한 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또 불교가 전파된 지역이 확대됨에 따라 교설 속의 어떤 어구에 대해 주석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더욱 더 많아지게 되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아함경전에서는 석존 자신이 그러한 주석적인 설명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설법을 마친 후 제자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그것을 해설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두 사람의 유력한 제자가 서로 대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어느 것이든 그렇게 이루어진 설명과 해석을 옆에서 듣고 있는 자가 훗날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 형식을 기술하는 것이 아함경전의 원칙이다. 그러나 형식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설명과 해석 모두가 석존 재세시대에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그 중 상당부분은 석존이 입멸한 후 승단 내부에서 점차로 발전한 아비달마적 연구에 의해 부가되어진 해석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가된 부분이 점점 더 증대하여 마침내 아함경전 속에 도저히 포함시킬 수 없을 만큼 되었을 때 아함으로부터 분리 독립되었으며, 여기서 아비달마라고 하는 불교성전의 새로운 장르가 성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교설이 정리, 조직되었다고 하는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한 방식으로서 두드러진 것은 숫자와 관계있는 교설을 그 숫자대로 정리하여 일법(一法), 이법(二法), 삼법(三法)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는 방법과 교설을 내용에 따라 분류, 구별하여 동일한 주제를 가진 것들을 모아 한 곳에 정리, 배열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를 ‘법수(法數)’에 의한 정리라 하고, 후자를 ‘상응(相應)’에 의한 정리라고 한다. 각각의 짧은 경 가운데에는 법수에 의해 정리되고 있는 경우도 있고, 몇 개의 짧은 경을 모은 경전군에다가 그러한 방법을 적용시킨 것도 있다. 또 다수의 경전군을 모아 동일한 방법으로 전체를 정리한 것이 증지부(增支部), 증일아함(增一阿含)이다. 상응에 의해 정리하는 방법은 짧은 경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경전군상에는 그것을 적용시킨 예는 많은데 다수의 경전군을 그 같은 방법으로 정리한 것이 상응부(相應部), 잡아함(雜阿含)이다.

경장(經藏)은 그것이 승단 안에서 전승되는 동안 거기서 아비달마적 연구가 고조됨에 따라 점차 이같은 부가, 증가, 정리, 안배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경장을 보면 그 중에는 원초적이고도 간결한 교설을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비달마적 경향이 진전되어 이제 거의 하나의 아비달마 논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이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부분도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경장 안에서 점차 아비달마적 경향이 발달하여 마침내 독립된 아비달마 논서가 형성되었다. 즉 아비달마발전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립한 최초기의 아비달마는 아함 속의 아비달마적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과 비교할 때 질적으로 그다지 큰 차이는 없다. 주로 아함에 나타난 그러한 경향을 각 부파에서 그대로 연장,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각 파 사이에 공통된 점이 많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미 각 부파의 독특한 교의학설을 반영한 특수한 용어나 특수한 해석이 적지 않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독립한 아비달마 경장은 순조롭게 발달하여 마침내 아함 경전의 연장적인 입장에서부터 완전히 벗어나 서서히 새로운 형태의 논서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부파적 색채는 점차 농후해지고 술어를 독특하게 해석, 정의하였으며 여러 가지 개념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극단적일 정도의 자세한 분석적 고찰이나 개개의 문제에 대한 전문적 연구 등이 두드러지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아비달마 발전의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 그러한 교설을 조직적으로 논술하는 웅장한 구성을 지닌 논서가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논서의 발달

설일체유부의 논서는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즉 초기의 논서는 경장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아비달마적 경향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보아야 할 것, 중기의 논서는 그 뒤를 이어 부파의 독특한 교설을 점차 발전시킨 것, 후기의 논서는 그렇게 발전된 교설을 조직적이고도 일관된 체계로 논술한 것이다.

초기의 논서로서는 <집이문족론(集異門足論)>과 <법온족론(法蘊足論)>이 있다. <집이문족론>은 장아함에 속하는 경전의 하나인 <싱기티숫탄타>의 내용을 부연, 해석한 것이다. <싱기티숫탄타>는 여러 가지 불교술어를 1에서부터 10까지의 숫자에 따라 열거한 경전으로 상당히 아비달마적인 색채가 농후한 경인데 론에서는 그 경전에 열거되고 있는 술어 하나하나에 주석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이것은 아함 가운데 특정한 술어 하나하나에 주석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이것은 아함 가운데 특정한 하나의 경전을 채택하여 그것에 해석한 뜻을 부가한 것이기 때문에 아함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볼 수 있으며 논장이 경장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하나의 원초적인 형태를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법온족론>은 <집이문족론>처럼 특정한 한 경전에 대해 주석하는 형태가 아니라 아함에서 21가지 주요한 교설을 선정하여 교설 하나마다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그 교설을 담은 경문을 첫머리에 게재하고 난 다음 이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는 방법은 요컨대 최초기 아비달마 논서의 특징적인 것이다.

이 두 론은 아비달마 논서로서 성립하였지만 아직 경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전에 대한 해석으로서의 논’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이미 설일체유부 특유의 용어나 사상도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여러 부파와 공통되는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 다음에 성립한 것으로 생각되는 <시설족론(施說足論)>에서부터 아함 경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스타일에 있어 아비달마 논서 특유의 색채가 짙게 나타난다. <식신족론(識身足論)>이나 <계신족론(界身足論)>에 이르면 법수에 의해 종합, 정리된 술어는 매우 복잡하게 해석되고 각 술어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극단적일 정도로 자세한 분석이 이루어져 아비달마적 논의는 현저하게 정치해지고 번쇄해졌다. <시설족론>은 아비달마적인 우주론과 세계론을, <식신족론>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분석을, <계신족론>은 마음과마음의 작용에 대한 해석을 각각 크게 발전시켜 설일체유부 교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였다.

바수미트라가 지었다는 <품류족론(品類足論)>은 원래 몇 개의 작품을 한데 모아 하나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며, 혹은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술어에 대한 분석적 고찰이 더욱 더 발전되어 있으며 동시에 ‘오위(五位)’설이나 ‘구십팔수면(九十八隨眠)’설 등 설일체유부의 독특한 이론이 확실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논서이다.

카트야야니푸트라가 저술한 <발지론(發智論)>의 출현은 설일체유부 아비달마 역사상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시설족론>에서부터 <품류족론>에 이르는 동안 여러 논들이 주로 각기 특정한 문제를 분담하여 고찰하고 있는데 반해 이 론에 이르면 비로소 설일체유부의 학설 전반에 걸쳐 조직적인 논술이해도 8장으로 이루어진 이 론의 구성이 반드시 완전하고도 정연한 순서로 작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고작해야 관련이 있는 문제를 가능한 한 곳에 모아 논술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발지론>에 대한 매우 방대한 주석서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다. 이 논서가 나타남으로써 문제의 세분화는 한층 더 촉진되었고 고찰 역시 더욱 더 정밀해졌다. 실제로 이것은 단순히 발지론의 주석일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떤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면 발지론에서언급되지 않는 문제까지도 새롭게 채택하여 논의하고있다. 또한 자신의 부파내의 여러 가지 이론(異論)이나 다른 학파의 학설을 수없이 인용하고 있어서 실로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가능한 한 집대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주석방법에 있어서도 반드시 발지론의 문구 하나하나에 대해 충실하게 해설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라고 인정되는 부분에서는 특별히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극히 간략하게 취급하는 것이 상례였다. 따라서 이 론은 실질적으로 발리본론의 한계를 뛰어 넘어 분명히 독자적인 커다란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모두 발지론의 조직에 따라 그 문의에 근거하여 주석하는 태도를 지키고 있다.

<아비담심론> 역시 작은 론이지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조직화하는 데 특기할 만한 공헌을 하였다. 이 론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7장에서는 복잡하게 발달한 설일체유부의 사상을 정연하게 조직하고 있다. 그것은 <발지론>에서 이루어진 8장의 조직에 비해 훨씬 진보한 것이다. 제1, 2장에서는 이 학파의 근본입장으로서 法의 이론을 설하고 제3, 4장에서는 미혹한 세계의 실상을 밝혔으며 제5, 6, 7장에서는 깨달음의 경지와 그것에 도달하는 길을 논하였다. 이 같은 론의 구성방법은 이후 거의 모든 설일체유부 논서가 답습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 논서 이후를 ‘후기의 논서’라고 한다.

<구사론> 역시 그것의 연장, 발전이지만 <아비담심론> 등에서 맨 마지막 3장에 포함된 보유나 부록을 정리하여 앞의 7장 가운데 적당한 곳에 수록하고 다른 새로운 1장을 더하여 미록한 세계의 현실을 밝히는 부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모두 8장으로 이루어진 한층 더 정연한 조직이 되었다. 거기다 다시 론의 말미에 특별히 독립된 1장을 부가하여 무아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집이문족론> <법온족론>에서 시작하여 <발지론>에서 학설의 대강의 전모를 드러내고 <아비담심론>에서 그 조직적 논술의 정형을 갖춘 설일체유부 논서는 이 <구사론>에서 최고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체계적 논서의 완성태라고 할 수 있는데 분량에 있어서도 <발지론>의 한 배반, <아비담심론>의 두 배나 되는 대작이다.

<구사론>의 저자는 바수반두(Vasubandhu)이다.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 사상을 상세히 설명하여 밝히고 있으며 특히 많은 불교술어에 대하여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불교교리의 기초가 되는 교과서로서 활발한 학습과 연구가 이루어져 수많은 주석서, 연구서, 해설서가 작성되었다. 그러나 <구사론>은 설일체유부의 학설만을 충실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때때로 저자 자신의 견해에 따라 전통 학설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다른 주장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럴 경우 설일체유부의 정통설을 비판하는 저자의 입장이 경량부(經量部)의 그것과 상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설일체유부의 논서라고 단정짓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구사론>을 계승한 것으로 상가바드라(Samghabhadra, 衆賢이라고 한역)의 <아비달마순정리론>과 <아비달마장현종론>이 있다. 이 두 가지 논서는 운문의 부분에서는 구사론의 그것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지만 산문으로 된 해설부분에서는 바수반두의 학설을 엄격히 비판하여 정통파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선양하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기본골격은 구사론을 따르되 그 학설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반박하는 것이다. <순정리론>은 그 분량에 있어 구사론의 두 배 이상이 되며, <현종론>도 구사론보다 많은 분량으로 되어 있는데 전자에서는 특히 그 예리한 비판과 상세한 반론이 두드러지며 후자에서는 비판보다 오히려 정통설의 천명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비달마의 법체계]

다르마의 이론

다르마라는 말은 불교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지만 아비달마(abhidharma)라는 말은 불교의 독자적인 용어로서 이미 아함경에 나타나고 있다. 아함에서는 아비달마는 ‘법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법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비(abhi)에는 ‘향하여, 대하여’라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나게, 매우’라는 의미도 있으며 이로부터 아비달마는 ‘훌륭한 법’으로 해석하는 설도 대두되었다. 설일체유부에는 아비달마를 ‘대법(對法)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팔리 상좌부에서는 아비달마를 오로지 ‘훌륭한 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다르마란 불타가 설한 교법을 말하지만 불타의 교법은 현실의 인간존재를 문제삼고 있다. 그 때문에 다르마는 그대로 현실의 인간존재를 가리키는 셈이다. 그리고 현실의 인간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해 사는 현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상을 성립시키고 있는 ‘요소적 실재’이기도 하다. 현상으로서의 현실은 육체와 정신, 외계 등으로서 나타나고 있지만 다시 그것을 세세한 요소로 분석할 수가 있다.

다르마의 실재성에 대하여 <구사론>에서는 존재를 승의(勝義)의 존재와 세속(世俗)의 존재로 나누고 승의의 존재를 다르마라 하고 있다. 예컨대 병은 깨어지면 없어지고 만다. 이러한 존재를 세속적 존재자라고 한다. 인간존재도 육체적, 정신적인 갖가지 요소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세속적 존재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병의 색이 청색이었을 경우 그 청색은 병이 깨지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병을 무한히 부수면 최후에는 극미(極微)로 되지만 청색은 그 경우에 존재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svabhava, 自性)을 승의의 존재라고 하고 이것을 다르마로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다르마는 요소로서의 실재이다. 그러나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무상하다. 따라서 법은 실재이긴 하지만 영원한 실재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법이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으로 나뉜다. 상주하는 법은 무위법이며, 무상한 법은 유위법이다. 유위법과 무위법의 구별은 이미 아함경에 보이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부파불교의 시대이다. 무위법의 대표는 열반이다. 열반은 시간을 초월한 실재이며 불타는 깨달음을 통해 이 열반과 합일한 것이다. <구사론>에서는 승의의 법은 열반뿐이지만 법상법(法相法)도 법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있다. 자상을 갖는 것이 법이며 열반도 이 중에 들어가지만 유위법도 자성을 갖는 법이다. 그러나 유위법은 무상하다. 이 무상이라는 것에 관해 상좌부나 설일체유부는 유위법은 자상을 갖지만 찰나(刹那)만 현재에 존재하고 해석했다. <구사론>에서는 ‘유위법은 찰나멸하기 때문에’라고 서술하고 있다. 유위법은 실재이지만 찰나멸한다는 점에서 법은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추구하면 ‘법의 공(空)’이라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나 부파불교에서는 ‘법의 유(有)’의 문제를 강조함에 그쳤을 뿐, 법공사상에는 이루지 못했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과제가 된다.

