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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묵조선. 선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黙照禪)/운문사 승가대학 학장 명성 스님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黙照禪)

운문사 승가대학 학장 명성 스님

 

-목 차-

1. 머리말

2. 선의 기원과 전래

3. 간화와 묵조의 역사적 배경

4. 간화선(看話禪)과 대혜(大慧)선사

5. 묵조선(黙照禪)과 굉지(宏智)선사

6. 맺는말

 

1. 머리말

수도의 요령이 계정혜(戒定慧)를 균등하게 닦는데 있으나 그 중 가장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선정(禪定)이라 하겠다. 계정혜는 솥의 세 다리와 같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한편 다른 일면으로는 서로 단계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계(戒)는 정(定)을 닦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면 정은 혜(慧)를 얻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 하겠다. 계에 의해서 악도(惡道)를 벗어나고 정에 의해서 욕계(欲界)를 여의고 혜에 의해서 삼계(三界)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 정은 중간에 위치해서 삼계를 초월할 수 있는 혜(慧)도 결국 정에 의해서 생기는 것으로 볼 때에 수도의 중점을 정(定)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禪)이란 범어 Dhyana를 음역한 것으로 선나(禪那)를 약칭한 것이다. 또한 정려(靜慮), 사유수(思惟修), 혹은 정(定)이라 번역한다. 진리를 올바로 사유하며 조용히 생각하여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산란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 중생들의 마음은 마치 바다의 물이 바람의 충격에 의하여 끊임없는 번뇌 망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선정을 수행하는 목적이 바로 이 번뇌 망상을 제거하고 본래 청정한 마음에 계합하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선정을 통하여 산란심을 제지하는 소극적 목적에 그칠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함에 의해서 어떤 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하는 적극적 목적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마음(心)을 이름한 것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선의 바탕(體)이다」라고 송나라 때의 어떤 선사가 정의한 것과 같이 선은 마음의 별명이며 마음은 선의 본질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선이라고 하는 대신에 사마타(奢摩他 : Samatha 止) 비바사나(毘婆舍那 : Lipasyana 觀)라고도 한다. 지(止)는 정지의 뜻으로 정적으로 마음을 거두어 망념을 쉬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며 관(觀)은 관찰의 뜻으로 동적으로 지혜를 내어 관조하여 진여(眞如)에 계합한다는 뜻이다. 수행의 요점은 항상 지관균등을 주장하여 마음이 너무 정에 치우쳐서 무기력한 수면 상태에 떨어져도 불가하며 사유에 치우쳐서 산란한데 떨어져도 불가한 것이다. 그래서 대헤(大慧)선사는 서장(書狀)에서 혼침(昏沈 – 잠에 빠지는 것)과 도거(掉炬 – 산란심을 계속 일으키는 것)를 선정을 수행하는데 두 가지 큰 병폐라고 지탄하였다. 그러므로 지관(止觀)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서만이 해탈의 이상경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2. 선의 기원과 전래

