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간화선. 묵조선. 선

공안선(公案禪)과 화두선(話頭禪) - 인경/ 명상상담연구원

공안선(公案禪)과 화두선(話頭禪) - 인경/ 명상상담연구원

 

1. 머리말

 

2. 공안의 의미

 

3. 원오극근의 공안선

 

1) 공안의 역할

 

2) 현성공안

 

4. 대혜종고의 화두선

 

1) 공안과 화두의 구별

 

2) 화두선의 성격

 

5. 맺는말

 

 

1. 머리말

 

간화선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수행체계이다. 간화선은 화두를 그 참구의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때 선문답의 공안(公案)과 화두(話頭)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까 하는 문제에 대해서, 수행자들이나 학자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두 견해가 있다. 하나는 공안과 화두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양자를 구분하는 경우이다.

 

첫째는 공안과 화두를 동일한 개념으로 파악한 것으로, 일본에서 편찬된 『선학대사전』에서도 지지하는 견해이다. 간화선의 성립시기를 공안의 형태가 출현한 황벽((黃蘗, ?-850) 이후 9세기 중엽 임제(臨濟, ?-866)와 향엄(香嚴, ?-898)의 시대에 이미 간화선이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공안의 출현은 그대로 공안선이고 간화선이 된다. 이런 관점은 간화선의 성립을 당대까지 올려서 송대의 선사상을 연결시키는 연속성을 강조한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당대의 공안과 송대의 공안선, 혹은 간화선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 관점은 공안을 역대 고승의 언행으로 보고 화두는 그 공안 가운데 한 글자나 언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구별하는 한 경우이다. 이것은 대만에서 편찬된 『불광사전』에서도 역시 발견되는 관점이다. 다시 말하면 간화선은 『경덕전등록』이후 송대에서 성립되었으며, 묵조선과의 경쟁관계에서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경우이다. 이것은 사상사의 전체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공안은 당대에 출현했지만 실질적인 간화선은 송대에서 성립되었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옹호하는 것이다.

 

공안과 화두는 간화선에 대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에 대한 논의는 결국 간화선의 성립시기의 문제뿐만 아니라, 간화선 수행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2000년에 보조학회에서, ‘공안을 선문답의 사례로 이해하고, 화두를 어떤 특정한 공안 가운데서 절박하게 의심이 일어난 질문이나 언구로 정의하여, 화두의 출현 시기를 간화선의 성립시기로 보는 견해’를 제시한 바가 있다. 하지만 그때는 발표주제가 대혜종고의 간화선의 특질에 초점이 맞춘 결과, 당대에 처음 성립된 공안과 송대에서 형성된 수행법으로써 화두와의 사상적 차이점에 대해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지지 못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헌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간화선을 성립시킨 원오극근과 대혜종고의 선사상을 비교함으로써 ‘공안선’과 ‘화두선’에 대한 정확한 사상사적인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공안의 의미

 

선종사에서 당대에 공안의 형태가 처음 출현한 것은 누구든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대에 출현한 공안을 그대로 공안선, 혹은 간화선으로 부를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된다. 이점은 공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공안을 ‘진리에 들어가는 인연’으로서 넓은 의미의 문답을 가리킨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9세기뿐만 아니라 달마와 혜가의 문답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부처님 당시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현들은 제자를 흔들어 일깨우고, 진리에 들어가는 인연을 위해서 질문과 문답법을 자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간화선의 출발을 부처님에게까지 올려서 그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의 주장이다.

 

둘째는 공안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으로서의 문답이 아니라,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대화법으로서 좁은 의미로 한정하여 정의한 경우이다. 공안이란 선종의 독특한 문답으로, 논리적이고 분석인 방법이 아니라, 일상에서 간결하고 직관의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진, 정확하게 중국 선종에서 개발된 ‘선문답’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라면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이후 황벽, 임제 등에 의한 조사선(祖師禪)이 유행하면서 본격화되었고, 문답으로써 공안의 형태는 오히려 혜능과 마조 이후 8세기에 출현했다는 시각이 옳다고 본다.

 

세 번째는 공안을 ‘수행의 한 방법’으로 보는 경우이다. 이것은 옛 선사의 많은 기연과 문답 가운데 하나를 결택하여 그것에 집중하여 참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라면 공안선의 출현은 송대에 와서 성립되었다고 본다. 간화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선문답의 공안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이런 선문답의 성립은 당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송대에서 성립된 『벽암록』이나 『무문관』 등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공안에 대한 의심을 강조한 간화선이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논자에 따라서 간화선의 성립 시기를 논할 때, 세 가지 관점을 서로 다르게 평가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만약 공안과 공안선이 동일한 의미이고, 그래서 공안선은 그대로 간화선이라면, 결국은 선종사에서 조사선과 간화선은 서로 다르지 않는 동일한 선법이 된다. 이런 견해를 가진 이들은 대부분 그 실례로서 9세기 초엽에 활동한 황벽의 법문, 『선관책진(禪關策進)』에서 첫 번째 법문인 「황벽선사黃檗禪師의 시중示衆」을 제시한다.