또 법에 대한 분류로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이 있다. 유루법이란 루(漏) 즉 번뇌에 더럽혀져 있는 법을 말한다. 무루법이란 번뇌에 더럽혀져 있지 않은 법을 말한다. 불타나 아라한의 깨달음의 지혜는 번뇌를 모두 끊고 있기 때문에 무루이다. 무위법도 번뇌와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무루이다. <구사론>에서는 ‘도제(道諦)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유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미혹의 세계의 원인과 결과는 유루인 것이다.

완성된 설일체유부의 이론에 의하면 존재의 요소로서 법을 75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다섯 가지 그룹으로 나누는데 이것을 이른바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이라고 한다. 오위(五位)라는 것은 색법(色法), 심법(心法), 심소법(心所法),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法), 무위법(無爲法)을 말한다. 존재의 제1법으로 물질(色)을 들고, 제2로 그것에 대립하는 마음을, 제3으로 마음과 상응하는 심소법을, 그리고 제4로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심불상응을 제시한다. 이들 사종은 유위법이다. 이들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제5의 무위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색에 11법, 심에 1법, 심소에 46법, 심불상응행에 14법 및 무위법에 3법을 상정하여 모두 75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75가지의 법은 상호 다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같은 인과 관계 위에서 유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세계이다. 그렇다고 할 때 그러한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다.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존재의 기본적인 요소인 법에 관한 것이다.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이 모든 것이 있다, 즉 존재한다는 주장은 모든 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통하여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렇다면 일체의 사물은 무상하다고 하는 불교의 기본적 입장과 모순되지 않는가라는 것이 바로 이 부파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게 하였던 문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이라는 것은 소박하게 사물, 존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존재의 기본적 요소인 법의 모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러한 논란이 반드시 적용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법도, 현재의 법도, 미래의 법도 모두 있다고 하는 것이 일체유의 의미이며, 그러한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서도 존재하는 법의 고찰을 통해 비로소 일체의 사물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분명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미혹한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

불교의 세계론은 수미산설로, 이는 중앙에 수미산이 있으며 그 사방에 4개국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남섬부주(南贍部州), 동승신주(東勝身州), 서우화주(西牛貨州), 북구노주(北俱盧州)의 4주이다. 이 중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은 남섬부주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이 4주의 밖은 바다인데, 그 바닷물이 새지 않도록 외측은 소철위산(小鐵圍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그 바깥에는 또 바닷물이 있고 산맥이 있어 도합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있다고 했다. 가장 외측에는 대철위산이 있으며 이것이 대지의 외측이다. 이 지리적인 세계를 기세간(器世間)이라고 한다.

인도인은 이 지상 윗쪽에는 천계가 있고 천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욕계의 천계와 색계의 천계가 있다. 욕계의 천은 6종이며, 수미산의 정산은 대지로서 그 사방에 사천왕중천(四天王衆天)이 있고 수미산의 한가운데에 33천이 있다. 그 위에 밑에서부터 차례로 야마천, 도사리천, 악변화천, 타화자재천이 있다. 이상을 육욕천(六欲天)이라고 한다. 이러한 인도인의 세계관을 불교에서 수용하여 이것을 교리와 결합시킨 것이다.

미혹한 세계의 인과(因果)는 한마디로 말해 번뇌에 의해 업을 일으키고 그로 말미암아 윤회의 괴로움에 빠지는 세계이다. 이 우주 안에서는 무수한 생명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 생명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중생(衆生) 혹은 유정(有情)이라고 하는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러한 중생들이 겪는 여러 가지 생존방법을 삼계(三界)와 오취(五趣)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삼계라고 하는 것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이다. 욕계와 색계는 물질적인 세계이고, 무색계는 물질이 아닌 세계 즉 순수한 생존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질적 세계 가운데 특히 욕망, 다시 말해 생물의 본능적 욕망이 강하게 일어나는 영역을 욕계라 하고, 욕망이 그다지 왕성하지 않은 영역을 단순히 색계라고 한다. 욕계보다는 색계가, 색계보다는 무색계가 한층 더 수승한 생존방법이며, 그 장소에 있어서도 욕계보다 색계가, 색계보다는 무색계가 위쪽에 위치한다. 즉 지하의 세계와 지표의 세계 그리고 공중의 세계 중 · 하층이 욕계에 속하고, 천계의 상층이 색계에, 나아가 천계의 최상층이 무색계에 속한다.

지하의 세계에는 지옥의 생활이 있고, 지표의 세계에는 아귀, 축생, 인간의 생활이 있고, 천계에는 천(天, 하늘의 신들)의 생활이 있다. 이것이 오취이다. 그리고 지옥, 아귀, 축생은 인간에 비해 열등하고 고뇌가 많으며, 좋지 않은 경계이기 때문에 삼악취(三惡趣)라고 한다. 여기에 대해 하늘은 인간세계에 비하면 휠씬 낫고 행복하며 좋은 경계이다. 그러나 천계도 결코 영원한 지복(至福)의 세계는 아니며 유한한 세계이고 전변이나 쇠망을 면할 수 없는 세계이다. 이것 역시 윤회하는 경계인 것이다. 천계에 살았던 자라고 할지라도 다음 생에는 아귀나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중생은 오취 중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로의 끝없는 생사의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삼계와 오취로 설명되는 윤회적 생존의 다양한 모습은 중생이 행한 선악업의 결과이다. 과거의 선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좋고도 즐거운 결과로 되고, 과거의 악한 행위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좋지 않고도 괴로운 결과로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업보는 엄격히 개별적인 것이다. 타인이 행한 선행의 좋은 결과를 자신이 받을 수 없으며, 자신이 행한 악행의 좋지 않은 결과를 타인에게 억지로 떠맡길 수 없다. 업의 문제는 나 한 사람의 문제이며, 하나의 행위적 주체의 문제이다.

업보의 필연과 자업자득, 이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중생의 생활 속에 선악의 근거가 성립하며 도덕의 근거가 성립한다. 업과 윤회의 세계라는 것은 다시 말해 선악의 세계, 세간적 도덕의 세계이다. 이 세계 안에서 인간은 악을 피하고 선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된다. 악취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선업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업에 의해 선취(善趣 즉 천계)에 태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불교가 목표로 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윤회의 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그것은 업보의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선취에 태어나게 하는 선업은 여전히 세간적 도덕에서 선 곧 유루의 선이다. 따라서 번뇌를 떠나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루의 지혜에 의한 무루의 선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세간적 도덕을 초월한 출세간의 도이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번뇌를 하나하나 끊고,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성도는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서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의 세 가지로 설명된다. 맨 마지막의 무학도는 도라고 하지만 앞의 견도, 수도의 과정을 통해 모든 번뇌를 끊은 결과로써 얻어지기 때문에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다. 무학이라는 것은 더 이상 배워야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의미이다.

따라서 삼도(三道)라고 해도 사실상 번뇌를 끊는 수행의 도는 견도, 수도뿐이다. 그러나 보통 그에 앞서 오랜 예비적 수행의 단계가 있어야 한다. 즉 계율을 지켜 그 생활을 올바르고 청정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삼매를 닦아 산란한 마음을 점차 아주 맑은 안온의 상태로 이끄는 도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심신의 수련에 의해 수행자가 마침내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번뇌를 끊게 될 때 그는 성도(聖道)에 들어간 것이며,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닌 성자인 것이다.

성도(聖道)의 첫 번째는 견도(見道)이다. ‘견(見)’이라는 것은 사성제를 관한다는 의미이다. 견도는 고집멸도인 사성제의 도리를 관하고 알아서 무루의 도를 일으켜 바로 88가지 번뇌를 단절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번뇌는 수행자가 무지하고 도리에 어둡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그가 일단 사성제의 진리성을 인식한다면 단번에 단절된다. 여기서 아는 것은 바로 끊는 것이다.

계속해서 수행자는 수도의 과정으로 행한다. 수도에 있어서 단절해야 할 번뇌는 10가지인데 모두 정의(情意)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견도에서 끊어진 이지적 번뇌와는 달리 단순히 이성상의 이해만으로는 끊을 수 없다. 즉 여기서는 아는 것이 바로 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알아도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것이 애욕이라든지 증오와 같은 정의적인 번뇌의 공통된 성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의 과정에서는 삼매의 수련을 거듭하고 사성제의 관찰을 반복함으로써 또한 싫증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마음을 고양함으로써 끊기 어려운 번뇌가 점차 단절되는 것이다.

성자가 견도와 수도의 과정을 거쳐 모든 번뇌를 다 끊어버렸을 때의 그를 아라한(阿羅漢, arahan)이라고 한다. 아라한은 원래 ‘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말로써 깨달음에 이른 불타를 그렇게 부르며 또한 불타의 제자로서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비달마에서 설해진 성자의 단계 중 가장 높은 계위를 가리킨다. 곧 아비달마에서는 아라한과 다시 말해 아라한의 계위를 얻는 것이 모든 출가 수행자가 목표로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수행자가 수행도의 예비적 단계를 마치고 난 후 비로소 견도에 들어와 88가지 번뇌를 단절하여 수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예류향(預流向)이라 하고, 바야흐로 이 수도에 들어간 단계를 예류과(預流果)라고 한다. 예류과로부터 아라한과 사이에 일래과(一來果), 불환과(不還果)의 두 단계를 두며 예류과에서 일래과에 이르는 과정을 일래향, 일래과에서 불환과에 이르는 과정을 불환향, 불환과에서 아라한과에 이르는 과정을 아라한향이라고 한다. 이러한 모든 계위를 합해 사향사과(四向四果)라고 하는데, 성도(聖道)에 있어서 번뇌를 단멸하는 정도에 따라 그 단계를 설정하였다. 예류(預流)라는 것은 ‘불법(佛法)의 흐름에 들어간 자’의 뜻이고 일래(一來)는 ‘이제 인간과 하늘 사이를 오직 한 번만 왕래하는 자’의 뜻이며, 불환(不還)은 ‘이제 더 이상 욕계에 돌아옴이 없는 자’의 뜻이다.

아라한은 원래 불타를 의미하였다. 이 말은 경전에서 불타의 다른 이름의 하나로서 잘 쓰이고 있어서 실제로 여래라든가 세존이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아비달마 논서에 있어서 수행자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로서의 아라한과 불타의 경지는 분명히 구별되고 있다. 무루의 지혜에 의해 모든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모두 불타일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범부로터 성자로, 그리고 아라한으로의 도는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와 동일하지 않다. 대개 범부로부터 아라한으로의 도는 오로지 번뇌의 단절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자의 도이지만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는 그밖에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자비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는 이타행(利他行)이 바로 그것이다. 범부로부터 아라한으로의 도는 사람들에게 널리 개방되어 있지만 보살로부터 불타로의 도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보살로서 불타로의 도에 들어설 수 있는 사람은 과거의 무수한 생애에서 햔량없는 덕을 쌓고, 사람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푸는데 소홀함이 없는 무한한 이타성과 자기를 연마한 존재뿐이다. 이렇게 선택된 희유한 인간이 그 도를 성취하여 불타로서 출현하는 것은 실로 십억의 세계를 그 속에 포함한다는 전 우주를 통해 보더라도 동시에 두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석존을 숭앙하는 깊은 마음에서 불타의 위대함을 극구 찬탄하면서 스스로 목적하는 바를 아라한과에 두어 아라한과 불타의 거리를 엄격히 유지하였다.

 

3. 대승불교

대승(大乘)은 소승(小乘)에 맞서는 말로, 커다란 승물(乘物, 탈 것) Maha-yana를 의미한다. 소승 즉 작은 hina 승물(乘物)이란 열등한 승물이라는 뜻이며 대승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 그 이전의 모든 불교를 일괄하여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것이다. 따라서 소승교도 자신은 이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깨달음에로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승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에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하고, 소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성문(聲聞) 및 연각(緣覺)이라 한다. 소승에는 이들 두 길이 있으므로 소승을 이승(二乘)이라고 한다. 대승에서 보면 이들 성문, 연각이라는 구별은 이승이 궁극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들도 참으로 궁극적인 것을 구한다면 모두 대승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전 불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길이며, 그런 의미에서 일승(一乘)이라고 한다.

