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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청계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44회 산행)

청계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44회 산행)

때 : 2022. 10. 8(토)

곳 : 전철 4호선 대공원역 2번 출구

길라잡이 : 김삼모

 

1.시가 있는 산행

 

억새풀이 되어 / 김해화

 

우리 억새풀이 되어야 써

칼날처럼 뜻 세운 이파리로 바람까지도

비겁한 하늘이라면 하늘까지도

목 베어 거꾸러뜨리고

서 있어야 써, 우리 억새풀이 되어

 

사랑과 미움을 가릴 줄 알아

사랑이라면 뿌리째 뽑혀 죽어도 좋은 복종으로

미움이라면 그런 사랑까지도

사정없이 썸벅썸벅 베어버리는 반란으로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넷

넷보다는 더 많이 더 많이 모일 줄 아는

억새풀

바람 사나울수록

어둠이 깊을수록 또렷이 깨어나

소리지르며 눈 부릅뜨는 풀

 

여리디 여린 풀이 아니고

뼈 있는 풀

우리 억새풀이 되어야 써

 

-형채가 올려준 시다. 그는 내 성향을 아는 듯 정확하게 나의 심중을 맞춘다. 나의 수고를 덜어주는 그가 매양 고맙다. 시인은 전라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하늬바람으로 휘날린다. 그 바람에 그림자가 있어 바람의 존재와 방향을 안다. 안다는 것은 즐겁다. 6시간마다 먹어야 하는 약을 잊고 종일 자판을 두드렸으므로 손 전체가 아프다. 애리고 쑤시고 경련하며 긁는 아픔의 방향을 안다. 그들과 친구가 되어야 써. 그래야 내가 아픔이 되고 아픔이 내가 되는 찰나, 나는 숫자가 되기도 기호가 되기도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래야 한 없이 두드리는 자판도 내가 된다. 새벽이 온다. 살아야겠다.

<道峯別曲>

 

2.수학여행기

詩山會 제443회 산행<2022. 9. 22~24. 경주, 포항, 울산. 69인의 光高人>

드디어 두 번째 수학여행의 날이 밝았다.

며칠이 흘러, 지난 여행에 대하여 정리해보니 100점 만점에 95점 이상을 줄 수 있는 여정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다. 여기에 조 총장의 역할을 중심으로 김동주 회장, 장선식 사장, 신정균 점장의 능동적 참여와 참가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뭉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으로 모아졌다. 개인적으로 지난 일은 거론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활 태도라는 것은 짧지만 오래 흐르면서 거칠어진 삶을 통하여 가지게 된 가르침이다. 물론 속으로는 지난 삶을 반추하면서 울퉁불퉁하고 거친 것들을 부드럽게 다듬질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시산회원 35인 중 31인이 참가했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김동주 회장이 시산회 회장을 역임 중이며 조문형 산우가 시산회 명총장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우리 시산회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으렷다.

 

서울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대전역에서 69명을 차질 없이 태운 KTX는 동대구역에 내려 관광버스로 갈아타면서 재밌는 수학여행이 마지막까지 즐거운 수학여행이었음은 늘그막에 맛본, 다시 오기 어려운 여행이었음을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3년 내내 후반이었던 내가 잘 모르던 친구들의 이름을 새로 알게 되었음은 별도의 성과이며 즐거움이었다. 무작위로 짠 식탁의 인원의 편성 조합은 환상에 가까운 수순이다. 처음 마주 앉거나 옆에 앉은 친구들의 식습관은 놀라울 때가 있었다. 2인 1조가 됐던 잠자리나 버스와 열차에서의 옆자리는 티 나지 않고 편하게 바꿀 여유가 있었지만 식탁의 변경은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첫날과 둘째 날의 버스 좌석 파트너는 임경택 교수였는데 의외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못다한 이야기와 못다 들은 이야기는 훗날을 기약해도 좋다. 그가 자신이 담아뒀던 것들을 나에게 처음 이야기한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일단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불가의 수행 전통에 따르므로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다. 불가에서 본격의 과정에 들면 자주 듣게 되는 지침은 ‘여실지견(如實知見: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다. 예컨대 참선(간화선看話禪 또는 화두선話頭禪: 좁은 의미의 불가 명상)을 집중하여 실행하다보면 수상한(?) 또는 이상한 초월적 현상이 반드시 나타난다. 그럴 경우 그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자의적인 해석을 하지 마라는 것에 해당된다. 즉 의문이 들더라도 스승에게 그 경계를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초월적 현상을 부풀려 해석하는 경우에 점쟁이나 무당으로 빠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런 이유로 참선을 할 때는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믿을 수 있는 도반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의를 알면서 놓치면 돈 몇 푼에 자신의 수행 결과를 팔게 되어 결국 생을 망치게 된다. 수행에 더욱 정진하다보면 견월망지(見月忘指: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에 대면하게 된다. 이때 손가락을 보면 그 손가락에 눈을 찔릴 수 있으니 말의 본령을 제대로 알아들으라는 수행의 지침이다. 나는 대학시절 배운 간화선과 원불교의 일원상 수행법, 이인 원장에게 배운 정사유수 수행법을 버무린 수행을 한다. 특히 이인 원장에게 배운 正思惟修 명상에서 초월적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임경택 교수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문득 떠올렸던 수행 지침들이다.

