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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신유학파新儒學派

신유학파

新儒學派

당대 신유가, 當代新儒家, 현대 신유가, 現代新儒家

 

 

당대 신유가(當代新儒家) 또는 현대 신유가(現代新儒家)라고도 불리며, 또 다른 명칭으로는 제3기 유학이라고도 일컬어지기도 한다.

 

제3기 유학이라고 하는 입장은 특히 20세기 후반기를 지나면서 ‘유교 문화권’으로 간주되는 동아시아의 공업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최근에 와서 부각되기 시작한 유학 발전의 전망 문제에 대한 사조(思潮)라고 할 수 있는데, 주로 홍콩 · 대만이나 미국 등지에 거주하는 중국학자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들은 유학의 발전을 세 시기로 구분하여 제1기는 선진(先秦)-진한(秦漢) 시대의 발전에서 불교의 도전에 의해 위축된 당대(唐代)까지이고, 제2기는 송대(宋代) · 명대(明代)로서 불교의 도전에 창조적으로 대응한 시기이며, 제3기가 바로 현대의 시기로서 현대화에 적응이 가능한 유교적 윤리의 창출이 가능하거나, 또는 유교가 현대화와 병행할 수 있고 서구와는 다른 유형의 공업사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에 서 있다.

 

이러한 사상은 1958년 홍콩의 『민주평론(民主評論)』에 머우쭝산(牟宗三)과 쉬푸콴(徐復觀), 장쥔마이(張君勱), 탕쥔이(唐君毅) 등의 명의로 발표된 「중국 문화를 위하여 세계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알리는 선언(爲中國文化敬告世界人士宣言)」에서 가장 먼저 집약되어 표현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신유학파, 즉 현대 신유가보다 광범위한 본격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1980년대 이후였으며, 실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이에 활발한 관련 연구와 자료의 출판이 이루어지면서 신유학파는 크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와 대륙의 학계에서 유교가 근대화의 장애물이 아니라 근대화를 유인(誘引)하는 것으로서, 그리고 근대화에 동반하는 서구의 개인주의나 도덕적 붕괴에 대응할 수 대안(代案)으로서 평가하는 사상적 흐름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종전의 신유학파에 대한 평가와는 크게 달라진 점이기도 하다.

 

1982년 10월 타이완(대만)의 『중국논단(中國論壇)』 잡지는 ‘당대신유가와 중국의 근대화[‘現代化’]’라는 제목의 좌담회를 개최하고 그에 관한 특집호를 발간하였는데, 거기서 다루어진 신유학파의 사상가, 즉 ‘신유가’로 슝스리(熊十力), 량수밍(梁漱溟), 장쥔마이(張君勱), 탕쥔이(唐君毅), 쉬푸콴(徐復觀), 머우쭝산(牟宗三), 첸무(錢穆)를 들었다.

 

슝스리(熊十力)는 호북(湖北) 황강인(黃岡人)으로 남경지나내학원(南京支那內學院)에서 불학을 연구한 뒤 유학으로 복귀하여 독자적인 신유식철학(新唯識哲學)의 체계를 세웠고, 북경대학에서 유식학을 강의하면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철학적인 면에서는 유 · 불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유식학설을 제기하면서 철학의 임무는 본체의 추구임을 지적하고, 본체는 결코 현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체용(體用)의 상반상성(相反相成)을 주장하고, ‘반구본심(返求本心)’을 강조하였다. 『신유식론(新唯識論)』, 『십력어요(十力語要)』, 『체용론(體用論)』, 『명심론(明心論)』, 『건곤연(乾坤衍)』, 『원유(原儒)』 등의 저서가 있으며, 최근 『웅십력전집(熊十力全集)』도 출간되었다.

 

량수밍(梁漱溟)은 광서(廣西) 계림(桂林) 출신으로, 불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북경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하기도 하였으나, 1924년 사직하고 산동으로 가서 향촌건설운동에 참가하였다. 1922년 발표한 『동서문화급기철학(東西文化及其哲學)』은 그의 대표작이다. 항일전쟁 시기에는 중국민주정단동맹(中國民主政團同盟)을 발기하는 데 참가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초기에 마오쩌둥(毛澤東)의 비판을 받고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으나, 1980년대에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동서문화급기철학』, 『향촌건설론문집(鄕村建設論文集)』, 『인심여인생(人心與人生)』, 『중국문화요의(中國文化要義)』 등의 저서가 있으며, 최근 출간된 『양수명전집(梁漱溟全集)』 8책이 가장 완비된 저작집이다.