 

오직 저 공안(公案)을 간하라. 어떤 승려가 “조주(趙州)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조주가 “무(無)”라고 대답했으니, 다만 일상의 십이시중(十二時中)에 이 무자(無字)를 간(看)하라. 낮이든 밤이든지 행주좌와와 옷 입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곳곳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돌이켜보아 맹렬하게 채찍질하라. 다만 ‘무’ 한 글자를 지키다 보면, 날이 가고 해가 깊어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하여 홀연히 마음의 꽃이 피어나 불조(佛祖)의 기틀을 깨닫게 되리라.

 

오직 공안을 간하라. 이것은 조주의 무자(無字)를 간하는 간화선의 핵심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법문이다. 여기서는 공안과 화두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안, 공안선, 그리고 화두선은 모두 동일한 개념이 된다. 이 자료를 근거하여 판단한다면, 분명하게 공안선과 화두선이 출현한 시기는 황벽시대, 곧 9세기 초엽으로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이 법문은 엄밀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무문혜개의 『무문관無門關』의 내용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분명하게 후세에 첨가된 내용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실제로 현존하는 황벽(黃蘗)의 법어인 『전심법요(傳心法要)』나 『완릉록(宛陵錄)』에는 위와 같은 법문의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무자화두의 시원이 된 8세기에서 9세기를 산 조주(趙州, 778-897)는 황벽(黃蘗, ?-850)과 동시대의 인물이지만, 조주가 황벽보다 50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 50년 전에 먼저 입적한 황벽이 조주의 무자(無字)를 간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내용이다. 셋째로 1600년에 출간된 명대의 『선관책진(禪關策進)』은 남송 시대에 간행된 『무문관(無門關)』보다 400년이 지난 다음에 출간되었고, 황벽(黃蘗)이 입적한 해로부터 750년이 지난 이후의 기록이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선관책진』에 보이는 공안참구에 관한 황벽의 법문은 나중에 삽입된 내용이 분명하다.

 

때문에 공안에 의한 참구법, 공안선이 출현한 시기를 황벽과 동일한 9세기 초나 중기에 성립되었다는 일부의 견해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공안의 출현이 그대로 공안선, 혹은 간화선의 출현으로 본다면, 결국은 당대의 조사선과 송대의 간화선은 동일한 형태의 수행법이 되어버린다. 이것이 『선관책진(禪關策進)』이 범한 사상사적 오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당대에 출현한 공안과 송대에 성립된 공안선이 가지는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3. 원오극근의 공안선

 

1) 공안선의 출현


송대에서는 공안의 의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이것의 가장 좋은 모델은 송대에서 가장 널리 유통된 원오극근(1063-1125)의 『벽암록』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벽암록』을 통해서 공안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원오극근이 공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하는 상세한 연구는 없다. 그런데 『벽암록』 삼교노인(三敎老人)의 서문에는 공안의 활용방식을 세 가지로 잘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공안을 조사의 가르침이라고 정의하고, 당에서 시작되어 송에서 번성하였음(倡於唐而盛於宋)’을 지적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공안이 가지는 세 가지 활용방식을 제시한다.

 