 

그와의 대화를 그대로 옮기면 단편소설 하나를 채울 분량은 될 것이다. 단편소설은 대략 80매 내외의 원고, 중편소설은 3~400매, 장편은 800~1,000매이다. 시 교실에서 강의했던 철학 강의록은 원고지 28매로 묶었지만 그 분량을 메우려면 꼬박 일주일은 채워야 했다. 공지영 작가는 단편 1편을 청탁받아 완성하려면 지리산에 들어가서 15일을 채워야 했다고 술회 한 적이 있다. 공지영 작가가 쓴 '지리산 행복학교'에는 지리산의 시인 이원규가 짓고 음유시인 안치환이 곡을 만든, 시산회의 동반시로 한 자리를 차지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의 지리적 배경인 그들의 아지트가 있다. 모일 때 포크 하나만 챙긴다는 곳이다. 적은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주최한다고 생색내는 곳이 아니고 맨날 빈손으로 간다고 미안해하지 않는 곳, 그곳에는 ’우리들의 나라‘가 있을 런지 모른다고, 그곳에 가면 ’우리들의 시대‘가 열린 다고 상상하며 즐거워하던 그곳을 결국은 가지 못했고 7년 전에 근처에 가서 죽순만 실컷 먹고 말았다. 목을 다치고는 그곳은 매우 멀어지고 말았지만 마음의 이상향으로는 버리지 않았다. 아마 육신이 해체되어 세상과 하직해야 그 소망도 사라질 것이다.

 

절 공부를 이어가다가 떨어짐이 쌓이면서 공부로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마음을 감싸면서 희망의 행진곡이 멈춰서는 지경에 이를 때쯤 하산하였다. 나름대로 쌓인 실력이 있었던지 취직시험을 보자 바로 여러 곳에 합격하였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ADD(국방과학연구소)에 입소할 것을 결정했다. 그곳에서 운명적 인연으로 만난 대학의 법대 선후배 3인은 청량리 시장의 좌판에 자주 모였다. 그때는 박정희 정권의 끝이 보였던 만큼 시국이 험악한 때라 지극히 말조심을 해야 했다. 지금은 낙지보다 비싸 먹기 힘들지만 그때는 내다버렸다는 주꾸미가 싸고 맛나고 푸짐해서 시장의 큰길 좌판에서 자주 어울렸다. 소주도 실비에 가까웠다. 그때 나눈 대화 중 최고의 수위였다는 ‘우리들의 시대’는 박정희의 십수 년의 독재정권에 대한 시위에 독이 올랐던 그때와 맞물려 있다.

 

국선도의 2인자로 여기는 임 교수와 선불교를 공부해온 나의 대화 중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그는 수행 중 나타나는 현상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와 같으나 나는 해석을 하지 않으므로 의미 부여를 하는데는 유보적 입장이고, 그는 그 현상에 대해 해석을 하며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명상의 방법에서 나는 화두를 들어 접근하나 그는 호흡법을 통하여 접근한다. 선불교는 호흡에 집중하지 않으며 의미 부여도 하지 않는다. 명상 중 그는 눈을 감는다고 했다. 선불교는 눈을 감으면 혼침, 즉 망상에 빠지기 쉬우므로 눈을 감지 않는다. 절방에서는 3미터 앞의 방바닥에 임의의 점을 상정하여 쳐다보므로 눈을 내리까는 것으로 봐서 언뜻 보면 눈을 감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눈을 감지 않는다.

 

국민학교 시절 읽은 '바닷물이 짠 이유'라는 동화에 나오는, 바다 속에 가라앉은  맷돌을 계속 갈아서 나오는 소금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와 나는 끊임없이 맷돌을 갈아댔다.

