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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묵조선. 선

간화선 묵조선

간화선 묵조선

 

간화선(看話禪)의 화란 화두의 준말로서 화두를 근거로 공부하는 선품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화두는 공안(空案)을 말하고, 간은 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간화선은 고인의 공안을 간하는 참선법이며, 묵조선이라는 편을 받은 조도(曹洞)의 선풍에 대한 임제의 선풍을 일컫는 말이다.

인도불교가 중국불교로 이어지면서 수행체계에도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인데 이는 하나의 문제를 깊이 참구하여 그것이 본래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는 간화선으로의 전개인 것이다. 이 수행법은 공안이나 화두를 통해서 수행자로 하여금 큰 의심을 일으키게 하고 스스로 그 의심을 해결하여 깨닫게 하는 수행법이다. 인도불교의 선정법은 4성제, 8정도, 12연기 등의 교리의 의미를 수행자가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데 반해, 중국의 선종에서는 언어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근본 내용의 정확한 의미를 곧바로 찾아서 확인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참선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여 경전의 가르침에 메이지 않고 그 밖에 길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달마대사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로 삼아 6조 혜능대사에 이르기까지 선종은 중국에서 번창하였다. 초조 달마스님과 2조 혜가스님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 찾아 온 혜가스님에게 달마스님은 ‘아픈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치료해 주겠다’고 일갈했고, 특히 선종에서는 극단적인 모순으로 보이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임제의현(?~866)의 임제종은 청원계통의 조동종(묵조선을 주장함)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고, 중국을 대표하는 선종이기도 하다.

임제라고 하는 말은 그 종파의 조사인 의현이 말년에 하북의 작은 사원에 머물며 거쳐했던 사실로부터 생긴 것이다. 회창의 폐불사건 이후 위산과 같은 시기에 배휴의 귀의에 의해서 다시 부흥한 강서의 황벽희운의 불교를 계승한 것이다.

의현은 조주 남화사람이다. 임제의 설법에는 인습화된 켸켸묵은 가치에 대한 투철한 비판의 입장이 전제된다. 신비적인 소망과 결합된 형식적인 좌선이 철저하게 물리쳐진다. 그는 육도만행을 모두 지옷을 짓는 업이라고까지 잘라 말하면서, 자신의 설법조차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냉담하게 뿌리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불법을 배우는 자의 최초의 터득이라고 하는 진정한 견해는, 그의 불교의 심오한 뜻이기도 하다. 그가 경계하고 있는 자신불급(自信不及)이라는 말은 진정한 견해를 빠뜨린 사람의 일이다. 스스로의 믿음이라는 것은 현재의 생활 그 자체를 총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현재의 자기 위에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원만하게 두루 부여되어 있는 평등한 능력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자유로이 작동시킬 수 없는 것은 모두 그릇된 지도자나 켸켸묵은 전통의 인습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법을 배우는 자는 먼저 그러한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을 단호히 물리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임제의 선풍은 마조가 주장했던 평상심의 계승이며, 그가 황벽의 슬하에서 터득한 간명직절한 순일한 불법의 최고의 단계이다. 또한 간화선은 우리 나라에서 화두를 들고 좌선하는 것이다.

임제대사에 이르기까지의 선의 수행법은 공안을 제자에게 직접 주어서 공부시키지는 않았다. 제자가 의문나는 점을 물어오면 그에 대해 일러줄 따름이었다. 선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여 고요히 묵묵히 앉아서 모든 생각을 끊고 좌선을 하는 것으로 화두를 갖지 않고 하는 선을 묵조선(默照禪)이라 한다. 그러나 임제종의 대혜선사가 묵조좌선의 폐해를 주장하기도 한다

[출처] 간화선 묵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