원래 선정은 불타 이전의 인도의 선정파인 외도들이 유가(瑜伽 – Yoga)의 관찰법으로서 진리의 발견 및 체험의 도로서 발전한 것이었으나 불타는 구도 시대에 이를 품수하여 항마성도(降魔成道)와 열반에 임해서 사선정(四禪定)에 들었다고 전하여지고 있고 아함경 중에는 사선정에 관한 특수한 해석이 있으며 대승경전에도 대승적삼매의 해탈이 성하게 논의되고 있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는 소위 염화미소(拈花微笑)로서 선종의 기원을 삼고 있다. 한때에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을 하고 계실 때 범왕이 바친 금바라화의 꽃가지를 들어 보임에 수많은 대중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미소를 띄었다. 이에 부처님은 「정법안장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을 가섭에게 전하노라」하고 이에 승가리(가사)를 주어 신(信)을 표하였다. 이것이 바로 불신임을 이심전심(以心傳心)한 선법의 람상이다. 이리하여 인도에서는 마하가섭으로부터 28조 보리달마에 이르기까지 법을 전하여 그 신표로서의 의발(衣鉢 가사와 발우)을 전수하였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보리달마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에 중국에 와서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하므로 제5조 홍인(弘忍)에 이르러 그 문하에서 혜능을 제6조로 하는 남종(南宗)과 신수를 제6조로 하는 북종(北宗)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북종은 오래지 않아 후손이 끊어지고 혜능의 계통만이 번성하여 드디어 오가칠종(五家七宗)으로 분류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 선법이 들어온 것은 신라 선덕여왕 5년(784)에 당나라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받아온 도의(道義)를 초조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을 비롯하여 실상산문(實相山門)등 9산선문이 성립되어 한참 번성하다가 고려 때에는 차차 쇠퇴하여졌다. 그 후 고려명종 때 불일보조국사가 나서 조계산에 수선사(修禪社)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하여 조계선풍을 크게 드날렸으며 오늘날의 승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조계종(曹溪宗)도 바로 조계선풍을 계승한 종이다. 이상에서 선의 기원과 전래를 약술하였거니와 다음에는 간화선과 묵조선의 성립과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3. 간화(看話)와 묵조(黙照)의 역사적 배경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黙照禪)이 성립된 것은 달마조사가 중국에 건너온(梁武帝 AD527)훨씬 후의 일이다. 즉 달마 후 200년경에 선의 대종장인 6조 혜능대사가 선법을 드날리던 시절에도 공안(公案)이니 화두(話頭)니 간화(看話)니 묵조(黙照)니 하는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어구도 사용된 일이 없었다. 6조후 약 300년간 즉 당의 중엽부터 남송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서기 8세기 중엽부터 10세기 초경)는 6조이하에서 비출되는 대종장들이 각종풍이 진작되는 소위 오가칠종(五家七宗)을 형성하는 시대로서 선가의 황금시대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대에도 간화선 묵조선이라는 양식의 선법은 없었고 다만 공안(公案)이라는 어구가 8세기말경에 황벽희운(黃蘗希運), 덕산선감(德山宣鑑), 진존숙(陳尊宿)등에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중국불교의 조간을 이루었던 선종도 당말송초(唐末宋初)에 이르러 쇠퇴 일로를 걷기 시작하여 제5조 영종 때(英宗 AD1064)부터 벽안종사(碧眼宗師 – 눈밝은 종사)는 자취를 감추고 할안종사(瞎眼宗師 – 눈을 멀게 하는 종사)나 머리를 깎은 외도들이 활기를 띠었다. 천동굉지(天童宏智)가 제창한 묵조선을 그의 제자들이 진의를 모르고 잘못 지도하는 것에 분개하여 대혜(大慧)는 묵조선을 타파하는 도구로서 간화선(看話禪)을 내세워 당시 쇠퇴일로에 있는 달마 전통의 원돈 종지를 중흥시켰다.

 

4. 간화선(看話禪)과 대혜(大慧)선사

간화선은 중국 송대 임제(臨濟)하의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고치한 종풍이다. 간(看)은 견(見)의 뜻이고 화(話)는 공안(公案)을 뜻한다. 공안이란 스님들이 마음을 밝게 깨닫는 기연으로서 조사스님들의 말과 행동이 모범이 되어 범치 못할 권위를 가지고 학인이 깨치고 못깨치는 것을 판정하는 것이므로 세속에 비유하여 공안이라 지칭한 것이다. 선문에서 수행하는데 이 공안을 참구하여 깨닫는 선풍을 간화선이라 한다.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 제26에 『다만 망상전도하는 마음과 사량분별하는 마음과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마음과 고요함을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시에 눌러내리고 눌러내리는 곳에 나아가 화두를 간하라.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묻되 「개도 도리어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조주 답하되 「無니라」이 일자자(一字子:無字話頭)는 허다한 악지악각(惡知惡覺)을 꺾어버리는 기장이다』라고 한 것이 간화선의 한 예이다.