첫째는 좌선 수행을 통해서 공력이 이루어지고 행각으로 일을 다 하였지만, 깨달음을 밝히지 못하고 쉽게 사량분별에 떨어질 때, 바른 눈을 갖추어서 감옥에 갇힌 죄인의 죄를 감변(勘辨)하듯이, 실다운 지혜를 보일 때에 사용된다. 이것은 공안의 활용에 대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제/지적한 것인데, 공안이 초보자를 위한 방책이 아니라, 수행의 공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제자를 위해서 지도자가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행자의 업장을 꾸짖고, 소리쳐서 교훈을 주는 것으로, 공안은 수행에서 만나는 무거운 장애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강남의 조사선을 처음 접하였지만 여전히 조사의 깊은 취지를 파악하지 못하여 망연해하는 자를 위해서 자비의 마음으로 학인을 접인(接引)하는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상처를 내리쳐서 증오(證悟)로 이끄는 바로서 마치 관리가 죽어가는 죄인을 구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의 핵심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더욱 내리쳐서 증오로 이끄는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아직 베지 못한 벼로 인하여 나귀를 계박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노름에 전념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대선지식이 부촉하고 좌복 위로 내몰아서 더욱 수행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옥을 벗어난 죄인을 현실 속으로 동참하도록 흔들어 내모는 것이다. 마치 관리가 정부의 조령을 사람들에게 잘 알게 하여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면 곧장 그것을 소멸하게 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말하는 공안의 세 가지의 활용은 수행에서 나타난 현상에 대한 기준과 판별, 깨달음으로의 안내, 가행정진에로 촉발의 과정을 모두 포섭하고 있음을 본다. 먼저 감옥의 은유에서 보여주듯이, 처음 발심하여 수행을 시작하였지만 숙세의 업장으로 힘들어할 때, 공안은 고인의 언행으로서 용기와 더불어서 자신의 과제를 명료하게 하는 나침판의 역할을 하며, 두 번째는 조사선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고통의 감옥을 벗어나는 깨달음을 성취함이 바로 고인의 공안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말하고, 마지막으로 감옥을 벗어나 농사짓는 일상으로 돌아 와서 계속적으로 수행하여 갈 때, 역시 공안의 역할을 강조되는데, 이때는 업장을 곧장 소멸하는 수단으로서 공안이 활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벽암록』에서 사용되는 공안의 사용법을 세 측면에서 잘 요약 정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원오극근은 공안을 활용하여 학인들이 공부하도록 안내하였다는 것이고, 이것은 위의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듯이, 세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먼저 잘못된 견해에 대해서 꾸짖고, 다음엔 무엇이 본래의 낙처인가?를 물어서, 결국은 좌복으로 내몰아 더욱 공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게 공안을 활용한 수행방법으로, 이것을 여기서는 ‘공안선’이라고 부르자. 그러면 공안과 공안선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이점에 대한 구체적인 예는 『벽암록』에서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의 예를 보면, 『벽암록』제3칙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조스님이 매우 아팠다. 그때 원주가 “스님, 몸은 좀 차도가 있습니까?”그러자 대사가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라고 대답하였다. 만약 조사께서 본분사로서 상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도가 빛날 수 있었겠는가? 이 공안에서 만약 낙처를 안다면, 붉은 하늘을 홀로 걷을 것이다. 만약 낙처를 모른다면 마른 나무와 바위 앞에서 잘못된 길을 헤맬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참으로 옛 사람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왼쪽 눈은 일면이고 오른쪽 눈은 월면이라고 한다. 이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면 마조스님이 말씀하신, 본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위의 문답은 공안과 공안선의 의미를 구별 짓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일단 공안의 의미는 옛 조사의 가르침, 선문답이다. 구체적으론 마조와 원주와의 문답을 가리킨다. 이것은 1차적인 문답이다. 반면에 『벽암록』에서 사용된 방식은 이런 문답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견해를 비판하고, 본래의 낙처를 묻는다. 이것은 2차적 성격을 가진다. 물론 참구자의 입장에서는 보면, 양자는 동일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마조는 ‘일면불 월면불’그 자체를 드러낼 뿐, 그것을 참구의 대상이나 수행의 방법으로 활용하라는 흔적은 없다. 가장 잘 알려진 조주의‘무자’도 마찬가지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조주는 어쩔 땐 긍정(有)으로 어쩔 때문 부정(無)으로 다만 대답을 했을 뿐이다. 조주는 결코 오직 무자, 그것을 온종일 앉을 때나 갈 때나 참구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무자를 참구의 대상, 수행의 방법으로 삼는 것은 후세, 바로 송대에서 비롯된 바이다. 당대의 공안은 1차적인 문답이라면 송대에서 새롭게 발견된 공안은 2차적(메타) 활용이다. 이것이 원오극근의 공안선이 가지는 성격이다. 다시 말하면 공안선이란 ‘깨닫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선대의 고칙공안을 활용하여 학인들을 지도하는 공부법’이라고 정의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공부법의 출현은 언제라고 보아야 하는가? 공안이 생겨난 그때 그 자리, 곧 8세기 마조(709-788)나 조주(778-897)의 당시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오히려 정확한 인식은 공안과 공안선을 구별하여, 공안의 출현은 마조나 조주의 당시이지만, 공안을 활용한 공부법, 곧 공안선으로 발전시킨 것은 송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점은, 사상사를 이해하는 개인적인 사상사관의 문제이겠지만, 당대의 선문답이 송대에 인쇄술의 발전에 힘입어서 공안집으로 결집되어 널리 유통되면서, 공안이 수행자의 공부법으로 본격적으로 소통되었다.

 

당대에는 스승과 제자 간에 극히 개인적인 문답일 수밖에 없는 공안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유포되거나, 그런 문답의 존재 자체가 문화 전반에 알려질 수가 없었다. 송대에 들어오면서 지식인 사회에 당대의 공안이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인쇄문화의 발전에 크게 힘입었다. 특히 공안집의 유행에는 1004년에 간행된 『경덕전등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널리 유통된 대표적인 공안집인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25)의『벽암록(碧巖錄)』도, 설두중현(雪竇重縣, 980-1052)이 『경덕전등록』의 1700공안 가운데서 요긴한 100칙을 가려 뽑아서 송을 붙인 것이다. 다시 원오극근이 여기에 각 칙마다 서문에 해당되는 수시(垂示), 간단한 논평인 착어(著語)와 평창(評唱)하였고, 이것을 그 제자들에 의해서 편집하여 간행된 것이다. 또한 유명한 공안집으로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1157)의 『종용록(從容錄)』이 있다. 이것은 굉지정각이 송 소흥 연간에 고덕의 고칙 100칙을 모아서 송고하였고, 이것을 만송행수(萬松行秀, 1166-1246)가 가정18년(1223)에 야율초재(耶律楚材)의 청을 받아서 시중(示衆), 평창(評唱), 착어(著語)를 붙인 것이다. 『벽암록』이 임제종의 가풍을 널리 선양한 공안집이라면, 『종용록』은 조동종 선풍을 거양하는데 널리 이용되었다. 이런 점에서 공안을 활용한 공안선은 역시 송대에, 특히 『벽암록』이나 『종용록(從容錄)』등과 같은 공안집이 간행된 이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이 아닌가 한다.