 

열차에 올라가자 아침 도시락이 좌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평소 새벽에 날달걀과 우유, 브로콜리, 요구르트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므로 먹을 필요가 없었지만 좋아하는 떡을 먹고 과자는 주머니에 넣고 생수를 가방에 넣었다. 마침 옆의 근호의 옆자리가 비어 일단 옆에 앉았다. 후에 올라탈 사람 역시 동창 중 한 사람이므로 자리를 바꾸면 될 일이다. 조 총장이 와서 진행사항을 자세히 브리핑해준다. 평소 용의주도한 성격에 마침 거기에 맞는 직책이라 우리 모두에게는 안심해도 될 최적합의 상황이 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동대구역에 내려 가까운 주차장에는 우리를 3일 동안 태우고 다닐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정해준 번호에 따라 차를 타면 우왕좌왕할 혼란이 없다. 약간의 변경이 있어 임경택 법사가 옆에 앉게 됐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한 번도 가까이 앉아본 적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으나 오늘의 관계 따라 이번에 옆자리에 앉아서 다니게 된 것은 인연/연기(因緣生起: 줄여서 緣起)법의 결과다. 앞으로 불가의 언어를 자주 쓸 예정이므로 양해바란다. 참고로 불가에서는 믿음의 대상이 없다.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은 경배의 대상으로서 올리는 것이지 그분을 신앙의 대상으로 상정하여 올리는 것이 아니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불교를 종교로 보지 않아 주기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야훼라는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는 불교, 곧 언어 그대로, 붓다의 가르침을 극복해야 할 종교로 보지 않아 주기 바란다. 불교도는 신을 수행의 수단으로 삼을 뿐이다. 임 교수는 국선도의 2인자, 1인자가 없는 2인자이므로 실질적인 1인자라고 알고 있다. 이것은 내가 건강의 치유법으로서 단전호흡법을 배우고 싶어 수련을 받았던 노원구 국선도 관장이 한 이야기다. 한참 수련을 하는데도 단전호흡이 되지 않아서 수련인으로서 질문을 던지면서 이어진 대화에서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내가 임 법사의 친구라는 사실을 말하니까 반색하여 임 교수를 이 도장에 초빙할 수 있게 꼭 도와달라고 간곡한 자세로 요청해서 확답을 유보한 채로 ‘시도는 해보마’고 대답하였다. 그때까지는 삼풍백화점 사고 때문에 매스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에 대한 호기심은 내 입장에서 보면 단순했다. 그런 연결고리로 봐서 국선도에서 氣의 대가 정도로 알고 있었으니 창시자 청산 거사가 홀연히 사라진 국선도에서 그의 위치는 몰랐다. 그때 마침 내가 아파트를 지을 땅을 급히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무척 바빠졌기 때문에 확답하지 않아서 느슨해진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을 경주의 음식점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남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게 됐다면서 반색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고 나는 화제와 관련한 질문을 해갔다. 그는 물 만난 고기 같았으며, 국민학교 시절 읽은 바닷물이 짠 이유라는 동화에서 바다 속에 가라앉은  맷돌에서 소금을 계속 갈아서 나오는 소금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와 나는 끊임없이 맷돌을 갈아댔다. 그 이야기를 계속 듣고서 우리의 대화에 흥미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뒤 좌석의 성명 미상의 친구가 말을 걸어 오기도 했다. 우리의 대화는 2일째도 계속 이어갔으며, 3일째는 차가 다르게 배정되어 그치고 말았다. 우리의 대화는 정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正淡論(맑은 못 같은 논리로 찬 이야기)이었음을 믿는다. 물론 임 교수는 못 다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며, 나도 물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첫째 날

동대구역에서 내려 관광버스를 2시간 타고 천년고도 경주에 진입했다. 교동쌈밥에서 쌈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음식맛의 전국화가 이루어져 경상도 음식맛도 괜찮다는 의견에, 전라도 찬모를 고용해서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내가 포천일동용암천을 경영했는데 5개의 식당을 임대차계약을 하는데 지배인의 의견을 반영했다. 지배인은 식당의 찬모는 반드시 전라도분을 고용해야 한다는 단서를 넣어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이 정도의 규모는 전국에서 가장 크며, 규모에 걸맞게 식당의 음식맛도 좋아야 하는데 그것은 찬모의 손맛에 달렸다는 것이었다. 지배인의 의견을 적용하였더니 소문으로 봐도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다. 그 이유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음식은 다양했고 푸짐했다. 조 총장의 용의주도함이 엿보였다. 물론 관광버스회사 또는 가이드의 의견을 반영했을 것이지만 가이드는 영업관리상 맛의 파악에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신정균 점장이 오래 이어온 인연으로 불국사 주지께서 점심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두 분에게 고마운 심경의 인사를 드린다. 바로 천마총이 있는 대능원으로 출발한다. 시간관계로 천마총 관람은 지나쳤다. 첨성대는 울타리를 친 것 말고는 변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옛 추억을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도 정한과 둘이 첨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첫날 정한은 말이 없다. 불국사로 이동하는 동안 신정균 점장과 불국사 주지가 오랜 인연을 이어온 것에 대해 일동의 박수!

