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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영장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45회 산행)

영장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445회 산행)

코스 : 들머리 이매역 출발 ~ 날머리 야탑역 하산

때 : 2022. 10. 15.(토) 10 : 30

곳 ; 이매역 1번 출구

길라잡이 : 기세환

뒤풀이 : 군산아구찜 본점(야탑역 1번 출구에서 398미터)

 

1.시가 있는 산행

 

눈풀꽃 / 루이즈 글릭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미국시인이며 77.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 여성작가로는 16번째.

시인의 약력이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출판사들에서는 시인의 작품을 모아 시집을 낼 예정이다. 어렵지 않는 시다. 절망과 겨울 그리고 봄을 축축한 흙 속과 대비시켜 해석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시인이 70 넘게 살면서 겪어온 삶의 질곡, 신고 등을 통과해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시다.

 

2.산행기

“시산회 444회 서울대공원('동물원둘레길’) 산행기”<2022.10.08(토)> / 김삼모

◈ 월일/집결 : 2022년 10월 8일(토) / 4호선 대공원역 2번 출구 (10:30)

◈ 산행코스 : 대공원역-주차장-미리내다리옆-동물원둘레길-북문입구-청계호수-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대공원역-선바위역-뒤풀이장소-선바위역-집

◈ 참석 : 20명 (갑무, 삼모, 정남, 종화, 진석, 진오, 창수, 기인, 형채, 정우, 윤환, 경식, 윤상, 재웅, 삼환, 동준, 일정, 문형, 양기, 황표) ※ 김진석 산우 가입 처음 참석

◈ 동반시 :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 / 곽재구

◈ 뒤풀이 : 오리고기바베큐에 소·맥주 및 막걸리 / '옛골토성'<선바위역 2번 출구 근처, (02) 504-5262> → 김진석 산우 협찬

 

청명한 가을철에 좋은 날씨이다. 서울대공원('동물원둘레길')의 산행은 금년 들어서 시산회 산행에서 두 번째이다. 오늘 참석하기로 한 산우들 20명은 약속시간에 거의 맞춰서 모였다. 시산회에 새로 가입한 김진석 산우가 일찍 나와 반가운 인사를 한다. 좋은 일이다. 한 친구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금 늦게 온다고 연락이 와서 산우들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가 항상 걸었던 길인 서울대공원의 ‘동물원둘레길’을 걸었다. 후에 들어보니 항상 산행기와 동반시를 올려놓는 정남 산우가 쓴 수학여행기를 읽다가 그를 포함한 여러 산우가 환승역 등을 지나쳤다고 하니 얼마나 혼을 뺐는지 나도 한 번 자세히 읽어봐야겠다.

 

서울대공원의 둘레길은 ‘산림욕장길’과 ‘동물원둘레길’이 있다. ‘산림욕장길’은 지난 8월중에 집중호우로 둘레길이 훼손되어 피해복구를 위해 금년도 12월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산림욕장길’은 서울대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외곽의 산책길로서, 총 7 km로 빨리 걸으면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었다.

 

흔히 서울대공원 둘레길은 ‘산림욕장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동물원의 내부 순환도로를 따라 도는 포장된 길은 4.5 km이며, ‘동물원둘레길’은 따로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산우들은 산림욕장 입구에서 부터 포장된 ‘동물원둘레길’을 걷자고 한다.

 

서울대공원의 주차장을 지나 스카이리프트를 바라보니 하늘은 맑았고, 산객들은 제법 많이 저수지 위를 리프트를 타고 지나간다. 우리는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라는 다리 앞에서 ‘호숫가 전경 좋은 길’로 걸었다. 전망이 좋은 길에는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들과 연인들이 휴식의 쉼터에서 좌석을 지키고 있었다.

 

산림욕장길로 오르는 길은 가지 못하게 길을 막았고, 플랜카드를 설치했다. “등산로 파손 및 목교유실”이란 제목으로 안전사고의 발생이 우려되기 때문이란다. 사고 방지와 시설 복구를 위해선 당연한 조치이다. 우리는 ‘동물원둘레길’을 걸었다.

