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山會 제 69회 “금강산” 산행기
(참석자) : 8명 (김종화, 최행복, 이원무, 김영희, 이창우, 김옥란, 한양기, 강순덕)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金剛山)!!!
산우들과 함께 가질 못해 아쉬운 심정이나 이 산행기를 통해 꿈 속에서 그려 보시길 바라네.
하루 전날 10월 5일(금),
오후 7시경, 만나기로 약속된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해수욕장 옆 ‘금강산콘도’에서 우리 4쌍의 산우들은 반갑게 만났다. 먼저 도착한 한 총장은 ‘화진포아산휴게소’를 미리 다녀 왔다고 하면서 내일 함께 동행 할 관광객이 약 4천명이나 되어서 1진은 아침 6시까지, 2진인 우리들은 7시 40분까지만 그 곳에 가면 된다고 한다. 잠시 금강산 관광 일정(계획)에 대해 토의가 있었는데, 이 총장의 메일에 의하면 첫째 날인 내일은 삼일포와 교예공연 관람이며, 모래는 만물상 코스의 산행으로 일정이 짜여져 있다. 다들 비가 올지도 모르니 가능한 어렵게 여기까지 온 이상,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첫째 날에 만물상을 보는게 좋겠다 하여 ‘금강산닷컴’과 ‘아산휴게소’에 전화를 하여 관광 일정변경에 대하여 물으니 ‘가능할 것이라’고 하며 내일 휴게소에 와서 협의하라 이른다...
콘도 인근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강원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자전을 주문하였더니 약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감자전은 만들기 직전에 갈아서 부쳐야 맛이 있다고 제 맛을 볼려거든 기다리라고 한다. 동행한 사모님들은 메밀꽃동동주를, 우리는 쐬주를 한잔 하면서 열무김치가 하도 맛이 있어 주인장에게 고향이 어데냐(?)고 물으니 자기 부인인 주방장 아짐씨가 고향이 전라도 고창이라며 민박도 함께 운영한다고 이다음엔 행여 오실때엔 자기집에서 꼭 유 하시라고 이른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우린 하루전날 그렇게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콘도 뒤편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숙소로 들어와 이(창우) 산우 부부가 준비한 밤고구마, 초코렛, 과일 등의 안주에 캔맥주를 한 잔씩하고서 들뜬 마음을 삭히고 한 총장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며 잠이 들었다...
첫째날 10월 6일(토),
[일정] ; 아산휴게소-남측출입사무소-북측출입사무소-온정각-금강산옥류관(냉면)-구룡연 산행(관폭정, 구룡대)-온정각-문화회관(교예공연)-금강원(당고기)-해금강호텔(1박)
[산행장소] : 금강산 “관폭정 및 구룡대(구룡폭포와 상팔담)”
[소요시간] : 약 4시간(12:30~4:30)
아침 6시경에 일어나 일출을 볼 양으로 베란다 창문을 나서보니 수평선 멀리 구름사이로 붉은 햇살이 보인다. 구름이 약간 끼어있으나 등반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인 것 같았다. 아침식사는 김옥란 여사가 준비한 고구마와 우유 한잔으로 간단히 때우고 7시 반경에 아산휴게소를 향하였다... 휴게소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으며, 1진은 벌써 출발하였고, 2진인 우리팀은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 도착한 것 같았다. 입출입 명찰을 찾아 목에 걸고서 지정된 관광버스(16번)에 탑승하여 아산여직원(가이드)의 여행시에 주의 할 사항 등을 들은 후 남측출입사무소를 향하였다. 남측출입사무소는 공항 입출국시 가지고 가는 짐 등을 검사하는 곳으로서 현대식 건물로 깨끗하게 잘 시설되어 있었다. 신분 확인과 보안검색 등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북측출입사무소를 향하였다. 간단한 절차에 불과하였으나 주말 성수기라 많은 인원이었기에 지루하기만 하다... 작년 8월과 금년 7월중에 와 보았던 통일전망대를 지나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하니 그 옛날 청춘을 불살랐던 군시절이 생각난다. 난, 군 시절에 8사단(오뚜기부대) 수색대에 근무하면서 강원도 철원군 김화 지역의 비무장지대(DMZ)를 1년중 6개월 내내 수색정찰을 하였었다. 나무가 없고 잡초만 있어 황량하기 그지없는 주변 환경, 안내양이 창가로 보시라 하면서 군사분계선을 통과한다고 한다. 시뻘겋게 녹슨 철길 옆에 꼿아 놓은 오래된 세멘말뚝이 군사분계선을 알리는 표지라고 한다. 강원도 양양에서 이북 원산까지 철길이 나 있다고 하지만, 언제쯤 개통되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으려나? 