 

2) 현성공안

 

원오극근은 『벽암록』에서 공안을 공부하는 한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원오어록』에서는 공안의 또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그것은 공안의 본질을 ‘현성공안’, 곧 그 자체로 진리의 현현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점은 『벽암록』보다는 그의 『원오어록』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다. 『벽암록』에서는 공안이란 용어가 96회 사용된 가운데 현성공안은 5회(5%)) 사용된 반면에, 『원오어록』에서는 공안이 34회 사용된 가운데 현성공안이 20회(58%)가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점은 『벽암록』이 공안을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의 역할이 강조된 반면에, 『원오어록』은 상당하여 직접적으로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는 자리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현성공안은 ‘現成公案’혹은‘見成公案’으로, 글자 그대로 현성된 공안이란 의미이다. 현성에서 현(現, 見)은 지금 현재에 나타남을 의미하고, 성(成)은 완성되어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바로서, 어떤 노력 이전에 이미 완성되어짐을 뜻한다. 진리가 감추어진 바가 없이 그대로 현성되었다는 것인데, 수행이나 어떤 인위적인 노력에 앞서 이미 현실 그대로가 진리임을 강조한 말이다. 원오극근은 현성공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성공안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드러나 있고, 근원에 철저하여야 비로소 계합하게 된다. 그래서 덕산(德山)은 문득 방을 들었고, 임제(臨濟)는 문득 활을 했으며, 목주(睦州)는 문득 현성공안이니, 그대에게 30방을 쳐야겠다고 했다.

 

여기서 원오극근이 말하는 현성공안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드러난 진리로서 그것은 말할 수 없기에 덕산은 방을 했고, 임제는 할을 한 것이다. 당대에 유행한 방[棒]과 할[喝]은 학인을 일깨우는 수단이라는 것은 잘못된 이해이다. ‘방할은 그 자체로 진리를 드러냄이며 진리의 표현양식이다‘는 것이 본질에 보다 가까운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안은 바로 현성공안이다. 이것이 바른 견해가 된다. 계속해서 원오극근은 현성공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성공안은 천지와 조금도 차이가 없는 대해탈문이며 일월처럼 밝아서 허공과 같고 부처와 조사와 별개가 아니며 고금에 한결같은 정견이다. 설사 미혹과 개/깨달음이 있다곤 하지만 다만 이것은 배우는 사람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래서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시어,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장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어 성품을 보아서 성불하게 한 것이다. 나중에 육조대사도 역시 한결같이 이 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현성공안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드러난 진리로서 그것은 대해탈문으로서 부처와 조사의 경지와 전혀 다르지 않는 고금의 정견(正見)이라고 말한다. 이런 현성공안의 선사상은 그의 제자인 대혜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그는 상당하여 “내게 현성공안이 있다. 그대들에게 던지노니 풀이를 해보라. 이것을 ‘죽비’라고 말하면 번뇌가 일어남이요, ‘죽비’라고 부르지 않으면 어긋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 현성공안은 죽비 그 자체이다. 그렇지만 죽비라고 부르면 안 되고, 부르지 않아도 여전히 어긋난다. 이런 의미는 결코 원오극근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조주는 ‘무엇이 부처인가?’ 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 것이다. 뜰 앞의 잣나무는 그 자체로 현성공안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 공안의 의미를 노력하기도 이전에, 진리가 이미 완성되어 눈앞에 현성되었다는 의미라면, 우리는 왜 다시 고인의 공안을 문제 삼고, 그것을 수행의 도구로서 활용하는 공안선이 필요했던가 하는 질문이 생겨난다. 이미 깨달았다면 공안 자체도 이미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답의 상황에서 깨달은 조사들은 본분사의 입장에서 대답할 수밖에 없고, 그 응답이란 필연적으로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절처로서, 현성공안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당대에 성립된 1차적인 문답으로서의 공안이다. 그래서 이미 나에게 진리가 현성되었다면 우리는 공안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그곳에서 뚫리지 않고 막힌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문제로 삼아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송대에서 강조한 공안이 가지는 2차적인 방법론적 의미이고, 공안집을 경쟁적으로 편집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당대에 성립된 공안이 가지는 수행방법론적인 의미를 자각한 이는 원오극근 이전에도 있었다. 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례가 여기에 있다.