 

좌측의 철조망을 건너면 동물원 호주관 뒤에서 남미관 샛길까지가 첫 구간이다. 다음에는 저수지 샛길이 나온다. 뒤풀이 시간을 감안해 산우들이 가지고 온 간식을 먹기 위해 휴식터를 찾았다. 이곳저곳의 쉼터에는 먼저 온 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숲속저수지 아래쪽에는 폭포가 있고, 다리 옆의 빈터를 찾아서 돗자리를 깔았다.

 

가볍게 오라는 주최 측의 고지에도 불구하고 산우들은 푸짐하고 맛있는 간재미무침, 도토리묵, 부침개, 만두, 골뱅이통조림, 과일 등을 배낭에서 꺼낸다. 막걸리를 비롯한 소주와 담근주도 많이 가져왔다. 세다가 잊었다. 간식을 먹기 전에 목소리를 가다듬고, 동반시(‘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곽재구 시인)를 되새기며 오늘의 길라잡이인 내가 낭송을 하였다.

 

‘선암사 은목서 향기를 노래함’ / 곽재구(박형채 배급)

 

내 마음이 가는 그곳은

당신에게도 절대 비밀이에요

아름다움을 찾아 먼 여행 떠나겠다는

첫 고백만을 생각하고

당신이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때 나는 조용히 웃을 거예요

 

알지 못해요 당신은  아직

내가 첫 여름의 개울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물방울과 함께 웃고 있을 때에도

감물 먹인 가을옷 한 벌뿐으로

눈 쌓인 산언덕 넘어갈 때도

당신은 내 마음의 갈 곳을 알지 못해요

 

그래요 당신에게

내 마음은 끝내 비밀이에요

흘러가버린 물살만큼이나

금세 눈 속에 묻힌

발자국만큼이나

흔적 없이 지나가는 내 마음은

그냥 당신은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곽재구(郭在九, 1954~) 시인은 광주 출생으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로 민중의 삶에 대한 애정을 애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는 ‘사평역에서’(1983), ‘전장포 아리랑’(1985), ‘한국의 연인들’(1986), ‘서울 세노야’(1990), ‘참 맑은 물살’(1995),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9) 등의 시집을 통해 줄기차게 ‘광주’와 ‘5월’을 노래한 시인이다.

 

순천에 있는 조계산의 선암사에 있는 홍매화만큼이나 아름다운 은목서라는 나무가 있나 보다. 꽃나무 이름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더니 은목서는 천리향이다. 만리향과 천리향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만약 시의 제목에 천리향을 썼으면 느낌이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종화 산우의 필명이 천리향이다. 평소 그의 글에서 풍기는 향기가 은목서 향이고, 거저 났던 것이 아니었다.

 

은목서, 나무 이름이 너무나 예쁘다. 가을에 피는 가을꽃 향기가 천리 밖 마을까지 날아가는 나무이다. 시인 자신이 은목서가 되어 어디든 시선이 머문다. 은목서 향기는 흘러가버린 물살처럼 금세 눈 속에 묻힌 발자국만큼이나 가볍게 사라진다. 시인은 은목서 향기처럼 먼 곳까지 은은한 향기를 머무르고 싶다고 노래한다.

 

가져온 음식만큼 많은 화제와 그만큼 긴 시간의 대화로 마음을 채운 산우들은 가지고 온 간식을 다 먹고, 쓰레기를 깨끗이 비닐봉지에 담아 배낭 속에 담았다. 누군가 윤환이를 부른다. 항상 뒤처리에 헌신적인 그와 형채에게 환경부에서 상이라도 내려야 한다. ‘동물원둘레길’ 마지막 북문 입구까지 걷고, 대부분 산우들은 경마공원 쪽으로 이동,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 상설전시)을 간단히 구경하였고, 정남 산우 외 3명은 스카이리프트 중간 도착지를 지나서 서울대공원 정문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하므로 뒤풀이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후에 만나보니 현대미술관을 여러 번 관람했다고 한다.

