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학에서는 우리가 앎을 얻는 수단을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속담으로 보는 불교 가르침] <15>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인명학 부흥 시급하다
원인 없는 결과 없다는 비유
과학ㆍ합리성 지배 현대사회
불교인식논리학 더 필요해져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다는 점을 비유하는 속담이다. 또는 어떤 소문이 돌 때, 그런 소문이 있게끔 한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은유하기도 한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온다. 거꾸로 어느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집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연기는 불과 필연적 수반관계를 갖는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우리나라의 전통 속담이긴 하지만, 불교의 인명학 문헌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추론적 사유 가운데 하나다.
불교교학의 하위 연구분야로 초기불교, 아비달마교학, 중관학, 유식학, 밀교학, 정토학, 화엄학, 정토학, 선학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에 덧붙여 인명학(因明學)이란 분야가 있다. 인명학을 문자 그대로 풀면 ‘원인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원인’이란 ‘우리에게 어떤 앎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으로 요인(了因)이라고 부른다. 요인에 대응하는 원인으로 작인(作因)이란 게 있다. 예를 들어서 먼 산에 불이 나서 연기가 피어오를 때, 불은 연기의 작인이 되고, 연기는 불의 요인이 된다. 요인이 인식론적 원인이라면 작인은 존재론적 원인이다.
인명학에서는 우리가 앎을 얻는 수단을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현량은 감각과 같은 직접지각, 비량은 사유를 통해 얻는 추리에 해당한다. 인명학은 이렇게 지각론과 추리론을 겸한 학문인데, 서양철학과 비교할 때, 전자는 인식론, 후자는 논리학에 해당하기에 인명학을 ‘불교인식논리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명학을 체계화 한 인물은 디그나가(Dignāga, 480~540년경) 스님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디그나가를 한자로 진나(陳那)라고 음사했다. 디그나가 스님은 전통적인 인도논리학을 불교의 무아설과 연기(緣起)설, 그리고 공사상에 부합하도록 개작하여 불교적 인식논리학인 인명학을 창시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煙氣) 날까?” 인명학 문헌에서는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는 점, 즉 연기와 불의 필연적 수반관계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추론식을 작성했다. ‘주장(宗, 종): 저 산에 불이 있다. 이유(因, 인): 연기가 있기 때문에. 실례(喩, 유): 마치 아궁이와 같이.’ 그런데 이런 추론식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이유 또는 근거로 사용한 ‘연기’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주장명제에서 거론한 ‘저 산’에 그 연기가 있어야 하고, 둘째, 그 어디든 불이 있는 곳에서 연기가 난 적이 있어야 하며, 셋째, 그 어디든 불이 없는 곳에는 결코 연기가 없어야 한다. 인명학에서는 이를 ‘타당한 추론이 되기 위해서 이유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인(因)의 삼상(三相)’이라고 부르면서, 차례대로 변시종법성(遍是宗法性), 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 이품변무성(異品遍無性)이라고 명명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논리학의 장비를 갖추면서, 불교교학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포교의 설득력은 더욱 강력해졌으며, 논리로 무장한 외도를 제압할 수 있었다. 과학주의와 합리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 불교적 인식논리학인 인명학의 부흥이 시급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을 보면서 떠오른 단상(斷想)이다.
[불교신문3669호/2021년6월8일자]
[출처] 인명학에서는 우리가 앎을 얻는 수단을 현량(現量)과 비량(比量)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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