아무쪼록 남북이 통일이 되어 보고싶은 북한의 명산들을 찾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몇분 후에 도착한 북측출입사무소는 간이막사에 낡은 하얀 천막을 씌워 남측출입사무소와는 대조적이었다. 또다시 신분 확인과 배낭검사 등 형식적인 절차를 마친 다음, 관광객들을 태운 버스들은 열을 지어 온정리로 향하였다. 띄엄 띄엄 서있는 인민군들의 옷차림이 옛 독립군 영화에서 나오는 일본군과 같다. 창에 비해 볼이 큰 모자, 밤색 군복, 부동자세로 하나같이 무표정으로 일관하여 마치 허수아비와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온정리 마을로 들어서니 드넓은 옥수수밭과 간혹 벼를 심은 논들도 보이고 밭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하나같이 반대편으로 돌아앉아 있다. 푸석푸석한 머리, 칙칙한 색깔의 옷차림, 검은 피부색이 마치 동남아에서 사는 사람들과 흡사하다. 오른편 바다쪽에 짙푸른 호수가 보이고 멀리 낮으막한 바위산으로 된 봉우리가 보인다. 안내양은 호수는 거울과 같다하여 ‘감호(鑑湖)’라 하고, 봉우리는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 가장 남쪽에 있는 봉우리의 하나로 옛날 아홉명의 신선이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구선봉(九仙峯)’이라고 말한다... 군부대 입구 양쪽에는 “자력갱생”, “강성대국”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옛 신륵사 터를 지날 때 건물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그들의 어려움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온정각 인근에 다달았을때 삼거리가 있고 좌측은 온정각, 우측은 고성항, 금강산골프장이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가니 온정각 인근에 15층의 건물이 한참 공사중 이었는데,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이산가족들의 만남의 장소를 만들고 있다는 한다. 온정각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겹겹으로 포개진 기암준봉들에 포위되어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곳 이었다. 이름에도 있듯 온정리(溫井里)는 사시사철 따뜻한 물이 나는 온천 마을이라고 한다. 금강산 관광의 출발점이자 중심지로서 관광객들은 낮 동안 금강산을 관광한 후 부근에 있는 온천과 호텔에서 피로를 풀고 내일의 여정을 준비 한다고 한다. 빨간 바탕에 하얀 글씨로 큼직막하게 써서 세워 놓은 “천하제일명산 금강산”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큰 길 한쪽편에 ‘고 정몽헌’전회장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곳의 명성과 그의 한을 대변 해 주는 것 같았다. 안내양에게 오늘 꼭 만물상을 보겠다고 일정 변경을 요청하니 애당초의 계획이 변경되어 오늘은 ‘구룡연’을 관광한다며 북측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경우, 사전에 예약식권(점심, 저녁)을 구입하고, 산행 후 저녁 6시 반에 교예공연을 관람할 사람은 예약을 하시라고 한다. 우린 말로만 들어왔던 평양냉면을 맛볼 양으로 ‘금강산옥류관’을 찾아 갔다. 깨끗하게 지어진 건물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가 반갑게 맞이하며 안쪽 원탁 테이블로 안내를 한다. 벌써 우리들 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안쪽부터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 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빔냉면을 시식 할까(?)하고 물었더니 여기선 물냉면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약 이십여분을 기다리는 동안, 벽에 설치되어 있는 TV 화면을 통해 “반갑습니다” 라는 노래와 함께 전시효과를 노리듯 금강산의 이모저모와 교예공연 장면 등을 보여준다. 테이블 중앙에 놓여있는 메뉴판을 살펴보니 장어구이, 송이버섯구이, 황구렁이술, 들쭉술 등도 보인다. 먼저 나온 감자전과 한참만에 나온 물냉면은 역시나 조미료가 가미되어 있지 않은 듯 그야말로 담백 무맛 이였다. 현관 로비에 비치 해 놓은 단풍이 붉게 물들은 금강산 그림과 파도가 휘몰아 치는 바다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구룡연’을 보기 위해 약속된 12시 20분에 버스에 탑승하였다... 온정각에서 목적지인 ‘구룡폭포’ 까지의 거리는 약 12km, 구룡연 초입 주차장 까지는 버스가 운행 할 수 있도록 폭이 좁은 도로가 나 있었다. 도로 옆 좌,우측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옛날에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다 하여 ‘창터솔밭’이라고 한단다. 