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록

북한산 소귀천계곡(詩山會 제96회 산행)

북한산 소귀천계곡(詩山會 제96회 산행)

산 : 북한산

코스 : 아카데미하우스-칼바위-대동문-소귀천계곡-우이동

소요시간 : 오름 1시간30분 내려옴 1시간 30분

일시 : 2008년 11월 2일(일) 10시

모이는 곳 : 전철 4호선 수유역 1번 출구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사진기(하산 후 뒤풀이 예정)

연락 : 김종화(010-2406-0332)

블로그 : 사진 blog.daub.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나의 싸움(신현림) 전문

 

신현림의 삶과 시는 망신(亡身)과의 싸움이다. ‘나의 싸움’의 화자는 자기의 삶이 서서히 미세하게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그 순간 그는 전투적·공격적 자세가 된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기에. 신현림인들 우아할 줄 모르겠는가. 하지만 오직 홀로 어린 자식을 먹여 살리며 한세상 헤쳐 나가려니, 거룩하게도 억척스러워진다. 신현림에게 시 쓰기는 삶의 고통과의 싸움이다. 시를 쓴다고 해서 고통이나 골칫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의 악착같은 자기 암시는 그 고통을 중화한다. <황인숙·시인>

 

이 시인의 삶도 도움쇠의 삶처럼 항상 치열한 모양이다. 이재웅 산우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뒤풀이 자리에서 계속 낭송할 것을 권한다.

 

 

 

시산회 제 95회 “설악산”(공룡능선) 산행기(‘08.10.18~19, 맑음 / 임삼환)

 

(참석자) : 16명(기세환, 김용우, 김종화, 박형채, 신원우, 염재홍, 위윤환, 이경식,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임용복, 전 작, 조문형, 최근호, 한양기)

 

 

단풍이 곱게 물이 든 가을날에 그렇게나 가 보고 싶어했던 설악산 산행일이다.

오랜만에 설악산을 찾으려니 감회가 새롭다. 약 30여년전 서울 영업부에 근무하던 시절, 서울지역 직원 40여명을 이끌고 대청봉을 넘던 일이 불현 듯 떠오른다. 한 여사원이 오색약수터에서 출발한 후, 얼마 못 가고 지쳐 쓰러지는 바람에 교대로 들쳐 업고 대청봉을 넘고는 일주일 넘게 입이 부르터 고생했던 기억부터, 이놈의 산은 다신 안온다고 다짐을 해 놓고도 얼마 후면 또 거기서 헤매고 있을 나를 보고 속으로 피식 웃던 기억까지...

 

잠실역 3번출구에서 8시에 모이라는 김 총장의 메세지를 두 번씩이나 받았으니, 부지런을 떨어 6시40분에 집을 나섰다. 마나님이 ‘정말 괜찮겠냐?’고 걱정스러웠는지 몇 번이나 물어보는 걸 웃으며 걱정 말라고 큰 소리는 쳤는데, 배낭이 상당히 묵직하여 걱정이 된다. 잠실역 3번출구 곰두리상 앞에 도착하니 시간이 약간 이른데도 벌써 몇몇 산우들이 보인다. 언제 만나도 반가운 친구들. 악수하고 돌아보니 다들 배낭들이 빵빵하다. 1박2일 동안 굶지는 않겠구나! 싶어 잠깐 웃음이 나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시간이 지나 8시가 되자, 지각생 하나 없이 참석키로 한 산우 전원이 도착했다. 설악산이 좋아 어제 잠들을 설쳤나? 보다.

 

8시10분경, 25인승 버스에 타고 힘차게 출발! 양수리 예술인 카페를 지나는데 누군가가 요즘 이곳 장사가 잘 안된다며 운을 뗀다. 경기가 나쁘니 그럴 수밖에... 양평을 벗어나니 들판이 황금물결이다. 올해는 모든 작물이 대풍년이어서 겉으로는 좋아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농민들 가슴속이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단다. 대풍 속의 기근이라고, 모든 농자재부터 기름값까지 가격이 급등을 했는데, 쌀값은 그 자리 그대로이니, 정말 걱정이다. 산우들아 고향에서 쌀 좀 사다 먹세나!!