 

장쥔마이(張君勱)는 상해 보산(寶山) 출신으로, 이름은 가삼(嘉森)이며 군매(君勱)는 그의 자(字)이다. 일본 유학을 거치고 1916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후 상해 『시사신보(時事新報)』 총편 등을 지냈으며, 오랫동안 철학 연구와 교육에 종사하였다. 1933년 장둥쑨(張東蓀)과 함께 국가사회당을 조직하였고, 항일전쟁 시기에는 중국민주동맹에도 참가하였다. 1946년 민주당과 합병하여 중국민주사회당을 조직하여 그 주석이 되었으나, 1949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탕쥔이(唐君毅)는 사천(四川) 의빈(宜賓) 출신의 철학자로, 남경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사천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항일전쟁 초기에는 『이상여문화(理想與文化)』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하였다. 1950년대 이후에는 홍콩을 주무대로 활동하면서 신아서원(新亞書院), 홍콩중문대학(香港中文大學)을 창건하였다. 『도덕자아지건립(道德自我之建立)』, 『공자여인격세계(孔子與人格世界)』, 『심물여인생(心物與人生)』, 『철학개론(哲學槪論)』 등의 저서가 있다.

 

쉬푸콴(徐復觀)은 호북(湖北) 희수(浠水)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로, 1923년 호북성립국학관(湖北省立國學館)을 졸업, 1928년 일본에 유학하였으나, 1931년 귀국 후 국민당 장교로 복무하다가 1945년 육군 소장으로 퇴역하였다. 1943년 만난 슝스리(熊十力)의 영향으로 학술연구로 전향하여 중국문화 연구에 종사하게 된다. 1949년 이후에는 홍콩 · 대만에서 교학활동을 하면서 『민주평론』(1949~1966)을 창간하여 신유가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게 되었다. 저서에 『중국인성론사 선진편(中國人性論史 先秦篇)』, 『중국예술정신(中國藝術精神)』, 『중국경학사적기초(中國經學史的基礎)』, 『양한사상사(兩漢思想史)』 3권, 『중국사상사논집(中國思想史論集)』 및 『중국사상사논집속편(中國思想史論集續編)』 등이 있다.

 

머우쭝산(牟宗三)은 산동(山東) 출신으로, 1933년 북경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후 여러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49년 이후에는 홍콩과 대만에서 철학교육과 저술에 종사하였다. 『도덕적이상주의(道德的理想主義)』, 『정도여치도(政道與治道)』, 『역사철학(歷史哲學)』, 『중국철학특질(中國哲學特質)』, 『심체여성체(心體與性體)』, 『생명적학문(生命的學問)』 등의 저서가 있다.

 

첸무(錢穆)는 강소(江蘇) 무석(無錫) 출신의 역사학자로, 1930년 『유향유흠부자연보(劉向劉歆父子年譜)』를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뒤 북경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이후에는 홍콩신아서원(香港新亞書院), 대만의 중앙연구원 등에서 활약하였다. 모두 80여 편의 저작을 남겼는데, 『국사대강(國史大綱)』, 『중국근삼백년학술사(中國近三百年學術史)』 등의 저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는 제외되었지만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에 남아서 활동하였던 펑유란(馮友蘭)도 사실상 신유가의 한 중진으로서 평가되기도 한다.

 

펑유란은 하남(河南) 당하(唐河) 출신으로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저명한 중국철학자이자 철학사가, 신이학(新理學) 체계의 설립자로, 1918년 북경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30년대 초에 출간한 2권의 『중국철학사』로 명성을 확립하였다. 1940년대에는 『신이학』 등의 저서를 통해 독자적인 신이학 체계의 수립을 지향하였다. 『중국철학사』, 『신이학』 등 외에도 사거 직전인 1980년대에는 『중국철학사신편』 6권 및 『중국현대철학사』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의 저작집은 『삼송당전집(三松堂全集)』으로 출간되었다.

 

여기서 이들 각자의 사상에 대해 상세히 소개할 여유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이들을 통해서 신유가의 특성을 규정한다면, 신해혁명과 5 · 4운동 이래 20세기 중국적 현실과 학술의 토양 위에서 공자 · 맹자와 주자학과 양명학의 계승과 발전을 강조하고, 이들의 사상을 중국철학 또는 중국사상의 근본정신으로 생각하며, 아울러 이것을 주체로 삼아 서양의 근대사상[이를테면 ‘민주주의’나 ‘과학’]과 서양철학[이를테면 베르그송 · 러셀 · 칸트 · 화이트헤드 등]을 흡수 · 접수 · 개조함으로써 당대 중국의 사회 · 정치 · 문화 등 방면에서의 현실적인 출로를 찾고자 하였던 사상적 유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신유가의 기본적인 특징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20세기 중 · 후반기 이후 중국 사상계를 지배한 마르크스 · 레닌주의 철학과 그 중국화를 제외한다면, 현대 중국의 사상사에서 철학사적으로 비교적 전승성(傳承性)이란 특색과, 아울러 일정한 창조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바로 이들 ‘현대 신유가’만을 헤아릴 수 있을 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출처] 신유학파 新儒學派 당대 신유가, 當代新儒家, 현대 신유가, 現代新儒家|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