붉으면서도 매끈한 소나무(미인송)들이 주차장이 있는 곳까지 잘 조성되어 있는 숲을 지나자 ‘신계사’가 나온다. 신계사는 신라때 세운 유명한 절인데 지금은 일부가 훼손되어 화강암 삼층탑만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남과 북이 화합하여 신계사 대웅보전을 복원시키고 있었고 조계종에서 파견된 남측의 스님들이 불사를 돌보고 있단다. 신계사를 지나니 신계천 물가에 너럭바위가 보인다. 옛날 다섯 고을 원님들이 여기에 모여 풍류를 즐겼다는 ‘오선암(五仙岩)’이라 부른단다. 신계천은 맑은 물이 옥성분이 많은 암반과 바위 위로 흐르기 때문에 물 색깔이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구룡연 입구 주차장에 내리니, 북한의 앳된 남녀 환경감시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산행중 요소 요소에 서 있으면서 기념품도 팔고, 사진도 찍어주고, 같이 얘기도 할 수 있지만, 노상방뇨를 감시하고 자연생태를 훼손하는 행위를 감시하는 역할이 주 임무라고 한다. 신계천 계곡을 따라 잠시 오르니 나무로 만든 ‘목란다리’가 나온다. 그 뒤편에 ‘목란관(木蘭館)’이란 원형의 건물이 있었고, 길가엔 안주거리, 술 등 음식과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화장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후 부터는 환경감시단(본인들은 ‘구조대원’이라 칭했다)이 감시하고 있어서 소변은 1불, 대변은 2불을 지불해야만 했기에 모두들 이곳 화장실을 들렀다. ‘목란’은 나무에 핀 난이란 뜻으로 ‘백목련’과 ‘자목련’을 통틀어 목란이라 한다. 북한은 이 목란을 국화로 삼아 금강산을 선전할 때는 목란관을 자주 보여 준다고 한단다...
목란관을 지나 암석으로 잘 정비되어 있는 산책로를 지나니 신계천이 끝나고 옥류동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옥류동으로 가는 주변 경치는 어느 것 하나 흘려 볼 수 없는 절경이었다... 옛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금강을 노래하고 그렸지만 문득 방랑시인 김 삿갓의 싯귀가 떠오른다. “松松栢栢岩岩廻(소나무, 잣나무, 바위사위로 돌아드니) 水水山山處處奇 (물과 산이 곳곳에 아름답구나!!!)” 이처럼 쉬운 글자로 절묘한 금강의 경치를 노래한 싯귀가 또 있을까?... 옥류동을 향해 골짜기를 오르니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계곡물도 아래위로 반사되어 시퍼렇다. 풀벌레 소리와 흐르는 계곡수를 들으며 초록빛 보다 더 짙은 맑은 물빛을 들여다보고 우리들이 살아 온 인생을 반추해 보는데 정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옥류동 초입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흐르는 계곡물을 감상하며 길가 바위에 새겨진 글을 읽고 있노라니 다람쥐가 쪼르륵 달려나와 재롱을 떤다. 사람들을 무서워 않고 먹이를 달라는 듯 1m 옆까지 와서 보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 사람과 친숙해 있는 듯 하였다... 한참을 오르니 김일성이 말한대로 본격적인 금강산을 느끼게 되는 ‘금강문(金剛門)’이 보인다. 바위가 갈라져 문이 되었다는 금강문 앞에는 김일성의 교시를 새긴 기념대가 있었다... 김일성이 죽은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북한 땅엔 아직도 김일성을 우상화 하는 기념대와 표지석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으며, 그 곳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거나 잠시 쉴려고 걸터 앉으면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금강문을 빠져나오니 경치가 달라진다. 이제부터는 외금강이 아니고 내금강이 펼쳐지는 곳이다. 금문교(金門橋)와 백석담(白石潭)을 지나니 앞이 확 트이면서 넉넉한 계곡이 나오고 물살이 우렁차게 쏟아 붇는다. 한 폭의 그림같은 옥류동이 한꺼번에 머리로,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수정같은 맑은 물이 폭포를 이루며 옥같은 구슬로 쏟아져 내린다. 그래서 이 계곡 전체를 ‘옥류동’이라 이름 붙여진 것 같다. 옥류동은 사면을 둘러싼 산봉우리들에 의하여 골짜기 풍경이 더없이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원체 바윗돌인지라 나무가 날 틈이 거의 없지만, 한 치의 틈과 한 줌의 흙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나무가 서 있었다... 좋은 경치는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아니, 흡수라는 것도 아니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세포 세포마다 통과시키면서 영혼을 씻어내는 것이다. 