 

1) [대승불교의 성립]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불교교단은 석존이 입멸 후 약100년간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러나 100년쯤(기원전 4세기) 되어서는 계율과 교리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발생하여 마침내 교단은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불교의 전파범위가 넒어짐에 따라 각 지방으로 퍼진 불교는 그곳의 기후, 풍토, 습관 내지 문화적 제반 사정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비구들의 생활양식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법과 율에 대한 다른 견해가 생겨나 교단은 통일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예컨대 붓다는 비구는 신자로부터 금이나 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한편에서는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라 그것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불교교단은 전통적인 계율을 고수하려는 보수적 경향의 상좌부(上座部)와 계율을 자유로이 해석하려는 진보적 경향의 대중부(大衆部)로 근본 분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 분열한 불교교단은 그 후 교리상의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의 분열을 한 후 불멸 400년이 지날 무렵에는 근본 2부를 포함하여 20여 부파로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하며 분열이전의 불교의 초기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라고 한다.

나아가 이 시기의 출가자들은 수행의 최고단계인 아라한(阿羅漢)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불교의 일체 교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논의하여 방대한 논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러한 논서를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며 그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하기도 한다. 아비달마란 붓다 교법에 대한 연구, 해석이라는 의미로 부파불교란 말이 분열된 교단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아비달마불교라는 말은 그들의 사상적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불교는 지나치게 번쇄하고 난해하여 점차 본래의 의도를 상실하게 되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현실의 괴로움에 대해 연기설에 입각하여 고찰하고 바른 지혜와 수행으로 해탈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 원칙 위에 교리를 세운 것이기는 하지만 점차로 실제의 수행보다는 번쇄한 교리해석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반발하고 비판하는 집단에 의해 대승불교가 싹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불교가 흥기할 무렵 정통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던 바라문교는 기원전 2세기경 사성(四姓) 즉 브라흐마나, 크샤뜨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급에 대한 종교적 의무와 생활규범 등을 규정한 <마누법전>을 비롯한 각종 제사경전과 서사시가 작성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종래 베다성전이 바라문의 전유물이었다면 새로이 편찬된 <마하비라타>와 <라마야나> 등의 서사시는 일반 대중이 애호하였던 종교문헌으로 이 두 서사시를 기점으로 그 이전을 바라문교의 시대, 그 이후를 힌두교의 시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베다>에는 보이지 않던 시바와 비슈누가 최고신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수많은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개성이 강한 신격(神格)이 되면서 다양한 신자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마하비라타>의 일편을 알려지는 <바가바드 기타>는 오늘날까지도 힌두교의 최고성전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바라문교의 형식적인 제사주의를 배격하고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인 신애(信愛, bhakti)를 강조하고 있다.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아쇼카왕 이래 부파불교의 출가자들은 국왕이나 장자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원조에 힘입어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게 되었고 안정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선정과 교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단이 분열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붓다의 교법에 대한 부파간의 쟁론을 초래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학문적, 철학적으로 발전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의 대중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교학은 초기불교의 교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지만 너무나도 번쇄한 이론체계를 전개시켜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고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난해한 교리나 엄격한 계율이 아니라 불타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었다.

이에 따라 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와 논의를 위주로 하는 기존의 승원불교에 만족하지 못한 재가자와 이에 동조하는 출가자들은 점차 불탑(佛塔)에 모여들게 되었다. 불탑은 부처님의 유골 즉 사리(舍利, sarira)를 봉안한 무덤으로 ‘포개어 쌓는다’는 뜻의 스투파(stupa)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파불교에 있어 붓다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아니라 법으로 인도하는 스승, 즉 도사일 뿐이었기 때문에 법을 떠난 불신(佛身)의 숭배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며 불상이나 불탑의 숭배 역시 그러하였다. 또한 붓다는 쿠시나가라에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들었기 때문에 진리 자체로서는 실재할 지라도 인격으로서는 실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붓다의 사리에 대한 공양과 예배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불탑의 조성은 생천(生天)을 보장하였고, 따라서 불탑의 조성과 경영은 재가신자들의 몫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불타의 탄생지인 룸비니와 성도지인 붓다가야,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의 녹야원, 입멸지인 쿠시나가라 등을 성지로서 숭배하였으며 그곳에 사당을 세워 순례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후의 시기가 되면 불탑의 건립이 매우 활발해지는데 여기에는 꽃이나 향 등이 바쳐지고 보물과 귀금속 등이 봉헌되었으며 춤과 노래가 베풀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은 기존의 부파 교단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비구들은 보통 승원이나 정사(精舍)에 머물렀으며 그곳은 불탑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들에게는 금이나 은을 받는 일, 춤추고 노래하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 부파불교는 법 중심의 불교, 계율을 중시하는 출가자 중심의 불교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속의 직업에 종사하는 재가자로서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킬 수가 없고, 선정(禪定)도 충분히 실천할 수 없으며 그것을 통해 증득되는 교법의 참다운 이해는 더욱 더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은 붓다에 대한 소박한 믿음으로 예배하고 공양함으로써 구원을 바라게 되었고, 그것이 행해진 대상은 불탑이었다. 만약 법 중심의 출가교단에 반하여 붓다 중심의 교법을 발전시킨 어떤 그룹이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출가교단에서 독립하여 자신들의 교법을 발전시키고 관불(觀佛)이라는 종교행위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서 불탑을 선택하였을 것인데 바로 이같은 불탑교단의 재가성과 신앙적 성격이 대승불교 성립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승불교 성립의 또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면서 불탑 신앙과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불전(佛傳)문학이다. 불탑신앙자들이 생각한 붓다는 이제 더 이상 법의 도사나 아라한이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애를 거쳐 오면서 초인적 이력을 쌓을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사모와 찬탄은 종래 법 중심의 이론적 교설과는 다른 형태의 문헌을 낳게 되었으며, 그것에는 논리적 설명을 초월한 비유와 은유, 혹은 우화의 성격을 띤 문학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불전문학으로 이같은 불전문학을 주도한 그룹을 찬불승(讚佛乘)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자타카>는 붓다의 전생을 설한 불전의 한 장르로서, 붓다의 성불을 가능하게 한 전생과 현생의 수행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현존하는 불전은 대개 부파교단의 문헌이지만, 그것들은 부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상의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대승경전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

보살의 수행

소승불교가 아라한의 불교라면,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경전은 오로지 보살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설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보살이란 상세하게는 ‘보디삿트바, 마하삿트바(Bodhisattva, Mahasattva)’라고 한다. 보디삿트바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그리고 마하삿트바란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불타가 되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고된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보살에게는 자기가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갖추고 있다는 신념이 없으면 안 된다. 이 점이 찬불승이나 소승과 다른 대승의 독자적인 입장이다.

우선 소승과 다른 점은 소승 즉 부파불교는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교리를 조직하고 있다. 제자가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소승불교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자기에게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 즉 불성(佛性)이 갖추어져 있다는 인식도 없다. 성불할 수 있는 것은 불타와 같이 위대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자기인식의 차이가 바로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다음으로 찬불승(讚佛僧)의 경우는 불전문학을 통해 성불의 원인을 탐구하고 보살의 위대한 수행을 찬양하고 있다. 따라서 찬불승도 보살의 가르침을 설한다는 점에서는 대승불교와 가깝다. 그러나 찬불승에서 설하고 있는 보살은 이미 성불이 결정된 보살이다. 성불의 수기(授記)를 받은 보살이다. 이에 비해 대승에서 말하는 보살을 자기자신이다. 성불의 수기 등과는 관계없는 범부로서의 보살이다. 찬불승에서 설하는 보살은 오로지 석가보살이지만 그는 연등불로부터 당래작불(當來作佛)의 수기를 받았다. 이 수기에 의해 그에게 보살로서의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일반범부인 대승의 수행자에게는 이러한 수기가 없기 때문에 보살로서의 자각은 다른 방편에서 얻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기에게 불성이 있다는 신념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이 점이 똑같이 보살을 설하면서도 찬불승과 대승불교가 갖는 본질적인 차이이다. 찬불승의 보살은 선택된 사람이지만 대승의 보살은 일반인이다.

 

보살의 수행

보살의 자각으로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이 시작된다. 아라한은 오로지 자기의 완성을 위해 수행한다. 그러나 불타는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으로 대자대비의 소유자이다. 그 불타가 되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은 필연적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수행이다. 즉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수행을 완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수행이다.

여기서 바라밀이란 빠라미따(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는데 한역에서는 보통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이 때 도달이나 완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달이고 완성할 수 없는 완성이다. 즉 바라밀은 무차별, 공에 입각한 실천이기 때문에 특정한 도달이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닦아가야 하는 것이 바라밀의 참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보시 등의 세속의 윤리가 종교적 덕목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바라밀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이다.

보시(布施, dana)란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에는 물질적인 베품인 재시(財施)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시(法施), 두려움과 근심을 함께 하고 도와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보시할 때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와 주는 물건에 어떠한 차별도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이다. 즉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가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은 요컨대 공한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계(持戒, sila)란 말 그대로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계에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할 오계와 출가비구와 비구니가 갖추어야 할 250계와 350계가 있지만 대승의 보살계는 10가지이다. 그런데 대승의 지계는 소승과 같은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계율지상주의가 아니라 이타를 위한 능동적이고 자율적 정신을 강조한다. 즉 계 역시 공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아울러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본질이다.

인욕(忍辱, ksanti)이란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이며 그러한 세계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화내지 않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미움을 부르기 때문에 참음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virya)이란 나약함이 없는 부동심의 실천이며 불퇴전(不退轉)의 노력이다. 대승의 공관은 결코 허무에 의한 나태가 아니다.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집착함이 없는 이타의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선정(禪定, dhyana)의 정(定)은 삼매(三昧)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이라고 풀이되며 세계 실상이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삼매로서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야(般若, prajna)란 ‘수승한 지혜’라는 뜻으로 이 때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득(不可得)이며 무소득(無所得)이다.

이처럼 바라밀의 수행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이타에 전력하는 입장이며 성불도 도모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대문에 이 수행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하다. 보살의 이 결의를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에 비유하여 ‘큰 서원(弘誓)의 갑옷(大鎧)을 입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살은 무량무수의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면서도 인도된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도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3) 대승경전의 성립

교단사적으로 보면 대승불교는 현재까지도 그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대승경전들로 보아 대승불교가 역사상 실재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해 말할 때도 그 대부분의 자료를 대승 경전 자체로부터 얻고 있으므로 단적으로 말하면 대승 경전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 따라서 대승경전의 발달사는 대승불교의 형성사와 중복되는 점이 많다.

현재 많이 보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불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총 100권 가운데 앞의 32권이 인도찬술부이며 이것이 본래의 대장경이다. 그것은 아함, 본연, 반야, 법화, 화엄, 보적, 열반, 대집, 경장, 밀교, 율, 석경론, 비담, 중관, 유가, 논집의 1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밀교부까지가 경이며, 율과 석교론 이하의 논을 합하여 삼장(三藏)을 형성한다. 경장부분도 원래 소승경과 대승경만으로 되어 있었는데 대정신수대장경에서 이와 같이 구분한 것이다. 그 중 반야부 이하가 대승경에 해당한다.

 

대승경전 성립의 배경

당시에는 불타가 직접 설하신 경전인 <아함경>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와 달리 불타의 참뜻을 나타낼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대승불교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설하려 했던 것인가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는 어떻게 흥기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대승불교 성립배경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대승불교는 원래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불탑 공양을 통해 불타를 찬미하고 숭배한 재가 신자들을 주로 하는 집단에 의해 일어난 신운동이다. 이 운동은 재래의 여러 부파들이 승원 중심의 불교로서 아비달마 교학의 확립을 지향하여 너무 전문적인 법 중심의 불교를 발달시키고 있었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불타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는 것으로서 이는 불멸 후 나타난 석존 신격화의 결과이다. 즉 불전과 본생담 등을 통해 점차로 발달하였던 불타에 대한 고찰의 결과, 불타는 과거에 무한의 수행을 한 과보로서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하며, 인행(因行)으로서 이타행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의 행을 설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불타의 체험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결심하였던 곳에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 있었다. 출가수행자들은 불타와 자신들과의 거리감 때문에 스스로가 아라한임에 머무르고자 했음에 대해,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불타의 본원(本願)이라고 주장하여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석존의 전신(前身)과 마찬가지인 보살이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운동은 대승이라는 이름을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법사(法師)라고 불린다. 법사의 기원은 어쩌면 출가 수행자 중에서 재가 신자를 위해 불타의 전기나 비유를 설하는 전문가였는지도 모르지만, 부파의 기록을 통해서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 대승측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재가 신자에서의 지도자이든가 혹은 출가자이더라도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대승 경전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 자체에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대승 경전에 대해 공양하고 숭배하고자 하는 요구와 법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요망이다. 결국 경전이 불탑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되었다는 것이며 대승경전이라고 하는 법의 절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두번째 현상은 성불도(成佛道)로서의 보살도가 정비되고 체계화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에 비판하였던 부파의 아비달마 교학을 다시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재가보살 대신 출가의 보살이 이상상으로 등장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대승불교의 이론화와 체계화는 결국 출가주의화와 아비달마화를 초래하여 이전의 불교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게 된다. 이로써 제3의 신운동으로 밀교가 일어나고, 이윽고 그 주장을 담은 그릇으로서 밀교 경전이 제작된다. 밀교 경전도 역시 불설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을 설하는 이가 대승 경전의 경우처럼 불타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로서의 법신(法身)이라고 했다. 밀교도 대승불교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승을 초월하여 출현한 것이라는 점은 대승이 불교이면서도 이전의 불교를 초월하여 출현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그리하여 인도불교의 최후까지 소승과 대승과 밀교가 병존하고 있었다.

