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물[바깥 사물]에 대처할 때의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사물과 접하기 이전에 미리 마음을 수양해 둔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이러한 수양법은, 나날이 온갖 세상사에 몸담으면서 그것과 부단히 상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무시한 책상 위의 관념론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외물과 접촉하는 그 현장에서 스스로 마음을 올바르게 갖추어가는 것, 또한 그것을 실제로 몸에 익혀가는 것이 양명학에서 말하는 사상마련(事上磨鍊: 일상에서 정신을 단련하는 것)이었다. 거기에서는 미발(未發: 외부자극이 있기 전의 고요한 상태)·이발(已發)이라는 단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 고지마 쓰요시
주희 선생은 알고 나서야 실천할 수 있다고 보았고, 왕양명 선생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로 실천이 곧 아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전자의 강조점은 '앎'에 있고, 후자의 강조점은 '함'에 있다. 그러니 자기수양을 하는 방법도 서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난 둘 다 옳다고 보는 회색분자다. 물에 빠진 사람이 먼저 뭍으로 나오기 전에는 물에 빠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는 측면에서는 주희 선생의 말이 맞고, 일상생활의 매 순간이 수행의 장이라는 측면에서는 왕양명 선생의 말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