아니 씻어내는 것도 아니다. 씻으려는 의도도 없이 절로 씻기는 것이다... 명소마다 환상이고 봉우리마다 찬사를 아끼지 못하는 금강산 굽이굽이 절경! 그 가운데서도 이 옥류동은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녔다. 이곳에 오면 사진작가나 화가는 구도를 잡기 힘들어하고 시인은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한다고 한다. 그 무엇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재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길을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쌍둥이 못이 나타난다. 두개의 구슬을 연달아 꿰어 놓은 듯하다 하여 ‘연주담(連珠潭)’이라고 한단다. 연주담을 지나니 언덕 전체가 돌층계처럼 된 한 장의 바위가 나타난다. 이 긴 석벽을 타고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봉황이 긴 꼬리를 휘저으며 날아가는 모양이라 해서 ‘비봉폭포(飛鳳瀑布)’라 한다. 비봉폭포는 금강산의 4대 폭포 중 하나로 길이가 166m, ,수직 높이만도 139m에 이른단다. 비봉폭포 오른쪽에는 봉황이 춤을 추고 있다는 높이 20m의 ‘무봉폭포(舞鳳瀑布)’가 있었고 두 폭포 사이에 봉황바위가 날개를 펴고 있었다... 한참을 더 오르니 두 골짜가 물이 모여 격랑을 일으키며 굽이쳐 흐르는 개울이 있었고, 은실처럼 곱게 흐른다 하여 ‘은사류(銀絲流)’라 한단다. 여기서 부터는 ‘구룡동’이라고 한다. 은사류를 건너다 보면서 가다보니 오른쪽으로 구름다리인 ‘연담교’가 허공에 걸려 있었다. 연담교는 구룡연과 상팔담을 연결하는 뜻이라고 한다. 우린 연담교를 건너지 않고 곧장 올라가니 우측 협곡에 높이 10여m 쯤 되는 ‘주렴폭포’가 보이고, 이 폭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구룡연의 전망대인 ‘관폭정’이 보인다... 온정각에서 약 30리나 되는 골짜기 막바지에 도달한 것이다. 관폭정에 올라보니 앞산 꼴짜기에 깎아지른 절벽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마치 비단 폭을 온필로 드리운 듯 하얗게 깔려 내리는 웅장하고 장엄한 폭포가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구룡폭포(九龍瀑布)’인 것이다.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로써, 아홉 마리 용이 하늘로 오른다는 구룡폭포가 양쪽 산세와 함께 장엄하게 펼쳐진다. 문득 ‘休靜’(서산대사)의 싯 귀절이 생각난다. “知異壯而不秀(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金剛秀而不壯(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하지 못하다)”. 아~! 휴정은 왜? 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치 못하다고 했었나??? 아마도 서산대사님은 구룡의 승천을 못 보았나 보다??? 직접 와서보니 금강산은 수려하고도 장엄 했었다(金剛秀而亦壯).. 이 산우와 함께 관폭정에서 장엄한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구룡폭포의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취한 채 ‘상팔담’을 보기 위해 길을 재촉하여 내려와 연담교를 건너 구룡대 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깊은 바위 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바윗길은 아슬아슬하게 위험해 보였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가파른 절벽에 쇠기둥을 박고 철 사다리를 놓거나 디딤돌을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는 아마도 바위를 끌어안고 기어 올라야하는 가파르고 험난한 코스로 보인다. 경사도가 70~80도나 되는 워낙 가파른 바윗 길이라 사다리를 밟고 오르는데도 숨이 목에 까지 차 오른다. 14개의 철제 사다리를 기어오르니 전망이 좋은 ‘구룡대’가 나온다. 천태만상의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으슥한 계곡이 꽤나 멀리까지 들여다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구룡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위 계곡과 물줄기와 담들은 정말 신비로운 장관이었다. 태고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지닌 이 깊고 긴 계곡에 바위가 둥글게 파인 ‘소(沼)’가 십수 개에 이른다. 그 중에서 빼어난 여덟을 골라 이름하여 ‘팔담(八潭)’이라하고, 구룡동 윗골에 있다하여 ‘상팔담(上八潭)’이라 하였단다.
