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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이야기

석가모니 당시 세속주의자들 철학

석가모니 당시 세속주의자들 철학

 

종교와 철학

 

〈사문과경(沙門果經)〉에는 석가모니와 아사세(阿?世) 왕의 대화가 그려진다. 여기서 아사세 왕은 석가모니 이전에 만났던 여러 철학자들을 짧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육사외도(六師外道)들의 면모가 여기에 등장한다. 그 가운데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라고 하는 특이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곧 아지따 께샤깜발라(Ajita Keakambala)가 그이다. 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아마도 머리카락(kea)를 길게 길러 담요(kambala)처럼 몸을 휘감고 다녔던 사상가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의 별칭일 뿐이다. 그가 출가사문과 같은 고행자였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의 철학을 흔히 유물론자의 선구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로 흩어질 뿐이며 인간의 감각이 다 공(空)으로 돌아가며 영혼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아사세 왕은 이 현자를 찾아가 이 세상을 살면서 수행을 하면 현세에 그 과보를 얻게 되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께샤깜발라는 그러한 아사세 왕의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는다. 즉, 그런 수행의 결과 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마도 아사세 왕은 자신의 부친 빔비사라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에 종교적 수행이나 참회를 하기 위해 현자들을 찾아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아사세 왕이 찾아간 많은 철학자들은 그의 의중에 완전히 다른 대답을 제시한다.

 

〈사문과경〉의 의도에 따라 께샤깜발라의 대답은 아사세 왕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한 것으로 그려진다. 수행의 업보가 존재하는지를 물었는데, 인간의 존재는 죽으면 4대 원소로 소멸할 뿐이며, 죽으면 한 줌의 재로 돌아갈 뿐이라고 답했던 것이다. 〈사문과경〉의 의도는 육사외도의 철학을 정확히 전달하기보다는, 그들의 관점을 불교의 가르침과 대비시키기 위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사세 왕이 만났던 다른 외도들도 아사세 왕의 질문에 전혀 엉뚱한 답을 주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께샤깜발라와 동일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 즉, 이 철학자들은 아사세 왕의 종교적 관심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철학적인 관점만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윤리적으로 동일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데, 윤회나 업보 등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사외도 가운데 자이나교를 제외하면, 이들은 종교인들이라기보다는 철학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관점은, 불교가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윤회나 업 같은 인도 종교들의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거부한 합리적 사유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께샤깜발라는 그러한 철학적 사유의 시발점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내생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께샤깜발라의 관점을 단멸론(斷滅論)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의 삶은 현재의 일회적인 삶으로 마감하는 것이며, 죽으면 다 원자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매우 경험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인도 사상사 속에서 철학과 과학의 출발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인물이 석가모니 당시에 다시 등장한다. 그가 바로 빠야시(Pysi)이다. 빠야시는 불교경전과 자이나경전 속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인물로 태수 혹은 왕으로 묘사된다. 양측의 경전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빠야시는 종교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구분하려는 관점(자이나교)이나 윤회와 업보의 관념(불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인물들의 등장은 석가모니 당대에 이미 업과 윤회와 같은 관념들을 조직화한 신흥종교들이 등장하는 한편, 이와는 정반대인 세속주의 철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이들은 흔히 ‘로까야따’(Lokyata)의 선구자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보통 ‘유물론’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상당히 부절적한 번역이라 생각된다. 차라리 이들을 ‘아다르미까(adharmika)’ 즉 비종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한 것이다. 이 말이 만일 도덕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함축할 가능성이 있다면, ‘세속주의자’라는 말이 훨씬 잘 어울릴 것이다.

[출처] 석가모니 당시 세속주의자들 철학|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