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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삼천사계곡으로 오릅니다(詩山會 제366회 산행)

북한산 삼천사계곡으로 오릅니다(詩山會 제366회 산행)

일시: 2019. 8. 10. 토(土), 즉 흙요일

장소: 구파발역 2번 출구

기자: 이원무 자천

준비물: 알아서

 

1.시가 있는 산행

동동(動動)
- 고려시대 노래


정월 냇물은
아아, 얼고 녹고 하는데
누리 가운데 나고는
몸이여 홀로 가누나

이월 보름에
아아, 높이 켠 등불 같아라
만인을 비추실 모습이로다

(…)

십일월 봉당 자리에
아아, 홑적삼 덮고 누웠네
서러워라
고운 임 여의고 살아감이여

십이월 분디나무로 깎은
아아, 차려 올릴 소반의 젓가락 같아라
님 앞에 들어 올리니
손님이 가져다 입에 무옵니다

 


옛 민요는 허술한 듯 인생의 비의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담는다. 다시 읽는 이 고려 노래는 삶과 사랑의 깊은 이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천지간에 태어나 이 몸 홀로 외로이 가는구나’의 1월이며, ‘님 앞에 올렸건만 남이 가져다 무는’ 젓가락 신세에 자신을 비긴 12월의 가사는 쓰디쓰고 처연하다. 더구나 이런 노랫말들이 ‘덕은 뒷잔에 받고 복은 앞잔에 받으소서’의 덕담을 앞세워 불렸던 것이 더 아찔하다. 고려 궁중에서 교방기생들에 의해 춤노래로 공연되다가 조선 초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전하는 달거리체 노랫말로, 오랜 토착 민요에 뿌리를 둔 것이다. 100년 몽골 지배에 시달린 고려시대 민초들의 애환과 슬픈 지혜가 이 노래 속에 스며 있지 않겠는가. 실은 온 나라가 찬 ‘봉당자리에 홑적삼 덮고 누웠’는 처지다. 아으 동동다리.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산행기

시산회 제365회 문화행사 후기<2019년 7월 28일(일)>/이승렬

◈ 월일/집결 : 2019년 7월 28일(일)/4호선 충무로역 1번 출구(10:30)

◈ 코스 : 충무로역 – 대한극장 – 옥수역(뒤풀이장소)

◈ 참석 :18명(갑무, 삼모, 종화, 진오, 양주, 창수, 형채, 재홍, 윤환, 경식, 승렬, 윤상, 용복, 문형, 양기, 천옥, 황표, 뒤풀이 동준)

◈ 동반시 : 홀로 웃노라 獨笑 / 다산 정약용

◈ 뒤풀이 : 해물 찜과 주꾸미에 맥주와 막걸리/옥수 해물 찜․칼국수(2292-3335), 쭈소반(2291-9663)

 

비구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마의 끝자락에, 어제부터 오늘산행이 걱정되어 스마트폰 일기예보 앱을 자주 들여다보았지만 비올 확률이 낮아지는 기미가 없던 차에, 아침 8시가 넘어 갑무 총장의 문화행사(영화관람)로 급전환 통보를 받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눈앞에서 걷히는 느낌이다. 산행기자로 일찌감치 지명되어 오늘을 기다리면서 약간 부담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9시 30분에 집을 나서 신이문역에 도착하여 곧 들어서는 서동탄행 전철에 몸을 싣고,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었다. 오늘 동반시 다산 정약용의 <홀로 웃노라>를 정남친구가 보내온 카톡에서 찾아 스크린 샷으로 읽기 쉽게 저장해 놓고, 전철 안을 둘러보니 비오는 일요일 아침이라 우산을 지참하고 어디들 가는지 한산하지만 느린 모습의 경직된 사람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스마트폰을 마주하고들 있다.

 

10시 04분 충무로역 1번 출구에 와 보니 친구들은 아직 보이지 않고 일군의 어르신들이 등산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모여 있었는데, <벽진 산악회>라는 깃발이 배낭에 달려있었다. 일행이 다 모였는지 출발하는데 친구들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갑무 총장과 윤상이 내가 다른 곳을 보는 사이 출구를 통과해 핸드폰으로 나를 찾는다. 1번 출구 대한극장 연결통로 입구에서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 인사하고 조금 기다리자 오늘 오기로 한 친구들이 속속 개찰구를 빠져나와 우리 앞에 오른손을 내밀며 다가선다. 10시 32분에 15명이 모였고, 문형이만 미도착이다.

 

먼저 온 12명의 신분증을 모아 총장이 경로우대 표를 구해 오자, 나머지 11명은 표를 가진 윤상 군을 따라 극장 안 승강기 앞으로 나란히 걸어간다. 7층 11관으로 올라가 10시 50분에 시작하는 영화 <나랏말ᄊᆞ미> 관람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영화 시작 1분전에 문형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오는 길에 전철을 반대편 방향으로 탑승하여 늦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이에 이제 가끔은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까?