상팔담의 물이 흘러 ‘구룡대’ 밑을 지나 쌍둥이 같은 형제담을 이루고 그 오른쪽으로 가는 홈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것이 ‘구룡폭포’이다. 구룡폭포가 떨어져 만든 구룡연과 상팔담을 합하면 ‘구담(九潭)’이라 한다. 이 아홉 개의 못에 아홉 마리의 용(九龍)이 와서 있었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 본 움푹파인 상팔담의 물은 그 무엇과도 비길데 없는 비취색으로 진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음직한 신비로운 곳 이다. 그래서 이곳이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있었던 곳이라 했던가???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쫏기는 사슴 한 마리를 살려 주고, 그 은혜로 이곳 상팔담에 목욕을 하던 한 선녀의 옷을 감추고서 함께 살게 되었다 하던 전설. 아~! 그 선녀들은 지금 다 어데로 갔을꼬??? 내려 갈 시간이 다 되었다는 안내원의 재촉으로 더 보고도 싶었지만 선녀가 흘려 놓고 간 비취옥의 덩어리를 뒤로한 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목란관을 향하였다. 목란관 앞에서 파는 꼬지에다 시원한 막걸리라도 한잔하고도 싶었으나 우리들이 좋아하는 막걸리는 없었고, 소주와 들쭉술은 있었지만 모두가 다 신비로운 금강의 신묘한 비경에 취해 머리와 가슴속에 다 담아 갈 양으로 그냥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당초, 첫째 날엔 만물상을 꼭 봐야 한다는 우리들의 생각은 구룡연을 보고서야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새삼 느끼면서 셔틀버스에 올라 ‘평양모란봉교예단’이 펼치는 줄타기, 재주부리기, 써커스 등 교예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온정각 ‘금강산문화회관’을 향하였다...
둘째날 10월 7일(일),
[일정] ; 해금강호텔-온정각-만물상(망양대)-온정각-한국음식점(부페식사)-삼일포-온정각- 북측출입사무소-남측출입사무소-아산휴게소-서울
[산행장소] ; 금강산 “만물상(망양대)”
[소요시간] : 약 3시간 30분(09:30~13:00)
이른 아침에 밖에서 딸가닥,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어제 밤 마신 들쭉술과 쐬주를 맘껏 마셨으면 취한 기분에 쉽게 잠이 들었을텐데 그보다 신비로운 옥류동과 구룡연의 비경에 취해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창 밖을 보니 관광객들이 벌써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맑은 정신에 어제 밤 볼려다가 보지 못 했던 호텔에 비치되어 있는 “금강산”(김영진 저) 이란 책을 읽어 보았다... 준비 해 와야 할 동반시를 너무나 바쁘게 서둘다 보니 깜박 하였기에 그 책에서 하나 훔쳐 갈 계획 이었다. 마침 오늘은 ‘만물상(萬物相)’을 가기로 되어 있어 “만물상”이란 시를 옮겨 적었다... 호텔에서 제공한 아침식사(뷔페식 한식)를 간단히 하고 온정리를 거쳐 지정된 버스에 올라 온정령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만물상 구역으로 올라가노라니 좌측으로 흐르는 ‘온정천’이 내내 시선을 붙든다. 어느 산행이든 계곡 물을 벗 삼아 거슬러 오르는 길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가 어느 위대한 작곡가도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교향곡을 들려주기 때문인 것이다.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쉬엄쉬엄 올라가야 제맛이겠지만, 우리는 만상정까지 나 있는 도로를 따라 버스로 가야만 했다... 길 양 옆으로 어제 구룡연코스와 같이 늘어선 소나무(미인송)의 행렬이 눈에 서늘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숲속의 한 곁에 ‘초대소’가 있었다. 어제 교예공연을 한 단원들이 숙소로 이용한다고 안내원은 말한다. 온정각에서 육화암까지의 7km는 관음연봉과 문주봉 사이의 계곡으로 금강산 계곡들 중에서도 길이가 길고 계곡의 폭이 가장 넓은 곳으로 좌우로 펼쳐지는 금강산의 장대한 산악미에 눈길을 주다보니 어느덧 가파른 오르막 길에 다다른다. 