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윤회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불교 최초의 경전 숫타니파타의 젊은이 바셋타 편을 보면 붓다의 윤회에 대한 견해를 읽을 수 있다. 당시 신분제가 정착된 인도의 바라문은 선택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즉 카스트 제도의 맨 상위층이었다. 그들은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신비로 부를 쌓고 권세를 누리며 하층민을 다스리는 계층이었다. 그들의 범아일체(梵我一體) 사상은 우주의 지배원리인 브라흐만(梵)과 절대적인 자아인 아트만(我)이 하나가 될 때 깨달음이 이루어져 업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했다. 최상위 계층의 두 바라문이 그들 사이에 생긴 의문에 대하여 의견의 접근을 보지 못하자, 주변에서 명망이 높은 붓다에게 와서 묻는 과정과 붓다가 답을 하는 과정에서 붓다의 윤회관을 볼 수 있다.
붓다는 평소 바라문들의 윤회를 허구라고 보았다. 그들은 절대적인 자아를 주장하면서 자아도 윤회한다고 믿었으니 자비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붓다의 입장에서는 변화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한번 바라문이면 윤회를 그칠 때까지 바라문이어야 했으니 고착화된 신분제아래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없는 하층민에게는 희망이 없는 굴레였을 것이다. 윤회를 부정하려면 자아도 부정해야 했을 것이다. 해서 붓다는 자아조차도 부정해버린다.
법정스님의 숫타니파타를 옮긴다.
젊은이 바셋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계셨다. 그때 재산이 많고 유명한 바라문들이 그곳에 많이 살고 있었다. 즉 찬킨 바라문, 타루카 바라문, 폭카라사티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토데야 바라문, 이밖에 저명한 바라문들이었다.
그때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라고 하는 두 젊은이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거닐면서 논쟁을 벌였다.
“도대체 바라문이란 어떤 것인가?”
바라드바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이 다 칠 대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대해서 지탄이나 비난을 받은 일이 없는 순수한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다.”
바셋타는 말했다.
“계율을 지키며 덕행을 갖추고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바라문입니다.”
바라드바자는 바셋타를 설득할 수 없었고, 바셋타도 바라드바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셋타는 바라드바자에게 말했다.
“바라드바자여,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는 출가하여 이곳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립니다. 사문 고타마에게 가 봅시다. 거기 가서 그분에게 이것을 물어 봅시다. 그의 대답에 따라 그것을 믿읍시다.”
그들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절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바셋타 바라문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께 여쭈었다.
594.
“우리 두 사람은 3베다의 학자라고 스승도 인정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폭카라삿티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타루카의 제자입니다.
註) 폭카라사티, 타루카 이 두 사람은 모두 잇차낭갈라 마을에 살던 부유한 바라문 사제들이다.
595.
3베다에 씌여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다의 어구와 문법에 통달했고 독송도 스승에게 견줄 만 합니다.
596.
고타마시여 그러한 우리가 태생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바라드바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이런 사정임을 알아 주십시오.
597.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 뜬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스승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598.
사람들이 보름달을 향해 합장하고 절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타마를 향해 절합니다.
599.
세상의 눈으로 출현하신 고타마께 우리는 묻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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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
현세도 내세도 바라지 않고, 욕심도 걸림도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5.
집착이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이 없고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6.
이 세상의 재앙이나 복과 덕,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근심과 티가 없이 깨끗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7.
구름에 가리지 않은 달처럼, 깨끗하고 맑아 환락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8.
이 힘들고 어려운 길, 윤회와 헤맴을 넘어 피안에 이르고, 깊이 명상하여 욕망도 집착도 없이 마음이 고요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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