 

불국사에 들어가니 불국사 주지 종우 선사가 선방으로 초청한다. 자신은 참선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사판이 아닌데 억지로 맡았다고 하신다. 선방은 하안거와 동안거 각3개월 동안은 묵언수행에 가까운 집중의 시간이 계속된다. 그 동안은 외부인의 출입을 완전 통제한다. 안거가 끝나는 것을 해제라 하여 다음 안거동안 만행(萬行 : 안거 사이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생활선을 하며 수행하는 것)을 한다. 도반을 찾아 쉬기도 하고 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행의 길은 고행의 연속이다. 나는 대학시절 불교학생회 소속으로 무척 가깝게 지냈던 도반이자 친구가 조계사에서 결혼식을 올린 날, 바로 불연으로 만난 신부와 헤어져 각자 수행의 길로 입산해버린 경우도 봐왔다. 그뿐이랴 많은 수행승들과 山林僧들을 봐왔다. 그들을 理判事判이라 부르기도 함에 있어 의미 부여를 하지만 꼭 맞는 비유는 아니다. 그들 중 아쉬운 헤어짐도 있지만 그 또한 인연법의 일상적 흐름일 뿐이다. 종우 선사는 자신은 수행자인 이판으로서 사판이 맡는 자리인 주지는 실없이 지나쳐도 좋을 만큼 싱거운 인연이라 한다. 하안거가 끝나 텅 비어 한가해진 선방을 공개하겠다고 한다. 당연히 얼른 가야 한다. 텅 빈 선방은 마치 ‘ 철 지난 바닷가’와 닮은 꼴이다. 모두 좌정하고 선사께서는 약간의 이야기를 하고선 자신이 쓰게 된 '是甚麽(시심마 : ’이뭣고‘라는, 가장 기본적인 화두)'라는 휘호를 족자로 만들어 6개를 주었다. 여담으로 선불교의 화두는 선문답 가운데 만들어진 것이 많은데 기본적인 질문은 ’너는 누구인가?‘, ’너는 무엇(一物 : 일물. 어떤 물건)인가?‘,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생각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달마 조사가 서쪽<인도 혹은 페르시아>에서 온 까닭은)?‘ 이 화두는 40년 전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국제영화제 유명해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질문과 같은 뜻이며, 이에 대한 답으로 만들어진 화두가 많다. 나는 젊은 날의 스승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板齒生毛(판치생모 : 앞 이빨에 떨이 나있다)‘, 함께 화두를 받은 도반은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 :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를 받아 그날 이후 평생에 걸쳐 생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평생 해도 못다한 이야기로 남믐다.

 

그중 5개는 총장이 지명하여 주었고 나머지 하나는 간단한 게임을 통하여 결정하였는데 수여자는 시산회의 ‘정일정 박사’, 곧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우병우처럼 정일정이었다. 최종 결승을 두고 마침 하나 건너 앉은 정 박사를 향해 ‘불교를 믿지도 않은데 뭐 하려고’ 했더니 대뜸 나를 주겠단다. 그로 인해 그 물건에 마음을 둔 사람이 많아졌으니 묘한 물건이다. 내게 주면 남기인 회장에게 주려 했으나, 진오의 제안으로 그는 마음을 바꿔 자신의 집에 걸어두고 마음을 다스리겠다니 그건 더 반가운 결과가 됐다. 그로 인하여 온 동네가 시끄러운, 가벼운 해프닝이 있었으니 재밌고 싱거운 물건이기도 하다. 봉우 선사께서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보라 했는데 내가 질문하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이 분명하므로 건너 뛴다. 종우 선사의 대담이 끝나고 법당으로 이동하면 만나는, 언제나 반가워서 환희심이 돋게 하는 석가탑은 볼 때마다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수리 중이었다. 임용복 수석이 법당 앞 석등을 보면 뚫린 네모 구멍으로 불상이 정면으로 보인다고 귀띔해준다. 사진으로 찍었으나 조명이 충분하지 않아 내 마음같이 까만 불만 켜졌다.

 

好事多魔, 즐거운 일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조 총장에 대한 고마움은 더 큰 그릇에 가득 찼다. 이러한 고마움이 ㅡ내가 이 기다란 여행기를 쓰는 것은 그의 차례가 된 산행기의 순서를 무시하고ㅡ 그의 승낙도 받지 않고 남기인 회장의 제안에 선뜻 응하게 한 이유다. 쓰면서 ‘나도 참 말이 많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경주를 떠나면서 포석정은 잘 있는지, 분황사 전탑, 석굴암, 안압지, 경주박물관은 잘 있는지! 황룡사 9층 목탑은 언제 복원 건립하는지, 궁금했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다음 일정의 목적지는 포항제철로 유명해진 포항의 호미곶이다. 포항으로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시작한 임 교수와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두 사람 공히 목의 울림통이 커서 본의 아니게 많은 친구들이 대화를 엿들었다. 나의 질문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70대 이상의 노인들은 연금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궁핍한데도 불구하고 왜 부자들의 전매특허인 보수 성향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가 정치학을 전공하게 된 주 이유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니 물 만난 고기와 같은 현상에 처한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장황할 수밖에 없을 만큼 길어야 했으나, 논리정연하게 이어갔다. 그의 논리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맞닿아있다.