 

양평을 지나 길이 막히자 운전기사는 우회로를 찾아 방향을 돌렸다. 느티나무광장 휴게소에서 잠깐 볼일을 보고서 한참을 달려 홍천, 신남을 지나 인제로 들어가는 군축령터널을 통과했다. 오랜만에 이곳에 오니, 터널도 없이 높고 험한 군축령고개를 넘나들던 군 시절이 생각났다. 휴가병이나 제대병을 태우고 가다가 차량사고가 나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악명 높은 고갯길로, 지금도 고갯마루엔 위령탑이 서있다.

 

11시경, 인제를 지나, 당초엔 한계령을 넘으면서 절정에 달한 단풍을 감상할까? 했었는데, 아무래도 수 많은 산행인파 때문에 많이 지체될 것만 같다고 다들 미시령(터널) 쪽으로 가자고 한다. 벌써 모두들 출출한 모양이다. 뭘 꺼내 먹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김 총장은 설악동입구 척산온천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가잔다. 높고도 먼 산행길을 앞두고 잘 먹어야 맞지! ‘오리사냥’이라는 간판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모두들 오리고기를 먹자고해서 오리고기(야채주물럭과 뚝배기탕) 요리를 시키고, 내가 가져 간 복분자술을 곁들였다. 고향에 계신 형수님께서 손수 담가 보내주신 복분자주를 페트병으로 하나 가득 담아 넣고 왔는데, 참석인원이 많아 한 사람에 두 잔 밖에 돌아가질 않는다. 출정을 앞두고 체력보강을 위해 배를 채웠다.

 

12시40분, 배도 채웠으니 다시 출발. 갑자기 김 총장은 산행기 이야기가 나오더니 순서에 입각해서 나에게 쓰란다. 모두들 박수로서 결정하니 지엄한 명령을 더 이상 거절할 방법이 없다. 나는 등산을 할 때는 생각을 완전히 쉬게하는 습관이 있다. 평상시 적은 용량으로 고생하는 뇌에게 산행할 때 만큼은 특별 휴가를 주어 맘껏 쉬도록 해 왔었는데, 오늘은 조금 무리가 따를 것만 같아 부담이 되었다.

 

12시50분, 설악산 국립공원안내소에 도착했다. 사전 정보도 얻고, 휴식도 하고, 내설악, 외설악, 남설악 모형도를 보며 설명을 듣고, 우리가 갈 코스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국립공원소장이 정중하게 충고를 하고 나선다. 코스가 너무 길어 잘못하면 낙오가 생길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재고해 보란다. 천불동계곡을 지나 공룡능선을 넘은 뒤 다시 설악동으로 내려오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이다. 나는 대청봉을 약 10여 차례 올랐지만, 공룡능선이나 마등령은 가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우리가 넘어야 할 산행길이 그렇게 힘든 길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 산우들, 초지일관하여 예정한 계획대로 강행하기로 하였다. 약간은 깨름칙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 양폭 산장은 매우 열악하여 지리산 등반 때와는 달리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우선, 저녁은 미리 예약해 준비한 도시락으로, 내일 아침과 점심은 컵라면과 햇반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계획을 바꿔, 저녁은 김 총장이 준비한 연어와 컵라면으로 하고, 도시락은 내일 아침겸 점심식사로, 신이사가 준비한 찰밥은 간식으로 먹으며 버티다가, 하산한 후 뒤풀이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당초 회장단의 지시로 나는 끓은 물을 가득 채운 보온통과 겨울옷을 가져갔는데, 다행히 필요가 없게되어 차에 놔둔 채 가벼운 몸으로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매표소 앞 주차장에는 절정에 달한 설악의 단풍구경을 위하여 수많은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13시30분, 신흥사 석불앞에서 입산증명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비선대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군했다. 시간도 넉넉하고 워밍업도 안 되어있으니 가급적 천천히 오르기로 하였다. 올해는 워낙 가물어서 단풍은 색깔이 곱지 못하고 칙칙하였다. 올 가을은 단풍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지나가게 되는구나 했었는데 설악산에서 단풍을 만끽할 수 있게 될런지? 사뭇 기대감이 앞선다. 김 총장이 준비해 온 연어박스는 신 이사가 이것저것 담아 온 보자기를 비워 그 곳에 넣어 들고가니 한결 쉽게 가지고 갈 수 가 있었다.