 

대승경전의 발달구분

대승경전의 역사는 보통 3기로 나누어 논하게 된다. 제1기인 초기에는 대승의 형성에서부터 용수(龍樹)의 시대까지이고, 제2기인 중기에는 용수 이후에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시대까지이고, 제3기인 후기는 세친 이후의 후대이다. 제1기에는 경전 제작이 극대로 성행하였으며, 제2기에서는 조금 덜하였고, 제3기에서는 밀교를 제외하고 극히 드물었다. 제1기는 대체로 기원 전후로부터 3세기 전반까지로서, 북인도에서 쿠샤나 왕조가 번창하던 시대이고 남인도에서는 인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굽타 왕조가 흥성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7세기 후반 이전에는 순수한 밀교 경전이 형성되지 않았다.

초기의 경전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최초로 저술한 인물로 지목되는 용수의 학설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인용되고 있는 경전류이다. 물론 용수가 모든 대승 경전을 열거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용수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지라도 용수와 유사한 교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초기의 경전에 포함되는 것이다. 초기 대승경전 발전 이전에 <반야경>이 성립되었고, 이로 인해 교리적 영향은 매우 커서 모든 대승 경전이 공(空)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여러 부처를 인정하는 신앙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신앙이 보편화되어 정토교(淨土敎)를 대표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화엄경>의 그룹이 발전하고 또한 <법화경>을 신앙하는 운동이 급속하게 퍼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리의 조직 및 체계화에 동반하여 다시 부파불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나게 된다. 즉 부파불교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워진 것이다.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대체로 여래장 사상과 유식 사상에 관련된 것이다. 여래장계 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여래장(如來藏) 즉 불성(佛性)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대방등여래장경>을 선두로 하여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대운경>, <금광명경>,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승만경>, <앙굴마라경>, <대법고경>,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보리유지가 번역한 <부증불감경>, 진제가 번역한 <무상의경> 등이다.

유식계의 근본성전은 <해심밀경>인데 이의 전모는 보리유지에 의해 처음으로 전해졌으나, 부분적으로는 구나발타라에 의해 번역되어 있으므로 4세기 말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외에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섭대승론>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경전과 논전과의 구별이 어렵다. 더욱이 이 시기의 경전에는 논전을 기초로 하여 개작된 것도 있다.

대승 경전의 제작은 후대에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수는 갑자기 줄어들게 된다. 대신 밀교 경전이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것은 650년을 전후로 <대일경>의 성립을 통해 현교(顯敎)인 대승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고, 또한 <금강정경>에 의해 그 교리가 확립되었던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4. 대승사상의 전개

반야바라밀의 이념 아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를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이론은 서력 기원후 2에서 3세기 무렵에 출현한 용수(Nagarjuna, 龍樹)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그는 불교 최고의 논사로 제2의 붓다로 칭송되고 있는데,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수많은 논서를 저술하였다. 특히 그의 주저인 <중론(中論)>에서 불교의 근본진리인 연기를 생멸(生滅), 거래(去來), 일이(一異), 단상(斷常)의 차별적인 대립을 넘어선 것[八不中道]으로 해석하여 어떠한 견해에 대한 집착도 부정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일체는 공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공(空)의 이론을 확립하여 대승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용수에 의해 일단 종합 정리된 대승불교는 교리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경전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이들 새로운 경전에서는 앞 시대에 수립된 공사상에 입각하면서,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문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즉 마음은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를 낳는 원천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마음은 보리(菩提)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설이고,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유식설이다.

유식사상은 일체의 분별망상이 비롯되는 장(場)으로서 인간의 의식자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을 통해 진여(眞如)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론으로 3, 4세기 무렵 출현한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아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양자간의 융합을 모색하려는 경전과 논서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같은 새로운 경전이 제작되고 연구되는 시기를 중기 대승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중기 대승불교의 이론은 아비달마불교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자연히 초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후기 대승불교라 할 수 있는 밀교가 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불타의 깨달음을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 만다라(曼多羅)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신앙실천의 중심의 불교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 마침내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불교는 서력 기원전 후 동쪽으로 진출해서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수(隨) 당(唐)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도의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넓은 지역에 체계적으로 전파된 것이었으므로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불교의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한다. 이같은 교상판석에 따라 마지막으로 설해진 또는 가장 뜻이 깊은 것으로 간주된 경론들을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종파들이 성립하게 되었다. 불교의 종파는 이미 동진시대나 남북조시대에 여러 경론이 번역되고 그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종파가 성립하게 된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13종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법화경>의 일승(一乘)을 대승불교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천태종(天台宗),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法界)를 깨달음의 본질이라고 하는 화엄종(華嚴宗), 정토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정토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토종(淨土宗), 그리고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앞의 여러 종파와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표방하는 선종(禪宗) 등이 있다.

이제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인 공사상과 유식사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천태, 화엄, 정토, 선종 등의 사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공사상(空思想)

공사상의 전개

공(空)이란 용어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특히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이 말은 자성(自性, svabhava), 실체(實體, dravya), 본성(本性, prakti), 자아(自我, atman) 등과 같이 인간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오직 우리의 인식 안에 있는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空)이란 용어의 원어는 sunya로서 본래 ‘부풀어 오른’, ‘속이 텅 빈’, ‘공허한’ 등을 의미하여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속이 비어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sunya라는 말이 불교에 도입되어 공(空)으로 한역되고, 특히 <반야경>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이 공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여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것을 공사상이라 하며 특히 대승불교에서 이러한 공사상을 강조한 사람들을 공론자(空論者)라 부르고, 그들의 주장을 공론(空論)이라 한다. 이러한 공론자는 용수 이후 중관파(中觀派)를 형성하여 공사상을 전개해 가며 그들은 스스로를 공성론자(空性論者)라 불렀다.

<반야경>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공사상은 후에 용수에 이르러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대승불교 철학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용수는 공의 개념이 불타가 깨달은 연기법의 이치와 일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부파불교 중의 하나인 설일체유부에서 주장한 법의 견해를 비판하여 공은 곧 무자성(無自性)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용수에 의해 명확하게 체계화되는 공사상에 대한 논리는 이미 불타의 근본교설을 전하는 초기불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왜냐하면 불타의 근본사상을 나타내는 것이 다름아닌 연기설이며, 이 연기설을 바탕으로 공을 이론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의 이론적 전개와 관련하여 불타는 당시 중요한 논쟁의 주제였던 아트만(atman, 自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불타는 세간이 공한 것은 아트만이 없는 까닭이며, 그 아트만은 안, 이, 비, 설, 신, 의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 어디에도 없음을 설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불전에서는 공의 의미가 무아(無我)설과 밀접히 관련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 가장 먼저 성립된 것이 <반야경>.으로 이 <반야경>은 후에 <대반야바라밀다경> 600권으로 집대성된다. 이러한 <반야경>에 공통되는 중심사상이 공관(空觀)으로 공관이란 일체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 본성이 공하며, 또한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반야경>의 공관은 대승불교 자체의 기본적인 교설이 되고 아울러 대승불교도의 실천적 기반을 이루게 된다.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면 대승불교 이전의 부파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의 교리는 <반야경>의 공사상이 출현하는 사상적 배경이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설일체유부에서 일체법이 존재한다는 실유(實有)의 주장은 <반야경>의 공사상과 대승불교의 중관철학이 발생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부파인 설일체유부는 모든 요소를 법(法)이라 부르고 그 법을 5위75법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일체 존재를 다양한 법의 이름을 분류하고 그리고 그 각각의 법에는 파괴되지 않는 법의 고유한 자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색법, 심법, 심소법, 심불상응법, 무위법의 5위로 구분되는 일체 존재와 그 각각에 속하는 75개의 법은 과거, 현재, 미래를 걸쳐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설일체유부의 법체항유설(法體恒有說)로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야경>은 각각의 법에는 그와 같은 실체, 자성이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공이라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즉 모든 법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인 법의 관념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다른 법과 조건지워져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 실체적 본성을 갖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무자성인 것으로, 이 무자성인 것은 곧 공인 것이다.

그러나 일체가 공하다는 관찰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여 얻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단계가 아니라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에서 얻어진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반야지혜로서 공관은 용수와 그 이후의 사상가들에게 있어 이제설(二諦說)의 입장에서 명확히 그 구분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반야경>은 법의 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공관은 반야바라밀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지혜인 것이다.

 

공사상의 전개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이 용수이며, 이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을 중심으로 한 사상을 일반적으로 중관사상이라 말하며, 또 그 중관사상의 흐름을 이어받는 불교 논사들을 중관파라 부른다. 용수는 <중론> 외에도 다수의 저작을 남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론>으로 이후 많은 주석서가 쓰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용수는 <중론>을 저술하여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 <중론> 속에서 용수는 공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것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게송에서 볼 수 있듯이 용수는 <반야경>에서 공이라고 설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는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인 존재의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까닭에 연기의 관계를 떠나있는 독자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나 실체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용수는 이러한 연기의 인연관계를 떠나 있는 것을 자성(自性)이라고 부르고 따라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물이 연기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실체인 자성에 의해 생긴다고 한다면 그 때는 자성이 서로 연기한다는 모순이 될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곧 자성이란 인(因)과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 없는 항상 고정불변한 존재이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것은 생겨날 수도 있을 수도 없음을 용수는 지적하고 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과 연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이 없는 까닭에 공인 것이다.

이처럼 용수가 고정불변한 자성의 개념을 부정한 것은 그 자성의 관념이 우리 인간들의 망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이 자성의 개념은 다양한 인연의 관계를 초월해 영원한 동일성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내재한 본질적 속성을 가리키고 있다. 즉 우리의 삶의 세계는 수많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약속에 의거한 언어적 세계로서 영원히 변치않는 절대불변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어를 불변적인 것으로 잘못 생각해 그로 인해 번뇌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론>은 그와 같은 불변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삶의 세계가 연기의 이치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중론>이 이처럼 연기법을 바탕으로 무자성, 공에 대한 논리를 수립하여 <반야경>의 공관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적 체계에 무엇보다 중요한 관점을 용수는 이제설(二諦說)의 정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2제에 대한 교설은 공에 대한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동시에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 사이에서 그 견해 차이로 인해 중관파가 둘로 나뉠 정도로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교설이기도 하다. <중론> 제24장에서 용수의 반대자는 만약 일체가 공이라면 사성제, 사향사과(四向四果), 삼보(三寶) 등의 일체도 공하여 모두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수는 그 반대자가 공용(空用), 공성(空性), 공의(空意)에 대해 무지한 까닭에 그와 같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뒤 이제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2제는 불타가 의거해 설하는 것으로 이 2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진실한 뜻을 아는 관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2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나아가 용수는 ‘연기와 공성을 파괴한다면 세간의 일체 언어습관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라고 하여 연기와 공의 이치야말로 세간을 성립시키는 근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다름아닌 연기와 공을 바탕으로 성립하므로 만약 연기와 공을 부정한다면 세간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의 세계가 언어의 세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변의 자성세계가 아니라 약속과 습관에 의거한 연기의 세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와 같이 세속제를 성립시키는 바탕으로서 연기와 공의 이치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제일의제를 알 수도 없고 또한 열반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기와 공의 이치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경지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반야바라밀의 세계는 곧 제일의제의 진리세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성립하는 근저로서 연기와 공에 대한 이해야말로 승의의 진리를 알고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용수는 2제설을 통해 연기와 공의 이치가 세간을 세간답게 하고 제일의제와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였다.

용수는 <중론>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을 연기설과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 공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대승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확립시켰다. 이로 인해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불타에게 유래되었음이 분명해지고 아울러 대승불교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공고히 되었다.