버스는 한라산 오일륙 도로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꾸불꾸불 길을 돌아서 늘름한 ‘관음연봉’을 바라보면서 올라 가니 절벽의 중턱에 앞발을 뻗치고 아래로 향하여 목을 쭉 내민 곰같이 생긴 바위가 보인다. 마치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 같은 자세였다. 버스로 올라가다보니 안내책자와 말로만 들어 왔던 문주담과 관음폭포, 육화암, 동자바위, 촛대바위, 망아지 바위, 말바위 등 여러 형상의 바위는 보지 못하고 주차장이 시설되어 있는 만물상의 초입인 ‘만상정’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은 약 20여대의 대형버스를 한꺼번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화장실과 휴게소도 있었다. 만장정은 아름다운 경치를 편하게 볼 수 있게 지어놓은 휴게소 정자의 명칭이다. 만상정 옆에는 한 번 마시기만 해도 무병장수 한다는 ‘만상천’이 있었으나 우린 시간에 쫏겨 화장실에만 잠시 다녀오고 아쉽게도 물 맛은 보지 못했다. 등산로 초입에는 환경감시원들이 대기하고 서 있었고, 금강산을 그린 손수건과 고비, 송이버섯 등 기념품을 파는 상인이 있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만물상을 먼저 보려고 앞을 다투어 오르니 등산로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좁은 등산로에 주변 산세를 구경하랴 아침일찍 먼저 등반을 한 사람들은 벌써 내려오는 중이어서 한참동안을 줄을서서 올라야 했기에 답답하기 그지없는 산행이었다. 그렇게 쉬엄쉬엄 약 1km(40여분)를 오르니 철제 계단이 보인다. 잠시 쉬면서 오른편 산을 쳐다보니 일만 이천의 창검을 세운 듯 겹겹이 늘어선 암봉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많은 바위와 돌의 모양이 어느 것 하나 같지가 않다. 잠시 눈을 돌렸다 다시 보면 모양이 다시 바뀐 것 같다. 아침과 낮의 모양이 다르고, 해뜰녘과 해질녘의 모양이 다르단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날씨에 따라 다르다고도 한다. 열 사람이 바라보면 열 가지 모양이고, 백 사람이 보면 백 가지로 그 모양을 보고 느끼게 되니, 과연 만물의 모습을 다 지닌 형상이었다. 그래서 이 곳을 “만물상(萬物相)”이라 했던가??? 어제 구룡연 코스에는 아직 단풍이 물 들지 않았지만, 이 곳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여 각각의 암봉들이 오색의 옷을 입은 듯 하였다. 높은 곳에 오르면 조망이 더 좋겠지(?) 싶어 초콜렛과 물 한잔을 마시고, 다시 가파른 돌로 잘 정비 된 등산로를 올랐다. 약 10여분 좀 더 오르니 쉼터가 있고 나무로 지은 막사가 보인다. 간이화장실 이었다. 길 옆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왼쪽으로 오르면 천선대(天仙臺)로 가는 길이요, 곧장 가면 망양대(望洋臺)로 가는 길이다. 천선대 쪽으로 오르다 전망이 확 트이고 조망이 좋은 곳에서 잠시 기념사진을 찍고, 천선대로 오를까(?), 망양대로 갈까(?) 하고 고민 하다가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쪽인 망양대로 오르기로 하였다. 아늑하고 비교적 오르기 쉬운 골짜기를 돌아서니 한 모퉁이에서 마실 물을 받고 등산객들이 줄을서서 기다리고 있다. 천미터 되는 높은 곳, 그것도 암반에서 나오는 물이니 약수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니 가지고 왔던 물을 버리고 마시고 싶었을 것이다. 기다렸다가 물 맛을 보고 갈까도 생각하였는데 행복씬 그냥 오르자고 한다. 조금 더 오르니 가파른 벼랑엔 오십여 미터나 되는 경사도 70~80도의 철제 사다리가 두 줄로 시설되어 있고. 좌우측엔 조망이 탁 트인 공간이 있었다. 일순간에 답답했던 가슴이 싸아~하니 시원하기도 하였지만,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정신이 아찔하여 오금이 저려왔다. 그 높은 길을 사다리의 좌,우측 난간에 의지하며 천천히 올라 능선에 다다랐다. 눈 앞엔 펼쳐진 동해 바다!! 멀리 오른편에 ‘해금강’이 보인다. 왼쪽에 ‘천선대’가 보이고 많은 등반객들이 가파른 철사다리를 오르는 모습이 마치 개미와도 같다. 