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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하룻밤에 읽는 불교/소운 스님

하룻밤에 읽는 불교/소운 스님

 

58.대승불교는 기원전 1세기에서 시작하여 3세기에 나가르주나(150?~250? : 龍樹)가 크게 발전시켰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반야경에서 말하는 空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空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고 항상 변한다는 불교의 근본교리다. 그는 중론에서 공성, 즉 사물의 본성 또는 실체가 바로 석존이 발견한 연기임을 밝히고 있다. 연기란 현상계의 사물들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상호의존적으로 공존하면서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으로 모든 현상계의 물질의 실제모습, 즉 실상을 밝힌 것이다. 그는 중론을 통해 연기를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공성의 입장에서 재정립하였다.

 

61.일체유심조의 유가행파는 모든 현상에 자성, 즉 각각 독립된 고정불변의 성품이 없다는 것을 세 가지 단계인 삼성으로 나누어 해석한다. 삼성이란 범부의 망집에 의해 형성된 변계소집성, 연기에 의해 형성된 의타기성, 모든 현상의 실상인 원성실성이다. 이 세 가지로 현상계를 분석해 보면 현상계의 모든 것들은 각기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것에 의존하는 공존에 의한 조화로움으로 존재하는 공성일 뿐이다. 이러한 공존에 의해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인 현상계는 우리들의 인식 범주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유가행파는 일체사물은 오직 마음에서 만들어진 소산물에 불과하며 외계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체유심조에 입각한 불교인식론을 정립했다. 이론적 근거를 뒷받침하는 경전이 해심밀경, 유가사지론, 유식삼십송이다.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표방하는 가장 오래된 경전은 반야경이며 법화경, 화엄경, 아미타경 등이 초기경전으로 보인다. 초기 대승경전은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나가르주나(龍樹)는 제2의 붓다로 불리며 생몰연대는 (150? 250?)으로 추정된다.

 

93.천태종으로 이어지는 삼론종의 반야공사상

 

96.천태종의 교의는 현상계의 바른 모습을 밝히는 제법실상으로 정립한다. 이 실상은 중론에 입각하여 세 단계로 설명하는 삼제게(三諦偈)에 기초한다. 즉 모든 현상계는 공인데 이는 고정불변한 것아니라 찰나의 인연에 의해 성립되는 가()의 상태이므로 존재와 비존재라는 두 극단으로 설명할 수 없고 非有非無의 중도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제게(三諦偈)에 의하면 일체제법이 그대로 공이고 이고 중이라고 말한다. 또한 마하지관에서 주목되는 사상은 한 마음에 삼천세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의 一念三千이다. 이는 순간순간 마음의 작용 속에 전 세계가 들어있고 일념의 마음이 존재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이다.

 

124.원효의 화쟁사상

원효는 화엄경에 입각해 당시의 모든 사상을 和諍사상, 즉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화합하고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논의한다[和而不同 諍而不異]는 사물의 진리를 추구했다. -十門화쟁론.

 

132.화두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것으로, 조사선은 조사들이 던진 질문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207.諸法無我와 五蘊

법이란 현상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그 역할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두 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가 만나면 물이 되고 이 물이 더운 기운을 만나면 수증기, 그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면 그 정도에 따라 물이 되기도 하고 얼음이 되기도 한다. 얼음이 더운 기운을 만나면 물이 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을 무아라 한다. 인도철학은 아트만이라는 절대유일의 불변의 자아가 있다고 주장하나 불교의 무아설은 이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의 생명도 고정불변이 아닌 오온, 즉 색수상행식의 오온으로 이루어졌으나 하나하나 살펴보면 단지 결합하여 형성된 순간의 연속에 불과할 뿐 나라고 주장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나의 없음을 관찰하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法은 모든 현상, 我는 나 외에 실체로도 쓰이므로 나와 실체의 두 가지로 하나는 색수상행식, 하나는 실체, 그러므로 제법무아는 모든 현상에는 실체가 없으므로 空이라 한다. 또한 연기에 의해 상호의존하여 존재하므로 항상 변하여 실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유비무 또는 존재와 비존재에도 속하지 않는 중도의 空이라 한다. 

 

210.空의 의미

자성, 실체, 본성, 자아를 수레를 비유하여 각기 존재가 고유한 본성이나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空사상은 연기에 의한 현상계가 무상이고 무아라는 개념과 동일선상에서 사물에 본질과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언어에 의해 잘못 부여된 개념을 타파할 것을 역설한다.

 

211.초기 불전에서 가장 오래된 <숫타니파타>에는 공을 관찰해 무아를 증득하도록 가르치는 구절이 있다.

항상 생각을 집중하여 자아에 집착하는 견해를 타파하고 세간을 공으로 관찰하라. 그러면 죽음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사상을 집대성한 반야경은 고정된 자아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부파불교애 대항하기 위함이었다. 그 중 특히 설일체유부는 현상은 무상하나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고정불변한 것이 있다는 三世實有 사상을 주장하여 대승불교가 타파하려는 대상이 되었다.