 

2) 유식사상(唯識思想)

유식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원리를 관찰해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유심론(唯心論)적 성격은 근본불교에서부터 있었다. 초기에 육처(六處)와 십이처(十二處)설이 있었는데, 이것은 인식에 의거하여 존재를 고찰하는 설이다. 12처란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을 인식기관에 의거하여 여섯 개의 영역으로 구분한 설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외계의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았지만 유식설에서는 외계의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외계의 대상은 인식되는 대상으로써 인식되지 않았다면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식설에서의 대상은 인식되어진 대상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고 제법의 무아(無我)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아설에 의해서 불교에서 ‘인격의 주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주체가 없으면 기억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 책임의 소재 등의 문제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자업자득의 원칙을 강조하게 되면 자아의 자기 동일성이나 인격의 지속성이 요청된다. 그 때문에 제행무상과 무아의 교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격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파불교의 커다란 과제였고 그리하여 이에 대해서 갖가지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설일체유부는 제법의 찰나멸을 주장하면서도 다시 제법의 상사상속(相似相續)을 인정하고 의식의 흐름을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유부는 생리적으로는 명근(命根)의 존재를 설하고 이로써 생명이 지속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직 인격이나 주체의 관념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독자부나 정량부가 비즉비리온(非卽非離蘊)의 아()를 설한 것은 유명하다. 독자부는 이것을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불렀는데 이 보특가라는 오온(五蘊)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온을 떠나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그것은 인식될 수도 없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지만 이러한 인격적 주체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화지부에서는 궁생사온(窮生死蘊)을 설하였고, 이 주체들은 개체의 죽음과 함께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여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 즉 윤회의 주체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또 부파불교시대에는 잠자고 있을 때에도 미세한 마음의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것으로서 대중부나 분별론자 등은 세심(細心)을 설하고 미세한 마음의 지속을 주장했다. 대중부가 설한 근본식(根本識)도 이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표면심에 대한 잠재심의 관념이 생겨났을 것이다.

또한 업에 관해서는 선악의 행위가 있고 나서 그 과보를 받을 때까지 업력은 어떻게 보존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즉 업과 그 과보를 연관시키는 매개자의 문제이다. 이것을 대중부는 증장(增長)이라고 불렀고 유부의 무표업(無表業)도 본래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경량부는 이 업력을 종자(種子)라고 불렀다. 즉 업력을 식물의 종자가 가진 잠재적인 힘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단지 선악의 업에만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위가 종자의 형태로 바뀌어 존속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경량부에서는 이 종자가 어디에 보존되는가를 생각한 끝에 그 장소로서 잠재심을 상정하지 않고 색심호훈(色心互熏)을 설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부파불교에서 생겨난 갖가지 사상이 대승불교로 계승되어 인격의 주체 속에 잠재심, 무의식의 영역이 상정되게 되고 거기에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상이 확립되어간 것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아뢰야란 ‘간직한다’는 뜻이다. 종자를 소장하고 있는 식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종자의 집합체 이외에 그 용기로서의 다른 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 한다. 이 아뢰야식이라는 개념은 이미 <해심밀경>에 나타난다. 이 아뢰야식은 인간 존재의 근저에 항상 상존해 있으면서도 변함이 없으며 그 흐름은 일생동안 끊어지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생존에까지 계속 영향을 미쳐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중생이 어떠한 행위나 행동을 하는 한 그것은 대개 선업이나 악업을 지어서 그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때에 아뢰야식이 업력의 소의처가 되어 그 속에 종자가 잠재하고 있다가 그에 알맞은 환경이나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모든 세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서 현상계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팔식(八識)의 구조

마음을 심(心), 의(意), 식(識)으로 부르는 예는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발견된다. <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 의,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 의, 식의 체성은 염오성(染汚性)이라고 보았으며, 심의식은 무상한 것이라고 여겼다. 초기경전에서는 각각의 개별적인 심리작용은 없었으며, 생각하고 사랑하고 요별하는 심리작용을 총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파불교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로 분류하였는데 심왕은 심의 주체로서 인식주관이며, 심소는 개별적인 심리작용이다. 심왕이 바로 심의식이며 이는 육식(六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심, 의, 식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72권에서는 심의식의 무차별설과 차별설을 같이 설하고 있다. 무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의 차이만 있을 뿐 다같이 정신의 주체를 가리키며 체(體)가 동일하다는 것으로 이는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과 교설의 시설, 의미, 업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체(體)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친은 <구사론>에서 심은 집기(集起)의 의미가 있으며, 의는 사량(思量)의 의미가 있으며, 식은 요별(了別)의 의미가 있다고 설했으며 이는 정신의 주체이며 작용만 다를 뿐 체는 하나라고 하였다.

유가행파의 유가사들은 선정 관행 중 심층적인 식의 흐름과 기능에 주목하여 종래 부파불교시대부터 탐구되던 두 가지 문제인 윤회의 주체와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윤회의 주체는 아뢰야식, 번뇌와 아집의 주체는 말나식의 식체(識體)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말나식(末那識)을 결합하여 팔식(八識)을 구성하였다. 팔식 가운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은 묶어서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는데 이 식들은 각각 대상을 요별하고 분별한다. 의식(意識)은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이 의식은 전오식으로는 볼 수 없고 만져볼 수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고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거나 아니면 홀로 활동한다. 의식이 일어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전오식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한눈을 팔아서 올바르게 인식되지 않은 경우이고, 두 번째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제8 아뢰야식을 일으킨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일부러 우리가 어떤 의도적인 행위를 하고나 아니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의 4종 번뇌와 항상 같이하면서 업을 일으킬 때 이들에 의한 인상이나 여운 등을 그대로 흡수하여 저장하는 장소로서 아뢰야식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식은 제6식보다는 깊고 제8식보다는 얕은 제7말나식이라는 의식이 상정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7말나식을 일컬어 자아의식이라고도 하며, 이 식에 의하여 업을 지어서 중생들이 결과적으로 세세생생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제8아뢰야식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 같이 항상 제7말나식의 집착력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럴 경우 제8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의 본래 의미는 유루법이 현행하는 사이, 곧 아집 등이 활동하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유식의 수행

유가행의 수습단계가 발전하여 유식사상에서는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다. 오위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및 구경위(究竟位)에 각각 해당된다. 첫째 자량위는 복덕과 지혜의 2자량을 축적하는 수행의 준비단계라는 의미이다. 즉 친구의 권유나 자기의 의지로써 유식의 교리를 배우고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유식이 자기 것으로 체험되지 않은 단계이다. 따라서 아집, 법집의 번뇌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단계라 하겠다. 둘째 가행위는 이미 직접적으로 유식의 수행으로 나아간 단계이다. 그러나 눈앞에 어떤 대상을 설정하고 이것이 유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단계이므로 아직 참된 유식에 들어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유식이라는 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가행위에서 사심사관(四尋四觀) 사여실지관(四如實智觀) 등의 관법을 닦아 유식의 수행이 진전함으로써 유식에 통달한다. 이것이 세 번째 통달위이다. 즉 인식의 대상을 나로 집착하거나 법으로 집착하는 일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혜가 소연(所緣)에서 생기지 않을 때 유식성에 머문다’라고 한다. 소연에서 앎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집착이 없어졌음을 뜻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집착하는 주체도 없다. 그것은 주객의 분열이 없어진 지혜이기 때문에 무분별지라고 한다. 이것은 상대를 떠난 지혜, 즉 공의 지혜이다. 공(空)은 형태나 크기가 없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공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 공을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분별지이다.

이 유식에 안주한 지혜를 견도(見道)라고 한다. 견도에는 진(眞)견도와 상(相)견도가 있다. 진견도는 근본 무분별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성(性)을 깨닫는 것이고, 상견도는 후득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상(相)을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진견도는 이공소현(二空所顯)의 진여를 깨닫는 것이다. 이 통달위는 성자의 부류에 속하게 되는 것이며, 십지(十地) 중 최초의 환희지에 든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수행을 계속하여 제10지의 위에 이르기까지가 네 번째 수습위이다. 즉 이 단계에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무분별지를 수습하고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끊어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전의(轉依)를 실현하는 것이다. 앞의 통달위 단계에서도 무분별지가 나타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다시 번뇌가 생긴다. 그러한 상태에서 무분별지를 자주 수습하여 그 수습이 완성될 때 전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번뇌장을 떨쳐버림으로써 대열반을 얻고 소지장을 떨쳐버림으로서 대보리를 얻는 것이다. 수습위의 다음인 다섯 번째 구경위는 불과(佛果)이다. 이것은 앞의 전의에 의해 얻어진 경지이다.

 

3) 천태사상(天台思想)

태의 교리적 핵심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제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말이고, 실상은 참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법실상이란 현실의 온갖 사물이 참된 존재라는 말로써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제2품 방편설에 나오는 말이다.

천태학의 소의경전은 <법화경>이며, 이 경을 중심으로 교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천태에서는 <법화경> 28품을 앞뒤 14품씩으로 나누어 본다. 앞은 적문(迹門)이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제법실상을 중심으로 불타의 금생교설을 총괄하였고, 뒤의 본문(本門)은 시간적으로 제법의 영원성을 지시하고 불타의 과거세의 온갖 행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천태학의 주요전적이라 할 때 <법화경>보다는 삼대부로 불리는 법화경의 세 가지 주석서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삼대부는 천태의 강의내용을 장안 관정(灌頂)이 필수 정리한 것이다. 천태종의 개종자인 지의는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도 만년에 학문과 수행이 원숙한 경지에서 독창적인 불교학의 체계를 세워 강설한 주석서인 <법화문구(法華文句)>와 법화철학의 정수요 원론서인 <법화현의(法華玄義)>와 수행과 실천의 대도를 밝힌 <마하지관>을 삼대부로 불러왔다.

먼저 <법화현의>는 <법화경>과 천태학의 총론적 연구서이다. 교상문(敎相門, 교학)의 대표 저서로서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의 제목을 중심으로 하여 경전의 요지를 해석하고 붓다 일생의 교법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이른바 오중현의(五重玄義)로서 법화사상을 강론한 것이다. 곧 경의 제목, 주체, 근본, 작용, 교판의 다섯 기준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모든 경전을 분석 판별하여 법화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법화문구>는 <법화경> 28품의 모든 문장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여기에서도 네 가지 기준을 설정하여 전형적인 경전 해석학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설법의 인연에 따른 해석이며, 그 둘은 듣는 이의 근기와 기호에 따른 해석이고, 다음은 불타의 입지가 법신(法身)의 본래불인가 아니면 화신불(化身佛)인가 등에 따른 차별적 해석이며, 마지막은 관심법 등 신행방법의 차이에 따른 해석이다.

삼대부의 마지막인 <마하지관>은 천태종의 실천적 관심법을 체계화한 저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정법은 천태 이전부터 전해온 여러 경전들의 내용을 모으고 정리한 것이어서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지의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천태의 교상판석

중국에서의 교판사상의 기원을 찾아본다면 동진시대의 라집(羅什)과 보리유지(菩提流支)의 일음교설(一音敎說)이 있었고 라집의 수많은 문하 중에서도 특히 도생(道生)의 사종법륜설(四宗法輪說)과 승예(僧叡)의 사교설(四敎說) 등이 있었다. 육조시대에 들어오면서 동진시대에 행해지던 교판사상이 점차 발달하여 ‘남삼북칠(南三北七)’의 교판이 형성되었다. 먼저 남방 삼가(三家)의 교판설을 살펴보면 이들은 불교를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로 나누었다. 돈교에 <화엄경>을 배대시켰으며 점교는 유상교(有相敎; 아함), 무상교(無相敎; 반야), 억양교(抑揚敎; 유마), 동귀교(同歸敎; 법화), 상주교(常住敎; 열반)로 나누었다. 북방 칠가(七家)의 교판설 가운데 광통(光統)과 혜광(慧光)의 사종판(四宗判)에서는 불교를 인연종(因緣宗; 비담), 가명종(假名宗; 戒論), 광상종(대품삼론), 상종(常宗; 열반, 화엄)으로 나누었다. 이 사종판은 후에 오시팔교(五時八敎)설 가운데 화의사교(化儀四敎)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현의>에서 ‘남삼북칠’이라 하여 이전에 정한 대표적인 교판 10 가지를 열거하여 전부 비판하고 자신의 교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천태의 교판은 ‘남삼북칠’의 교판의 영향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며 종래의 교판을 종합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시(五時)와 화의사교는 비밀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명칭이 이전의 교판 가운데 있고 지의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의는 불교의 모든 경교(經敎)를 불타가 설법한 차례와 순서에 따라 다섯 단계 즉 오시(五時)로 배열하였다. 여기에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분류한 화의사교(化儀四敎)와 불타의 법의 내용을 일체교리를 분류한 화법사교(化法四敎)의 팔교(八敎)를 결부시켜 ‘오시팔교(五時八敎)’로 지칭되는 교상판석을 완성시켰다.

오시란 화엄시(華嚴時), 아함시(阿含時), 방등시(方等部), 반야시(般若時),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일체의 경전을 설한 시기에 따라 분류하고 통일한 것이다. 화엄시는 불타가 <화엄경>을 설한 것을 말하고 그 시기는 성도 후 21일간이다. <화엄경>은 불타가 직접 깨달은 법을 조금도 수식을 가하지 않고 순수한 형태로 직접 설한 것이다. 아함시는 불타가 장아함, 중아함, 증일아함, 잡아함 등의 <아함경>을 <화엄경>을 설한 직후 1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최초의 설법장소가 녹야원이었으므로 녹야시라고도 한다.