 

그밖에 엄양(嚴陽)존자가 조주(趙州)에게 묻되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는 때가 어떻습니까」 조주 「놓아 버려라」 존자 「한 물건도 이미 가지고 오지 않았거늘 무엇을 버리랍니까」 조주 「놓아버리지 못할진댄 짊어지고 가라」고 한 방하착(放下着)화두라던가 또 어떤 스님이 운문에게 묻되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도리어 허물이 있습니까」운문「허물이 수미산과 같나니라」한 수미산(須彌山) 화두라던가 또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묻되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조주「뜰 앞에 잣나무니라」라고 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화두 등 실로 1700이나 되는 공안이 있다. 이와 같이 공안 즉 화두는 논리나 사량을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시하여 이를 참구함에 의해서 확철대오하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다.

 

간화선의 취지는 물론 일반이 말하는 것과 같이 우리 중생들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온전히 동체로서 그 사이에 고하의 차별이 없고 평등함을 확신하여 근기의 이둔(利鈍)을 헤아리거나 정요(靜鬧 -고요하고 시끄러움)의 관계없이 공안을 참구하여 철저하게 그 문제를 해결하되 고요함이 그대로 시끄러움이요 시끄러움이 그대로 고요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싹트고 유행이 되었던 간화선은 대혜선사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고취선양하게 되었다. 대혜는 주로 무자화두(無字話頭)로 학자를 접하였으며 때로는 일귀하처화두(一歸何處話頭)로 제접하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간화선은 임제하의 공식선으로 높이 드날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선종은 크게 번성하여 드디어 오가칠종(五家七宗)이 흥기하고 각각 자기의 가풍을 고취함에 있어 혹은 순설적(順說的)으로 혹은 동작으로서 근기를 응하여 지도하되 더욱 더 진전되어 드디어는 할(喝 – 선승들 사이에 쓰는 위엄 있게 꾸짖는 소리) 주타(柱打 – 법을 물으러 온 학인을 주장자로 때림) 심지어는 멱살을 잡거나 밟거나 거꾸러뜨리는 선풍까지 생기어 그 본지풍광을 드러내었다.

 

대혜(大慧)선사는 위에서 말한 오가칠종(五家七宗) 중 임제종(臨濟宗)을 창설한 임제의 10세 법손이요 원오(圓悟)의 제자로서 그의 선기는 벽력과 같은 늠름한 임제가풍을 유감 없이 떨치었다. 그는 대활동가로서 승속을 지도함에 서신을 통하여 그 당시 많은 사대부에게 선법을 전수하였으니 그에게 전수받은 법제자가 자그만치 83인(혹은 94인)이나 된다. 이와 같이 선사의 자질과 품격은 임제가의 대표가 될 뿐만 아니라 불교계의 거성으로서 일반사상계나 정치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주목할 것은 그의 법사 원오선사가 지은 벽암록(碧巖錄)을 불살라 버린 점이다. 벽암록의 편찬에는 아마 자신의 도움도 있었을 것이요, 선문의 최상인 귀감서에 대한 애착이 컸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관찰하고 크게 영단하는 바가 있어 이것을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덕산(德山)스님이 용담(龍潭)화상에게 가서 법을 듣고 활연히 깨달은 후 「이제부터는 절대로 천하 노화상들의 혀끝에는 속지 않겠습니다」하고 짊어지고 갔던 금강경 소초를 불에 태워버렸던 것과 같으리라. 대혜의 분서(焚書)는 어디까지나 껍질(穀)을 벗고 골수를 얻기 위함이요, 가(假)를 버리고 진(眞)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선의 귀감인 벽암록의 문자어구(文字語句)에 집착하는 당시 사람들의 병폐를 막고 문자어구가 지니고 있는 참다운 뜻을 보전하고자 하는 일대영단이었다.