 

포항 호미곶은 상생의 손으로 유명하다.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간다.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가 스피커를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좋은 노래는 언제 들어도 귀와 뇌를 즐겁게 한다. 먼 바다를 보니 왼쪽으로 영일만이 보인다. 안쪽은 보이지 않지만 멀리 떠있는 높고 기다란 화물선은 한가하다. 마도로스 전작은 세계에서 가장 큰 50만톤의 유조선 선장을 했다니 그 배는 얼마나 클까, 흔히 크다는 유조선의 길이가 300m였으니 최소 400m는 되었을 것이다. 항공모함이 대략 300m인데 그보다 크다는 것이네. 상생의 다섯 손가락 끝에 서있는 갈매기가 조각인 줄 알았는데 지금 들락거리는 것을 보니 실제의 갈매기였다. 나가면서 1년 후에 도착한다는 우편엽서를 보내는 우체통 이벤트 아이디어는 그 옛날 첫사랑 소녀에게 말 한 번 건네지 못하고 그 사랑이 풋사랑이 되어버린 연애 실패 경험자의 작품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갓 태어나 손녀에게 썼다. 1년 후를 기약해본다.

 

간식을 넉넉히 공급했으므로 배가 고프지 않았으나 식사는 제때에 맞춰 먹어줘야 하는 법,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뻥‘조차도 미쁘게 봐줄 수 있는 죽도어시장의 횟집에서 회는 이렇게 마셔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기본 반찬과 회는 네 사람이 먹기에 충분할 만큼 푸짐하게 나왔다. 앞에는 갑무, 두 옆에는 처음 이름을 알게 됐으나 이내 잊혀진 이름들이 앉았다. 갑무와 나는 맥주를 한잔하는데 그 사이에 두 잊혀진 이름들은 술을 못 마시는 것에 대한 화풀이를 하는 양 폭풍흡입을 시작했다. 적어도 그날의 내 눈에는 젓가락이 움직이는 속도를 내 시선이 쫓아가지 못하고 중도에 기권했다. 그래서 갑무와 나도 자신의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술 마시기를 중도 기권하고 폭풍 속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바로 회 속에 빠져 숨은 가빠오고, 마침내 회 접시는 바닥을 보이면서 그들은 우리를 익사 직전에 구조했다. 우리의 몫을 빼앗긴 갑무가 ’회 추가‘를 외쳤다. 적어도 내 나쁜 귀에는 그 소리가 처절한 아우성으로 들렸음은 무리가 아니었다는 믿음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아흐 동동다리!!! 달도 높이 솟았다. 소중한 경험과 뼈저린 기억은 오래 남는다고 오래 전에 뇌과학자들이 증명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번째 접시에는 소중한 기억을 아예 박아 넣을 양, 아무리 권해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으니 아쉬운 추억을 남겨주는 것으로 다시 오금을 박는다. 역시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현인들이 오래 전에 말했다. 식당 역사상 가장 많은 손님이었다니 좋은 일은 나눠가져야 하는 법.

 

식후 임 교수와 맞담배를 태우고 영일대 해변공원으로 대화를 옮겼다. 따뜻한 빛으로 감싼 해변가 팔각정으로 옮겨간 대화를 형채와 세환, 한천옥 작가는 우정까지 가득 담아 사진으로 보냈다. 역시 나는 밤이 어울리는 존재이다. 우리가 조금 심했나?!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처음 간 포항의 밤은 ‘우리들의 시대’의 무대였다. 포항 필로스 호텔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임 교수는 내 어깨를 주무르며 어깨 근육이 뭉쳐 신경을 자극하므로 더 아플 수 있다면서 늦더라도 자기 방으로 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안면방해가 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잠자리를 바꾸면 잠이 오지 않는 성정을 갖고 있는 관계로 수면유도제를 복용하고 잠을 불렀다. 지금은 그날의 수면 파트너가 생각나지 않는 2주 후의 밤이다. 기억력이 쇠퇴하고 건망증이 심해져 마나님 등쌀에 치매센터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나더러 아직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 평생 치매에 걸릴 것 같지 않고, 치매와 건망증은 방향이 다르다고 했다. 일단은 믿어본다. 결국 생각해냈다. 계신이와 룸메이트가 됐는데 워낙 점잖은 친구라 수면유도제 먹고 편하게 잠 속으로 들어갔다.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이제 일반식도 맛이 나쁘지 않다. 젊은 시절 부산 군수기지사령부로 무척 자주 출장을 갔는데 전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므로 전국화되어서 그런지 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의성 김씨 大小 일곱의 종가ㅡ고모의 말에 의하면 어렸을 적 광주에서 모여 버스를 대절하여 갔다는데 나는 기억이 없다ㅡ가 모여 있는 안동의 맛과 대구의 법원 앞에서 먹은 추어탕의 말간 국물의 맛은 일생 최악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안동의 간고등어는 동해산이어선지 조금 낫다.

