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과 지눌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지눌은 현실 세계에 개입함을 통해서 중생의 무명으로부터 비롯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한다. 그러나 양명은 현실세계에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양명에 의하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모두 현실세계 안에 있다. 다시 말해서 지눌이 ‘경지의 세계’를 중시한다면, 양명은 ‘사실의 세계’에 천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명이 천착하는 현실세계는, 지눌에 의하면 분별지일 뿐이며 허망하다 그러나 양명이 보기에는, 지눌의 마음철학이나 무분별지는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상도가 되지 못한다. 단지 허무적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상가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서 접점을 공유한다. 그것은 마음의 중시이다. 양명과 지눌은, 중세의 한 가운데에 서서, ‘양지’와 ‘공적영지’로 표방되는 ‘마음의 철학’을 통해서, 대단히 근대적이며,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간관을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사유체계가, 시대를 뛰어넘어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함의는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