옛 스님들은 도를 위하여 산을 오르고 바다를 건너면서 살고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수행에 한번의 전환을 이루는 옛 조사의 기연(機緣)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그것을 일로 삼아 반드시 결택(決擇)하여 분명하게 하는 것을 귀중히 여겼다. 그래서 참과 거짓의 기준이 되고 인천의 안목을 이루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종지를 높이 제창하고 진실한 가풍을 널리 떨쳤다. 선대(先代)의 논의(論議)를 인용하여 따져 묻고 깨닫지 못한 공안(公案)으로 채찍질했다. 만일 수행을 거치지 않고 고금(古今)을 억측으로 단정한다면, 그것은 마치 검술을 배우지 않고 억지로 태아의 보검으로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이것은 송대 이전인 당말(唐末)에서 오대(五代)의 혼란한 시기를 살았던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이 쓴, 당시 수행승들의 병폐를 10가지로 나누어서 경책하는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 나오는 여섯 번째의 글이다. 당시의 납자들이 선대의 공안(公案)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 의하면, 법안은 당시의 수행자들이 옛 조사의 기연인 공안(公案)을 공부의 길잡이로 삼지 않음을 한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옛 조사가 도에 들어가는 ‘기연(機緣)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그것을 ‘일로 삼아 반드시 결택(決擇)하여 분명하라’것이고, ‘공안(公案)으로써 공부의 길을 채찍질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공안을 이차적인 활용법, 곧 수행의 방법으로 이해하는 좋은 전거이다. 모든 공안은 그 자체로 진리를 드러내는 1차적인 현성공안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막히고 의심이 생길 때, 그것은 2차적(메타)으로 수행과제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적되는 수행의 방법으로 두 가지의 요소가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고인의 공안에 대해서 일로 삼아 의심해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량분별에 의한 억측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소는 바로 송대에 들면서 『벽암록』에 의해서 비로소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확립되었다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안은 현성공안으로 진리 자체를 보인 것이지만, 그것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못하고 의심이 있다면, 그것을 결택하여 수행의 길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런 공안공부를 화두수행법으로 체계화시킨 이는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종고였다.

 

 

4. 대혜종고의 화두선

 

1) 공안과 화두의 구별

 

공안과 화두의 의미가 다른지 혹은 구별하여 사용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원오극근과 대혜종고의 어록에 근거하여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공안과 화두란 용어가 함께 사용되는 문맥을 찾아내어서 그 낱말들이 가지는 의미를 대조하여 보면, 이점은 분명해질 것이다.

 

먼저 원오극근의 경우를 살펴보면, 『벽암록』에서는 공안이란 용어가 96회, 화두가 19회 사용되고, 그의 『원오어록』에서는 공안이 34회, 화두가 9회 사용되고 있다. 이것으로 보면 원오극근은 공안이란 용어를 화두보다 압도적으로(130/28)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공안과 화두가 같은 문맥에서 함께 사용된 예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벽암록』제76칙에서 발견된다.

 

A. 단하스님이 어떤 승려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습니까?”그 승려가 “산 아래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단하스님이 다시 “밥은 먹었습니까?”물었다. 그러자 그 승려는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단하스님은 “밥을 가져다 그대에게 밥을 준 그 사람은 눈을 갖추었습니까?”묻자, 그 승려는 말문이 막혔다.

 

B. 장경스님이 보복스님에게 물었다. “밥을 가져다 먹인 것은 보은이 있는데, 어찌하여 눈이 없다고 했을까?”보복스님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애꾸눈이다”고 대답하였다. 장경스님이 “그 기틀을 다했어도 애꾸눈이었을까?”라고 반문하였다. 보복스님이 “나를 애꾸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대답했다.

 

C. 장경스님과 보복스님은 설봉스님의 문하에서 공인의 공안을 들어서 자주 논의하였다. 장경스님이 보복스님에게 물었던, ‘밥을 가져다 그 사람에게 주어서 보은이 있는데, 어찌하여 눈이 없다고 했을까’하는 것은, 필히 공안의 일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빌려서 화두를 만들어 보복이 체득한 당처를 시험하고자 했다. 보복스님이 ‘주는 자나 받는 자나 모두 애꾸눈이다.’대답하였는데, 이것은 통쾌한 대답이다. 다만 기틀에 당면한 일만을 논의하였는데, 이것이 우리 가문에 있는 출신의 길이다.

 

이것은 단하끽반(丹霞喫飯)의 공안이다. 위에서 A문단은 단하스님과 어떤 승려와의 문답이고, B문단은 공안A에 대한 장경스님과 보복스님의 논의이며, C문단은 원오극극의 논평글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론 당대, 당말, 송대의 순서로 이루어진 문답이다. 단하스님(738-823)과 설봉스님(822-908)은 당대의 뛰어난 선승들이고, 장경스님(854-932)과 보복(?-928)스님은 당말에 활동한 선승들이다. 원오극근(1063-1125)은 송대에 활동한 거목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공안과 화두란 용어를 동시에 사용된 논평글 문단C이다. 이것을 보면, 원오극근은 공안과 화두을 명백하게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공안은 ‘단하끽반’이고, 화두는 장경스님이 보복스님에게 했던 ‘어찌하여 눈이 없다고 했을까’하는 질문이다. 이것을 원오극근은 <필히 공안의 일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빌려서 화두를 만들어 보복이 체득한 당처를 시험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공안은 단하스님과 어떤 승려와의 일차적인 문답이라면, 화두는 장경이 일차적인 단하끽반의 공안을 근거로 하여, 상대방 보복이 체득한 당처를 묻고, 점검하는 질문이나 언구로서 2차적인 사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안은 고인의 문답인 점에서 과거의 사건사례이지만, 화두는 공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나에게 적용되는 공부법인 점에서 차이가 난다. 공안집에 수록된 공안들은 과거의 사건으로써, 나의 삶과는 무관하게 저기에 놓여진 것이지만, 화두는 내게 직접적으로 대답을 요청하는 절박한 실존적 과제이다.

