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큰 특징은 무아(無我)를 표방하는 데 있다. 무아란 욕망이나 행위의 주체로서 ‘나’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실체적으로 없다는 말이다. ‘나’라고 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무아사상은 붓다의 깊은 수행체험에 근거한 위대한 가르침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무아사상은 현대사회의 부패구조나 인간소외 등의 사회적 문제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이처럼 ‘나’라는 생각이나 관념을 제거해주는 붓다의 가르침을 5온설이라 한다. 5온설은 일반적으로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등의 5가지 모임을 일컫는다. 여기서 ‘색’이란 육체를 포함한 물질현상, ‘수’란 고통이나 괴로움 등의 느낌, ‘상’이란 개념작용, ‘행’이란 의지작용이나 심리현상들, ‘식’은 분별이나 판단을 의미한다. 5온은 이러한 연기적 현상들의 흐름일 뿐으로 그것을 임시적으로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다.
초기경전의 기술들을 살펴보면, 오온은 비유적으로 각각의 구성요소가 물거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환영과 같아 실체가 없다는 식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결국 오온설의 핵심은 바로 고정불변하는 실체적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적 자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아란 단지 고정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다섯 요소들의 임시적 모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이나 그 연기적 통찰이 바로 오온무아설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이다.
요컨대 오온무아설이 천명하고 있는 것은 자아란 관념일 뿐이고 집착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의 근원을 밝혀주는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오온무아설이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 즉 이 순간, 살아 숨쉬고, 생명이 존속하는 한 존재하며, 만져지고 느껴지는 현상적인 자아마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은 현재 이 순간에 지혜롭고 여유롭게 자신을 관조하여, 올바른 삶과 행복을 영위할 수 있는 안목과 지적 통찰을 제시한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서도 갈수록 정신적으로 각박해지고 나약해지는 것은 자아에 대한 이러한 깊은 통찰이나 타자를 함께 배려하는 상생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은 개인과 타자, 개인과 사회, 종교와 종교 간,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등 현대사회 전반에 만연하는 갈등양상이나 문제들을 비추어보고 성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점에서 현대적으로 심도 있게 새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치상 그러할 뿐,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 집산하는 정치사회나 욕망이 지배하는 우리 인간사회 내부의 부조리한 현실은 단순한 종교적․사상적 구호 등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불교의 무아사상 등으로 우리 사회를 좀 더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어 보자는 주장은 자칫 구두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불자라면 더 아름답고 복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기적 차원에서 각자 자신이 먼저 지혜롭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벗어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라는 물음이나, 최근에는 진화론적 유전학까지 가세하여 인간의 유전자는 본래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라는 논쟁들은 공동체적 삶에 대한 여러 성찰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문제를 간과하거나, 인간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나 사회적 부조리들을 환원주의적 결정론의 관점에서 설명하거나 해결하려고 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결국 초기불교의 무아사상은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려니와 사회적 차원에서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 올리고, 공동체의 사회적 소통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시대적 화두로 절실히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