 

해상 스카이워크를 걷고 나서 환호공원 스페이스를 올라가는 출발점에서 하필 변의를 느껴서 화장실에 들른 사이 친구들의 대부분은 이미 올라가 있다. 마침 수호와 조우하여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주저앉았다. 허리 수술의 결과 약간의 통증이 온다고 한다. 금호그룹이 망해간 역사의 뒤안길에 있었던 그의 이야기는 항상 나까지 화나게 만든다. 나도 그 주역들을 잘 안다. 그러나 외부자인 내가 거론할 화제는 아니다.

 

항상 소년의 싱긋한 웃음을 유지하던 철학자 정진민의 얼굴에는 한숨이 그려졌다. 살 빠지는 당뇨란다. 잠시 후 조 총장의 거역할 수 없는 도화살桃花煞이 화제에 올랐고 그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의 솔직담백함은 커다란 미덕의 선물이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오래 동안 친구들의 입초시에 오르내릴 모양새로 보이지만 조 총장은 속눈썹 한 터럭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다. 그는 이러한 즐거움도 제공할 줄 아는 초능력의 사나이다.

 

보경사로 출발하여 내연산 12폭포를 보러 갔다. 그 사이에도 임 교수와 나의 대화는 이어지고 寺下村(사하촌 : 절 아래 동네)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모의 입담은 점잖으면서도 푸짐했다. 이 정도면 음식의 맛은 걱정할 수 없겠다. 우즈베키스탄 처자가 차려주는 더덕과 산채 정식 반찬으로 인하여 식탁의 넓이가 부족할 지경이다. 온갖 산채로 도배한 상차림은 막걸리와 환상 궁합에 이르러 절로 술맛이 돋았다. 거기에 구성원 4명의 입담도 맛났다. 동주 회장과 걸어다니는 백과사전 영훈, 이럴 때 꼭 한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 임용복 수석인가? 후식으로 나온 냉콩국수는 별미로서 배가 찼는데도 불구하고 식욕을 자극한다. 동주 회장은 평소 콩국수를 즐겨먹었는지 여러 번 칭찬한다. 나는 애들이 어렸을 때 동해안을 일주했는데 이곳을 들른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25년은 넘었을 것이다. 산천이 두 번 반만 변했을 뿐인데 기억이 가물거린다. 보경사 방향으로 가면서 시산회의 주요 행사인 시 낭송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보경사 아래에서 모이는데 약간 명이 빠졌지만, 사진을 찍는 줄 알고 너무 많이 모여 회장과 총장이 나서 정리하고 무사히 낭송한 후 전체 사진을 찍고 해산, 역시 시산회의 단결력은 대단하다. 444회 산행까지 끌고 온 시산회의 저력은ㅡ 1992년에 일어난 휴거 소동은 미친 짓으로 일단락되었고 그때의 상징 숫자가 666이었는데ㅡ 우리의 444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까? 생각이 있는 산우는 말씀해보시라. 여기서 더 올라간 친구들은 소나무 숲이 좋았다고 말한다. 사진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다. 삼환이는 불교도답게 부처님께 삼배를 하느라 사진 촬영에 늦었다. 그 늦음은 훈장이다. 나는 그 늦음을 존중한다.

 

포항 이가리 닻 전망대

포항의 외곽으로 빠지는 차 안에서도 우리의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조 총장이 케익을 곁들인 커피 한 잔에 10,000원이란다. 반신반의했다. 서울보다 비싼 커피값은 경상도에서는 결코 착하지 않다. 전망대는 길가에 있었고 건물은 현대식으로 지었다. 외부 치장은 노출 콘크리트이다. 이 시공방식은 단가가 비싸다. 그래서 커피값이 비싸다고? 설마. 동해를 바라보는 전망은 전형적인 背山臨水의 형태로 만만치 않다. 미리 주문한 대로 이윽고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받는다. 테라스로 나가니 용복, 형채, 세환 등이 앉아있다. 커피맛은 그저 그렇다.

내가 다니는 동대문도서관의 북카페가 낫다. 가성비도 그곳이 낫다. 3층의 노트북 열람실에서 놀면서 글 쓰는 작업을 해왔는데 목을 다치고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수와 세기의강도에 문제가 생겼다. 머리칼이 하얀 노인은 학생들의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고 실리콘 키보드로 바꿨지만 손가락이 많이 아팠다. 결국은 1층 북카페로 내려왔다.