우측으로 능선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오늘의 목표지점 ‘망양대’가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잠시 그 세찬 바람을 맞으며 뒤를 돌아보니 올라오면서 보았던 우측의 만물상과 등산로 좌측으로 보지 못 했던 삼선암, 귀면암, 칠층암과 그 위에 천선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천선대는 하늘나라의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고 놀았다는 곳이라 해서 그렇게 명명했나 보다. 조망이 일품이라고 하는 그 곳은 시간 관계상 오르질 못 했으나 만물상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어서 만물상의 신비한 경관을 한 눈에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산우들이 행여 이다음에 금강산을 찾을 기회가 된다면 ‘천선대’로 오르길 권해 본다. 아슴프레 서쪽편 멀리에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높이 1,638m)과 영랑봉, 옥녀봉이 보인다... 아무쪼록 통일이 되어 자유롭게 왕래가 된다면, 우리 시산회 친구들과 함께 그 곳을 오르기를 희망한다... 망양대에서 우린 동반시를 읊으려 했으나 천미터 이상의 고지대의 암봉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자리가 협소하여 “아~!! 만물상!!” 하는 감탄사만 연발하고 모든 속세를 잊어버렸다. “아~!! 금강산 일만이천봉!!” 천미터 이상의 봉우리만 백여개가 된다고 하는 금강산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싯귀대로 봉우리 일색이었다. ‘雲歸山獨立(구름 걷히고 산만 남으니) 一萬二千峰 (일만이천 봉우리)‘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할 때 만물의 ’草‘를 처음 잡아본 곳 이라하여 일명 ’萬物草‘라 하는 만물상은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여 만물을 드러내었다. 내려 올 때 보니 언제 이렇게도 많이 올라왔는지(?) 싶을 정도로 멀고도 먼 길이었다. 모두가 다 함께 만물상의 모든 형상을 다 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하산하여 ’만상정‘ 초입 등산로 표지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계획을 변경하여 당초 일정에 없던 ’삼일포‘를 가 보기 위해 온정각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리나라의 5악산(東; 금강산, 西; 묘향산, 南; 지리산, 北; 백두산, 中; 북한산) 중의 동악산인 금강산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허리춤에 위치한다. 예부터 우리 선인들은 한 웅큼의 흙도 없이 바위뿐이라고 해서 개골산(皆骨山), 신선이 사는 전설 속의 산이라고 봉래산(蓬萊山), 가을에 단풍이 들면 더욱 좋다고 하여 풍악산(楓嶽山), 화엄경(華嚴經)에 “東北海中 金剛山”의 그 산이라고 하여 금강산(金剛山)이라 한다. 금강산은 그냥 금강산이 아니다. “아~! 금강산” 이다. 누구나 금강에 와 보고는 세상의 모든 말들이 부족함을 절감한다. 아무리 신묘한 화가라도 이를 표현할 재주가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단다. 이 청아한 물소리 이 천상의 바람소리, 새소리를 화폭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어떻게 담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산행기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전문 작가가 아닌, 그것도 한번의 산행으로 어떻게 만가지의 형상과 그 자연의 신비로움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금강산 만물상” 잠간 보고 쓰긴 했지만, 누가 묻는다면 무엇하나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百聞而不如一見이니라” 할 수 밖에.
여건이 허락되지 못하여 준비해 간 동반시는 귀경 시 춘천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김영희 여사(이원무)가 읊고서, 되내이듯 한 총장이 다시한번 읊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만 물 상”.... (김 영 진)
우주를 빚은 손이
세상의 만물을
금강에 새겨놓았다.
나는 새, 기는 물고기
어흥!
