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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시, 사랑에서 행복을 찾다

빈자리/도봉별곡

빈자리

 

짝 지어 보내면 홀가분하고 편할 줄 알았는데

입산수행을 잡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영 아니다

 

공휴일 낮, 딸과 사위 오는 날

간혹 갖는 점심자리가 이리 반갑고 즐거울까

파전에 낙지볶음, 고등어구이에 고등어조림,

미꾸라지튀김에 추어탕,

냉면에 갈비탕, 빈대떡에 동태찜, 감자전에 바지락칼국수와 서리태콩국수,

시장에서 떠와 거실탁자 위에 차린 농어회

마나님이 내 심장병을 고려해 정성 다해 구워준 두꺼운 안심덩어리

곁들인 막걸리 한잔, 텅 빈 속을 채워도

다 필요 없으니

시장기가 반찬이라지만 딸들의 얼굴만 하랴

어떤 안주가 딸들의 웃음보다 나으랴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딸들의 목소리와 바꾸지 않으리라

 

지들이 모아서 치룬 대견스러운 결혼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당연한데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야 그렇다 치고

내 살다 가면 그만이지만 남을 마나님 안쓰러워

그래도 딸들 있으니 안심은 고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너른 집 혼자 있는 마나님 생각하고 일찍 들어가는 밤

허전하고 썰렁한 것은 마나님 탓이 아닐진대

괜히 투정부리고

밥 한술 뜨고 내 방에 들어가면 남 되는데

 

더 데리고 있다 보낼 것을

후회하면서 잠 못 이루는 밤

열린 듯 닫힌 문 바라보며

딸들의 빈자리가 이렇게 큰 줄 차마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