 

215.중론에 나타나는 나가르주나의 사상

중론에서는 연기와 공을 동일시하고 歸敬偈에서는 연기는 불멸, 불생, 부단, 불상, 불래, 불거, 不異, 불일하며 희론망상이 적멸한 것이며 길상한 것임을 가르쳐 주신 정등각자에게 귀의한다고 하여 석존의 연기사상이 중론의 중심과제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나가르주나는 八不로 연기란 일체의 대립을 초월한 것이며 觀十二因緣品에서 십이인연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418게에서 연기하는 것, 그것을 공성이라 칭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된 것(假名)이며 중도 그것이다.“ 그는 연기하는 것은 공이며 사물이란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무자성이며 고정불변의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연기==무자성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221.귀류논증법

 

224.유가중관학파 유식과 중관을 융합

 

232.유가행파의 사상적 특징

유가행파는 중관학파와 달리 인식론인 유식론으로 윤회의 주체를 설정한다. 이들은 유식설이 석존의 가르침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화엄경>십지품의 삼계유심을 증거로 제시했다. 욕계, 색계, 무색계로 중생은 삼계 가운데 살고 있지만 대상인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고 중생 개개인이 만든 세계만을 볼 뿐이라는 의미이다. 예컨대 사람에게는 물로 보이지만 아귀들에게는 핏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유가행파의 유식설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계를 십이연기 중 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다. 다른 인도철학파에서는 윤회하는 주체를 아트만으로 설정하고 한 육체가 소멸하면 다음 육체와 함께 윤회하여 재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영원히 존재하는 아트만의 존재를 부인하고 무아를 주장하기 때문에 무아와 윤회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아라면 사후 무엇이 어떻게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부파불교인 아비달마시대부터 추구해온 불교철학에서의 난제였다. 십이연기를 실체적인 구조로 규정하는 설일체유부는 업을 원동력으로 하여 윤회하는 業感연기를 말한다. 은 과거세의 어리석음, 즉 무명에 영향을 받아 행위를 유발하는데 그 과거세의 식이 행한 행위의 과보를 받는 것이 현재세의 순간이라는 것으로 무명과 현재의 업을 연결시켜 윤회를 설명한다. 유식설도 설일체유부에서 해석하는 구조와 동일하게 보지만 識이 순간순간 소멸하고 생성하는 찰나면이라고 해석하는 데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유식설의 해석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난제는 찰나 찰나에 소멸하고 생성되는 식이 어떻게 과거세의 어리석음과 결합하여 현재세의 업을 생성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유가행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식인 아뢰야식을 설정한다.

 

종자인 아뢰야식

아뢰야식은 一切種子心識이라고 하여 과거의 행위의 결과를 종자의 상태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안이비설신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대상과 접촉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더운 것과 접촉하면 덥다고, 추운 것과 접촉하면 춥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식은 더워서 싫다거나 추워서 좋다와 같은 분별을 일으키지는 않고 외부대상을 다만 인식하고, 좋음과 싫음을 분별하는 것은 분별의식이 담당한다. 이 분별의식은 다섯 가지 식으로부터 인식정보를 전달받아서 통합하여 행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런데 이 분별의식이 정보들을 통합할 때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던 과거 행위의 종자들이 발현하여 분별의식과 결합하여 현재 행위의 방향을 결정짓게 된다. 그리고 이 현재에 행한 행위의 결과는 다시 종자가 되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이러한 아뢰야식의 순환으로 외부현상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유식무경이다. 이는 오직 識만이 존재할 뿐 외계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상계는 연기나 찰나 찰나 생성과 소멸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가 외계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집착하는 것은 오직 아뢰야식의 영향으로 펼쳐지는 현상이며 우리가 매일 싫고 좋음을 취사선택하면서 만들어가는 현실세계는 항상 과거세의 행위의 결과인 종자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자신만의 세계일 뿐이다. 이것을 일체유심조, 즉 모든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이 만든 것일 뿐이라고 표현한다. 이때 마음은 바로 분별의식과 아뢰야식의 결합에 의한 작용을 의미한다.

 

246.인간이 지각단계에서 식의 상속원리 때문에 찰나찰나 멸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동일한 대상으로 오인해 자상 자체를 보지 못하므로 식의 오류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식의 오류가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없는 요인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272.법화경의 근본사상은 일승 사상이다.

 

299.禪經의 전개와 보리달마

보리달마 이전에는 호흡에 집중하는 관법인 소승의 수식관과 대승경론의 선사상이 소개되었으나 6세기에 이르러 보리달마와 그 제자들이 중국선을 주도했다.

달마의 이입사행론

 

306.남종선의 혜능과 돈오법

혜능은 좌선 수행이 아닌 새로운 선 수행법을 제시했다. 선문답을 통해 스승의 말 한마디에 깨달음을 경험하는 言下變悟에 의해 홀연히 자신의 성품을 보는 것이 돈오견성이다. 이러한 선문답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은 번뇌와 지혜는 둘이 아니라는 不二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혜능은 수행을 통해 번뇌를 없애고 바른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성에는 참과 거짓인 眞妄이 없으므로 견성하여 바른 성품을 파악하면 번뇌도 없다고 가르친다.

 

309.혜능 문하의 선을 조사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조사선에는 祖師西來意, 즉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묻는 종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도 단순히 조사가 행하는 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조사선의 특징은 不立文字, 敎外別傳, 以心傳心, 直指人心, 見性成佛로 드러난다. 이들은 중국선이 지향하는 것으로 이 중 조사선이 중점을 두는 것은 직지인심이다.

 

328.보조 지눌의 정혜결사

지눌의 정혜결사에서 수행하는 정혜쌍수는 신회와 종밀의 돈오점수설을 바탕으로 이론을 체계화했다. 돈오는 홀연히 스스로의 성품을 깨닫는 것으로 돈오 뒤에는 반드시 점수라는 종교적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비록 돈오했다해도 여러 겁 동안 익혀온 습기는 갑자기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눌의 선사상을 普照禪이라 한다.

 

2015.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