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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고타마 붓다. 무아의 발견자, 마음의 혁명가/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

고타마 붓다. 무아의 발견자, 마음의 혁명가/축의 시대-카렌 암스트롱

 

고타마는 요가 수행을 하면서 곧 황홀경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렀고 스승들은 기뻐했다. 그러나 고타마는 그들이 이런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상키아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일단 정신이 이런 최고 경지에 들어가면 자아를 자연의 굴레에서 해방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고타마는 평생 형이상학적 교의에는 회의적이었다. 이런 황홀경은 자신의 힘으로, 요가의 전문지식에 따라 만들어낸 것인데 어떻게 이것이 절대적이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아일 수 있겠는가?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보니 진정한 변화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새로 태어나지 못하고 탐욕을 느끼고 갈망하는 자아였다. 고타마가 이른 황홀경은 니르바나가 아니었다. 니르바나는 일시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타마는 요가를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 해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통찰에만 의존하려했다. 이것이 그의 영적 방법론의 중심 교의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는 줄곧 제자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리 존엄한 사람의 가르침이라도 해도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했다. 의심 없이 또는 간접적으로 어떤 교리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 심지어 고타마 자신의 가르침도 깨달음을 주지 못하면 버려야 한다. 권위 있는 인물에 의존하면 자신의 진정하지 못한 모습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해 니르바나의 자유를 절대 얻지 모할 것이다.

 

니르바나를 얻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 가운데 하는 아나타, 無我라는 독특한 불교 교리에 관한 명상이었다. 붓다는 영원한 자아(아트만)가 최고의 실재라고 믿지 않았다. 붓다는 깨어있음을 훈련함으로써 인간이 늘 변한다는 것을 알았다. 몸과 느낌은 순간마다 변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변하는 신념, 감정, 인식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후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그토록 많은 출가자들이 구하는 자아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너무 결함이 많고 많고 덧없기 때문이다.“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진짜 나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러나 붓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안정된 일반적 자아라는 실재도 부정했다. 그는 자기나 자신같은 말은 단순한 관행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모든 지각 있는 존재라도 그저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운 상태의 연속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가 아나타, 즉 무아를 설명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 바로 니르바나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외부인이라면 공황에 빠져 나는 말살되겠구나, 나의 존재는 파괴되고 끝이 나겠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아를 부정하게 되면 자기중심주의의 감옥에서 빠져 나오게 되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욕심, 갈망에서 해방되고 마음의 淸淨을 자각하게 된다. 붓다는 자아란 없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해보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붓다는 행동으로부터 분리된 추상적인 교리적 공식을 싫어했다. 붓다는 어떤 사람의 신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실 다른 사람의 권위에 의지하여 도그마(독선적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해로운 일이다. 이것은 개인적 책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신앙은 니르바나가 존재한다는 믿음과 그것을 실현하겠다는 결의를 의미한다. 붓다는 늘 자신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시험해보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종교적 관점은 정신적 우상, 또 한 가지 집착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붓다는 영혼은 존재합니까, 내세는 있습니까?”를 묻는, 형이상학적으로 기운 제자에게 답했다. “설령 그것을 안다 해도 너의 비통과 고통과 비참함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이곳의 이 불행한 조건에 대한 치유책을 설교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너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과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늘 기억하기 바란다. 그런 질문은 너의 깨달음에 방해가 될 뿐이다.”

 

붓다는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四無量心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그리고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들이 좋은 업을 쌓아 신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설사 다음 생이 없다고 해도 사려 깊고 친절한 생활방식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반응하도록 자극을 줄 터였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신이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언제나 모두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그의 생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복 받으시라, 모두 붓다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