 

영화 <나랏말싸미>는 지난 7월 24일 개봉하여 조철현 감독에 송강호(세종), 박해일(신미스님), 고 전미선(소헌왕후)배우가 주연을 맡아 세종대왕 재위 마지막 8년간 훈민정음 창제과정의 뒷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기도하는 문제작이다. 역사를 잘 모르는 우리가 보기에도 스님들이 한글창제의 주역이었다는 스토리는 익숙하지 않는 구도이나, 산스크리트어나 티베트어의 소리문자와 팔만대장경 등에서 아이디어를 채용했다는 점은 그럴듯하였다. 영화 내용 가운데 고 전미선 배우가 연기한 세종대왕 비인 소헌왕후가 세상을 일직 떠나고, 그를 위해 사대문 안에 절집을 짓고 천도제를 거행하는 등의 이야기는 전미선 배우를 추모하는 영화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첫 장면에서 송강호(세종)가 기우제를 드리자 하늘이 어두워지며 비가 내리는 이미지는 장마를 마무리하는 오늘 아침 날씨와 오버랩 되면서 오늘에 꼭 맞는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12시 40분에 영화 관람을 마치고 3호선을 이용 옥수역으로 이동하여, 뒤풀이 장소인 <옥수 해물 찜․ 칼국수> 식당으로 향하였다. 옥수역 4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를 내리는 곳에서 기다리던 동준 친구를 반갑게 만나 인사하고,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 어울림 상가 2층에 있는 해물식당으로 올라갔다.

 

오후 1시가 넘은 시간에 옥수 해물 찜 식당은 사람들로 넘쳐났으며, 입구에는 대기자들도 여럿 있었다. 우린 미리 예약을 한 덕에 12명이 바로 자리를 잡고 해물 찜(大) 3개와 막걸리 맥주 등을 주문하였다. 나머지 6명은 미리 자리를 잡지 못해 1층에 있는 주꾸미 식당으로 옮겨 총장 주재 하에 별도의 뒤풀이를 가졌다.

 

식당분위기가 소란하여 동반시 낭송은 찻집에 가서 하자고 몇몇 친구들이 제안하였으나, 천옥친구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어야 하니 지금 여기서 읽어야 한다는 한마디에, 바로 일어나 정약용의 <홀로 웃노라>를 조금은 안타깝게(?) 그리고 주변이 소란스러워 큰소리로 읊었다.

 

홀로 웃노라 獨笑 / 정약용

 

먹을 사람 적은 집에는 곡식이 많고

자식 많은 집안은 꼭 주릴 근심 있다네

높은 벼슬 하려면 어수룩해야 하건만

진짜 재주꾼은 써 먹을 데 없다네

모든 복을 두루 갖춘 집안은 적고

극도의 높은 도리는 언제나 쇠퇴하지

아비가 인색하면 자식은 방탕하기 마련

아내가 지혜로우면 사내는 꼭 어리석지

만월 때가 되면 구름이 자주 끼고

꽃이 피면 바람이 휘저어 놓네

세상만사가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웃노라

 

해물 찜은 푸짐하여 2개만 시켜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거의 모두 동의하였다. 하지만 온 김에 칼국수와 팥죽 맛도 보아야 한다는 김*모 친구의 제안에 1인분씩 주문하여 칼국수 맛을 조금씩 시식해 본 결과 국물과 면 모두 훌륭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오후 2시 48분 경 식당을 나와 옥수역 4번 출구 앞에서 일부 작별하고, 2층으로 올라가 3호선을 타는데 강북과 강남 방향으로 나누어지면서 다시 마지막 헤어짐 인사를 하며 각자 집으로 향하였다. 장맛비로 인하여 구름산 산행을 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친구들의 얼굴에는 그다지 섭섭한 표정보다는 평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으리라 본다. 친구들, 오늘 산행대신 영화감상 하느라 수고(?) 많으셨다! 안녕!

2019년 7월 29일 이승렬 씀.

 

3.오르는 산

삼천사계곡은 장마와 겹쳐 물이 풍부할 것이다. 한때 임 수석이 좋아한 곳이다. 어느 곳이든 계곡과 물은 상호보완의 관계가 아니고, 도반이나 시산회마냥 함께 가는 친구를 닮아야 한다. 전 산행 때 견산도 아니고 영상과 뒤풀이만으로 만족한 느낌이 들었다니 내 심경 중 안개 속 한 모퉁이를 닮았다. 이번에는 비 소식이 없고 폭염이라니 탁족과 고담준론이 짝을 이룰 것을 기대하여 나도 가고 싶다. 나이가 드니 자신의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니 남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대체로 불필요하나 관심을 갖더라도 낮고 좋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좋은 언어에는 지나치지 않는 해학과 농담, 유머, 비틀기 등이 있다 할 것이다. 목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 하산 뒤 2개월을 채워 27개의 침을 꽂고 뜸과 부황, 강한 약 등 매일 강한 치료를 받았으나 혹시는 역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여 다시 입산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것이 인간의 유전자적 인식작용이라 망설여지는 점이 없지 않다. 나이 들어 쓸쓸해 할 마나님의 눈총과 반대를 어이 할꼬. 그래도 나올 때는 어쭙잖은 책이라도 한 권 가지고 내려와야겠다. 그것이 현재 내 여명의 목표이고 삶의 연장의 방편이지만 목적은 아니므로 즐기는 놀이다. 한여름의 복판이다. 부디 조심해서 잘들 다녀오시라. 참고로 <나랏말싸미>에서 훈민정음의 아래아(ㆍ)는 이 버젼에서는 적응이 안 되지만 한글2010에서는 ㅏ를 두 번 연타하면 된다. 승렬 산우는 기억하시게.

 

4.동반시

이 좋은 시를 오늘의 기자께서 추천해주시니 不敢請固所願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평소 경구나 한자숙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를 무더운 한낮에 춤추게 만든다. 감사드린다. 이 시를 읊을 때는 시인만큼 고운 이름을 가진 달콤한 바람이 동지섣달 임 마중 나오 듯 버선발로 두 팔 벌려 뛰어올 것이다.

 

사랑법/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2019. 8. 9. 도봉 생일의 다음 날에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임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