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역사 1
인류가 2500년 이상에 걸쳐 만들어 온 '지(知)의 결정' -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우리가 '과학'이라 부르는 학문은 옛날에는 철학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철학에서 갈라져 과학으로서 발전했다. 말하자면 지금은 과학자라고 부르는 갈릴레이나 뉴턴도 모두 철학자였던 것이다.
철학자들은 아득히 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여러 가지 현상을 보고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꾸준히 생각해 왔다. 오늘날 이루어진 과학 기술의 발전과 우리의 풍요로운 생활도 그러한 철학자들의 지적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이 해 왔던 사고의 역사를 과학과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알기 쉽게 소개해 나간다.
제1장에서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기원이 된 '그리스 철학'을 다룬다. 이어서
제2장에서는 과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철학에서 갈라져 나와 발전했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제3장에서는 당시 진보적인 생각이었던 경험론에서 출발해 과학과 함께 발전한 근세·근대 철학을 다룬다.
제4장의 '현대 철학'에서는 서로 강하게 영향을 받으면서 각각 진화해 나갔던 과학과 철학에 대해 소개한다. 마지막 장인
제5장에서는 고금동서의 철학자들이 자기의 생각을 검증하고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사고 실험'을 다룬다. 사고 실험을 통해 논리적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이 책이 과학적 사고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한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철학에 대한 이해가깊어지는 네 가지 테마
오늘날 '철학'이라 불리는 것과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자연 과학과 갈라지기 전에 '철학'이라 불리던 것은 그 성격이 서로 크게 다르다. 철학은 원래 사물의 성립이나 구조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초까지는 자연 과학도 자연 철학이라고 했다.
철학의 네 가지 테마
철학에서 생각해 온 테마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본질을 알기 위한 '형이상학',
올바로 아는 '인식론',
선악이나 가치를 판단하는 ‘윤리학’,
올바른 추론을 하는 ‘논리학'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는 혼자 이들 네 가지 테마를 계속 생각했다. 예컨대 모든 학문의 시조라 불렸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네 가지 모든 테마에서 저작을 했다. 그후 후대로 내려옴에 따라 차츰 네 가지 분류는 전문화되었으며, 각 분야의 전문가인 철학자가 활약했다.
논리학 분야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분야는 손을 더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래서 철학자라면 누구나 최초로 공부하는 분야라고 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기호 논리학의 표기법이 개발되어 논리학의 표현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다루는 문제의 폭도 넓어져 수학의 기초론(基礎論)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20세기 이후가 되자 각각의 테마 가운데서도 더욱 연구가 세분화되었으며, 또 과학 철학, 언어 철학, 심리 철학, 정치철학 등 개별 대상에 대한 연구도 하나의 분야로 독립해 나갔다.
철학이 생각해 온 네 가지 테마(중복)
철학이 이제까지 생각해온 테마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본질을 알기 위한 ‘형이상학',
올바로 알기 위한 '인식론',
선악이나 가치를 판단하는 '윤리학',
올바른 추론을 하는 '논리학'이다.
이들 네 가지 테마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가면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윤리학(선악 · 가치를 판단한다)
형이상학(본질을 안다)
인식론(올바로 안다)
논리학(올바른 추론을 한다)
8
과학의 기원
그리스 철학
지금으로부터 2500년 이상 전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과학'의 기원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했던 지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철학자들의 통찰은 매우 날카로웠으며, 근대 과학 지식을 앞지른 듯한 개념도 그 가운데서 나왔다.
제1장에서는 그러한 고대 그리스 철학을 현대 과학과의 연결하면서 소개한다.
10. 철학의 기원
12. 최초의 철학
14. 피타고라스
16. 원자론
18. 모든 학문의 조상
20. Column 1 '색즉시공'은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
22. Column 2 '진공'은 실재하는가!? 고대 그리스의 대논쟁
24. Column 3 '공자와 노자'에서 볼 수 있는 동양 철학의 윤리
철학의 기원
번개는 왜 치는 것일까? 철학은 '신비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철학(哲學)'이라고 부르는 것의 바탕이 된 것은 고대 그리스어의 'philosophia (필로소피아)'이다. philo는 '좋아한다', sophia는 '앎'이라는 뜻이다. 흔히 철학은 어려운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원래는 '지식을 좋아하는 것'을 의미했다. 즉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이면 모두가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곳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기원전 6세기 무렵의 고대 그리스의 땅이었다. 철학의 기원에 대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기원전347)이나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는 '시작은 놀라움에 있었다.'고했다.