14시20분경, 비선대앞에 도착했다. 휴게소를 관통하여 지나가며 들여다보니, 등산객들 모두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먹고, 마시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던 차에, 휴게소에서 컵라면과 햇반을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우선 겁이 덜컥 났다. 그럼 한 끼는 굶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배고픔의 공포 때문일까? 모두들 별 걱정 없이 태연한 것을 보면 달리 대책이 있나보다. 임 수석과 김 총장이 부지런히 어디론가 향하고, 나머지 일행은 자리를 잡고 막걸리와 빈대떡으로 갈증을 달래기로 했다. 목이마르니 막걸리가 맛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사이 어디서 샀는지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두 산우가 돌아왔다. 초코파이, 양갱과 과자이다. 각자 배낭에 나누어 넣고 양폭산장을 향하여 출발했다.

연어박스는 산우들이 자진해서 교대로 들고 올라갔다. 김 총장이 정성들여 싸온 연어회는 부피에 비해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으나, 먼 산행길에 수 많은 등산객들과 교차하며 혼자서 들고 걷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교대로 들고 가는데 누군가가 300 m마다 교대 하잔다. 300 m는 약 400보 정도이니 400보씩 교대로 들고 걸으면서 주변에 펼쳐지는 문수담, 이호담, 오련폭포 등의 절경에 빠져들었다. 사진작가 두 이(원무, 경식) 산우와 김 총장은 비경을 두고가기가 아쉬워 열심히 촬영을 하며 뒤 따른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연못은 옥색과 비취빛으로 이가 시리도록 시원해보였지만, 등과 이마에는 땀이 쏟아지고 숨이 턱에까지 차 오른다. 물소리가 상쾌한 길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계곡에 발을 담그면서 족탕을 했다. 역시 물이 좋다. 오늘은 시간이 넉넉하니 우선은 좋았지만, 내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아쉽긴 하지만 오늘은 희운각까지는 올라야 내일이 한결 수월할 텐데, 희운각대피소는 공사중이라니 어쩔수 없지 않는가...

 

17시40분경, 드디어 양폭대피소에 도착했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깊은 산중에는 벌써 어둑어둑해 진다. 먼 산봉우리는 햇빛을 받아 환한 반면, 대피소 부근은 어둠의 그림자가 펼쳐지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군대막사 같은 침상을 한 칸씩 배정받아 배낭을 풀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깨끗하기는 했지만 별로 친숙하지 않은 침상이다. 18시가 넘자 어두워진다. 김 총장은 준비해 온 연어회를 내놓고 술을 한 잔씩 하잔다. 산중에서 먹는 술안주로는 먹어보기 힘든 성찬이었다. 높고 깊은 산속, 산장에서 싱싱한 연어회에 양주라!! 기 회장님이 준비한 ‘발렌타인’17년산 한 병을 내어 놓자마자 금방 바닥이 났고, 이(원무) 산우는 아들로부터 친구들과 설악산 간다고하여 선물 받았다는 ‘발렌타인’21년산을 또 내놓았다. 17년이 무엇인지? 21년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단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옆에 앉은 아가씨(아짐씨?)가 예쁘게 보이는 거 밖에... 그것마져 동이나자 또 염재홍 산우가 ‘이과두주’를 내어놓는다. 중국술 중에 가장 좋은 술이 ‘이과두주’인 것 같다. 예전에 모시던 상사 한분이 즐기던 술이라, 나도 그 맛에 길들여졌다. 전과복 한 접시와 ‘이과두주’ 한 병이면 그 밤이 즐겁다. 마지막으로 신 이사가 최근 스페인 출장길에 사온 정체불명의 술(?)을 내어 놓는다. 안주가 좋아서인지? 아님 좋은 산우들과 함께한 깊은 산속에서의 마시는 술 맛이 좋아서 인지? 쉬이 취하지가 안았다.

 

마침 옆좌석에 젊은 등산객 부부가 있었는데, 우리만 먹기가 미안해서 연어회를 권했다. 앞에 앉은 젊은 부인은 예쁘장한 얼굴에 성격도 화통하여 호감이 갔다. 남자 마음은 다 그러한가 보다. 옆에 신랑?인지 아님, 애인?인지는 몰라도 임자가 따로 있는데... 우리가 내일 가야할 길로 넘어왔는데, 우리가 길을 잘못 잡았다고 한다. 옛날에 비교하면 아스팔트길처럼 좋아졌지만, 그래도 힘들 거라고 걱정해 준다. 옆에서 끓여먹는 라면이 너무 맛있어 보여 대피소 직원에게 부탁하여 라면 8봉지를 끓여왔다. 집에서는 별로 먹지도 않는 라면이 이 곳에선 왜? 이렇게 맛이 있는지?, 모두들 정신없이 국물까지 비워버린다.

