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 영가스님의 이 말씀은 <영가집>이라는 책의 몸과 말과 생각의 업[三業]을 경계하는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영가스님은 혜능스님의 제자로서 우리나라 선불교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앞에서 소개하였던 <영가 증도가>와 여기에서 인용한 <영가집>이란 책이 우리나라에 일찍이 전래되어 널리 읽혔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업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부처님의 업이나 보살의 업을 논하지 않고 대개가 중생들의 미혹 때문에 짓는 악업을 말하게 된다. <영가집>에서는 중생들은 왜 악업을 짓게 되는가를 살펴본 내용이다.
악업은 모든 사람들이 이 몸뚱이가 허망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의 것으로 있어주는 지극히 사랑스러운 것이라고 착각하는 데서부터 짓게 된다.
이 몸을 허망한 것이며 공한 것이며 물거품과 같은 것이며 아지랑이와 같은 것으로 관찰하는 지혜가 있다면 굳이 그렇게 불필요한 악업을 짓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꿈을 깨고 나면 꿈속에서 있던 내가 없는데 달리 무슨 업을 짓겠는가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분이 아니며, 인연도 아니며, 능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등바등 부귀공명을 위해서 부당하게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이 허망한 몸뚱이가 꿈이 아니고 실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상당한 기간 동안 있어 주리라는 본능적인 데서부터 오는 깊은 믿음 때문이다.
예컨대 따뜻한 봄날에 어쩌다가 날씨가 추워져서 눈이 많이 내렸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눈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계속 녹아내리고 있는 경우와 꼭 같다. 설사 추운 한겨울에 내린 눈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가겠는가?
모든 것을 인연에 맡기고 자연에 맡기고 자신의 분에 맡겨서 순리대로만 산다면, 그렇게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며, 남을 억울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들은 일체가 인연으로 생기고 소멸한다. 즉 인연소기(因緣所起)다. 그 사실이 비록 고정된 실체는 없다하더라도 고통을 받는 것은 악업을 지음으로 일어난 일이다. 복을 누리는 것은 선업을 지음으로 오는 결과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이처럼 육신의 진실한 모습은 텅 비어 없듯이 부처라는 것도 종내에는 텅 비어 없는 것으로 관찰하는 일이 모든 존재의 실상을 바르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영가집>은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