 

뒤풀이 장소는 선바위역(2번 출구)에서 약 700m(도보로 5분)인 ‘옛골토성’(과천점)이었다. 윤상 산우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먼저 귀가하고, 산우들은 오리고기바베큐를 안주로 소‧맥주(막걸리 포함)를 시끄럽고 맛있게 마신다. 길라잡이인 나에게 주어진 건배사의 기회가 왔다. 망설이는 나에게 옆에서 ‘먹고, 죽자’가 가장 짧은 건배사라며 그것을 권한다. 농담리라도 그럴 수는 없다. 약간 변형하여 “마시고, 살자”로 주흥을 돋았다. 뒤풀이 때 한 잔의 술은 즐거운 기분으로 마시면 약이 되고, 취하도록 마시면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절제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으므로 유념하자. 시산회 445회 영장산 산행을 기대하며 헤어졌다. 산우들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2022년 10월 13일  김삼모 씀.

 

3.오르는 산

세환 산우가 사는 동네의 산이므로 그를 길라잡이로 삼았는지 길라잡이가 되었으므로 그의 동네 산을 산행지로 삼았는지 몰라도, 건강을 회복해서 거의 빠지지 않고 산에 오른다. 무척 반갑다. 나도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올해 초반에 자주 나왔지만 사실 신경 통증에 시달리다 악화되어 약을 먹거나 발라도 서있기조차 어려웠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재활을 시작해서 4개월, 손의 통증은 포기했으나 다리의 통증은 포기할 수 없다. 수영까지 시작했다. 더 나아지면 테니스는 어렵겠지만 탁구는 시도해보련다. 재활의 과정에서 정한 산우의 심적·물적 도움을 받았다. 다쳤을 때 그가 건네준 호두알은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며 손 안에서 논다. 특히 손칼 부분의 통증에 시달리는 나에게 원족외선이 나오는 주걱을 닮은 도자기 맛사지기를 건네줘서 손칼 부분을 맛사지하면 칼처럼 날카로운 통증에서 무척 부드러운 통증으로 변한다. 마침 그가 좋아하는 깨강정집이 모자집으로 변했는데 가을 들어 다시 깨강정집으로 원상복귀했다. 그러나 모든 물가가 그러듯이 한결 비싸졌다. 그렇지만 그가 온다니 반갑게 샀다. 그가 좋아하는 동원 골뱅이도 샀다. 어제 보내준 한과가 뜨끈뜨끈 싱싱하니 가져가야겠다. 그를 바라보며 앞에 나온 시인 루이스 글릭의 ‘눈풀꽃’을 생각해본다. 추위에 잘 견디는 꽃이며 설강화雪降花로도 부른다. 시련은 있으나 포기는 없다는 어느 작가의 글을 연상하게 하는 꽃이다. 그는 반드시 아무일도 없었던 듯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4.동반시

내 고향 영광 불갑사 상사화 축제에 꽃무릇이 환장하게 피었다가 졌을 것이다. 상사화는 6~7월에 피고지지만 꽃무릇은 9월에 피고진다. 그러므로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두 꽃은 다르다. 그러나 같은 꽃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소금과 눈, 쌀이 많아 3白의 고장이라 불리는 영광에는 그만큼 돈이 많아 염전 부자와 눈이 많으니 농토가 비옥해 지주가 많았으므로 한국전쟁 때 부자와 지주들이 피해를 많이 겪었다. 우리 집안도 불온분자들이 저지른 행패에 12명의 가족과 마름 정모 씨가 죽었다. 국군이 진주함에 따라 그들은 불갑산으로 피신했다. 후에 전투경찰에 의해 밀리면서 극히 일부는 지리산으로 갔거나 나머지는 모두 일망타진됐다고 한다. 불갑사는 그들의 사령부였다니 그곳에 가면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산에는 산죽이 우거져 등산로 아닌 길은 다니기 힘들었다.

 

상사화 / 전원범

 

이저승을 넘나드는

인연의 끈에 매달려

꽃이 지면 잎이 나고

잎이 지면 꽃을 피우며

그렇게

애태우면서도

만나지 못해 서러워라

 

그리움의 성을 쌓고

기다림의 탑을 쌓아

속살까지 물들이며

흔들리고 있더니

서로가

눈에 밟혀서

떠나지도 못하는가

 

끝끝내 남은 말은

모두 다 불태우고

내리는 잎잎을

아픔으로 받으면서

한자락

바람을 접어

꽃대만 세우는구나

 

2022. 10. 15.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