 

이 곳 대피소는 밤 9시면 발전기를 끈다고 한다. 따라서 내일아침 6시에 기상하기로 하고 모두들 7시반경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평상시는 아직 직장에서 퇴근도 하기 전의 이른 시간이다. 남자들끼리 누어있어서 인지? 야릇한 여담이 오가다가, 2층 산객중 아줌마에게 핀잔을 듣고서야 잠잠해졌다.

 

한참 단꿈을 꾸고 있는데, 갑자기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30분, 잠자리에 든지 꼭 7시간이 지났다. 버릇은 이렇게 무섭다. 위(윤환) 대장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그만 자고 산행을 하잔다. 초저녁에 잠시 잠을 자고 난 김 총장, 기 회장 등과 협의가 있었나 보다?. 주섬주섬 일어나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의외로 날씨가 포근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산우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어제 밤 모두들 잠을 설친 모양이다. 코고는 소리 때문이었인지? 나는 감정이 무뎌 잘 잤었는데,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건지? 모두들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다고 한마디씩 한다.

 

새벽 3시10분, 양폭대피소를 출발했다. 먼동이 틀려면 몇 시간이 더 지나야만 한다. 하지만, 달빛과 별빛이 있어서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내 손전등은 화장실 갈 때까지 멀쩡했는데, 막상 출발할 때는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 전(작) 산우가 새 배터리를 주어 바꾸었는데도,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 촉이 나갔나 보다. 불 없이 산우들 중간에 위치하여 앞,뒤 산우들의 헤드렌턴 불빛을 빌려 산을 오르기로 했다.

 

무너미고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힘들었다. 꼭두새벽에 급경사 길을 가려니 죽을 맛이다. 한 참을 오르는데 한 젊은 산객이 한짐의 배낭을 메고 우리들을 앞지른다. 나도 한참때는 저렇게 짱짱했는대, 그 시절은 이제 지나고 젊은시절이 그립다. 무너미고개를 올라서니 멀리 대청봉이 시커먼 모습으로 보이고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왔다. 우리는 대청봉은 오르지 않고, 공룡능선을 타기로 했으니 우측의 신성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청봉 쪽의 능선에 반딧불 같은 불빛이 줄을 지어 가고 있다. 아마도 오색 약수터 쪽에서 무박으로 밤새워 넘어 온 등산객들일 것이다. 저 사람들도 우리의 불빛을 보고 있겠지?

새벽 4시30분경, 신선봉을 올랐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달빛에 어슴프레하게 쭈삣쭈삣한 능선이 눈앞에 나타났다. 누군가가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좋은 절경을 컴컴한 밤중에 앞사람의 발 뒤꿈치만 따라 그냥 지나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좀 쉬었다가 구경도 함시롱 천천히 가자고 한다. 또 배도 고프니 밥도 먹자고 하여 등산로 길가에 좋은 자리를 잡았다. 앞도 안 보이는데 도시락을 펴자니 고역이 따로 없지만, 헤드렌턴에 의지하여 오늘 가야만 할 먼 길을 생각해 모두들 열심히 먹는다. 어제 저녁에 먹으려던 도시락을 아꼈다가 지금 먹는 것이다. 어제 밤 연어회와 라면으로 저녁을 때웠기에 몇몇 산우들은 도시락을 이미 먹었기에 도시락이 없는 산우들을 위해 나누어 먹는 인정은 우리 시산회 산우들이 함께 가야만 하였기 때문 이었을거다. 도시락을 뱃속에 채우고 나니 한결 배낭의 무게는 가벼워 졌지만, 이제 점심은 뭘로 때우나? 걱정이 앞섰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서 마음으로나마 위안을 삼았다. 아침에는 사과를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누군가의 배낭에서 어린이 머리통만 한 사과가 나왔다. 4등분하여 한 조각씩 나누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출발한지 얼마 안 가서 또 쉬어 가잔다. 해가 뜨질 않아 좋은 경치를 볼 수 없으니 차라리 해 뜰때까지 이곳에서 잠간 쉬자고 했다. 모두들 배낭에 기대어 누었다. 지나온 길에 비박금지란 팻말이 있었는데, 우리는 규정을 어기고 비박 중이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북두칠성도 찾아보고 카시오페아 자리도 찾아본다. 해발 천미터가 넘은 높은 산에 올라오니 더욱 더 뚜렷하게 찾을 수 있었다. 다른 등산객들이 우리 일행을 처다보며 웃으면서 지나간다. 우리는 매복 작전 중이라고 농담을 했다. 먼 산이 어렴풋이 밝아오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행여 볼일이 있어 남기고 온 산우가 있을까? 싶어 뒤로 번호를 외치자 열다섯까지는 뒤에서 들렸는데, 마지막 열여섯은 앞쪽 산 등성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김 총장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에 사진을 찍을려고 한 건지? 아님 급한 볼일이 있어서인지?앞서서 가 있다가 마지막 번호를 웨쳤다. 갈수록 길은 험해지고 숨은 목에 까지 차 올라왔다. 이래서 모두들 공룡 능선을 가자고 하면 슬며시 꽁무니를 뺐나 보다.