 

이와 같이 대혜는 추상같은 결행으로 간화선을 진작하는 한편 당시 동행하고 있는 묵조선(黙照禪)을 맹렬히 비판하였다. 송대에 배출한 선가중 대혜처럼 그 선풍이 다시 사대부계층에 생활의식 속에 밀착할 뿐 아니라 일반 사상계나 후세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사람도 없다. 이상에서 간화선의 대략을 말하였거니와 다음에는 묵조선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5. 묵조선(黙照禪)과 굉지(宏智)선사

묵조선(黙照禪)은 간화선(看話禪)의 대로서 또한 적조선(寂照禪)이라고도 한다. 묵(黙)은 적묵(寂黙)의 뜻이며 조(照)는 조요(照了)의 뜻으로서 정혜원명(定慧圓明)의 뜻이다. 중국 송조 때에 조동임제(曹洞臨濟) 二종의 세력이 다투는 때에 당하여 조동 하의 천동굉지(天童宏智)선사가 나와서 묵자이자(黙字二字)를 들고 일어남에 대혜가 이를 묵조사선(黙照邪禪)이라 가혹하게 비평한 데서 쓰인 말이다. 즉 묵조선이라는 명칭이 묵조선자 자신들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대혜가 일체의 사량을 끊고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서 묵묵히 말을 잊고 토목와석과 같이 쉬어가고 쉬어가게 하는 묵조선의 그릇됨을 공격하고 비난한데서 지칭한 명칭이다. 간화선이 공안을 참구하여 깨닫는 경지에 들어가는 선혜후정(先慧後定)의 적극적인 선풍이라면 묵조선은 고요한 곳에서 혜광(慧光)을 발명하려는 선정후혜(先定後慧)의 소극적인 선풍이라 할 수 있다.

 

굉지선사광록(宏智禪師廣錄) 제6에

「진실한 공부는 다만 고요히 앉아 묵묵히 참구해야사 깊이 나아가는 바가 있다. 밖으로 인연의 유전을 입지 않고 그 마음을 비우면 만물을 용납하고 그 비춤이 묘하면 만사가 법다운 것이다. 안으로 반연을 생각지 않으면 확연히 홀로 있어 어둡지 아니하고 소소영영한 절대의 경지를 얻게 된다. 묵묵히 말을 잊으면 밝음이 현전하고 비출 때 확연히 체가 신령스럽다. 신령스럽게 뚜렷이 비추면 비추고 비추는 가운데 도리어 묘가 있다. 묘는 묵묵한 곳에 있고 공(功)은 비추는 가운데 있다. 묘가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하게 어두움을 파하는 것은 묵조의 도이며 이미(離微)의 근본이다. 묵(黙)은 오직 지극한 말이요, 조(照)는 오직 널리 응할 뿐이다」하여 굉지(宏智)선사는 묘는 오직 묵묵한 곳에 있다고 역설하였다. 이리하여 묵조가들은 자기들만이 정통적인 선이라 하였으니 즉 「묵묵히 말이 없어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마음의 헐떡거림을 없이 하여 마음을 장벽과 같이 해야사 가히 도에 들어간다」고 한 달마선에 부합시켰다. 때에 임제하(臨濟下)의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이 주장을 비판하여 묵조사선(黙照邪禪)이라하고 스스로는 간화선(看話禪)을 주장하는 한편 변사정설(辨邪正說)을 지어 그 폐단을 구하였다.

 

묵조선의 대표적인 거장은 정각굉지(正覺宏智)선사이다.