맹수의 무리로 가득한 이곳
금강은 천의 얼굴, 만의 얼굴을 가졌네
초가집 짓고
기와집 짓고
아니, 하늘을 찌르는
꽃 피고 새 울고
해 뜨고 달 지며
네 자랑 내 자랑
네 기쁨 내 기쁨
오순도순 잘도 사는 구나
세상 걱정없이
금강산에 모여
반짝반짝 눈동자를 굴리고 있구나
이틀동안 금강산 일만 이천봉의 일백분의 일도 못 보고 돌아와 아쉬움이 더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이 첨예한 대치상황에서 가능했던 제한된 관광코스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첫째날 저녁,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써커스와 둘째날 오후에 시간을내어 ‘삼일포’의 추가 관광은 산행이 아니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교예단 공연을 마치고 여자사회자는 한복을 곱게 있고 그 고운 목소리로 마지막을 장식할 때 “ 동포 여러분 안녕히 가십시오~”, “동포 여러분 다시 만납시다아~” 박수와 환호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남는다. 하루밤을 묵었던 숙소인 강원도 고성군 장전항의 ‘해금강호텔’에서의 추억은 북한에서는 볼 수 없는 평화롭고 고즈넉하기만 하였었다...
‘구룡연’과 ‘만물상’의 산행에서 느낀 점은 금강산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글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천하 제일의 명산' 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헤매였고, 바쁜 일정에 쫏기다가 이제서야 짬을내어 메모지를 보면서 잠시 산행기를 올려 본다... 그동안 문필가 선현들의 산행기를 읽어서 익히 아는 터이지만, ‘육당(최남선)’의 '금강예찬'이 가슴에 와 닿는다. "금강산은 보고 느끼거나 할 것이요, 형언하거나 본떠 낼 것이 못 된다"...
자연경관과 길거리에서 보고 느낀 점은 오염이 안된 자연 그대로 잘 보전,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산과 계곡, 숲과 강을 훼손하거나, 망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 보였다...
이따금 바위에 글자를 새긴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암각 만은 예외였지만 다리와 난간, 등산로 계단, 매점 등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만든 것이 우리의 개발 문화과 다른 점이라면 달라 보였다. 길가의 풀 한포기, 소나무 한그루, 돌 하나 자연 그대로 보전시키고 인공적으로 형질을 변경하거나, 조림하거나, 파헤치지 않은 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놓아둔 것이다. 종이 한 장, 쓰레기나 오물이 없는 계곡은 얼마나 깨끗하게 정리를 잘 해 놓았는지 길가 좌우가 갈퀴나 빗자루로 청소한 흔적이 역력 했었다...
또한, 북한 사람의 생활수준과 거주환경이 너무나 낙후된 점이다. 고성군은 1960년대 남한의 농촌마을을 연상케 했고, 시골길은 비포장도로에다 온통 벌겋게 헐벗은 산과 구릉, 아직도 나무를 이용해 땔감을 마련하여 밥을 짓는 시골의 굴뚝, 가끔 지나가는 달구지와 통통거리는 트럭, 자전거가 유일한 교통수단인 풍경 등 사회주의 국가의 전형(모델)을 보는 것 같았다.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멀리서 보았는데, 중고(?)트럭과 삽자루 만으로 수 십명이 집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자본주의국가인 남한에서도 상존하는 것이지만, 분단 60여년 동안의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가 이렇게도 크게 벌어졌는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하였다...
북에서는 금강산을 “5금강”으로 나눈다.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외에 별금강과 신금강이 더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금강산 3대 절경이라는 만폭동, 구룡연, 만물상 중 이번 여행엔 구룡연과 만물상을 보았으니 다음에 기회가 주어 진다면 만폭동, 비로봉의 내금강과 수정봉, 세존봉, 해금강과 더불어 온정령 방면의 만물상을 다시한번 보고 싶다... 이번 여행에 다녀온 코스별 소요시간과 주요 지점을 아래에 다시한번 정리하니 참고 하시기 바란다...
〇 “구룡연” 등산코스 (총 4시간 소요)
온정각(주차장)-신계사터-주차장-신계다리-목란관-화상대-삼록수-금강문-옥류동폭포- 연주담-비봉폭포-무봉폭포-은사류-관폭정-구룡폭포-은사류-상팔담-원점회귀(온정각)
〇 “만물상” 등산코스 (총 3시간 반 소요)
해금강호텔-온정각(주차장)-초대소-만상정(주차장)-망양대-원점회귀(온정각)
〇 “삼일포” 관광(추가)코스(총 2시간 반 소요)
온정각-조포마을-주차장-단풍관-삼일포호수-장군대-연화대-주차장-원점회귀(온정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