 

6시 45분경, 우측 산 넘어에서 붉게 여명이 밝아오더니 해가 솟아 오른다. 새벽안개 속이어서 완전한 일출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일출 광경이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큰 공덕을 쌓은 덕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재웅) 산우는 일출광경을 동영상으로 담느라고 한 참을 지체하였고, 이(경식) 산우는 산우들 증명사진을 찍어 주느라 여념이 없다. 김 총장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에 두 팔을 벌리고 온 기를 다 받을량 한동안을 서서 있다가 온다. 아마도 산우들의 안전산행을 기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7시가 지나자 이제는 사방이 밝아졌다.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몇 번째인가? 공릉능선 중간쯤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멀리 마등령과 오른편에 비선대가 보인다. 산우들의 배낭에서 아직까지 아껴 둔 간식들이 나온다. 나는 찐 고구마를 내놓았고 박(형채) 산우는 특별히 전라도 어데선가? 주문해서 가지고 왔다는 보라색 생고구마를 내어 놓는다. 요즘 웰빙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가지고 왔는데, 역시 반응들이 좋았다.

 

나한봉(1,276 m)을 오를땐 모두가 힘겨워 한다. 반때편 방향에서 넘어오는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좁은 비탈길에서는 한 참을 기다려야만 갈 수가 있었고, 좋은 설악의 풍광을 사진에 담을려고 뒤에 처진 이(재웅) 산우가 자꾸만 힘들어 한다. 갈 길은 아직도 먼데 벌써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걱정이 앞선다. 위(윤환) 산우는 김 전회장께서 특별히 주문하였다고 하면서 김 총장, 이(경식) 산우와 함께 뒤처져서 함께 오르고 있다. 능선 고개를 넘어 앞서간 몇몇 산우들이 쉼터를 확보하고 있다가 여기에서 남겨둔 안주에다 ‘막걸리를 한 잔씩 하자’고 하나 모두가 지쳐서인지?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가져 온 물도 거의 모두다 바닥이 났다. 남겨둔 안주에다 김(용우) 산우가 가져온 구수한 누룽지막걸리를 한 잔씩하고 김 총장은 마지막에 내 놓을려고 했다고 하면서 체력 보강에 좋다고 하며 자그마한 팻트병에 담아온 가시오가피술을 내어 놓는다. 양이 적어 조금씩 한 모금씩 하고서 어제밤 양폭산장에서 읊지 못한 동반시 낭송을 하였다. 김 총장은 그동안 산행기 필자가 시 낭송을 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기회를 주신다. 목청을 한껏 가다듬고 멀리 마등령과 세존봉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김 남 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시를 읽고나니 그 옛날 어둠의 유신시절, 당국의 눈을 피해 산중에서 울분을 토하곤 했던 반체제 인사라도 된 기분이다. 그 시절 같으면 감히 누가 이런 시를 읽겠는가? 시대가 변하여 좋은 산우들과 함께 멋있는 산행을 즐기면서 오기 힘든 설악의 공룡능선을 넘어 읊으니 감회가 새로워 진다.

 

공룡능선이라고 누가 명명했는지?, 정말 이름 하나 잘 붙였다고 할 만큼 산봉우리가 공룡의 등처럼 울퉁불퉁했다. 9시 30분쯤 나한봉을 내려서니 비선대쪽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인지? 백담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인지? 줄지어 무리를 이루며 지나간다. 가까이에 마등령이 보인다. 정말로 말 등어리에 안장을 올려놓은 것처럼 아늑하게 보였다. 저 높은 봉우리를 어떻게 넘나?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행히 그쪽으로는 가질 않고 오세암쪽으로 내려 간단다. 작년 5월 20일, 60회 산행때에 나는 참석을 하지 못 했었지만, 백담사에서 오세암, 마등령을 올라 비선대쪽으로 하산 하였다고 하면서 그 코스도 참 으로 좋았다고 김 총장은 말한다.