 

거기서는 커피를 후룩후룩 마시고 점심으로 브런치를 먹어도 소리와 감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구나 카페가 그렇듯 셀프서비스인데 나는 특별대우를 해줘서 내 자리까지 이동해준다. 그 특별대우에 간혹 시비를 거는 심술의 노인네들이 있으나 카페 측은 괘념치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밝힐 처지는 아니다. 다만 주인은 돌싱이며, 완도가 고향으로 젊은 날 미스 전남은 족히 했을 만한 키와 미모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하여 양복 한 벌 받으시라. 내가 평일에는 손녀를 봐줘야 하므로, 휴일의 아침에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오후의 초코라떼는 천상의 맛이다.

 

사방기념공원

답답해서 나왔더니 길 건너에 사방기념공원이 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것으로  봐서 기념일인데 공무원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니 일반인은 하나도 없고 행사 참가자만 오고 간다. 조금 올라가보니 박정희와 관련한 곳이다. 갑자기 배알이 꼴려서 버스 안으로 들어와 버린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박정희의 향수에 젖어 사는 존재들이 있는 모양이나, 개발독재 찬양자들은 그들의 길을 가고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갈 뿐이지만 가혹한 독재 18년에 이렇게 훌륭한 일등 국민들과 더불어 이 만큼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팔푼이치고 상팔푼이다. 논쟁을 이어갈 실익이 없어 화제를 중단한다.

 

저녁 식사의 시간에 흥이 돋았는지 여기저기서 건배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취한 듯한 친구들이 보인다. 중구에 위치한 호텔이라 빨간 조명의 간판이 많이 보인다. 방을 배정하고 4층 연회장에서 불국사 종우 선사가 희사한 족자의 소유권을 가리는 시간이다. 약간의 해프닝 끝에 정일정 박사가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그 족자는 우여곡절 끝에 정 박사의 집에 모시게 된다. 참고로 여사장의 공언에 따라 광고인은 호텔 숙박비의 30%를 할인 받기로 한다. 기회기 되면 이용하시라.

 

오늘의 룸메이트는 염재홍이다. 술을 더 마시자는 평소의 술친구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지만 나가지 않는다. 재홍이는 갈등을 느끼는 눈치지만 내가 강경해서 차마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잠시 후 옆방에서 제지를 하는지 이내 조용해진다. 조용히 잘 잤다.

 

셋째 날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의 한식을 먹는다. 사장님이 몸소 서빙을 한다. 나라면 호텔 영업을 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게 돈인데 쫓아가야지, 오기를 기다리나! 돈은 능동적 방식으로 벌어야지, 수동적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그런 방식은 발전적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므로 큰돈을 만지기 어렵다. 내가 돈을 보는 자세다. 오늘은 임 교수와 떨어져 앉는다. 주변의 친구들, 특히 테니스계의 장자 김재일이 합석을 권했지만 오늘은 떨어져 앉는 것이 동승한 친구들에게 예의상 좋을 듯하다.

 

울산태화강 십리대숲에 내린다. 1시간 반의 시간을 주고 마음껏 구경한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 선두를 놓쳤다. 승렬과 세환, 기인과 한 작가가 있으니 멀리 갈 것도 없다. 대숲에서 한 작가가 찍어주는 사진이 귀한 작품으로 남는다. 태화강이 햇빛을 반사하니 그 빛이 가을을 가리킨다. 좋은 친구들과 세환의 유머는 여기서도 빛을 보탠다.

 

장생포 고래마을

한편 고래고기를 예상했으나 요즘은 고래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눈빛이 슬프지 아니한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 어릴 적의 풍속을 잘 표현한 마을에서 가이드의 음성만으로 과거로 이동한다. 누가 시간의 非可逆性을 주장하는가. 여기서는 얼마든지 되돌아갈 수 있는데.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주제 중 하나인데 물리학적 시간을 이해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운하 건너에 미포조선이 있고 현대자동차와 여러 조선소가 보인다.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물건들이다. 선진국에 도달한 것을 우리 자신들만 모른다는 것이다. 학자들, 특히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를 우리만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TV에서 지상파 및 공중파를 거의 보지 않고 오직 유투브만을 본다. 거기서는 우리가 처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경계를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 본다. 지상파나 공중파 방송은 언론이라는 입장에서 방송을 내놓지만 그들이 내는 색깔이 가증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볼 필요가 있겠는가. 유투브에서 지구 여행 방송을 보면 유투버들이 한결같이 내놓는 말은 우리 위상의 급격하게 상승한 변화이다. 경제규모는 12위이고 국방력은 4~5위, 제조업 강국이며, 한류, 곧 K-로 시작하는 음악, 영화, 의상, 문학, 예술 등을 보면 종합 4위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2~3위에 중국과 러시아가 있으나 독재국가는 서열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千兆國 미국을 제외하고 일본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지나 물까지 건너간 나라이며 독일만 앞에 있으나 국방력은 우리가 훨씬 앞선다는 점을 고려하면 2위는 우리의 차지라는 주장이다. 유럽에 가도 코리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부심을 갖자. 정치는 꼴찌라는 것을 알고 가자. 당연히 그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인기가 20% 선에 머물고 있는 것이 나라와 국민들의 관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점심 역시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해물이 나오는 식당에서 혀는 즐겁지만 어제와 달리 건배 소리는 잦아들었다. 마지막 날에 대해 경배. 그러나 맛났다. 대왕암공원으로 출발한다.