여기서 말하는 '놀라움'이란 일상의 모든 현상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느낌을 말한다. 예컨대 번개가 칠 때 '왜 그럴까?' 하고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마음, 이러한 놀라움에서 철학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눈앞의 자연 현상은 정말 신이 일으켰을까?
당시 여러 가지 자연 현상에 대해 신화 등의 전승에 근거해 초자연적인 설명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번개가 치는 것은 전능한신 제우스의 힘, 사람이 잠자는 것은 잠의 신 히프노스의 소행……과 같은 식이다. 이러한 신화적인 설명을 '미토스(mythos)'라고 한다.
하지만 기원전 6세기 초 무렵부터 미토스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토스에서 벗어나 자연현상을 더욱 이성적(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이성적인 설명을 ‘로고스(logos)'라고 한다. 자연 현상을 보고'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갖고, 미토스보다 로고스를 중시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나타남으로써 앎을 좋아하는 일, 철학이 시작되었다.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철학의 일부를 '과학'이라고 부르게 된다. 과학은 뜻밖에도 연륜이 짧으며, 그 기원을 더듬어 가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로고스에 이른다.
신화에 대한 의문이 철학을 탄생시켰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전능한 신 제우스가 번개를 일으키는 이미지이다. 자연 현상을 보고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었을 때 이런 신화적 설명(미토스)이 아니라 이성적 설명(로고스)을 찾은 것이 철학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종교와 철학은 그 탄생 자체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처럼 대립하는 개념이었다.(도봉 생각)
최초의 철학자
최초의 철학자는 과학적인 생각 끝에,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다. 기원전 6세기 전반에 활약하고 '그리스 7현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탈레스(기원전 625?~기원전 545?)이다. 탈레스는 개기 일식의 출현(기원전 585년)을 예언했으며, 원의 지름을 한 변으로 하고 원에 내접하는 삼각형의 각도에 관한 '탈레스의 정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하는 등 여러 가지활약을 했다고 전해진다.
탈레스를 왜 최초의 철학자라고 부를까? 그것을 알기 위해 탈레스의 '철학자로서의 생각'을 살펴보자.
‘관찰’에 근거해 '본질'에 다가간 탈레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인간이나 여러 가지 동식물, 공기나 대지, 날씨의 변화, 생명의 탄생과 죽음………, 이러한 온갖 물질이나 현상의 근원을 '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탈레스처럼 세계(만물)의 근원에 대해 이성적인 설명을 시도한 것이 고대 그리스 전기 철학자들의 특징이다. 훗날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그 창시자였다고 말했다.
현대의 과학 지식으로 보면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탈레스가 어떻게 해서 그 결론에 이르렀는가라는 점이다.
탈레스가 생각한 근거의 하나는 '관찰'이었다. 탈레스는 자연을 널리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했다.
'인간과 동식물, 모든 생명은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모든 물체는 기체 · 액체 · 고체로 되어 있으며 물은 그 모두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대지는 대량의 물(바다) 위에 뜬 채 지탱되고 있다'
탈레스는 만물의 밑바닥에 있는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찾고는 그것이 '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는 추론'은 현대에서는 과학의 기본적인 방법이다. 그저 막연하게 바라보기만 해서는 알아차릴 수 없는, 여러 가지 현상의 밑바닥에 있는 본질에 이성적으로 다가간다. 그 과학적인 태도야말로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밀레토스의 탈레스
탈레스는 현재의 터키 서쪽 끝에 위치한 밀레토스에서 태어났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철학은 쓸모가 없다.'고 비판을 받은 탈레스는 올리브의 풍작을 예측하고 압착 기계를 미리 빌려 놓음으로써 막대한 부를 얻었다. 이렇게 해서 철학자도 마음만 먹으면 부자가 되기도 쉽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관찰'을 통해 물의 중요성을 알아차렸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가 관찰한 세계의 이미지이다. 탈레스는 관찰에 근거해 '만물의 근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히도르(hydor)] '이라고 주장했다. hydor는 영어의 물을 의미하는 'hydro'의 어원.