 

10시경, 마등령아래의 작년에 점심식사를 하였다는 능선 위에서 잠시 땀을 식히면서 초코파이, 양갱, 초코렛 등을 모두 꺼내어 체력 보강을 하였다. 내가 가져온 말린 자두와 망고를 나누어 먹었다. 시큼 달큼한 것이 피로회복에 좋을 것 같아 가지고 온 것들이다. 또한, 신 이사 사모님이 시골에서 보내온 찹쌀로 어제아침 일찍 밥을 지어 비닐봉지에 넣어 온 찰밥이 허기진 우리들의 배를 채워주어 진가를 발휘하였다. 임 수석과 김 총장은 번갈아 가며 교대로 비닐장갑을 끼고 먹기좋게 주먹밥을 만들어 김에다가 싸서 나누워 먹었다. 6.25전쟁 중에 우리 선배인 군인들도 이렇게 밥을 먹고 조국을 지켰으리라? 지쳐 허기진 배고픔을 달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다리는 뻐근하였지만, 찰밥을 먹고 나니 한결 힘이 생겼다. 마등령 능선 삼거리 갈림길에서 오세암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이젠 내리막 길이다. 가파른 길이지만 한결 걷기가 편하다. 그래도 역시 경사도가 높아 험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모두가 안전 산행을 당부한다. 이 속도로 가면 백담사에 3시까지는 충분히 도착될 것만 같아 김 총장은 우리의 애마 기사에게 몇 번이고 전화를 하였지만, 통화권 이탈지역으로 연락이 되질 않는단다.

 

12시가 다 되어 오세암에 도착했다. 오세암은 동자승에 얽힌 전설이 있고,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에 자리잡은 유명한 암자로 평소에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섭취하지 못한 물을 충분이 마시고 암자에 들려 부처님께 삼배하고 소원도 빌었다. 소원컨대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시길~ 그리고 끝까지 우리 시산회 산우들의 안전 산행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나무관세움보살...

 

오세암을 뒤로하고 영시암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그런대로 평탄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협의한 끝에 당초 백담사 입구 주차장에서 6시에 만나기로 되어있는 우리의 애마를 전화로 연락이 되질 않으니 김 총장은 먼저 하산하여 차를 수배키로 하였다. 김 총장이 내려간 뒤 잠간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행군이다. 그런데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우리의 리더 기 회장님이 내리막길에서 돌을 잘 못 밟아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처음엔 상태가 심각해 매우 걱정이 되었으나, 임 수석의 기민한 대처로 상태가 완화되어 어렵게나마 산행을 계속 할 수가 있었다. 이런 먼 산행엔 임 수석같은 비상대처 능력의 산우들이 절대 필요하다. 한참을 내려오니 백담계곡천이 보인다. 모두들 발이 아픈 모양이다.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싶은지 조그만 개울가에 모두 주저앉는다. 모두들 같은 심정이다. 새벽 3시경에 출발한 산행이 현재 (오후 2시)까지 이어졌으니, 총 11시간을 걸어온 셈이다. 50대 후반인 우리 모두가 대단한 체력이다.

 

나는 별도로 영시암에 들려 참배하고 허기진 마음에 절에서 보시하는 국수를 얻어먹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 우리 일행과 길이 엇갈린 모양이다. 부지런히 뒤따라가니 내가 행방불명됐다고 야단이 났단다. 산행에서는 협동과 질서, 안전과 즐거움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동행한 모든 산우들에게 죄송함을 표한다. 그 때 대단히 미안했네... 죄송하나이다..

 

내려오는 길에 홍천군 소방서에서 운영하는 앰뷸런스를 만나 기 회장에게 승차를 권했으나 괜찮다며 끝까지 걸어서 백담사입구가 얼마 남지않은 국립공원관리소에 도착했다. 이 때가 약 4시경이었다. 먼저 내려간 김 총장이 2시반경에 도착하여 1시간반 동안을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김 총장은 백담사 입구에 도착하여 겨우 운전기사와 통화가 되어 3시반까지 용대리 백담사입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였단다.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장에게 차를 이 곳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부탁하였으나 민원발생의 소지가 있다고 하여 기 회장을 비롯한 지쳐있는 5명의 산우만 관리소 차로 주차장까지 이동하고 나머진 백담사에서 용대리 주차장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만 하였다.

