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과 시, 사랑에서 행복을 찾다

어쩌다 나는 / 류근

어쩌다 나는 / 류근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 씻으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가득찬 목숨 안에서 당신하나 여의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건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 버리고 싶은건가

 

아름다워서, 슬퍼서, 외로워서, 부끄러워서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 낮밤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는 시인. 통속적인 삶에 대해 회의하게 하는 이런 물음들에서 우리는 다시 근원적인 의문의 자리로 돌아가 시인이 탐색하는 감성의 바다로 함께 뛰어들기도 합니다.

유쾌하고 쾌활한 중에도 눈물이 나고 깊은 바람결에도 앞섶은 젖어있는 이 많은 슬픔 안에 그 이름을 씻고,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여의며 사는 이러한 삶이 시인이 궁구해야할 몫이 아닐는지요. 어떤 이유나 물리적인 조건을 모두 떠나서 어쩌다 좋아지는 이런 순진무구야말로 끓어 넘치고 넘쳐서 세상을 적시고 명료하게 살아서 생활 속에 맺히는 한 방울 청량제로 매김하는, 어쩌다 당신은 당신에 의한 당신을 위한 그 시를 벗어날 것인가, 하고.

-박정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