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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불타가 말씀하신 중도(中道)2013.12.26

불타가 말씀하신 중도(中道)2013.12.26

불교의 사상적 특징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中道사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대승불교든 소승불교든 모든 종파에서 다같이 중도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불타가 말씀하신 중도는 어떤 것인가?

中이란 개념은  반드시 어떠한 두가지 개념이 있어야 中이란 개념이 성립된다.

예를 들어 크다 작다 하는  두가지 개념이 있어야 中이 성립된다.

잘못 생각하면 中이라고 하면 가운데라고 생각할 수고 있지만, 中이란 개념은 가운데가 아닌  모순되고 상반된  입장을 다 버린 상태가 中이라고 불타는 표현하였다.

불교는 중도 집안이니까 적당히 양보하라고 하지만 그것은  중도가 아닌 타협이다.

너와 내가 모든 욕심을 버리고 욕심이 없는 자리에서 둘이 나눌수 있는 공동의 자리가 중도의 본 뜻이며,중도의 자리는  어리석은 상태에서 서로 대립적으로 보였던 문제가 그 대립의 본질이 헛된 망상임을 깨닫고 던져버림으로 인해서 실상의 세계에 접근하여 실상과 일체해가는  그리고 모든 일체중생이 함께 요익할 수 있는 서로 이익을 보고 또 즐거움을  함께 나눌수 있는 길이 中道이라고 별역 아함경에서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타의 철학적 입장은 어떤것인지 아함의 중도사상을 보자.


1, 고락중도 (苦樂中道)

일반적으로 고락중도를  이야기 할때 거문고의 비유를 든다. 불타의 제자중에 소나라는 비구가 잠을 자지 않고 정진 했으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자책하고 환속할 생각을 일으키자, 불타는 거문고의 줄을 비유해서 줄을 너무 죄거나 늦추면 그 소리가 아름답지 못하듯이 수행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정진이나 해태를 피하여 그 중간에서 수행할 것을 권했다.(중일아함)


2, 자작타작중도 (自作他作中道)

자작타작중도가 설해지고 있는 잡아함경에서 불타는 "고는 자작인가 타작인가? 자타작인가? 비자비타무인작( 非自非他無因作)인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무기의 태도를 취한다.

불타는 무기의 태도를 취한후, 자신은 이들 사건을 모두 배척하고 중도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논의한다고 하면서 연기법, 즉 12연기설을 설한다.

불타가 외도들의 견해를 파기하고 연기법을 설하신 까닭은  고(苦)가 생기는데 대한 시각이 외도들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외도들은 고(苦)가 누구인가가 만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불타는  어떤 상황에서 생긴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를 없애기 위해서는 고(苦)의 작자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고의 생기과정(生起過程)이 문제된다고 보고 있으며 고의 생기과정을 알때, 그것을 멸하는  방법을 알수 있으며 고(苦)의 해탈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3, 단상중도(斷常中道)

시간적으로 존속하는  존재로서의 자아가 사후에도 변함없이 존재한다는 견해가 상견(常見)이고, 죽으면 존속하지 못한다는 견해가 단견(斷見)이다.

단상중도는 외도들의 자아관에 대한 비판을 통해 밝힌 불타의 자아에 대한 입장이다.

잡아함경에서는 단상중도를 '자작자각(自作自覺)'이라고 하면  상견에 떨어지고, 타작타각(他作他覺)이라고 하면  단견에 떨어진다.

의미 있고 여법한 주장은  이들 이변(二邊)을  띤 중도에서 설한 법이니, 소위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남이라, 즉 연기법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4, 일이중도(一異中道)

자아가 상주불멸하는 것인가? 단멸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영육일이(靈肉一異)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견에서 주장하는  자아는  물질의 집합체인 육신이기 때문에 상견에서는  육신과는 다른 영적 존재가 있다고 보고 있고, 단견에서는 정신이라 물질이 결합한 상태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 육신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잡아함경에서 일이중도는 이같은 이같은 맥락으로 설해지고 있다.

영혼이란 곧 육신이라고 주장하고, 영혼과 육신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 이들 주장의 의미는  한가지인데 각기 다르게 주장될 뿐이다.

만약 영혼이 곧 육신이라면 거기에 범행(梵行)이 있을수 없으며, 영혼과 육신이 다르다 해도 범행은 있을수 없다. 그러므로 이들 이변에 따르지 말고 마음을 바르게 중도로 향할지니, 그것이 성현이 세간에 나와 전도되지 않고 여실하게 정견하여 알아낸 것으로서 소위 연기법이다.


5, 유무중도 (有無中道)

실천적 측면에서 설해진  고락중도는 그 내용이 팔정도였다.

그리고 팔정도의 실천에 있어서 그 출발이 되는  정견이 문제되었을 때 이론적 측면에서 설해진 자작타작중도, 단상중도, 일이중도 등은 그 내용이 연기법이었다.

유무중도는  이들 이론적  측변에서 설해진 중도를 총괄하는  중도라 할수 있다.

자작타작, 단상, 일이중도의 모순대립은 상주하는 고(苦)의 작자에 대한 유무이변(有無二見)의 모순 대립이고, 단상의 모순대립은  불멸하는  자아의 존재에 대한 유무이견의 모순대립인 것이다.

따라서 불타는 외도의 모든 사상을 유무이견으로 분류하고 있다.

불타의 중도는  근본적으로 이와 같이 어떤 존재를  상정하여 그 존재를  문제삼음으로서 나타난  모순 대립하는  모든 사견의 파기를 의미함과 동시에 연기설이라는  정견의 현시를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이 전도되어 있는 것은  유무 이변에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설하고 있다.


* 대립의 본질이 헛된 망상임을 깨닫고 던져버림으로 인해서

  실상의 세계에 접근하여 실상과 일체해가는  그리고 모든

  일체중생이 함께 요익할 수 있는 서로 이익을 보고

  또 즐거움을 함께 나눌수 있는 길이 中道이다. - 잡아함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