<아함경>은 이해력이 가장 낮은 사람을 위한 경전으로 간주되며 불타 최초의 설법에 해당한다. 방등시는 불타가 <유마경> <능가경> 등의 여러 방등(方等)경전을 아함 이후 8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방등경은 소승의 사고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엄하게 나무라면서 대승으로 이끌어간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소승불교를 배척하고 대승불교를 찬탄했으며 소승을 부끄럽게 여기고 대승을 흠모한 것이다. 반야시는 불타가 각종의 <반야경>을 방등 후 2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空)의 근본진리를 해명함으로써 소승을 대승으로 길들인 것이 된다. 법화열반시는 불타가 <법화경>과 <열반경>을 반야 후 8년 동안 설하는 것을 말한다. <법화경>은 통일적인 진리 내지는 세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열반경>은 불타가 입멸할 즈음에 하루 밤낮을 설했던 것으로 내용적으로 <법화경>과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

오시를 통(通)과 별(別)로 구분해서 보았는데, 통오시란 오시는 시간상 구별이 아니라 설명내용의 분류이며 오시 상호간에 오시의 설법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별오시란 시간상의 차제를 분류한 것이다. 팔교는 화의사교와 화법사교이다. 화의사교는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로 분류한 것이고 화법사교는 불타의 법의 내용으로 일체 교리를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로 분류한 것이다.

화의사교를 살펴보면 돈교는 직돈(直頓)의 의미로 점진, 유인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번에 대승의 심오한 법을 설하는 것을 말하며 화엄시에 해당한다. 점교는 점차의 의미로서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점진, 유인하는 것을 말한다. 소승으로부터 대승에 걸친 설법이 포함되며 아함, 방등, 반야시에 해당한다. 비밀교는 비밀부정교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이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 채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으로 모든 경전에 지칭된다. 부정교는 현로부정교(顯露不定敎)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의미가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소승과 대승의 모든 경전에 대하여 지칭할 수 있다.

화법사교는 지의의 독창적인 인식으로 지의의 불교관과 사상적 입장이 표출되어 있다. 장교는 경, 율, 론 삼장교(三藏敎)의 의미로서 소승불교를 가리킨다. 불교교리의 초보적인 단계로 특히 공(空)을 파악하는 방법에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상으로는 자기 및 세계를 요소로 분석하여 진정한 존재물은 이 요소뿐이며 이것을 법체(法體)라 하고 삼세(三世)에 항존하기 때문에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했다. 바로 사물을 요소적으로 분석해감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무(空無)를 주장하였으므로 절공관(折空觀)이라고 평하게 되었다. 또 공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정체했다고 하여 편공(偏空), 단공(但空), 단공(單空)이라든가 허무공견(虛無空見)이라고 비판받았으며 장교의 공관이나 입장은 진리로 인도하는 방법이 졸렬하다고 하여 졸도관(拙度觀)이라고도 지칭된다.

통교는 공통의 교법이라는 뜻으로, 앞의 장교에도 통하고 뒤의 별교, 원교에도 통하며 또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즉 대승과 소승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장교가 사물의 생멸을 분석적으로 관찰하는데 비해 통교는 사물 그대로에 합치하여 전체적으로 공이라고 본다. 바꿔 말하면 사물의 당체(當體) 그대로 공이라고 하여 당체즉공(當體卽空)의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체공관(體空觀) 또는 즉공관(卽空觀)이라고 불린다. 생멸에 관해서는 생(生)을 고집하지도 멸(滅)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생과 멸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간략하게 무생관(無生觀)이라 지칭된다. 장교의 졸도관에 대하여 이것은 교도관(巧度觀)이라고 지칭된다. 대승의 경전 가운데 특히 <반야경>이 통교를 대표한다.

별교는 앞의 장교와 통교, 뒤의 원교와도 구별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오로지 보살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서 이 점이 이승(二乘)과 같지 않으며 대승에서 설한 특별한 가르침이다. 교리로서는 공(空)으로부터 가(假)로 나아가며 현실의 한량없는 모습에 대한 자유자재의 대응을 설한다. 그리하여 다시 중(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별교에 있어서 공(空), 가(假), 중(中)은 점차적이고 단계를 낮춘 것으로서 원융상즉에까지 이루지 못한다. 중(中)은 공(空), 가(假)에 대해 특별한 것이고 목적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중(但中)이라고 평해진다. 이러한 점에서도 별교라고 지칭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전으로 <화엄경>을 들 수 있다.

원교는 원유, 원만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진리 내지 세계를 총합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공가중(空假中)에 대하여 말하면 별교처럼 차제의 삼관(三觀)이 아니고 원융상즉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이다. 공가중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참으로 적당함을 얻어서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진(眞)이 되는 등, 여러 가지 사물이 본래 지녀야할 바를 얻어서 무작(無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원교에 가장 적합한 경전으로 <법화경>이 거론된다.

이상에서 천태의 교판론인 오시팔교(五時八敎)설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대의 문헌고증에 의할 때 천태의 오시의 배열은 사실과 다르며, 오시팔교에 대한 역사성도 의문시된다. 그러나 오시팔교설은 천태대사의 불교관을 표명한 것으로 천태교학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불타의 설법(說法)과 설시(說時)에 의거한 것으로 보면 그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천태의 지관법문

천태사상은 크게 교상문(敎相門)과 관심문(觀心門)으로 나누어진다. 교상문은 이론적인 측면으로써 교학적으로 사상을 체계화한 것으로 ‘오시팔교(五時八敎)’가 대표적인 예이다. 관심문은 수행적인 측면으로 실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천태지의의 실천론은 지관(止觀)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지관은 지의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말로써 지(止)는 범어 samatha로 바깥 경계를 쫓아 일어나는 모든 잡념과 망상을 그치고 마음을 고요히 지니는 방법으로 곧 적정(寂靜)을 뜻한다. 관(觀)은 범어 vipasyana로 어떤 대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지관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가운데 정(定)에 속하는 정도이지만 지의에게 있어서 지관은 인도에서 의미하던 것을 넘어서 보다 넓고 깊은 차원을 나타낸다. 그에게 지관은 보다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선정(禪定)적인 면과 선혜(禪慧)적인 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지관은 크게 나눠서 점차(漸次)지관, 부정(不定)지관, 원돈(圓頓)지관의 세 가지가 있다. <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의하면 이 세 가지 지관은 천태지의가 남악 혜사(慧思)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점차지관은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점차적으로 지관을 실수(實修)하는 것을 말하고, 부정지관은 때와 경우에 따라 심천(深淺), 전후(前後)가 서로 호응되는 것을 말하고, 원돈지관은 전체적, 종합적으로 곧바로 실상의 구극을 체득하고 체현하는 것을 말한다. 천태지의의 저서 가운데 점차지관이 중심인 것은 <차제법문(次第法門)>이며, 부정지관이 중심인 것은 <육묘법문(六妙法門)>이며, 원돈지관이 중심인 것은 <마하지관>이다.

오시팔교의 화법사교에 의하면 장교에서는 석공관(析空觀)을, 통교에서는 체공관(體空觀)을, 별교에서는 공가중(空假中)에 대한 차제삼관(次第三觀)을, 원교에서는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을 닦는다. <마하지관>에서 말하는 원돈지관은 이 원교의 지관법으로 천태실천론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지관>은 천태실천론의 궁극적인 이상인 원돈지관을 오략십광(五略十廣)의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략(五略)은 발대심(發大心), 수대행(修大行), 감대과(感大果), 렬대망(裂大網), 귀대처(歸大處)로 구성되어 있다. 발대심(發大心)에서는 열 가지의 틀린 생각을 제시하면서 사성제나 사홍서원 혹은 육즉(六卽) 등의 교설을 매개로 삼아 생각을 바르게 하며,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지관의 구극을 향하여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대행(修大行)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에 관하여 사종삼매(四種三昧)의 지관 실천법을 설명한다. 감대과(感大果)에서는 지관의 성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렬대망(裂大網)에서는 지관의 달성에 의해 세간의 미혹이라는 그물이 파열되는 것을 말하고, 귀대처(歸大處)에서는 지관이 귀착해야 할 곳을 밝힌다. 오략(五略)을 확대해서 설명한 것이 십광(十廣)으로 대의(大義), 석명(釋名), 체상(體相), 섭법(攝法), 편원(偏圓), 방편(方便), 정수(正修), 과보(果報), 기교(起敎), 지귀(旨歸)로 구성된다. 대의(大義)에서는 오략(五略)의 대의를 기술하고, 석명(釋名)에서는 상대지관관, 절대지관, 천태가 의미하는 지(止)의 세 가지 뜻과 관(觀)의 세 가지 뜻을 밝힌다. 체상(體相)에서는 지관의 체와 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섭법(攝法)에서는 리혹지행위교(理惑智幸位敎)의 여섯 가지 법에 의해서 일체법을 포섭하고 다시 그 여섯 가지 법이 상호포섭되는 것을 나타낸다. 편원(偏圓)에서는 대소(大小), 반만(半滿), 편원(偏圓), 점돈(漸頓), 권실(權實)에 대해서 상술한다. 방편(方便)에서는 25방편을 설하고, 정수(正修)에서는 지관의 대상인 십경(十境)과 지관의 방법인 십승관법(十乘觀法)에 대해서 기술한다. 과보(果報)에서는 관법을 성취해서 얻는 불과(佛果)에 대해서, 기교(起敎)에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에 대해, 지귀(旨歸)에서는 불과(佛果)를 성취해서 모두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 화엄사상(華嚴思想)

<화엄경>은 화엄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준말이며, 범어로는 Mahavaiplya-buddha-ganda-vyuha-sutra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大)는 소(小)에 대한 상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절대적인 대(大), 상대가 끊어진 극대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절대의 대(大)라고 할 수 있다. 방광(方廣)이란 넓다는 뜻인데 특히 공간적으로 넓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방광(大方廣)’이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붓다를 수식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대방광불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말한다. 그 붓다를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이다. 화엄을 범어로는 Ganda-vyuha라고 하는데 Ganda란 잡화(雜華)라는 뜻이고, vyuha란 엄식(嚴飾)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화엄이란 잡화엄식이라는 말 그대로 갖가지의 꽃을 가지고 장엄한다는 뜻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대방광불화엄경>은 광대무변하게 우주에 편만해 계시는 붓다의 만덕(萬德)과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계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부 경전 자체 내에서도 설처(說處)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도량이며, 설한 시기도 성도 직후로 되어 있다. <팔십화엄>에는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 하고, <육십화엄>에도 시성정각이며 세친이 지은 <십지경론>의 저본이 된 <십지경>에는 제이칠일(第二七日)이라고 하였다. 또 천태교판에서도 <화엄경>을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 삼칠일 즉 21일 동안 말씀하신 경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경전의 한역본으로는 60권, 80권, 40권으로 된 <육십화엄>, <팔십화엄>, <사십화엄> 등 3부 <화엄경>이 있다. <육십화엄>은 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에 의해 418에서 420년에 번역되었고 교정을 거쳐 421년에 역출되었다. 이를 진본(晋本)이라 하고 또는 화엄대경 중 먼저 번역되었다고 하여 구경(舊經)이라고도 부른다. <팔십화엄>은 대주(大周)시대 실차난타(實叉難陀)에 의해 역출되었으며 이를 주본(周本) 또는 신경(新經)이라 한다. <사십화엄>은 당의 반야(般若)가 798년에 역출하였으며 입법계품의 별역으로 <입불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可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본래의 이름이다.

그러나 <육십화엄>이나 <팔십화엄>은 처음부터 대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화엄경>을 구성하고 있는 각 품이 별행경으로 먼저 성립되어 있었으며 그 지분경을 모아 어떤 의도 하에 조직적으로 구성한 것이 웅대한 화엄대경인 것이다.

 

법계연기(法界緣起)

중국 화엄종에서는 화엄을 별교일승원교(別敎一乘圓敎)이며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으로 보고 있으며, 그 화엄세계는 법계연기의 세계라고 보고 있다. <화엄경>의 불보살세계를 ‘인과연기 이실법계(因果緣起 理實法界)’의 법계연기로 나타낸 것이 화엄종의 종취라고 화엄종의 대성자인 법장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법계연기설은 청량을 거쳐 규봉종밀대에 와서 사종법계설로 확정된다.

종밀은 <주법계관문>에서 청량징관의 <화엄경소>를 인용하면서 사종법계의 의의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주법계관문>은 두순이 지었다고 하는 <법계관문>을 종밀이 주석한 것이다. <법계관문>에서는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의 법계삼관을 설하고 있다. 먼저 진공관(眞空觀)은 모든 법은 실성이 없어 유(有)와 공(空)의 두 가지 집착을 떠난 진공인 줄을 관함이다. 다음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은 차별 있는 사법(事法)과 평등한 이법(理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합하는 것임을 관함이다. 끝으로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우주간의 온갖 사물이 서로서로 일체를 함용하는 것으로 관함이다.