 

이것을 보면 원오극근은 공안과 화두는 명백하게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이점은 양자를 별도로 사용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단독으로 화두란 용어를 사용할 때의 실례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제2칙] 조주가 대중에게 법문을 하였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간택(揀擇)하지 않으면 된다. 말하는 순간 간택이요, 혹은 명백함이다. 노승은 명백 속에도 있지 않다. 그런데 그대들은 보호하고 아끼려 하지 않는가?’이때 승려가 질문하였다. ‘명백 속에도 존재하지 않다면, 보호하고 아끼는 것은 무엇입니까?’조주가 나는 ‘모른다’고 대답하자, 다시 ‘화상께서 이미 모른다면 어찌하여 명백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까?’그러자 조주는 ‘묻는 것을 끝냈으면 물러가라’고 하였다.

 

[평창] 조주는 평소에 이 화두를 자주 제시하였다. ‘다만 간택을 하지 않을 뿐이다.’이것은 3조의 『신심명(信心銘)』에서,‘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다만 간택을 하지 않을 뿐, 미움과 사랑을 떠나면 통연 명백하다’고 했다. 시비를 하는 순간 이것은 간택이고, 명백이다. 이런 이해는 잘못된 이해이다.


이것은 『벽암록』 제2칙으로, 조주와 어떤 승려와의 문답을 제시한 것이다. 이때 핵심 된 주제는 3조 승찬의 『신심명(信心銘)』에서 사용된 간택(揀擇)과 명백(明白)이다. 이때에도 역시 원오극근은 공안과 화두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공안이 간택과 명백에 관한 어떤 승려와 조주의 문답이라면, 화두는 3조승찬의 『신심명』에 나오는 언구를 가리킨다. 정리하면, 선대의 선문답을 가리킬 때는 공안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공안을 관통하는 핵심 된 언구를 가리킬 때는 화두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런 구별은 대혜종고의 경우에도 그대로 계승된다. 하지만 대혜는 화두의 개념에 새로운 선사상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어록에는 공안이 34회, 화두가 37회 사용되고 있다. 이점은 원오극근이 상대적으로 공안이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였고, 대혜종고는 화두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혜는 공안을 비판하고, 화두 참구를 역설한 점에서 원오극근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대혜에게 있어서 공안은 재판의 판례처럼 과거의 선문답의 단순한 기록일 뿐이다. 공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절박한 자기문제로서 화두가 요청된다.

 

대혜종고는 공안을 비판적으로 말할 때, ‘這一則公案’, ‘舊公案’, ‘古人公案’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과거 선대의 선문답의 사례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어법들이다. 공안은 저기(這)에 놓여 있고, 그것은 과거(舊)의 사태이고, 옛 사람들(古人)이 사용한 것들이다. 하지만 화두는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고, 과거의 사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과제이며, 옛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절박한 과제이다. 그래서 대혜는 화두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지, 공안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삿된 마귀라고 극언한다. 바로 이점이 원오극근과 다른 점이다. 다음 인용문은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경우이다.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다만 모두 하나의 의심이다. 화두에서 의심을 타파하면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무너진다. 만약 화두를 타파하지 못했다면, 화두와 함께 벼랑 끝을 가라. 만약 화두를 버려두고, 따로 문자에서 의심을 하거나, 경전에서 의심을 하거나, 고인의 공안에서 의심을 하거나, 일상의 번뇌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모두 삿된 마귀의 권속이다.

 

이것의 초점은 공안을 부정하고, 화두에서 의심을 일으키라는 것이다. 이것은 선사상사에서 중요한 사상적 전환점이다. 그는 화두의 본질을 ‘의심’이라고 규정하고, 그 의심을 ‘화두’에서 일으키라고 말한다. 만약에 ‘문자’, ‘경전’, ‘고인공안’, ‘일상사’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삿된 마귀의 권속이라고 단언한다. 여기서 배척해야할 대상 가운데, 문자, 경전, 일상사 가운데 공안(公案)을 분명하게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을 보면 대혜에게 있어서는 화두와 공안은 동일한 개념이 결코 아닐 뿐만 아니라, 공안은 배척의 대상이 된다. 공안은 단지 저기에 놓여있는 과거의 사례에 불과하지, 정확하게는 나와는 무관한 사건일 수밖에 없다. 공안의 갯수를 따지자면 천만 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의심은 하나의 화두로 귀착된다. 이 하나의 화두란 바로 내가 실제로 의심을 일으키는 바로 나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화두는 오직 한 개일 수밖에 없다. 옛 조사의 공안들을 조사해 보고 이해하고자 하나,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기 실존의 문제로서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지식을 첨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안을 배격하는 이런 대혜의 태도는 당시 사대부와 납자들이 조사의 공안을 시험과목처럼 암송하거나 단순하게 공안의 문답을 흉내내는 사례를 목격하고서 비롯되었다. 아래 대혜종고의 법문은 당시 지식인 계층인 사대부에게 보인 글이다.