선사는(1087-1157) 조동(曹洞)의 십세법손(十世法孫)이요, 후세에 널리 알려진 단하천연(丹霞天然)의 제자로서 당시 선종에서 대혜와 쌍벽을 겨룬 대종장이다. 그런데 후세에 이르러 이 간화와 묵조의 말은 도리어 임제(臨濟) 조동(曹洞)의 특징을 보이는 말이 되었다. 즉, 묵조선은 조동에 속하고 간화선은 임제에 속한다. 대혜 회상이 항상 천명을 세듯이 굉지의 회상도 항상 천수를 헤아렸으며 대혜의 동적인 선풍에 반하여 굉지는 실로 온건화평한 정적인 선풍을 고취시켰다.

천동굉지(天童宏智)선사는 대혜보다 2년후에 출생하여 6년 앞서 입적하였던 바 대헤는 굉지의 생전요청에 따라 친히 법상에 올라 영가법문을 하되 「법당이 꺾어지고 법하(法河)가 마르고 법안(法眼)이 잠겼다」운운의 추도사의 법문을 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그들의 도우관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6. 맺는 말

선정(禪定)의 수행은 대소승을 통하여 어떠한 교과에도 근저를 이루고 있어 선정을 여의고 결코 불교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불교는 어떠한 절대자 즉 신을 내세우지 않고 어디까지나 마음을 중심으로 해서 해탈을 이상으로 하는 것이 다른 종교와 특이한 점이라 하겠다. 유신적(有神的) 종교의 진수가 타에 의존하는 기도에 있다고 한다면 불교의 진수는 스스로의 마음 즉 자아를 깨닫는 선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자아(自我)란 과연 무엇인가? 고대의 철학자나 종교가의 구경목적이 실로 이 자아를 해결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고 부르짖음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아의 문제는 항상 철학상의 중심이 되고 인도에서는 석존 출생이전 2․3백년 전에 벌써 우파니샷트 철학에서 이 문제를 사유관찰하기 시작하였고 석존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산수도 했던 것이다.

 

겨우 6척의 공간을 차지하고 70년의 시간을 보전하는 데 불과한 것이 아(我)라고 한다면 덩치로 보아 실로 인간의 자아는 코끼리보다도 오히려 저열한 셈이 된다. 만약 인간이 정신적 생활의 범위가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여러 가지로 동물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의 생명 즉 자아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무한한 까닭은 그 본성이 원래 무한 절대한 대아(大我)와 관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여(眞如)니 법신(法身)이니 불심(佛心)이니 내지 신명(神明)이라 하는 것도 결국 이 절대아를 가르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이 절대아를 어떠한 방법으로 실현하고 체험할 수 있는가? 일면으로는 감각적 방면을 제어하는 동시에 다른 일면으로는 이상의 표적을 전념으로 참구하여 체험하는 방법이 있으니 위에서 언급한 간화선이나 묵조선의 예를 들 수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특히 사선(四禪)을 세워 선적수행을 강조하였고 대승에서는 6바라밀 중 제5 선정바라밀이 선적수행에 해당한다. 그리고 당대의 종밀(宗密)선사는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 이를 5종으로 분류하였으니 소위 외도선(外道禪), 범부선(凡夫禪), 소승선(小乘禪), 대승선(大乘禪), 여래최상선(如來最上禪)이다. 이와 같이 선의 갖가지 종류가 있는 이상 이에 의해서 체득하는 경지에도 또한 종종의 구별이 있으나 이에서 그 설명을 생략하거니와 선의 깨침이란 결국 정신통일에 의해서 진아(眞我)에 명합한 경지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전에 의하면 불타는 보리수하에 단정히 앉아 사유한 결과 드디어 불과를 성취하였다. 그 깨친 내용의 여하는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알뿐이지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과 같이 오직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과 부처님들만이 알 수 있는 경계요, 우리들 범부의 사량이나 언어를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선은 출가자 뿐만 아니라 재가자(在家者)도 십분 실행할 수 있는 것으로 근기의 이둔(利鈍)과 직업의 차이에 구애되지 않고 누구나 선에 의해서 인생의 의의를 깨달아 참다운 가치를 발향할 수 있는 것이다.