지엄은 법계연기를 보리정분의 정문(淨門)연기와 범부염법의 염문(染門)연기로 나누고 있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법계연기를 과분불가설(果分不可說)과 인불가설(因分不可說)로 나누고 그것이 십불자경계(十佛自境界)와 보현경계(普賢境界)라고 하고 있다. 종밀에 이르러서는 사종법계설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법계란 Dharma-dhatu의 번역어로 연기현전하는 우주만유이다. 이 법계의 체는 일심(一心)인데 원명구덕의 일심이며, 총해만유(總該萬有)의 일심이다. 따라서 법계란 일심체상에 연기하는 만유이다. 그래서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법계라 한다. 이 법계를 설명하는데 사(事)와 이(理)의 구별을 세워 논한 것이 사종법계설인 것이다.

사종법계는 사(事)법계, 이(理)법계,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이다. 이 네 가지 법계설은 모든 우주는 일심에 통괄되고 있으며, 이 통괄되는 것을 현상과 본체의 양면으로 관찰하면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화엄의 무진법계는 사사무애법계를 말한다. 사(事)법계는 모든 차별 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事)란 현상, 사물, 사건 등을 계(界)란 분(分)을 뜻한다. 낱낱 사물은 인연에 의해 화합된 것이므로 제각기의 한계를 가지고 구별되는 것이다. 개체와 개체는 공통성이 없이 차별적인 면만을 본 것이다. 이(理)법계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를 말한다. 이(理)는 원리, 본체, 법칙, 보편적 진리 등을, 계(界)란 성(性)을 가리킨다. 궁극적 이(理)는 총체적 일심진여이며, 공(空)이며 여여(如如)이다. 우주의 사물은 그 본체가 모두 진여라는 것으로 개체와 개체의 동일성, 공통성을 본 것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는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법장은 <금사자장>에서 금사자의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금이라는 금속은 이(理)의 미분화된 본체를 상징하며, 사자라는 가공품은 분화된 사(事) 혹은 현상인데 사자가 금에 의존하여 표상되고 있음이 바로 이사무애의 경계라는 것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는 개체와 개체가 자재융섭하여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하여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어 원융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이다. 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는 이사무애(理事無碍)를 바탕으로 하여 의지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직접적인 깨달음의 세계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과 실천행을 통해 현현하는 세계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늘 그렇게 있는 세계이나 이해나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현실화해야 하는 세계이다.

 

십현연기(十玄緣起)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계연기를 체계적으로 관찰한 구체적 설명이 십현연기와 육상원융(六相圓融)이다. 십현연기는 십현문(十玄門)이라고도 한다. 십(十)은 원만구족의 만수(滿數)이고, 현(玄)은 현묘, 문은 사사무애법문이다. 10가지 심오한 신비의 무애세계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십현문이 설해지고 있는 중국 화엄전적으로는 지엄의 <화엄일승십현문>, <수현기>와 법장의 <화엄오교장>, <화엄경문의강목>, <금사자장>, <탐현기>와 징관의 <화엄경소>, <현담>, <화엄약책> 그리고 종밀의 <원각경대소> 등이 대표적이다.

법장은 <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나 <탐현기>에서는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탐현기> 이후에 보이는 십현설을 신십현(新十玄)이라 하고 그 이전의 십현설을 고십현(古十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신십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신십현은 동시구족상응문, 광협자재무애문, 일다상용부동문, 제법상즉자재문, 은밀현료구성문, 미세상용안립문, 인다라망경계문, 탁사현법상해문, 십세격법이성문, 주반원명구덕문이다. 이 가운데 광협자재무애문과 주반원명구덕문은 고십현에서의 제장순잡구덕문과 유심회전선성문을 고친 것이며, 은밀현료구성문은 고십현의 비밀은현구성문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은 십현연기의 총설이다. 동시는 선후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구족은 모두 섭수하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체 제법이 열 가지 뜻을 동시에 구족해서 상응하여 원만히 조화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 뜻이란 교의(敎義), 이사(理事), 경지(境地), 행위(行爲), 인과(因果), 의정(依正), 체용(體用), 인법(人法), 역순(逆順), 감응(感應)이다.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은 연기 제법에 각각 광협이 있으면서도 무애하다는 것이다. 이는 간격이 멀든 가깝든 간에 모든 존재들이 아무런 장애 없다는 뜻이다. 광(廣)은 밖이 없다는 무외(無外)의 뜻으로 넓음이란 한계를 갖고 있지 않아 밖이 없는 것이다. 협(狹)은 안이 없다는 무내(無內)의 뜻으로 가장 좁음이란 그 자체 안에 공간을 갖고 있지 않아 안이 없다는 것이다. 큰 것과 작은 것에 자성이 없기 때문에 큰 것과 좁은 것이 서로가 서로를 포섭하는 것이다. 좁은 것과 넓은 것은 하나와 전체로 말할 수 있으므로 서로 자유롭게 구애됨이 없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 이는 고십현에서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본분위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일념에 구족하여 원융무애하다는 의미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섞여 있으니 순수한 것은 순수한 대로 잡된 것은 잡된 대로 제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은 하나와 전체가 서로 용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는 전체에 들고 전체는 하나에 녹아 있어 무애자재하다. 그래서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각기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와 전체가 혼란되지 않는 상입(相入)을 말한다. 상입이란 이것과 저것이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여 걸림없이 융합하는 것이다. 하나란 하나라는 자성을 가진 확정적인 하나가 아니라 연기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지만, 하나는 하나로서 전체가 아니고 전체는 전체로서 하나가 아니다. 하나는 전체가 아니고 전체도 하나가 아니다. 각각 제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 모든 요소들이 서로 동일시되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인 차별로부터의 자유이며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타자와 동일시함으로써 종합적인 동일화가 이루어진다. 서로 비춰보고 서로 동일시한 결과 함께 조화하여 움직인다. 상입(相入)이 이것과 저것이 서로 걸림없이 융합하는 묘용(妙用)의 측면이라면, 상즉(相卽)은 서로 자기를 폐(廢)하여 다른 것과 같아지는 체(體)의 측면이다.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하는 즉(卽)은 물과 물결처럼 한 물건의 체 그대로가 다른 물건인 뜻으로 말하는 ‘즉’이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은 고십현에서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비밀은’과 ‘현’으로 된 것을 ‘은밀’과 ‘현료’로 정리한 것이다. 비밀 즉 숨은 것과 현료 즉 드러난 것이 함께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금사자장>에서는 우리가 금사자를 접할 때 사자로서 사자를 볼 때는 사자뿐이고 금은 없으며, 금을 볼 때는 단지 금뿐이고 사자는 없으나 금사자는 금과 사자를 합하여 성립된 것이라고 한다. <화엄현담>에서는 반달의 예를 들고 있다. 반달은 반은 빛나고 반은 어둡다. 그러나 감춰진 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을 지구에서 보면 큰 공만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 자체가 늘어났다 줄어들지 않는다. 그 반달은 밝음과 어둠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밞음 아래에 어둠이 있고 어둠 아래에 밝음이 있다. 하나로 많은 것을 섭수하면 하나는 드러나고 많은 것은 가리워진다. 많은 것이 하나를 거두어들이면 많은 것은 드러나나 하나는 가리워진다. 한 터럭이 법계를 섭수하면 곧 나머지 터럭의 법계는 모두 가리워지고 나머지 낱낱 터럭의 가리워지고 드러남도 또한 그러하다. 한 편은 보이고 한 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둘다 갖추어져 있어서 하나가 성립되면 다른 쪽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은 미세한 것의 신비를 말하는 것이다. 미세란 인간의 이해가 닿는 곳을 넘어서 고도로 작고 정밀하다는 의미이다. 하나가 능히 많은 것을 함용하므로 상용(相容)이라고 하고, 하나와 많은 것이 섞이지 않으므로 안립(安立)이라고 한다. 무한세계가 작은 먼지나 티끌 속에 존재하며, 이들 세계의 일체 먼지 속에 또다시 무한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일념 중에 모든 것을 구족하여 가지런히 나타나 명료하지 않음이 없음을 겨자씨를 담은 병에 비유하기도 하고 화살이 빽빽히 꽂친 화살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은 인다라망의 비유에 의해 상호 반영의 이론을 말하는 것이다. 제석천 궁전에 걸린 보배망의 각 보배구슬마다 서로 다른 일체 구슬이 비쳐 무진한 것처럼 법계의 일체도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연기상유(緣起相由)하여 무애자재하다.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은 모든 연기된 존재가 그대로 법계법문임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당체가 그대로 연기 현전한 것이므로 두두물물이 다 비로자나 진법신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비유는 곧바로 법의 상징이고, 법이 비유이고 비유가 곧 법이다.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은 십세가 시간에 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즉, 상입하여 하나의 총합을 이루지만 그러나 전후 장단의 구별이 뚜렷하여 질서가 정연한 것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각각 삼세가 있어 구세(九世)가 되고 그 구세는 한생각 일념에 포섭되므로 십세(十世)이다. 또 일념을 열면 구세가 되므로 합하여 십세가 된다. 그래서 일념이 십세무량겁이고 무량겁이 일념이지만 십세는 낱낱이 서로 혼잡함이 없이 완연히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은 주체와 객체가 조화롭게 함께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 어떤 존재도 홀로 생겨나는 것은 없다. 우주법계에는 어느 한 사물도 홀로 생겨나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 서로 주인이 되고 객이 되어 모든 덕을 원만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십현의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을 바꾼 것이다.

육상원융(六相圓融)

십현연기와 더불어 육상원융 또한 화엄무진연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또 다른 측면으로 중시되고 있다. 육상이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말한다. 이는 총별, 동이, 성괴라는 세 쌍의 대립되는 개념이나 모습이 서로 원융무애한 관계에 놓여 있어 하나가 다른 다섯을 포함하면서도 또한 여섯이 그 나름의 모습을 잃지 않음으로써 법계연기가 성립한다는 설이다.

모든 존재는 다 총상, 별상, 동상, 이상, 괴상, 성상의 육상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 육상은 서로 다른 상을 방해하지 않고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이 일체가 되어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기로써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반드시 여러 가지 연(緣)이 모여 성립된다. 그러므로 거기에 성립된 총상(總相)은 부분을 총괄하여 전체를 만들고 있다. 또 별상(別相)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과 부분을 말하는데 이것이 총상에 의지하여 원만하고 완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상이 없으면 별상이 없고 따라서 총상 밖에 별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동상(同相)이란 별상의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되어 모순되지 않고 성립되는 힘을 균등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異相)이란 별상이 서로 혼동되지 않고 있으면서 제각기 상을 잃지 않고 조화되어 있는 모양이다. 성상(成相)이란 별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총상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부분이 다만 집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상(壞相)은 별상이 총상을 성립시키면서도 별상 제각기의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서 총상의 모양으로 혼융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육상을 집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령 총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을 총괄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별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그 자체를 이른다. 동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서로 힘을 합쳐 집을 조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은 각각 가로와 세로로 되어 있어 다른 유형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또 성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각각 인연이 되어 집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집을 조립하여 성립시키고 있으면서도 각각 자기의 본 모양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육상의 관계를 체상용(體相用)의 관계로 나누어 보면 총상과 별상은 연기의 체(體)라고 보고, 동상과 이상은 연기의 상(相)이라고 하고, 성상과 괴상은 연기의 용(用)이라고 할 수 있다.

 

5) 정토사상(淨土思想)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는 그대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가운데서 널리 신앙되어진 사상 조류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원효 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나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점차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체로 정토사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는 정토계 경전군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淨土)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새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곳도 있다.

정토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과 ‘아미타불’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범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즉 Namo-Amitabha은 Namas + a + mita + abha과 Namas + a + mita + ayus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다.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내지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무한 광명(無限光明)에 귀의하고 무한 생명(無限生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한다’는 것은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 광명과 하나가 되고 무한 생명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 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 신앙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는 염불이며,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구마라집 역으로 전해지는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을 말한다.

<무량수경>에는 옛날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모두 열 두 가지의 번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가지로 번역되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다섯 가지의 번역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은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했다고 한다.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은 <평등각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 하며 위나라의 백연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의 축법호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불설무량수경> 2권은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국, 한국, 일본에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위나라의 강승개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은 당나라의 보리유지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 번역하였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은 송나라의 법현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나라의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량수경>은 상하의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 즉 중생들이 극락에 왕생하는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원인은 48원(願)이며, 그 결과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염불이며 염불의 결과는 왕생극락이다.

<관무량수경>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번역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범어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은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인데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 세지의 양대 보살을 관하는 경이라는 것이다.