 

사대부들은 구경의 일을 참구할 때, 처음에 그 본질을 알지 못한 채로, 다만 고인의 공안에 천착하여 지식과 이해만을 구한다. 이렇게 해가지고는 설사 일대장교를 모두 알고 다 이해한들 납월 삼십일에 생사가 도래해서는 전혀 붙잡을 곳도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선지식이 설한 이런 구경의 心意識으로 사량하여, ‘그렇다면 공에 떨어지지 않는가’한다. 사대부 가운데 열 가운데 오쌍이 이런 견해를 낸다.

 

제방의 기특하고 묘한 언구에 애착을 내지 말라. 종사들께서 각자 주장하여 밀실에서 전수한 고인공안의 유형들은 모두 잡다한 독(雜毒)이다. 이런 것들은 아뢰야식 가운데 겁겁생생 생사를 벗어나지 못한 것들로 그것으로 힘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장애를 입어서 끝내는 도의 안목을 어둡게 한다. 고인들께서 불가피하게 배우는 자를 위해서 차별의 허다한 지해를 보인 것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도에 위배되는 쓰레기 같은 말이다. 대중의 근기에 따른 차별된 약이란 차별된 병을 치료하고, 그대의 심지가 안락하여 차별이 없는 경계에 이르게 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오늘날 오히려 이런 차별의 언어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다시 그 약에 집착하여 병이 되니, 참 가엽다.

 

대혜종고는 공안집의 병폐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것은 궁극의 일구를 참구하는 수행자에게 쓰레기 같은 말이고 도의 안목을 멀게 하는 독이다. 진실한 자기 내적인 의심 없는 단순한 공안집(公案集)의 병폐를 목격한 그는 마침내 스승의 저술인 『벽암록』을 불태워버렸다. 이는 공안보다는 화두를 강조하는 은유이다. 물론 대혜가 현성공안으로서 공안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공안도 또 하나의 지식이고, 사량분별에 의한 또 하나의 집착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잡독으로써 생사의 언덕을 건널 수가 없으니, 쓰레기이고, 불태워야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때야 비로소 간화수행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원오극근의 공안선과 구별되는 대혜종고의 화두선이다.

 

그런데 학계에서 공안에 대한 대혜의 비판부분은 그렇게 주목되지 못한 부분이다. 대부분 묵조선에 대한 대혜의 비판에 초점이 모아지면서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묵조선만큼 강력하게 비판하는 고인공안에 대한 대혜의 시각은 별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것은 공안과 화두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선입관 때문에 주목되지 못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2) 화두선의 성격

 

대혜의 화두선은 공안집의 병폐를 비판하고, 화두에 대한 의심을 강조함으로써 성립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는 간화선이 선문답의 공안을 관통하는 핵심 된 일구, 곧 화두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한다.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수행의 방법론으로 자리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화두는 수행하는 실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가? 바로 이점도 원오극근의 공안선과는 다른 대혜 간화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대혜는 여러 가지 화두를 제시하곤 하지만, 일구(一句)에 대한 의심을 강조하는 ‘상당법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법문에서, 이를테면 ‘보설’, ‘법어’, ‘서장’등에서 한결같이 무자화두를 권하고 있다. 대혜가 화두를 권하는 방식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먼저 정혜의 개발로서, 화두는 산란심으로서의 혼침(昏沈)과 도거(掉擧)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초기불교 이래로 한결같이 언급한 장애는 바로 혼침과 도거이다. 혼침은 수마(睡魔)로 발전하고 도거는 망상(妄想)으로 자라난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여 정혜를 개발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수행법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정혜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정혜를 개발하는 방식이 없다면 그것은 불교의 수행법이라고 부를 수 없다. 대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요하게 앉아 있을 때, 혼침에 빠지거나 도거에 휩쓸리지 말라. 혼침과 도거는 성형이 경계한 바이다. 조용하게 앉아서 이들이 현전하면 오로지 개에 불성이 없다는 화두(話頭)를 들라. 그러면 두 가지의 병폐가 애써 물리치지 않아도 당장에 가라앉을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하다보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니, 이때가 바로 힘을 얻는 곳이다. 고요한 곳에서 공부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공부이다.

 

혼침은 지혜의 상실을 표시하고, 도거는 선정의 부재임을 말한다. 이것들을 극복하는 것은 곧바로 정혜의 개발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간화선은 화두로서 혼침과 도거를 일시에 치유하고, 정혜를 개발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임을 제시한 것이다.

 

둘째는 화두는 깨달음에 이루는 길이다. 닦음이 아니라, 무명으로부터 깨어남을 중요시한다. 이것은 묵조선 비판으로 나타났으며 묵조선의 비판을 통해서 화두의 의미는 더욱 구체화되었다. 묵조(黙照)란 말은 그대로 ‘침묵한 가운데 비추어 본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수행법은 정좌만 있고 묘한 깨달음(妙悟)은 없다고 대혜는 비판한다.