피타고라스
만물을 지배하는 것은 '數’
'아름다운 관계성'을 숭배한 피타고라스학파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수학이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학과 철학이 구별되지 않았고, 철학자가 수학을 연구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기원전 6세기 후반에 활약)도 그런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피타고라스는 수의 세계에 매료되어, 세계는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조화에 지배된다고 생각했다.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생각했지만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은 ‘수’라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숭배한 신비한 삼각형
젊었을 때부터 아는 것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한다는 평판을 받은 피타고라스의 주위에는 제자들이 모여 학문과 종교가 일체가 된 모임(피타고라스학파)이 만들어졌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영혼의 구제를 위해 수학을 탐구하면서 수학적인 아름다음을 숭배했다.
예컨대 볼링의 핀처럼 10개의 점이 늘어선 삼각형을 '테트라크티스(tetraktys)'라고 해서 완전한 수 ‘10'을 나타내는 신성한 상징으로 삼았다. 테트라크티스를 신성하다고 한 이유는 '음악'과 관계가 있다.
언젠가 피타고라스는 현의 길이와 음계에 관한 법칙을 발견했다. '도' 소리가 울리는 현의 길이를 1/2로 하면 1옥타브 높은 ‘도’가 울린다. 마찬가지로 2/3의 길이로 하면 '솔' 소리가, 3/4의 길이로 하면 '파' 소리가 울린다. 이들은 모두 원래의 '도'와 함께 울리면 듣기 좋은 화음을 연주하는 음정(음악에서는 각각 '8도’ ‘5도’ ‘4도'라고 부른다)이 된다.
현의 길이의 비는 낮은 '도'와 높은 '도‘ 사이에 2 : 1, 낮은 ‘도’와 ‘솔’ 사이에 3 : 2, 낮은 '도'와 '파' 사이에 4 : 3이 된다. 피타고라스는 듣기 좋은 화음을 연주하는 현이 단순한 비율을 갖는다는 사실에 감동했고, 세계는 단순한 비율(아름다운 관계)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테트라크티스는 ‘1 + 2 + 3 + 4'라는 10개의 점으로 되어 있다. 테트라크티스에는 화음의 기본이 되는 수가 정연하게 늘어서기 때문에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다.
피타고라스만큼은 아니어도 정연한 수학에 아름다움을 느낀 사람은 많을 것이다. 또 '온갖 현상의 이면에 숨은 법칙은 수학을 사용해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대 과학에서도 일반적이다.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생각은 바로 이러한 생각의 원점이었다.
라파엘로가 그린 피타고라스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회화 <아테나이 학당>의 왼쪽 아래에 그려진 피타고라스이다. 그의 앞에 세워진 칠판을 확대해 보면 테트라크티스와 그 아래에 로마 숫자 ×(10)이 그려져 있다. 테트라크티스 위에 있는 도형은 아름다운 화음을 연주하는 비율을 대한 그림이다. 그런데 피타고라스학파에는 '잠콩(누에콩)을 먹으면 안 된다.'와 같은 여러 가지 금기가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수'가 만드는 아름다운 화음
피타고라스학파의 신성한 상징이라고 한 삼각형 테트라크티스와, 듣기 좋은 화음을 연주하는 길이의 비율을 가진 현을 그렸다. 피타고라스는 세계는 단순한 비율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column
Q. 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을 추구했을까?
A. 탈레스 이후 세계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 전기 철학자들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참된 지식'이란 '물체가 생긴 원인이나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계 그 자체를 바르게 알기 위해 세계의 근원(원인)에 다가가려고 했다.
원자론
근대의 과학적 대발견보다 앞선다!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온갖 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원자'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는 당연한 지식이지만, 근대에 이르러 실증되기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존재에 회의적인 과학자도 많았다. 이러한 ‘근대적인 과학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의 존재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였다.
‘만물은 원자(아톰)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원자론’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은 철학자 레우키포스(기원전 5세기후반에 활약)가 주장하고,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기원전 370?)가 완성했다고 한다. 2400여 년 전 현미경도 없던 시대의 철학자가 원자론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無)는 존재한다! 원자론이 인정한 공허의 존재
–공허를 이동하는 원자의 이미지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원자론은 현대의 원자론과는 다소 다르다. 예컨대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원자는 어떤 모양이라도 좋다고 했다. 원형이나 사각형, 갈고리 모양, 움푹 팬 것, 돌기가 있는 것 등 무수한 모양이 생각되었다. 그런 원자가 모여 결합하고, 그 늘어서는 방식이나 방향에 따라 물질의 종류가 정해진다고 생각했다.