관(觀)한다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불설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으며, 그 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攝受經)> 1권이 있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으로도 왕생할 수 없다고 구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 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동서남북과 상하의 육방(六方)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6) 선사상(禪思想)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禪)이란 말은 고대 인도의 사유 명상법인 요가에서 비롯된 것인데, 붓다의 깊은 사유와 정각을 통해 불교의 실천 수행인 선정(禪定)으로 체계화된 말이다. 요가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 경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된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된 요가 수행자의 모습이 새겨진 인장(印章)이나 성자의 흉상 등의 발굴로 입증된 것처럼 기원전 1500년 경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침입하기 이전에 이미 고대 인도의 원주민들에 의해 실행된 요가 명상의 사유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요가는 약 5000년 내지 그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가란 각자의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통일시키는 수행방법을 말한다. 요가(yoga)란 말은 ‘연결시키다’라는 의미로서 yji(연결하다)라는 어근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가라는 말이 사유하다, 명상하다라는 의미로 문헌상에 최초로 기록되고 있는 곳은 기원전 6세기경에 성립된 <카타우파니샤드>이다. 여기서는 ‘명상사유를 통하여 다섯 가지 감각을 제어하고, 산란된 마음을 정지시키는 것이며, 이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이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고 잘 유지해 가는 것을 요가라고 한다’고 요가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禪)이라는 말은 인도 원어를 한어로 음사한 것이므로 한자 자체에는 본래의 의미가 없다. 한자의 선에는 ㄱ)땅을 깨끗하게 하여 천지의 신을 제지낸다, 하늘을 제지낸다, 산천을 제지낸다, ㄴ)토지를 개척한다, ㄷ)천위(天位)를 양도해 준다, ㄹ)조용함 등의 의미가 있다. 이 의미들 가운데 인도 원어에 해당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조용함뿐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중국선에는 한 스승에서 한 제자에게로 직접 불법(佛法)을 전수하는 ‘사자상전(師資相傳)’의 수수(授受) 형태가 보여지는데 이것은 인도불교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선이란 원래 범어의 dhyana, 팔리어의 jhana의 음사이다. 원어는 마음을 통일하는 것, 마음을 특정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역해서 정려(靜慮), 의미를 첨가해서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유가(瑜伽; 요가), 삼매(三昧) 등과 함께 고래로 인도에서 중시된 명상의 실천을 나타내는 말의 하나이다.

 

중국선의 전개

중국에서의 선의 역사도 이와 같은 선의 본질적 성격을 고려하면 불교가 처음 전래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후한대의 안세고나 지루가참이 번역한 초기의 소승, 대승의 여러 경전 가운데는 직접 선 내지는 삼매의 실천을 선양한 곳이 몇 군데 보인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선은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후에 곧 중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특히 선의 실천에 열심인 불교인 즉 선자(禪者)가 점차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불교가 전래하기 이전부터 선과 유사한 종교적 실천방법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장자>에서 설한 진인(眞人)의 호흡법이나 이것에 영향을 받아 후에 태식법(胎息法)으로서 완성된 신선방술의 호흡법이 그것인데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 경지의 표현도 불교의 선의 경지의 그것과 대응하는 면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중국선이 노장사상이나 신선도와 종종 교섭하면서 전개되어가는 것은 오히려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양상을 가진 선의 실천은 선자들을 배출하면서 각지로 전해져 갔다. 그러나 북위시대가 되면 다시금 새로운 선이 중국에 전해지게 된다. 이것이 이후 중국선의 개창자가 되는 보리달마(菩提達摩)의 선이다. <낙양가람기>에 의하면 보리달마는 페르시아 출신이다. 중국으로 건너와 양녕사 구층탑의 금반(金盤)이 태양빛을 받아 빛나고 종소리가 바람을 머금고 울려퍼지는 것을 듣고 “나는 150살이 되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사원은 보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입으로 나무(南無)를 외우고 매일매일 합장했다고 한다. 또한 담림의 기록에 의하면 보리달마는 인도 국왕의 셋째 아들로서 대승의 도에 마음이 끌려서 출가하여 세상에서 뛰어난 덕을 갖추었으나 멀리 산과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건너 왔다고 한다. 보리달마의 출신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으며 건너온 경로에 대해서도 분명하지는 않지만 서역을 경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달마의 가르침은 이입사행(二入四行)으로 총괄되는 것으로 즉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으로 구별되는 행입(行入)이다.

먼저 이(理)에 들어가는 이입(理入)이란 마음을 편안히 하는 실천으로서 그것은 경전의 취지를 깨달아서 중생의 동일한 진성(眞性)을 깊이 믿고 벽관(壁觀)에 확고히 머물러서 차별, 상대의 입장을 떠나 진리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다음에 행에 들어가는 행입(行入)에는 보원행, 수연행, 무소구행, 칭법행의 네 가지가 있다. 보원행(報寃行)이란 어떠한 괴로움이 닥쳐도 그것을 자기의 악업의 결과라고 생각하여 달게 받아 들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아무 소득도 없는 죄라고 호소하지 않는 것이다. 수연행(隨緣行)이란 고락, 득실은 모두 연에 의한 것이라고 관하여 마음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스스로 도에 따르는 실천이다.

무소구행(無所求行)이란 만유는 공이며, 현실의 세계는 편안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아무 것도 구하거나 원하지 않는 실천이다. 칭법행(稱法行)이란 본래 청정한 진리에 들어맞는 실천을 말하며, 직접적으로는 더러움이나 망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관(空觀)에 입각해서 행해지는 육바라밀을 말한다. 이상에서 보리달마의 선은 명확히 공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또한 구체적,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벽관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보리달마의 선은 혜가(慧可)에게로 전승되었다. 혜가는 6년간 달마에게 배우고 일승을 깊이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선사상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확실한 것은 그에게서부터 능가종(楞伽宗)이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능가종은 <능가경>을 소의로 연구하며 그 정신을 추구하였는데 <속고승전>에는 달마가 이것을 혜가에게 전하고, 혜가가 처음으로 그 요지를 체득한 것으로 이후의 계보에 기재되어 있다.

후세의 전등설에 따르면 선종의 제3조는 승찬(僧璨)이다. 승찬의 사적은 현재 거의 알 수 없으며 <속고승전>에 혜가문하의 한 사람으로 ‘찬선사’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설에는 사공산에 숨어서 좌선에 전념하고 12년간 그를 섬긴 도신에게 법을 전했다고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제4조 도신(道信)의 사적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12살이 지나자 서주 완공산에 들어가 두 스님에게서 10여년간 선을 배웠으며 601년 경에 출가하여 길주사에 머물렀다. 그 후 형산으로 향하는 도중 주위의 만류로 노산의 대림사에 10년간 머물렀으며 초대를 받아 쌍봉산에 들어가 문도 500명 이상의 대교단을 형성하였다. 저서에 <보살계본>, <입도안심요방편법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도신의 사상적 입장은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능가사자기> 등에 의하면 그가 천태 지의와 마찬가지로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중시하고 그것을 통해서 불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신의 선은 문하의 홍인(弘忍)에게 계승된다. 그는 황매현 출신으로 7세 때 도신에게 사사하고 마침내 그 법을 이었다. 수행시 낮에는 노역에 종사하고 밤에는 열심히 좌선했다고 한다. 황매현의 동쪽에 거주하면서 열심히 선을 알렸으므로 그의 선법을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동산법문의 사상적 내용을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홍인 이후 선종은 크게 북종(北宗)과 남종(南宗)의 두 파로 나뉜다. 이 가운데 처음에 우세했던 것은 북종선으로 숭산, 장안을 중심으로 북지(北地)에 널리 전해진 선계통이며 그 대표적 인물은 신수(神秀)이다.

신수는 젊어서 노장, 유학에 정통하고 652년 낙양의 천궁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50세 가까이 되어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6년간 사사했다. 홍인의 법을 이은 후 의봉(儀鳳)년간에 형주 옥천사의 승적에 속하여 그 근처에서 도문사를 열었으며 그의 주변에는 많은 수행자가 모였다고 한다. 701년에 측천무후의 부름을 받아 가마를 타고 어전에 들어갔으며 그 때 그는 가신(家臣)의 예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양경(兩京)의 주주(注主), 삼제(三帝)의 국사라고 불리운다. 저서에 <관심론> 1권, <화엄경소> 30권, <묘리원성관> 등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는 후대의 서적 인용 가운데서 그 일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신수 다음 대까지는 보적(普寂)이나 의복(義福) 등의 활약으로 북종선이 융성했지만 그 후로는 점차로 쇠약해져서 주류의 자리를 완전히 남종선에게 양보하게 된다.

남종선의 시조는 혜능(慧能)이다. 혜능의 선조는 대대로 범양에 살았지만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하여 신주(新州)민이 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남해로 이주했으며 집이 가난하여 땔나무를 팔아서 어머니와의 생활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이윽고 어느 날 마을의 손님 한 사람이 숙사로 돌아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8개월간 방아지기로 생활하면서 법을 이었다. 이 때 혜능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라고 전한다. 그 후 676년에 <열반경>의 학자로서 이름난 인종(印宗)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이후 소주의 조계 보림사에 거주하면서 많은 선자를 키우고 선풍을 날렸다. 남종선은 도생(道生)에 의해서 시작되는 돈오(頓悟)사상의 전통 위에 서서 본래 자기의 청정성, 완전성의 철저한 자각을 지향하고 있다.

혜능의 문하 가운데서 남종선의 정통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또한 그 입장을 분명히 한 이가 신회(神會)이다. 신회는 양양 출신으로 오경, 노장을 배운 후 출가하여 혜능의 만년에 그 평판을 듣고 문하가 되어 수년간 배웠다. 720년 칙명에 의해서 남양의 용흥사에 머물고 732년에는 융성을 자랑하는 북종에 대해서 종론(宗論)에 도전했다. 745년경에는 낙양의 하택사에 들어가 크게 남종선을 선양했으나 753년 북종의 입장에 선 관리에 의해서 유배되어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2년 후 안록산의 반란을 계기로 다시 낙양에 초대되어 국가정책의 협력을 통해서 양경(兩京)의 부흥에 공헌하고 숙종으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신회의 만년은 그 자체가 북종의 몰락과 남종의 흥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안록산의 난이 없이 정부가 평안하여 북종선이 주류를 계속 이어갔다면 오늘날 신회와 혜능의 이름은 한낱 선승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회의 집착에 따라 두 사람 사후에 정통으로 인정받아 오늘날 선종의 주류가 된 것은 역사의 반전이라 할 수 있다.

혜능의 선을 계승한 것 가운데서 점차로 발전해간 것은 홍주종(洪州宗) 즉 남악 회양(懷讓), 마조 도일(道一)의 계통이다. 그 주된 이유의 하나는 마조 도일이 선사상의 혁신을 이룩하고 선을 중국에 토착화시켰기 때문이다. 도일은 한주 출신으로 속성은 마씨이다. 어려서 홍인의 법을 이운 지선의 제자인 처적(處寂)에게 배우고 구족계를 받았다. 이윽고 회양의 문하에 들어가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후 강서의 임천, 홍주 등에서 크게 선을 알렸다. 본격적인 선의 융성은 강서(江西)의 마조와 혜능의 문하의 청원 행사(行思)의 법을 호남(湖南)의 석두(石頭)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조의 선은 80여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장안을 위시하여 각지로 전파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특히 백장 회해(懷海)가 유명하다.

회해는 선종 사상사에서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첫째는 당시까지 대부분 율사에 속해 있던 선원을 독립시키고 대소승의 계율을 집약, 절충해서 교단의 규칙을 정한 것이다. 이것은 선종의 사회적 독립의 기초가 확고해진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마조의 선이 자유로운 생활의 절대긍정에 빠질 위험에서 구제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는 마조의 정신을 토대로 당시 이미 어느 정도 일상화되어 있던 승려의 노동을 명확히 긍정하여 ‘하루 노동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라는 사상을 확립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선종사원의 경제적 자립을 지지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지만 동시에 출가자의 생산노동, 경제행위를 엄격히 부정하는 불교의 전통적인 노동관을 뒤엎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중국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당말의 회창의 폐불사건은 이미 쇠퇴하고 있던 불교계를 사정없이 습격하였다. 그 때 파괴된 사원이 약 4만5천이며 환속된 승려는 26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원을 의지처로 했던 불교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의 멸망의 위기에 빠져들었지만 오직 선종만은 그렇지 않았다. 선종은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단숨에 상승기류를 타고 당말에서 오대에 걸쳐 눈부신 오가(五家)의 선시대를 출현시킨다.

오가(五家)란 선풍의 상위함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위앙종, 임제종(臨齊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을 말한다. 여기서 다시금 송대에 임제종에서 분리된 황룡(黃龍), 양기(楊崎)의 2종을 합쳐서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고 한다. 이 오가칠종은 어느 것이다. 혜능의 남종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출처] [공유] 불교사상|작성자 까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