 

한 부류의 삿된 선(邪禪)이 있으니, 그들은 묵조선이다. 그들은 온종일 일에 관여하지 말고 쉬어가라고만 가르친다. 소리도 내지 말라 금시에 떨어질까 두렵다고 말한다. 총명하고 영리한 사대부들이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여 삿된 스승이 가르친 고요함에 이끌려서 힘을 더는 곳을 만나면 곧 이것이구나 하고서, 묘한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 묵묵하게 비춤만을 모토로 삼는다. 그 동안 구업을 짓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 병폐를 구하려고 애썼다. 이제 묵조선의 병폐를 아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의정(疑情)을 타파하지 못하는 곳을 향하여 한결같이 참구하되, 조주의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를 행주좌와에 놓지 말라. 이 무자는 생사의 의심을 타파하는 칼이다.”

 

수행에서 묵조선자들은 묵조하는 것으로 극칙(極則)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대혜는 본다. 말하자면 정혜 가운데 정은 있으나 혜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깨달음이 존재하지 못한다. 화두를 의심함으로써 깨달음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화두가 없으면 그것은 묵조이고 끝내는 혼침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혜의 간화선은 ‘깨달음(悟)’이 강조되는 반면에, 묵조선은 ‘고요함(黙)’이 강조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화두는 다만 화두일 뿐, 어떤 사량분별도 배제한다. 이것은 잘못된 화두참구를 경계한 것으로 대혜가 자주 강조하는 무자화두와 관련된 심종병(十種病)과 관련된다. 무자화두를 참구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병통에 대한 규정이다. 이것 역시 간화선의 태생적인 특징이다. 대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로 그때에 단지 의심하는 화두를 들라. 화두를 들고서 깨어 있기만 하라. 왼쪽으로 가도 옳지 않고, 오른쪽으로 가도 옳지 않다. 있고 없음으로 헤아리지 말고, 참된 없음의 없음[眞無之無]이라고 따지지 말라. 이치로서 알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려서 따질 수도 없다. 눈썹을 세우고 눈을 깜박거리는 곳에 머무를 수 없고 말에서 살 길을 찾을 수도 없다. 무의식 속에서 머무르지 말고 화두가 일어난 곳에 관심을 갖지도 마라. 문자로 인증(引證)할 수 없고 미혹으로 깨달음을 기다릴 수도 없다. 다만 마음을 쓰지 말고, 마음을 쓰는 곳이 없을 때에 공(空)에 떨어짐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곳이 바로 좋은 곳이다. 홀연히 늙은 쥐가 소뿔에 들어가 곧 고꾸라지는 것을 보게 되리라’


간화선은 ‘이야기(話)’나 이야기와 관련된 ‘언구’를 지켜보는 방법론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언어적인 유추나 분별로써 수행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오류를 사전에 부정함으로써 올바른 화두 참구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5. 맺는 말

 

본고의 중심 과제는 간화선의 기본 개념인 공안과 화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화선의 성립시기의 문제와 관련된 과제이다. 만약 공안과 화두를 동일한 의미로 간주한다면 선종사에서 조사선과 간화선의 구별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들 견해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본고는 원오극근과 대혜종고의 어록에서 어떻게 이들 개념이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첫째, 이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공안과 화두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공안이 고인의 선문답의 사례라면, 화두는 공안 가운데 핵심이 되는 언구를 가리킨다. 또한 공안과 공안선은 구별하여 사용할 필요가 있다. 공안은 현성공안으로써 그 자체로 진리를 드러내는 1차적인 문답이지만, 공안선은 공안을 활용한 공부법으로써 2차적인 활용이다. 그런데 공안에 대해서 원오극근과 대혜종고는 서로 사상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둘째, 원오극근의 경우에는 선대의 공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학인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에서 공안선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당대의 공안이 일차적인 현성공안이라면 원오극근이 사용한 방식은 이차적인 활용으로. 공안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배격하고, 공안이 가지는 낙처를 물어서, 수행과 수행을 점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셋째, 대혜종고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방향은 원오극근의 사용방식을 계승하고 있지만, 공안을 철저하게 부정한 점에서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는 원오극근처럼 공안을 사량분별로 이해하는 방식을 거부하지만, 공안을 삿된 마귀, 불태울 쓰레기, 수행자의 안목을 장애하는 독으로 묘사하면서, 화두에서 의심을 일으킴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대혜종고는 화두의 본질을 의심으로 삼고, 화두를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이런 화두를 통해서 혼침과 도거의 병을 극복하고 정혜를 개발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고, 사대부의 사량분별을 고칠 수 있는 경절처임을 강조한다.

 

이상으로 공안과 화두는 분명하게 구별되어서 사용되어야 함을 논증하였는데, 이것은 선종사의 시기 구별과도 직결된다. 공안은 당대에 성립되었지만, 당대의 공안을 수행의 대상이나 방법으로 활용한 것은 송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공안의 성립을 그대로 공안선의 출현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혜의 화두선은 공안을 배격하고 화두에서 공부 길을 마련한 점에서 원오극근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사상사에서 진정한 간화선은 대혜종고에 의해서 확립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