또 그들 원자는 결코 소멸되는 법이 없다. 물체가 부서져도 원자는 사라지지 않으며, 그 물체를 구성하던 원자는 이동해 다른 원자와 재결합함으로써 다른 물체를 만든다. 그래서 원자가 이동하기 위한, 원자가 채워져 있지 않은 빈 공간(공허)의 존재를 인정했다.
실은 당시에는 공허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모든 장소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공허, 즉 무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그들의 원자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
그리스의 옛 동전에 새겨진 데모크리토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학, 윤리학, 수학, 음악 이론, 시론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작물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학문의 5종 경기자'라고 불렸지만 그의 저작물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또 원자론에서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공적은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으며, 두 사람이 사제 관계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작은 알갱이가 모여 이루어진 세계
예: 사과를 만드는 원자, 오른손을 만드는 원자의 이미지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한 원자론의 이미지이다. 여러 가지 모양의 원자가 모여 온갖 물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모든 학문의 조상
'참된 지식'을 생각한 세 사람의 위대한 철학자
'과학의 원형은 이렇게 태어났다
탈레스에서 시작된 고대 그리스 전기의 철학을 '자연 철학'이라고 한다. 자연 철학은, 자연을 관찰해 지식을 얻는 것을 목표로 했던 철학자에 의해 개화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부터 철학의 중심 대상은 인간 사회로 옮겨졌다. 예컨대 도시 국가 아테나이(현재의 아테네)에서는 정치나 재판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변론술)을 가르치는 '소피스트’가 나타났다.
이리하여 상대를 구슬리는 것을 첫째로 삼기 시작한 철학을 다시 '지식 탐구'로 되돌린 사람이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69~기원전 399)였다. 신탁에 의해 자신이 '가장 똑똑한 인간'이라고 지목된 소크라테스는 그 참뜻을 알기 위해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고 평판이 자자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대화했다. 그러나 정말로 '참된 지식'을 가진 인물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가장 똑똑한 인간이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리하여 소크라테스는 ‘누구라도 자기의 무지를 먼저 아는 것(無知의 知)에 의해 비로소 참된 지식을 구하려는 태도(철학)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공적은 지식을 변론의 도구로 다루는 풍조에 반대하고 '지식이란 무엇인가?’로 되돌아와 생각하도록 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훗날의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과, 플라톤의 학원(學園)에서 배운 아리스토텔레스는 훗날의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은 모든 물체나 개념에는 그 이상형인 '이데아'가 천상의 세계에 존재하며, 이 세계는 이데아를 모델로 만들어진 모조[에이콘(eikon)]라고 주장했다. '보이는 세계와는 별도로 지성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는 ‘이원론(二元論)'이다. 플라톤의 이원론은 형태를 바꾸어 후세의 철학자에게 전해졌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탐구함으로써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이원론에 크게 반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자연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관찰 결과를 논리적으로 분석·검토하는 방법을 채용했다. 또 선인의 문헌을 조사하는 일도 중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생각은 바로 과학의 기반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분류를 완성해 ‘모든 학문의 조상'으로 불린다(아래의 그림). 이 학문의 분류 가운데 ‘자연학’이 현재 일반적으로 '과학'이라고 불리는 영역으로 이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이론적 학문' '실천적 학문' '제작적 학문'의 3종으로 나누었다. 이들을 통틀어 '철학(지식탐구)'이라고 했다. '논리학'은 철학에 포함되지 않으며 철학을 위한 도구라고 했다.
철학: 지식의 탐구 ::::::: 논리학: 학문과 논증을 위한 철학의 도구
(이하 철학의 하위 개념)
이론적 학문
수학: 수나 양, 도형을 대상으로 한다→-자연학: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의 운동과 변화를 대상으로 한다→-형이상학 존재하는 것의 '존재' 대상으로
실천적 학문
윤리학: 행복이나 선악을 대상으로 한다→-정치학: 국가나 정치를 대상으로 한다
제작적 학문
변론술: 청중을 대하는 뛰어난 설득법을 대상으로 한다→-시학: 문예나 연극을 대상으로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비
라파엘로의 그림〈아테나이 학당>에 그려져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다. 왼쪽에는 소크라테스가 있다. 또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플라톤(왼쪽)과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이다.
플라톤은 천상의 이데아 세계를 가리키는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으로 손을 가리키고 있어 두 사람의 생각 차이가 대비되어 있다. 두 사람의 입장은 각각 훗날의 철학자들에게 계승되어, 서로 다른 철학의 계보를 만들었다. 그림에서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책은 각자의 저서이다(플라톤은 <대화편>,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