 

이제는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우리만의 생각이고, 그때부터 약 2시간동안 기나긴 기다림의 고행이 계속되었다. 백담사에서 용대리간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으나 등산객들이 하산후 귀경을 위해 한꺼번에 몰려 너무나 많다보니 몇 대 되지않은 버스를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13시간을 산행하고 또 2시간을 그것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속이 터지는 일이다. 게다가 용대리의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등산객을 위해 이렇게 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하니 더욱 기가 찰 일이다.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순번이 되어 셔틀버스를 타고 용대리 주차장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다들 지친 몸을 우리의 애마에 싣고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서는 할 만한 데도 없었지만 하고 싶지가 않아 가는 도중에 인제에서 삽겹살로 하기로 하였다. 자그마한 군사도시인 인제에는 육고기를 운영하는 마땅한 식당이 없어 이곳, 저곳을 헤매이다 찾아 들어선 식당이 아주머니 혼자서 장사하는 백반전문의 협소한 식당이었고, 생삼겹이 아니라 냉동된 삽겹살도 한참을 기다려야만 한단다. 하는 수 없이 미안함을 표하고 물만 마시고 나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하였다. 오늘은 참 힘든 날인가 보다.

 

겨우 겨우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간 곳이 ‘삼호숯불갈비집’(033-461-2769)이다. 20년 전통이란다. 이름에 걸맞게 손님 접대도 잘하는 곳이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소주와 맥주를 섞어 몇 잔 연거푸 들이키니 정신이 알떨떨해 온다. 피곤함이 겹쳐서 그러겠지. 다시는 이곳으로 오지 말자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보았지만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내 경험에 의하면 큰소리 칠 일이 아니다.

 

된장국물에 식사를 마치고 이곳에서 두 번째의 등반시 낭송이 있었다. 이번 산행에 참석이 어렵다고 했었는데,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참석을 하여 마지막 하산길에 발목을 삐어 제일 고생을 한 기 회장님이 낭송을 하였다.

 

“주말 산행” - 방 우 달

 

오늘 하루는 제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제 생각대로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저 산에 들고 나오면

오늘 하루는 제 생각대로 살다가 왔습니다.

 

하늘도 홀로였고

태양도 홀로였습니다.

숲속의 나무도 안아보기 홀로였습니다.

홀로 사는 것만이 제 생각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대로 사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면 저는 족합니다.

해질녘이면 내려가고 싶은

제 생각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 그리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루만 제 생각대로 살면

일주일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동료 길을 가다 만나는 모든 이들을

따뜻한 웃음으로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아 공감이 가는 시이다. 저녁을 잘 먹고 나서는데 그 식당주인 아줌마가 이 고장의 시인이란다. 우리가 시를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는 “시산회”라고 하니 연락처를 묻고 다음 자기들 행사 때 꼭 초청을 하겠단다. 어쩐지 옷차림새도 그렇고 뭔가가 좀 다르더라고? 김 총장의 명함을 남기고서 8시30분경, 버스에 오르니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이젠 푹 자면 된다. 한참을 졸다 깨어보니 11시가 다 되었고, 기 회장과 김 총장이 하차하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행복했던 우리의 1박2일의 산행은 그렇게 저물어 갔었다... - 임 삼 환 씀. -

 

성의있게 쓴 글이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본대로 느낀대로 진솔하게 써 내려간 담백한 글이다.

