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자騎牛子
무비無比 스님/범어사 승가대학장
가소기우자可笑騎牛子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 소진해중銷盡海中
우습다. 소를 탄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저 바다의 거품을 다 태워버리는구나.
- 소요태능(逍遙太能)선사
선가에서는 마음을 찾는 일을 소를 찾는 일에다 비유하였다. 마음의 소라 하여 심우(心牛)라고도 한다. 그래서 소를 찾는 과정을 그린 심우도(尋牛圖)라는 그림이 유명하다. 소를 탄 사람(騎牛子), 소를 찾는 사람(尋牛子), 소를 먹이는 사람(牧牛子) 등등으로 부른다.
난행고행을 하면서 소를 찾아 나섰지만 소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정작 자신이 타고 있다. 찾아 나설 줄 아는 일이 벌써 이미 찾으려는 그 소가 하는 일이다. 소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내용과 비슷한 글들이 대단히 많다. 이 글은 조선시대 소요 태능(消遙太能, 1562~1649)스님의 게송이다. 알고 보니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일을 하였다. 너무나 가소로운 일이었다. 마치 토끼의 뿔과 같은 것이며, 거북의 털과 같은 일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바다의 물거품을 다 태워버린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찾는다는 것이 이와 같다. 온 천지가 마음이며, 우주만유가 다 마음인데 무엇을 찾는다는 말인가. 진실로 가소로울 수밖에 없다. 천하에 마음을 찾는다는 나그네들은 이 말을 잘 명심해야 한다. 불교인들의 모든 신앙행위가 실은 모두 이 마음을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마음을 찾는 일이 이와 같다면 반드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리라.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바다에 멸치라는 작은 고기가 다른 수많은 고기들로부터 바다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하루는 바다의 왕인 용왕님에게 가서 바다에 대해서 물었다.
“수많은 고기들이 바다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도대체 바다가 무엇입니까?”
용왕은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었다. 그들이 사는 모든 세계가 바다이며 용왕도 멸치도 모두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돌아가는 존재인데, 그리고 모든 고기들은 한 순간도 바다를 떠나서 존재할 수가 없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용왕도 멸치도 그 자체가 모두 바다다. 바다가 멸치고 멸치가 바다다. 바다와 멸치는 둘이 아니다. 결코 둘로 나눌 수가 없다. 바다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모두가 바다이기에 무엇이 바다냐고 물을 수가 없는 입장이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힐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용왕은 역시 바다인 산호 주장자를 들어서 멸치를 후려쳤다. 그렇게 하면 혹시 바다를 알 수 있으려는가 하는 기대에서다. 실은 그에게 바다라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질문이 있으니 답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가 바다를 찾는 일은 종로 네거리에서 서울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소요스님은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바다의 물거품을 다 태워버린다”라는 표현을 하였다.
임제(臨濟, ?~867)스님이 황벽(黃檗, ?~850)스님을 찾아가서 불법의 대의를 물었을 때 황벽스님이 보여준 불법의 대의는 수많은 역대 선지식들이 법을 쓰는 기연(機緣) 중에서 압권이라고 할만하다.
어느 날 임제스님은 황벽스님을 찾아가서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황벽스님은 다짜고짜 옆에 세워두었던 주장자로 임제스님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머리가 깨어지던지 팔이 부러지던지 그것은 황벽스님이 알바가 아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고 바다가 바다를 묻는 데는 그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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