 

울산 대왕암 공원에 가면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람이 무척 많은 것을 보니 코로나 사건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오다가 화장실을 보고 싶었는데 동주 회장을 만났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의견을 묻길래 그 정도의 재력이면 소매상 같은 투자를 하지 말고 도매상을 하라고 했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지켜온 나름의 상술이면서 원칙이다. 어찌 작은 밥그릇을 탐하려는가. 참새가 벽오동을 심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까. 열차 안에서 장선식 사장에게 잠시 당시 나의 안타까웠던 심중을 이야기했지만, 건설업과 온천업은 경기변화에 취약한 것을 알아서 제조업으로 가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IMF 외한 위기가 오니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여 무너진 것이 건설업과 관광업이었으니 나의 네 회사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라앉았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가 물었으므로 대답해줬을 뿐이다. 패장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동대구에 도착하여 마주 앉은 저녁 돼지고기 정식은 역시 대구 음식은 맛없음으로 판정했다. 그나마 황태무침이 괜찮아 더 시켜먹었다, 반끼리 모인 만찬이었으니 8반의 기인, 갑무, 근호, 진오, 용식, 일정, 연신, 정남 8인이 모여 두 상을 차지했다. 건배하기에 안성맞춤인 숫자라 8번의 건배를 했다. 우리가 여덟인데 일곱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한 사람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전체 명단을 뒤져서야 그게 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참담함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내원참. 동대구역에서 모두 기차놀이하듯 악수한 것은 모임의 백미였다. 조 총장의 용의주도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여 오늘은 조 총장을 대신하여 여행기를 쓰고 있다. 다만 원고지 50매는 채울 것 같다. 다시 보니 여행기만 80매다. 단편소설의 분량이다. 모두 완성하려면 100매에 가깝겠다.

 

다시 한 번 조 총장의 수고로움에 대하여 경배. 옴 마니 반 메흄. 나마스떼. 연꽃 속의 보석 같은 이여,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경배합니다.

 

다만 이번 여행에 평생의 동지 정동준과 나창수 원장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쉽다.

 

2022. 10. 8. 새벽 도봉 올림. 시인의 시각으로 글을 쓰면 은유와 상징을 섞은 비약의 修辭가 되어 생략으로 치달리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소설가와 틀이 다르다. 그러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읽어야 한다. 이해하시라. 훗날 시간을 내서 정정과 가필할 예정이다.

 

3.오르는 산

뒤늦게 시산회에 합류한 삼모 산우는 두 번째 수학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그가 오늘 오르는 청계산의 길라잡이가 되어 적극적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4.동반시

최근에 불교 모임 ‘법과 등불’에서 선암사를 다녀왔다. 지금은 나의 무아론과 선생의 참나론의 방향이 맞지 않아 헤어졌다. 그와의 인연에는 아쉬울 것도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그가 갈 길과 나의 갈 길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모두는 자신의 길을 간다. 그 길이 대도이거나 오솔길이거나 비단길이거나 가시밭길이어도 관계없다.

 

다섯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초고를 준비했으나 방향을 잡지 못해 아직도 예열 중이다. 산고가 심하다. 갈수록 시집을 내는 것에 비례해서 괜히 마음 고생을 더한다. 누가 있어 이 고생을 덜어줄 것인가. 달이라도 높이 도드사.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 / 곽재구(박형채 배급)

 

내 마음이 가는 그곳은

당신에게도 절대 비밀이에요

아름다움을 찾아 먼 여행 떠나겠다는

첫 고백만을 생각하고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때 나는 조용히 웃을 거예요

알지 못해요 당신은 아직

내가 첫 여름의 개울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방울과 함께 웃고 있을 때에도

감물 먹인 가을옷 한 벌뿐으로

눈 쌓인 산언덕 넘어갈 때도

당신은 내 마음의 갈 곳을 알지 못해요

그래요 당신에게

내 마음은 끝내 비밀이에요

흘러가버린 물살만큼이나

금세 눈 속에 묻힌

발자국만큼이나

흔적 없이 지나가는 내 마음은

그냥 당신은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2022. 10. 8.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