도움쇠는 코스를 기획해놓고 정작 본인은 가지 못했다. 젊은 날에 가본 코스이지만 그때는 넘기 바빠 구경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작정하고 가려했으나 긴박하고 불편한 일이 발생해 산우들과 함께 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미안하고 민망한 일이다. 기 회장님은 도움쇠는 설악산을 오를 때는 꼭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니 서운한 일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총장도 같은 심정이란다. 젊었을 적에 하도 많이 다녀 산이 닳아질까봐 산실령이 못오게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못 가는 마음에 위윤환, 박형채, 이경식 산우에게 전화를 걸어 저번 오색에서 대청봉을 올라 한계령으로 내려올 때처럼 선두와 끝이 차이가 나지 않도록 부탁을 하였다. 특히 허리가 부실해 하산 속도가 느린 기 회장님을 꼭 챙기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힘든 코스지만 함께 나누면 가벼워진다는 것을 알기에 당부를 했고 훌륭한 팀웤을 이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한다. 훌륭한 시산회다. 따뜻한 우정과 존경심을 담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설악산 코스 중 가보지 못한 십이선녀탕 계곡-안산-대승령-장수대, 백담사-오세암-가야동 계곡-봉정암-대청봉, 백담사-영시암-구곡담 계곡, 대승령에서 귀떼기청봉-끝청-주철-대청의 서북주릉, 점봉산, 흘림골 코스 등이 아직 남았다. 화채능선은 젊은 날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했다. 도움쇠는 설악의 코스 중 유일하게 가보지 못했는데 아직도 휴식년제가 풀리지 않아 가지 못하지만 50만원의 과태료를 내고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이제는 천불동과 공룡능선을 넘었으니 더 이상 어려운 코스는 없다. 공룡능선을 넘지 않고는 설악에 올랐다고 하지 않는다 했다. 올해는 지리산종주도 하고 공룡능선도 넘었으니 속도조절을 하자는 게 회원들의 의견이라니 년말까지는 근교의 산만 가자.

 

이번 산행은 86회산행 때 칼바위를 지나 대동문에서 진달래능선으로 내려왔지만 이번에는 단풍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것 같은 소귀천계곡으로 내려온다. 대동문에서 용암문까지 가서 도선사에서 절밥을 먹든지 소귀천 계곡으로 내려와서 수유동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자는 김 총장의 의견이다.

대동문에서 동반시를 읊으면서 산우들이 결정하면 된다.

 

 

동반시에 대한 시평과 시론이 실려있어 도움쇠의 말은 생략한다.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 실린 정희성 시인(63)의 얼굴을 바라본다.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단호함과 함께 신중한 결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다른 시집《詩를 찾아서》와 《돌아다보면 문득》에 실린 사진들도 차례로 바라본다. 그대로 부드럽고 편안하다. 이제는 노경이라고 해도 실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 실린 시들도 그 사진의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래의 시는 젊은 시절 이른바 '가파른 시대'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詩를 찾아서》의 후기에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1970년 이후 20년 간은 가파른 시대였다(…) 유신에 반대하던 나의 벗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힌 바 되었다. 마침내 나는 고전적인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현실적인 시인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라고 '겨울'의 사랑을 노래한다. 그 사랑은 사랑 자체의 온도를 노래하지 못한다. '하나의 꿈'을 향한 사랑이고 그 사랑은 일종의 동지적 관계처럼도 보인다. 그래서 더 쓸쓸하다.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노래해도 늘 시대의 고뇌를 동반해야 했던 비극이 가난한 시절의 옷가지들처럼 쓸쓸하게 비치는 것이다. 사랑의 뜨거운 온도 대신 깊게 가라앉은 '희망'을 어렵사리 불러내야 하는 힘겨운 주인공들을 바라보라. 파김치가 되어 힘겹게 만남을 이어가는 가난한 젊은 연인의 모습이 떠올라 안쓰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내면에는 서로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비단'을 만들어보자 하는 꿈이 꿈틀대고 있으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 생존의 에너지인가.

시인은 그 시대를 벗어난 어느 날 문득 봄이 오려는 기미를 이렇게 노래한다. '이제 내 시에 쓰인/ 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 시대 상황을 연상치 마라/(…)/ 나는 사랑을 시작했네/ 저 산에도 봄이 오려는지/아아, 수런대는 소리' (〈봄 소식〉). 그 봄이 온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사랑을 시작했다'는 것. 이제 겨울이 가고, 아니 겨울을 이기고 봄이 오는 순리처럼 시대를 벗어난 순연한 사랑을 시작했다는 고백이 두 편의 시의 간격을 메우며 환희롭다.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끝없이 저잣거리를 걷고 있을 우바이/ 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시를 찾아서〉)고 잔잔한 사랑의 물결 속을 걷는 사람을 그는 노래한다. 어느 자리에선가 조용히 어린아이처럼 걱정에 가득 찬 표정으로 노모를, 또 가정사의 사소한 걱정을 아주 아주 진지하게 털어놓던 순수한 음성도 생각난다.

-(시평: 장석남 한양여대 교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거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2008. 10. 29

 

詩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모임 詩山會 도움쇠 金 定 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